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2
차원상인 012화
제1-5장
“자아! 완성됐군!”
우현은 손에 든 종이를 들어 올렸다.
1. 처음 라이터를 쥐었던 손(대륙으로 갔을 때 손바닥에 모래시계 그림이 그려졌던 손)으로 켜야지만 이동할 수 있다.
2. 이동하기 위해선 손바닥에 새겨진 모래시계가 다 채워져야만 가능하다. 한 번 이동하면 모래시계가 일정량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야만 또 쓸 수 있다. 즉, 채워지기 전까지는 이동할 수 없다. 처음에 이동 후 라이터가 다시 작동 안 된 것은 이 때문인 듯싶다.
3. 이동 장소는 출발 지점이 다음 번 도착 지점이 된다. 즉, 현대 A지점에서 출발해, 대륙에서의 B지점으로 갔다고 치면, 대륙에서 현대로 갈 때 도착 지점은 A로 확정된다. 물론 다음에 대륙으로 갈 때 지난번 출발 지점인 B지점이 도착 지점이 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을 한 곳으로 고정시키는 것이 좋다.
급하다고 아무 데서나 출발할 경우, 현대로 돌아올 때 사람들 눈에 띌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4. 모래시계가 비워지는 양은 무게와 비례한다. 즉, 빈 몸으로 갈 때는 소량이 비워지고, 물건을 많이 챙겨서 가면 그만큼 많이 비워진다. 또한, 채워지는 속도는 현대에 비해 대륙이 더 빠르다. 두 번째 이동 후, 곧바로 다시 이동할 수 있던 것은 아마도 빈 몸에, 대륙에서 이동했기 때문인 듯싶다.
5. 몸이나 손에 닿은 것만 가지고 갈 수 있으며 접촉한 것에 담긴 것 또한 가지고 갈 수 있다.
6. 가지고 갈 수 있는 양은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차원을 넘으면 넘을수록 조금씩 양이 늘어나는 듯하다.
7. 대륙과 자신이 사는 세상은 대략 5대1 시간 비율이다. 즉, 대륙에서의 5일은 현대에선 고작 1일이 지났을 뿐이다.
두 번째 차원 이동을 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우현은 틈틈이 실험을 통해 라이터의 성능을 실험하였다.
대륙을 오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라이터에 대해 아는 편이 좋다 여긴 것이다. 괜히 무턱대고 금괴를 얻겠다고 대륙에 갔다가 자칫 발이라도 묶이는 날엔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은 우현의 눈동자가 시곗바늘을 따라 돌아간다.
똑딱! 똑딱!
한 바퀴, 두 바퀴…… 열 바퀴쯤 돌았을 때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홉 시다!”
서둘러 집을 나선 그는 뭐가 급한지 시동을 걸기도 전에 바퀴를 발로 차댄다.
근데 신기하게도 여간해서는 걸리지 않던 것이 오늘따라 단 한 번 만에 된다.
허나, 우현은 별 감흥 없다는 듯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았다.
“어떻게든 서우 아버님을 설득해야 해!”
그랬다. 암만 대륙에서 금괴를 가져온다 한들 팔 곳이 없으면 말짱 꽝이다. 그렇다고 일면식 없는 속이 시커먼 장물아비들에게 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랬다간 금괴 판매는커녕 자칫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금은방을 하는 서우 아버님을 설득해 금괴를 파는 것이 안전성에서도, 이득 면에서도 더 나을 것이다.
비장한 각오 속에 차를 몰고 이십여 분쯤 갔을까?
한 골목에서 내린 그는 건너편에 있는 파란 지붕의 녹색 대문 집으로 갔다.
호박 덩굴이 휘감은 흰 벽을 따라 대문 앞에 선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하암! 여……보세요?”
한껏 늘어지는 하품 소리.
아직까지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듯하다.
피식 웃던 우현은 인터폰에 대고 말을 하였다.
“우현이다.”
“얼씨구!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이래?”
심사가 꼬여도 배배 꼬인 듯한 말투다.
아무래도 저번 일 때문에 그런 듯하다.
“미안하다 했잖아.”
“하아암! 말로는 뭘 못하냐?”
“일단 문부터 열어!”
띠이이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린다. 대문을 닫고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식사를 마치신 듯 신문을 펼치고 계신 서우 아버님이 보였다.
“우현이냐? 어서 오너라!”
“그동안 잘 계셨어요?”
“나야 잘 있었지. 근데 저번에 왜 안 온 거냐? 연락도 되지 않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뭔 사정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전화는 꼭 받아라. 우리야 그렇다 쳐도 네 동생들은 어떻겠느냐?”
“죄송합니다.”
“이제는 그러지 마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반성하겠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인다.
이에 서우 아버지는 됐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만하고 어서 고개나 들어라. 사내가 그딴 일로 고개를 숙여서야 되겠느냐?”
그 말에 우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참! 서우는 화장실 갔다. 잠시 기다리면 나올 거…….”
“전 아버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다.
이때 주방에서 어머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현이 왔네? 뭐, 마실 거라도 줄까?”
“주시면 저야 좋죠.”
“그럼, 잠시만 기다려라.”
어느새 신문을 접어 한편으로 치운 서우 아버님은 우현에게 말을 건넸다.
“대체 날 보자 한 이유가 뭐냐?”
“죄송하지만 안방으로 가서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거냐?”
“예!”
서우 아버님은 잠시 우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날 따라오너라!”
막 서우 아버님이 일어나려는데 서우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볼일을 시원찮게 봤는지 표정이 좀 좋질 않다.
“왔어?”
“너도 따라와!”
“나? 왜?”
“같이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알았어.”
그렇게 세 사람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어머님이 음료수는 내려놓으며 말을 건네 왔다.
“우현아, 요즘은 왜 뜸하니? 자주 좀 놀러 와. 알았지?”
“그러겠습니다. 어머님!”
“그래! 그럼, 이야기 잘 나누셔들…….”
나가려는 어머니를 서우가 붙잡는다.
“엄마, 내 음료수는…….”
“아들은 알아서 처드셔!”
“하여튼 엄마는 우현이만 좋아한다니까…….”
“시끄럽고 마시고 싶으면 따라나서!”
결국 자리에서 일어선 서우는 어머니를 쫓아 나간다.
주위가 잠잠해지자 서우 아버지가 말을 건네 왔다.
“그래, 굳이 안방에 들어와 하고 싶다는 말이 뭐냐?”
우현은 말 대신 품에서 뭔가를 꺼내 놓았다.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보다 물었다.
“이건 무엇이냐?”
“이번에 제가 개인적으로 거래를 튼 곳이 있는데 대금을 이것으로 받았습니다.”
“대금을?”
“그렇습니다.”
한 차례 주억대던 우현은 싸여 있는 신문지를 풀었다.
그러자 웬 누런 금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때마침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들어오던 서우는 난데없는 금괴에 그만 뿜고 만다.
“켁켁켁! 야, 이거 뭐야?”
“대금으로 받은 거야.”
“금괴를 대금으로 받아? 요즘 세상에 그게 말이 돼?”
당혹해하는 서우만큼이나 서우 아버지 역시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잠시 방 안에 침묵이 찾아들고, 깊은 적막만이 셋을 감싸고돈다.
묵묵히 금괴만 바라보던 서우 아버지가 시선을 들어 우현을 보았다.
“우현아!”
“예, 아버님!”
“요 며칠 새 네 행동이 이상타 들었다. 너 혹시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댄 거냐?”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님도 알다시피 전 그런 쪽하고 거리가 멉니다.”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데도 서우 아버지의 좁혀든 미간은 펴지질 않는다.
“근데 뭔 대금을 금괴로 받아와? 그것도 공인된 것도 아닌 비공인 금괴로 말이야.”
“비공인? 그럼, 이거 정식 금괴 바가 아닌 거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서우에 서우 아버지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흔히 금괴, 골드바라는 것은 일정한 표식을 새겨 두는 것이 원칙이다. 무게, 만든 곳, 순도 식으로 말이다. 물론 덩어리 금을 모아 제품을 만들 경우 제조사가 따로 검인 마크를 새기기도 한다. 흔히 금자마크, 무궁화홀마크, 태극마크가 그것에 해당하지. 하지만 이것 어디에도 그런 표식은 전혀 없는 것이 아무래도 정식 제조사가 아닌 누군가 사적으로 몰래 만들어낸 듯싶구나.”
“아빠, 그런 거면 매우 위험한 것 아니야?”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클 듯싶구나!”
금괴를 만지려던 서우의 손길이 뒤로 물려진다.
순간 꺼림칙한 것이, 손대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뒤로한 채 서우 아버지는 우현에게 물었다.
“말해 보아라. 이 금괴의 출처를 말이다.”
우현은 이때껏 굳게 닫혀져 있던 입술을 벌렸다.
“죄송합니다. 출처는 밝힐 수 없습니다. 다만 아버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위험한 물건은 절대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위험하지 않다면서 왜 밝힐 수 없다는 것이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서우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좋을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묵묵히 있던 그는 시선을 들어 우현을 바라보았다.
“근데 이걸 내게 가져온 이유가 무엇이더냐?”
“솔직히 말씀드려 돈이 필요합니다.”
“돈? 어디 급하게 쓸 데라도 있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제가 보증 빚이 있습니다.”
“보증 빚?”
서우 아버님과 서우에게서 의아하다는 빛이 피어오른다.
보증 빚 따윈 만들지 않을 우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대체 누구 빚보증을 선 것이냐?”
“그게…… 박유범 소장님입니다.”
“박유범이라면 일전에 뵀던 주유소 소장 하던 분 말이냐? 네 은인이라는 분?”
서우에게서도 인품이 좋다고 자주 들었던 사람이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댄다.
서우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어왔다.
“정말 그분이 너더러 빚보증을 서게 했다는 거야?”
“2년 전, 소장님이 나를 불러서 서류에 도장 찍게 한 적이 있어. 그때 찍어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하기에 그냥 들어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출 서류에 연대 보증인 도장을 찍는 거더라고.”
“잠깐! 2년 전이면, 나도 그런 적이 있어. 그때 아마 금은방 일로 바빠서 만나지 못했었는데…… 그럼, 나한데도 너처럼 보증인 도장을 찍게 하려 했다는 거잖아?”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커!”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한 빛을 띤다.
사실 박 소장은 우현뿐만 아니라, 서우에게도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듯 집에 있지 않고 거리를 떠돌며 나쁜 짓만 일삼는 불량배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렇듯 고마운 이가 자신과 우현의 뒤통수를 치려 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배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실망감 때문인지 서우는 연신 헛웃음만 짓는다. 그런 그가 이해가 된다는 듯 바라보던 서우 아버지가 물어왔다.
“대체 대출은 왜 받으려 했다고 하더냐?”
“잘은 모르지만 도박 빚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이웃집 사람이 말하더군요.”
“도박 빚?”
이제야 모든 상황을 알 것만 같다. 그럴 것이 여태껏 말한 것들을 나열하면 도박에 미쳐서 빚을 지고, 그걸 갚기 위해 우현과 자신의 아들을 이용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하긴 도박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을 망치지.”
한숨을 푹 내쉬며 우현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느냐?”
“혼자 야반도주했다고 합니다.”
“가족을 버리고 말이냐?”
“예, 아버지.”
서우 아버지에게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아무리 도박에 미쳤다고 가족까지 내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속이 다 답답한지 음료수를 한 번에 들이켜던 그는 빚진 금액에 대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