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24
차원상인 124화
“그게…….”
“어서 말해! 왜 왔는지?”
“말씀하셨던 것에 대한 조사결과가 흥신소에서 보내왔습니다.”
멈칫한 박한일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조사 결과가 왔다고?”
“예!”
“줘봐!”
조심스레 와서 건네는 서류를 받아들려던 박한일은 핏물에 물든 손을 보고는 와락 이맛살을 구겼다.
거칠게 티슈를 몇 장 뽑아 대충 닦아낸 그는 다시 천 부장에게로 손을 뻗었다.
건네받은 것을 펼쳐보던 박민수의 눈이 번뜩였다.
진소연과 태령 종합 상사 사장 장우현은 한때 고아들을 키우는 시설에서 머물렀다고 추정됨.
“호오! 진소연이 그런 곳도 갔었나?”
재밌다는 듯한 말과는 달리 종이를 넘기는 손길이 차츰 바빠진다 싶더니 한곳에서 멈췄다.
어느새 미소까지 짓던 그는 고개를 들어 천 부장을 보았다.
“천 부장!”
“예에……. 부르셨습니까?”
“한 가지 더 조사를 해줘야겠어.”
“그게 뭡니까?”
“여기 있는 이놈의 할아버지와 백파가 어떤 사이였는지 말이야.”
갸웃대던 천 부장은 슬며시 다가와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한 줄의 글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장우현의 조부 장우길을 죽인 자로 백파가 의심됨.
“백파가 사람을 죽여?”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로 유명한 백파이기에 충격은 더해진다.
당혹스러운 눈빛을 자아내는 천 부장과는 달리 박민수는 책상에 두 팔을 올린 채 턱을 괴었다.
“재밌어지겠어. 앞으로가 말이야. 크크크!”
이 말을 끝으로 한바탕 웃음소리가 방 안을 휘몰아친다.
‡ ‡ ‡
“흐음! 좀 어지럽군.”
창고 밖으로 나서던 우현은 약간의 어지럼증에 잠시 휘청한다.
그걸 본 티아는 재빨리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지탱해준다.
잠시 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우현은 잡은 손을 툭툭 친다.
“티아, 괜찮아요.”
알겠다며 끄덕이던 그녀는 슬며시 옆으로 물러섰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던 우현이 눈살을 찌푸린다.
“확실히 힘들긴 하군.”
오 일 연속으로 대륙과 중원을 오가며 사람들을 실어 나른 뒤 곧바로 현대로 와서 그런지 몸 이곳저곳이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 상태가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처리할 일들이 많아 그럴 수도 없다.
“일단, 저번에 미뤄둔 업무 제휴 문제부터 해야겠군.”
사실 이 문제는 중원으로 떠나는 그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건 대륙에 넘어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어제 저녁 우연히 떠올라 소네스를 불러 상의를 해 보았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시장에 가죽을 푼다는 것.
문제는 그렇게 할 만큼 가죽이 많겠느냐 하는 것이다.
한데, 의견을 물어보기 무섭게 답을 해온다.
크르베 가죽을 안정적으로 많이 얻고 싶다고? 그럼, 키우면 되지. 그놈 몬스터답지 않게 사람 손에서도 잘 크거든. 먹이도 잡식성이라 아무거나 줘도 되고, 거기다 아무리 새끼라도 삼 개월 정도만 지나면 다 크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좋고 말이야. 마법사들 중에는 귀엽다고 애완용으로 키우는 이들도 많아.
그 말을 들었을 때 순간 멍해졌다.
몬스터라고 해서, 또 흔하다고 해서 잡아서 키울 생각은 전혀 안했는데 설마하니 키우는 것이 그리도 쉬울 줄이야.
어쨌든 소네스의 말을 적극 받아들여 크르베 몬스터를 키우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다 클 때까지는 영지민들이 가져온 가죽들로 대체하고 말이다.
해결책을 얻어서인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차원을 넘었는데 막상 그리하려고 보니 짜증이 난다.
왠지 자신만 손해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는 없지. 나 살자고 회사 전체를 힘들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야.”
고개를 쳐드는 물욕을 애써 잠재우며 자신의 차가 세워진 곳으로 갔다.
차문을 열고 차량용 충전기에 꽂혀 있는 배터리를 꺼내 핸드폰에 끼웠다.
그리곤 전원을 켜고 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들리던 연결음이 끊기고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우현아! 돌아왔냐?”
“지금 막 왔어. 아직도 업무 제휴하자는 사람들이 많아?”
“보류한다고 전문을 보냈는데도 막무가네다. 아주 죽겠어! 하아!”
꼬리표처럼 늘어지는 긴 한숨에서 그의 맘고생이 얼마나 큰지 알려준다.
왠지 자신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결정이 늦어져 그런 듯 해 미안함이 든다.
“서우야!”
“왜?”
“지금 거래하자고 하는 모든 회사들에게 전문을 보내! 가죽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니 생각 있으면 계약서 보내라고 말이야.”
“너, 정말 가죽을 시장에 내놓을 거야? 그렇게 되면 공장장님 및 하청업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어.”
흥분한 듯 거칠어지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우현은 말을 계속 이었다.
“어차피 여기 아니라도 팔 곳은 많잖아! 안 그래?”
순간 휴대폰이 적막감에 휩싸인다.
전화가 끊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말이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서우가 말을 건넸다.
“혹시 대륙을 말하는 거야?”
“그래,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신발이 필요하잖아. 거기다 그런 가죽은 이곳보다는 그곳이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안 그래?”
“하긴 그러겠다. 여기는 멋으로 신지만 이동수단이 없는 그들은 튼튼한 신발을 원할 테니 말이야. 맞다! 이참에 워커도 만들어보라고 할까? 대륙 병사나, 중원의 무림인들이 신게 말이야.”
“그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공장장님께 한 번 부탁해봐!”
“오케이!”
할 대화는 다했다 싶어 막 끊으려는데 서우의 목소리다 다시 한 번 들려온다.
“근데 너 지금 들어올 거냐?”
“아니, 일이 생겨서 누구 좀 만날 건데, 그건 왜?”
“네 동생이 연락이 오면 전화 달라고 했거든.”
“거래처 사람 좀 만나고 간다고 해 둬!”
“알았어! 그럼, 있다가 집에서 보자. 오늘 아빠가 술 한 잔하자고 했어.”
“그래, 있다가 보자.”
귀에서 휴대폰을 뗀 우현은 전화부에서 임동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기다린 사람처럼 연결음이 흘러나오기도 전에 받아든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대륙에서 지금 돌아오신 겁니까?”
“예! 지금 막이요. 근데 거기 고흥만 참모님 계세요?”
갑자기 물어봐서 그런가?
머뭇대던 임동수는 조심스럽게 답을 한다.
“지금 화장실에 가서 자리에는 없습니다만 제가 연락드리라고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고요. 그냥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만 알려주세요.”
“아시죠? 동종 빌딩 사무실 말입니다. 지금 그곳에 있습니다.”
우현이 구해준 사무실이기에 위치가 어딘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아 한 십오 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지금 그리로 가죠!”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우현은 운전석에 앉았다.
안전띠를 매는 그를 보던 티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고흥만 님을 만나시려는 게 일전에 말씀하신 전술 전략을 짜기 위함이십니까?”
“예! 듣자니 현대 전술을 가미한 고대 전술에 능한 분이라니까 이번 일에도 잘 하실 것 같아서요.”
“하지만 전략 전술에 관한 일을 안하신지도 오래됐잖아요?”
“사실 그게 좀 염려가 되긴 한데……. 그래도 임동수 씨가 인정하는 이이니 한 번 의견을 물어보는 것도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그렇네요.”
맞는 말이라는 듯 끄덕이던 티아는 이내 시선 돌렸다.
의견을 물어보겠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좀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가볼까요?”
피식 웃던 우현은 운전대를 돌려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희미한 불빛을 자아내는 양초 위로 남궁운혜가 보인다.
커피 잔을 들고 있는 것이 잠시 동안의 여유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서너 모금 정도 마셨을까?
돌연 허공에서 시커먼 것이 떨어져 내린다.
“대공녀님! 다녀왔습니다.”
커피 잔을 내려놓은 남궁운혜은 시선을 들어 상대를 보았다.
“위 대주! 정보가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대공녀님!”
위 대주는 품에서 종이들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
중원과 다른 대륙어로 쓰인 것이지만 별 거부감 없이 읽었다.
아마도 지난 1년간 공을 들어 언어 공부를 한 것이 이리 만들었을 것이다.
모든 종이들을 다 읽은 남궁운혜는 한숨을 길게 내쉰다.
“여기에 적힌 이름에 대해 조사해 봤나요?”
“그렇지 않아도 정보실에 가서 조사해서 적어 온 것이 있습니다.”
또다시 건네는 종이를 본 남궁운혜는 그만 탄식을 하고 만다.
이렇듯 그녀가 혼란해 하는 것은 눈앞에 있는 종이가 다름 아닌 메로나 자작이 포섭된 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명령서였기 때문이었다.
2시간 전까지만 해도 남궁운혜는 이런 명령서 있다는 것도 몰랐다.
아니, 용병들을 포섭한 이가 직접 명을 내리지 않을까 싶어 이런 건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실버문 정보원이 운영하는 주점에 한 사내가 찾아왔다 가방을 놓고 갔는데 그 안에 메로나 자작이 보낸 문서로 보이는 것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포섭된 용병들의 인명록이나, 포섭하는 자에게 보내는 서찰인가 싶어 남궁운혜는 위 대주를 보내 가져오라 한 것이었다.
한데 막상 읽어보니 인명록이 아닌 포섭된 이들에게 보내는 명령서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 명령서에 적힌 이름이 단순히 용병들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명령서 적힌 내용을 보면 얼핏 짐작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하고 싶은 생각에 위 대주에게 조사해 본 것이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위 대주 또한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이름에 대해 미리 조사를 했던 것이고 말이다.
“생각 이상이군요. 용병이 아닌데도 가담한 자가 있다니 말이에요. 그것도 상단 소속인 자가 말이에요.”
“아무래도 메로나 자작이 용병을 포섭한 건 전쟁을 할 때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영지민으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해 영지 자체를 혼란에 빠트릴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군요.”
한숨을 내쉬던 남궁운혜는 보고 있던 종이를 옆에 두었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위 대주가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선택지는 두 가지가 되겠네요. 하나는 영지를 버리든지. 다른 하나는 영지를 피로 물들이든지.”
무거워지는 분위기만큼이나 길어지던 위 대주의 침묵 위로 남궁운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하지만 그런 건 상단주님이 좋아하시지 않겠죠?”
“이미 영지민들 사이로 끼어든 이들입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찌 돌아가든 영지에 핏물이 흐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러겠지요.”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매만지던 그녀의 눈에 명령서가 다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