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25
차원상인 125화
물끄러미 그걸 다시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 스쳐가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위 대주!”
“부르셨습니까, 대공녀님!”
“제가 듣기론 은비각 대원중에 곽철원이라는 분이 역용술을 쓴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위 대주는 주억댔다.
“그렇습니다만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사람을 바꾸죠!”
“사람을 바꾸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렇게 명령서를 보내 명령을 하달할 정도면 서로 간에 일면식이 없다는 겁니다. 그걸 이용해 포섭당한 이들 사이로 잠입을 하자는 거예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단, 한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가능할 것 같네요.”
“그게 뭡니까?”
남궁운혜는 시선을 쳐들어 위 대주를 본다.
“이 명령서를 배달했던 사람을 찾아야 해요. 왜냐면 우리 측 사람과 바꿀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까요.”
“왜 그입니까?”
“그는 명령을 배달하는 자예요. 그 말은 명을 내리는 자와 명을 받는 자를 모두 안다는 말이에요. 만약 그 두 쪽 모두를 알아낼 수 있다면 암살 같은 수를 써서 조용히 일을 끝마칠 수도 있어요.”
맞는 말이라는 듯 위 대주가 끄덕였다.
“대공녀님의 말씀대로 그리만 된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를 찾아야 해요.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동아줄일지도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온 정보망을 동원해. 그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한 차례 고개를 숙인 위 대주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남궁운혜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킨다.
쓰디쓴 커피 맛만큼이나 그녀의 가슴 또한 답답하기 그지없다.
“어떻게든 포섭된 이들을 알아내야해! 영지를 핏물로 물들이기 전에 말이야.”
다짐을 하듯 꽉 쥐어진 두 손 밑으로 시뻘건 핏물이 흘러내린다.
‡ ‡ ‡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사무실 문을 열어주는 임동수에게 고개를 숙인 우현은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들 일하러 나갔는지 텅 빈 사무실 한쪽을 자리한 소파 위로 누워 있는 한 노인이 보인다.
스카프처럼 축 늘어진 흰 러닝셔츠와 하와이안 반바지가 그가 누구임을 짐작케 했다.
곁으로 다가선 우현은 어깨를 흔들어 깨워갔다.
“참모님, 저 왔습니다.”
게슴츠레하게 뜬 눈을 깜박이던 고흥만은 이내 몸을 일으켰다.
“미안하네. 잠시 눕는다는 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야.”
“나이 드신 분들에게 오수만큼 좋은 것이 없다 들었습니다.”
“오수 즐기는 놈들은 할 일 없는 놈들이나 하는 짓이야. 뭘 알고나 그런 소리를 해!”
자신을 한량처럼 보이냐며 두 눈을 부라린다.
말을 곡해 들은 그에 당황한 우현이 두 손을 내젓는다.
“저는 그냥 한 소리입니다. 오해 마십시오.”
잠시 쏘아보다 알겠다는 듯 끄덕거린다.
“근데 왜 날 찾은 건가?”
“사실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탁? 그게 뭔가?”
슬쩍 티아와 시선을 주고받던 우연은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사실은 대륙에서 제 영지를 노리는 이가 있습니다.”
“자네 영지를 노려? 어디 한 번 자세히 이야기 해보게.”
우현은 남궁운혜가 허겁지겁 이야기한 것부터 메로나 자작이 자신의 영지에 있는 용병들을 포상한 일등 대륙에서 했던 모든 것을 다 말해 주었다.
잠시 후,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이제껏 묵묵히 듣고 있던 고흥만이 피식 웃었다.
“재미있구먼!”
난데없는 말에 티아와 우현의 시선이 맞부딪친다.
하나, 그의 속내를 쉬이 짐작치 못하고 고개만 갸웃댄다.
이때 고흥만의 웃음소리가 멈추고 고개가 들려져갔다.
“메로나 자작이 쓰고 있다는 이 전략 누가 가르쳐 준 것인지 혹시 아는가?”
“아직 알아낸 것이 별로 없어서 모릅니다.”
“그래? 아쉽군. 제법 전술에 뛰어난 자인 것 같은데 말이야.”
순간 우현의 눈이 번뜩인다.
왠지 말하는 뉘앙스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임동수에게 물 한 잔 부탁하던 고흥만은 물음에 우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랬지? 이미 용병이 삼백 명 넘게 포섭이 되었다고 말이야.”
“예! 그랬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대처 방법은 간단해!”
“간단하다고요?”
“그래! 일단, 네가 중원에서 데려왔다는 천랑대 포함 육십 명을 두 패로 나눠! 그런 다음 용병들 대부분을 몬스터 토벌을 구실 삼아 영지에서 내보내. 최대한 자네 영지가 피해 받지 않게 말이야. 하지만 일부 용병들은 남을 거야. 치안 문제로 말이야. 이렇게 두 패로 나뉜 용병들을 똑같이 둘로 나뉜 자네의 병사들을 통해 해치우면 되는 거야. 뭐, 몬스터 토벌에 나선 용병들이 수가 많을 터이니 싸우기 전에 마법 같은 걸 싸울 장소에 미리 설치해두면 더 좋고 말이야.”
다 듣고 난 우현은 이내 고개를 갸웃댄다.
고흥만이 말한 것은 그저 용병들을 둘로 나누고, 그 둘을 중원에서 데려온 이들을 통해 각개격파 하라는 것으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까? 우현은 쉬이 믿질 못하고 확인 차 물어본다.
“정말 그리하면 됩니까?”
“응! 자네가 말한 게 전부라면 말이야.”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임동수가 건네준 물을 시원하게 들이킨 고흥만은 질문에 대한 답을 천천히 내뱉었다.
“내가 만약에 적이라면 말일세. 단순히 포섭 대상을 용병들로 국한하지 않을 거란 말이네. 생각해보게! 삼백이나 되는 인원을 내편으로 할 만큼 주도면밀한 이인데 단순히 용병만 포섭한 건 좀 그렇지 않겠는가? 상단 사람도 있고, 영지민도 있고, 포섭할 이들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일세.”
순간 우현은 멍해졌다.
그의 말대로 포섭 상대는 얼마든지 있다.
굳이 용병으로만 국한 시킬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용병이 있으면 좋기는 하다.
싸울 때나, 싸우기 전 폭동 같은 것을 일으키면 우현으로서는 난감해지니 말이다.
하지만 피해가 좀 크다고 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현 측 사람이 많은 관계로 그리 길게 가지 않고 제압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는 귀족법에 의거해 즉위 후 1년간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에 걸려 귀족들의 호사에 오르내리거나 심할 경우 왕에게 참수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위험한 일을 메로나 자작이 굳이 하려 들까?
우현의 생각은 ‘아니다.’이다.
메로나 자작 성격상 그리 위험한 일이라면 발을 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계속해서 일을 진행하는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하다.
지금 계획한 일이 그리 위험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유인즉, 단순히 용병을 포섭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영지민을 포섭해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메로나 자작은 백성을 위한다고 쳐들어와 우현의 목을 칠 것이다.
아무리 반항한다 해도 이미 명분은 메로나 자작에게 있는지라 싸워서 이긴다 해도 알카인 왕국에서 있기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한 마디로 우현으로서는 죽거나, 타국으로 도망치는 두 가지 방법 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읽은 우현은 시선을 들어 고흥만을 보았다.
“저들은 민란을 원하는 군요. 용병들에 의한 폭동이 아니라.”
“그 편이 자네를 해치우기엔 더 좋지. 일단, 그럴 듯한 명분이 있으니 자네가 전쟁에서 이긴다 해도 많은 부분을 양보해야 할 거야. 게다가 이 일이 평생의 족쇄가 되어 자네를 쫓아다닐 테니 상대에게는 이만큼 좋은 일도 없겠지.”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찌해야겠냐는 말에 고흥만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동수야! 지팡이하고 모자 가져와라!”
“여기 있습니다.”
한달음에 가져와 건네는 지팡이와 모자를 손에 쥐고 우현을 보았다.
“뭐해! 안 갈 거야?”
“어, 어딜?”
“어디긴 대륙인가 하는 곳이지.”
“직접 가보시겠다는 말씀이세요?”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제법 머리 좀 굴린 놈이야. 머리 쓰는 놈에겐 머리 쓰는 놈이 붙어주는 게 예의 아니겠나?”
어서 앞장서라는 듯 지팡이로 앞을 가리킨다.
서둘러 일어선 우현과 티아는 고흥만을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다녀오십시오.”
임동수가 막 고개를 숙이던 그때, 문 밖으로 내디디려던 고흥만의 발길이 멈춘다.
“동수야!”
“예! 참모님!”
“상용이하고, 태강, 강일, 재식이에게 연락해서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언제든 출발할 수 있게 말이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아, 알겠습니다.”
임동수의 고갯짓을 본 고흥만은 헛기침을 하며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리 여유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 ‡ ‡
쉬익!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뭔가가 바닥에 굴러 떨어진다.
진한 혈향 뿜어내며 구르던 그것은 덜덜 떨리고 있는 발밑에 딱 멈춰 선다.
자신도 모르게 내린 시선 사이로 두 눈을 부릅뜬 채 잘린 머리가 보인다.
발작하듯 발길질을 하는 통에 머리는 구석으로 데구르르 굴러가 버린다.
“비, 빌어먹을! 대체 어떤 놈들이야?”
손에 쥔 빗자루를 치켜들어 보지만 떨리는 손으로 인해 허공에 의미 모를 수가 놓여진다.
쉬익!
또 한 번 들려온 바람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보지만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머리 위로 드리운 짙은 어둠만큼이나 공포감과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아간다.
순간 창가를 넘어 흐르는 달빛이 얼굴을 스쳐지나가던 그때 시커먼 옷차림의 한 사내가 보였다.
“다, 당신 누구야?”
“메로나 자작을 아는 가?”
“메로……. 흡!”
사내는 손을 들어 입을 막아간다.
마치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처럼 말이다.
어둠 속에 서 있던 이는 순간 눈으로 보이는 한 쌍의 빛을 번뜩인다.
“아는군!”
“모, 몰라! 그런 사람 몰라!”
서둘러 도망치려 하지만 어디서 날아온 것이 양 어깨에 단검이 꽂혀든다.
“크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그의 위로 말상을 하고 눈 밑에 점을 단 사내, 남궁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냐? 네게 명령서를 준 사람은!”
“모, 몰라!”
모른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남궁연은 발을 들어 어깨에 꽂힌 단검 손잡이 끝을 발로 꾹 눌러간다.
“크아아악! 아파! 너무 아프단 말이야!”
“어서 말해라! 그럼 편해질 수 있다.”
“아아악!”
비명만 질러대는 그에 남궁연은 있는 힘껏 발로 내리찍어 살 속으로 단검을 쑤셔 박았다.
“크악!”
두 눈을 희번덕대며 부르르 떠는 상대에게 남궁연은 발을 들어 다른 단검의 손잡이 끝에 얹고 물었다.
“세 번 말하지 않는다. 말해라! 그 자가 누군지!”
“카아…….”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가 이리저리 부풀어 오른다 싶더니 풍선처럼 터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