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26
차원상인 126화
옆에 있던 탁자를 세워 자신에게 날아든 인육과 핏물을 막았던 남궁연은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깨끗하다 싶을 정도로 머리만 날아간 그 시체에 눈살이 와락 구겨진다.
“금제가 걸려 있었던 모양이군.”
아무래도 쉬이 적의 정체를 알긴 그른 것 같았다.
세웠던 탁자를 옆에 치운 그는 뒤를 향해 말을 건넸다.
“어때. 할 수 있겠어?”
어둠 속에서 실처럼 가는 눈을 한 사내, 곽철원이 밖으로 나섰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숙였던 고개를 들리는 순간 조금 전 폭사해 죽은 사내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키, 체구, 몸 형태까지 똑같은 것이 죽었던 이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닐까 착각마저 든다.
조금은 오싹한 기분이 드는 가운데 곽철원은 죽은 시체에 다가가 옷을 벗겨 자신의 몸에 걸쳐갔다.
“대공녀님께 전해주십시오. 암어는 달빛 검이라고 말입니다.”
“그것뿐인가?”
“그거면 충분합니다.”
입가에 드리워진 미소를 보던 남궁연 이내 몸을 돌려 나갔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어느 틈엔가 주위를 에워싼 천랑대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묵빛 궁을 든 한 궁사 명을 내렸다.
“대공녀님에게 전하라! 암어는 달빛 검이라고 말이야.”
“명에 따르겠습니다. 대주!”
군례를 하던 그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어느새 뒤돌아선 남궁연은 손에 쥔 종이를 보다 손을 치켜들었다.
“다음 목표는 테이론! 저쪽에 있다. 가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에 있던 이들 모두 바닥을 박찬다.
제6-1장
“명령서를 운반하는 자와 명령서를 받는 이들 중 친인척이 없고 주위와 교류가 없는 이 두 명, 총 세 명을 우리 사람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잘했어요.”
한 마디를 끝으로 남궁운혜는 몸을 돌렸다.
그걸 보면 시립해 있던 위 대주가 말을 건넨다.
“저어…… 대공녀님!”
“말할 게 있나요?”
망설이던 그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영주님 모르게 이래도 되는 겁니까?”
순간 남궁운혜의 미간이 사정없이 좁혀졌다.
슬며시 시선을 들어 위 대주를 바라보다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왜 그런 말을 하죠? 우리가 뭐 잘못한 것이 있나요?”
“그게 아니라 영주님이 사람 죽이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여기 총관님이나, 레이젠 님에게 말을 해두는 편이…….”
“위 대주!”
독사처럼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쏘아본다.
한순간 움칫 놀란 위 대주는 이내 고개를 숙인다.
그걸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던 그녀가 말을 이어간다.
“위 대주! 이건 음지의 싸움이에요. 굳이 상단주님이 아실 필요는 없다 이 말이에요. 거기다 이번이 기회인 것을 모르나요?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하면 메로나 자작과 싸움에서 천랑대가 선봉장이 설 가능성이 커져요. 그리된다면 중원은 물론이고 이곳까지 세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인데 어찌 그걸 모른단 말이에요.”
“하지만 일 진행이 너무 빠릅니다. 수월하다 못해 주워 먹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그 정도로 우리가 잘 대응을 해서 그런 것이지요.”
너무도 강경한 반응으로 보아 더 말을 해봐야 좋을 것 없다 싶은 위 대주는 이내 입을 닫는다.
그런 그를 못마땅하다는 듯 보던 그때 한 하인이 방문을 두들기고 들어온다.
“영주님이 오셨습니다.”
“영주님이요?”
“예!”
의아한 빛을 자아내면서도 남궁운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이리 빨리 돌아온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제 저녁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를 하는 것이 시급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알았어요. 지금 곧 가도록 하죠.”
하인은 한 차례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나갔다.
“위 대주! 앞장서세요.”
“알겠습니다.”
서둘러 앞으로 나서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든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떨쳐내고는 남궁운혜와 같이 밖으로 나섰다.
‡ ‡ ‡
“호오! 이것이 대륙의 공기인가? 역시 매연으로 찌든 서울과는 전혀 다르구먼!”
킁킁 대며 맡아대던 고흥만의 얼굴에 헤벌쭉 웃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신 주위를 살피며 탄성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입가에 주문처럼 흥얼대는 콧노래에 나비가 날 듯 사뿐사뿐 걷는 발걸음까지.
무슨 꼭 봄나들이 온 관광객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혹시 할 일 없어서 오자고 한 것 아니야?’
의중마저 심히 의심케 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길고긴 영주관 투어(?)를 끝마치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인이 다가온다.
“레이젠 님과 총관님이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택 근처에 있었는지 생가보다 빨리 모여 있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곧 가죠.”
하인과 일별한 우현은 서둘러 고흥만을 찾았다.
한데 그는 헤벌쭉해 하는 것도 모자라 침을 질질 흘린다.
그것도 하녀들만 골라서 보며 말이다.
“역시 대륙이라 그런지 참…… 물들이 좋아!”
‘못 말리겠네.’
무슨 발정기에 접어든 짐승처럼 구는 그의 모습에 고개가 절로 내저어진다.
보다 못한 우현은 그의 팔을 잡아끌 듯 데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참모님! 모두들 왔다고 하니 어서 가시죠!”
“그, 그래?”
아쉽다는 연신 입맛을 다시며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힘들게 모시고 서재로 가자 미리와 커피를 마시고 있던 레이젠과 소네스가 반갑게 맞이한다.
“왔는가?”
“왔어? 근데 옆에 분은 누구셔?”
인사를 건네던 둘은 곁에 서 있는 고흥만에 대해 물었다.
우현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내세우며 소개하였다.
“인사하십시오. 일전에 말했던 참모라는 분이십니다.”
“고흥만이올시다.”
중절모를 벗고 슬쩍 고개를 숙이는 그에 두 사람은 서둘러 일어섰다.
“레이젠입니다.”
“총관을 맡고 있는 소네스라 합니다.”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보던 우현은 옆에 의자를 가져와 고흥만을 앉혔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자에 몸을 얹으려는 찰라 슬쩍 말을 건네 온다.
“그나저나 신기하군! 고작 반지 하나 꼈을 뿐인데 주위의 모든 말들이 이해가 되니 말이야.”
대륙을 넘기 전 티아가 대화를 하기 위해선 필요할거라며 끼워 주었던 통역 마법 반지를 만지작댄다. 그걸 보며 피식 웃던 우현이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서 마법 물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늙은 사람이 어디 말 한 마디 해줬다고 쉬이 믿을 것 같나? 직접 눈으로 봐야 그제야 그렇구나 하는 것이지.”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맞는 말이라며 동의를 표한다.
“어쨌든 신기하구먼! 마법이라는 것도, 그렇고 주위 풍경도 말이야.”
“처음엔 그래도 차차 적응을 하실 겁니다.”
“뭐, 지내다 보면 그리되겠지.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 말이야.”
걱정 안 한다는 듯 내뱉던 그때 남궁운혜가 위 대주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영주님, 오셨어요?”
고개를 숙이는 그녀 뒤로 위 대주라 군례를 올린다.
그런 그들에게 웃어보이던 우현은 자리를 권했다.
“그리 서 있지 마시고 일단 앉으시죠.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말입니다.”
두 사람은 고맙다는 듯 재차 숙이고는 자신들의 의자에 앉아갔다.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흥만이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이들이 중원인인가?”
“역시나 알아보시는 군요. 그렇습니다. 저들은 남궁세가에서 온 사람들로 여인은 세가 장녀이자 대륙 내 세가 사람들을 책임자입니다. 옆에 있는 이는 정보조직인 실버문을 관리하는 이이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영지 내 정보조직 수장이란 말이군.”
“그런 셈이죠.”
모두가 제자리를 찾자 우현은 다물었던 입술을 벌렸다.
“일전에 저를 도와 영지 병사 운영 및 전략 전술을 맡을 참모관이 있다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참모관이 바로 제 옆에 있는 분입니다. 사실 이렇듯 제가 갑자기 돌아온 것은 저번 메로나 자작 건에 대해 참모관님과 논의를 하던 중 정확한 사태 파악이 필하다하여 이렇듯 직접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 본 분이라고 거부감 갖지 마시고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할 말을 다했다 싶자 그는 슬며시 뒤로 물러선다.
대화의 축이 자신에게 넘겨오자 고흥만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고흥만이라 하네. 본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작전 장교, 여기로 치면 장군을 돕는 군사정도 되는 것으로 약 25년 정도 복무를 하고 그만뒀네. 그 후, 7년간 해군 본부 외부 컨설턴트 자격으로 UDT를 비롯해 각종 특수부대 지휘를 맡았었네, 내 비록 특임대 및 여러 특수부대 해외 파견 작전 수립 및 지휘를 통해 얻은 경험이 적지 않으나 이곳에서 직접 전쟁을 치룬 것은 아니니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더라도 모두들 이해해주고 알려주길 바라네.”
모두들 고개를 숙이며 그리하겠다 하였다.
하나, 그들의 마음속엔 하나같이 불신이 가득했다.
고흥만이 말한 해외파견 작전 수립이나 지휘, UDT 같은 말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알 리 없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을 겪고 안 겪고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아는 이들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건 고흥만 역시 마찬가지 생각인지라 지금 한 말에 대해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자신이 눈으로 직접보고 판단하듯 이들 역시 일을 진행해가는 동안 그들의 눈을 통해 확인하게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사장…… 아니, 영주님이 말씀했던 메로나 자작 건에 대해 묻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는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궁운혜가 말문을 열어간다.
“말씀을 막아 죄송하지만 그전에 알려 드릴 것이 있어요.”
“뭔가?”
“사실 어제 저녁 영지 내 포섭된 이들에게 하달되는 메로나 자작의 명령서를 얻었고 그것에 대한 일이 진행 중에 있어요.”
주위 사람들의 낯에 어리둥절함이 피어오른다. 우현이 대륙을 떠난 지 고작 4시간, 이곳 시간으로는 20시간, 채 하루가 안 된다.
근데 언제 영지 내 포섭된 이들에게 하달되는 메로나 자작의 명령서는 언제 얻은 것이고, 또 그것에 대한 일이 언제 준비해 진행하고 있었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우현이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고흥만이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춰온다.
당혹해하는 모습을 본 그는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된다는 듯 끄덕거려간다.
“분위기로 보아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 일에 대해 아는 이가 없는데 맞는가?”
“워낙 급박하게 진행된 것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들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면 보고 정도는 해둬야 하는 것 아닌가?”
눈살을 찌푸리던 남궁운혜는 이내 고개를 숙인다.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그런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던 고흥만은 잠시 쉬었다가 재차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