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47
차원상인 147화
“일리 있는 말이오.”
잠시 생각에 잠기던 레조스 왕이 말을 건넸다.
“근데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겠소. 공작이 그런 맘을 가지고 이번 일을 추진했다면 릭 캐슬 후작은 버텨내지 못한 것인데 말이오.”
“그렇지 않아도 소신이 직접 하임이트 영지로 내려갈 생각입니다.”
“경이 말이오?”
“토니노 자작은 말이나 편지로 그만두라 해봤자 얌전히 멈출 위인이 아닙니다. 상황도 그렇고 말입니다. 괜히 시간만 낭비하느니 소신이 직접 내려가 일을 마무리 하는 편이 더 빠를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내가 볼 때도 그편이 오히려 더 나을 것 같소!”
동의를 표하던 그때 대전 안으로 한 사내가 황급히 들어와 무릎을 꿇는다.
“국왕 폐하! 서북부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서북부에서?”
슬쩍 시선을 돌려 보지만 바딘 백작은 고개를 내젓는다.
아무래도 직접 듣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을 건넸다.
“뭔지 어서 말해 보시오!”
“네이트 백작이 출병을 했다고 합니다.”
“네이트 백작이 출병을 했다고? 그 말은 병사를 이끌고 나왔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레조스 왕은 물론이 바딘 백작까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서북부 국경을 책임지는 그가 갑자기 병사까지 이끌고 나설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바딘 백작이 서둘러 말을 건넸다.
“네이트 백작은 대체 무슨 일로 병사들을 이끌고 나선 것인가?”
“이유에 대해선 모르겠습니다만 목표한 곳은 하임이트 영지라고 합니다.”
“하임이트 영지? 릭 캐슬 후작님이 있는 곳 말인가?”
“그렇습니다.”
레조스 왕과 바딘 백작은 납득이 되질 않았다.
전쟁이 벌어질 하임이트 영지로 굳이 네이트 백작이 병사까지 이끌고 가야할 이유가 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있는 레조스 왕의 눈이 번뜩 뜨인다.
만약 이대로 네이트 백작이 하임이트 영지로 간다면 그 날로 우현은 정말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딘 경! 어서 병사를 이끌고 네이트 백작을 찾아가시오. 그마저 릭 캐슬 경과 싸우게 된다면 그 날로 저승길을 가게 될 것이니 말이오.”
그제야 바딘 백작도 정신이 들었는지 서둘러 고개를 숙인다.
“아, 알았습니다. 국왕 폐하!”
황급히 몸을 돌려 나가는 그를 보던 레조스 왕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푹 내쉰다.
“왜 릭 캐슬 경을 건드리려 하는 것인가? 설마 하늘이 날 버리려는 것인가?”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듯 내뱉는 말 위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 ‡ ‡
스스스스!
달조차 구름에 가려 어두운 가운데 숲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숲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의 갑옷을 입은 그는 말을 움직여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땅바닥에 귀를 댄 채 눈을 감고 있던 한 사내가 대뜸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옵니다.”
온다, 라는 말과 함께 안개 사이로 일말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지 기사단 출신인 그들은 하나 같이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묵묵히 적이 올 방향을 바라보던 레이젠이 손을 들어 올렸다.
“준비해라!”
준비하라는 말에 기사단원들은 일제히 궁을 꺼내들었다.
화살을 재는 것을 지켜보던 레이젠의 눈에 저 멀리 안개 사이로 시커먼 그림자가 들어왔다.
작아 보이던 그림자가 조금씩 커진다 싶더니 주위로 그림자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것을 본 레이젠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쏴라!”
내려진 손 위로 기사단원들이 쏜 화살이 솟구쳐간다.
빠르게 허공을 나아간 화살은 그림자를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아아악!”
“저, 적이다!”
“방어하라! 어서 방…… 크악!”
순간 주위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듣기 무섭게 레이젠은 다시 한 번 궁을 들었다.
또 한 번 허공에 화살들이 날아 그림자들에게 쏟아져 내린다.
비명 소리가 귓가를 울려대기 무섭게 레이젠은 철수 명령을 내렸다.
썰물처럼 빠르게 사라진 이곳에 안개 속에서 삼십여 명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젠장! 어디로 간 거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들에 병사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그것도 잠시, 머리 위로 거친 파공성이 덮쳐왔다.
타타탁!
“아악!”
“저……적이…… 끄악!”
비옷듯 쏟아지는 화살에 십여 명의 병사가 몸을 바닥에 눕힌다.
“이……이 자식들이…….”
겨우 목숨을 건진 병사들이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뛰쳐나가려는 순간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멈추어라!”
“하지만…….”
“적이 어디 있는지 봤는가?”
봤냐는 말에 병사들은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지만 안개 때문에…….”
“보지도 못했으면서 어딜 찾아가려는 것인가? 목숨을 버릴 생각이 아니면 그만두게!”
“죄, 죄송합니다.”
병사들을 멈춰 세운 사내, 아니 피델로는 본진에 합류하라고 명을 내리고는 말머리를 돌려 뒤쪽으로 향하였다.
잠시 후, 토니노 자작 곁으로 다가선 그는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만 이번에도 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순간 토니노 자작의 이맛살이 있는 대로 좁혀졌다.
오르타 평지로 나서기 전, 적의 암습이 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하나, 평지를 벗어나 다시 숲으로 들어온 뒤로는 빈번하게 암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병사들 일부를 뽑아서 주위를 살피게 했지만 어떻게 아는지 그들을 피해 공격해 왔다.
안개라도 없으면 대충 병사들의 피해 규모를 살펴볼 수 있으련만 짙은 안개 때문에 그것도 힘들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던 그는 옆에 있는 슈에이를 보았다.
“숲이 끝나려면 얼마나 남았는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토니노 자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묵묵히 그를 바라보던 피델로와 쇼에이는 곧이어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전군 앞으로 진군한다! 단, 속보로 이 숲을 빨리 나간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알겠냐는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자작님!”
한 목소리로 외치던 두 사람은 병사들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하였다.
그런 그들을 보던 그를 고개를 돌려 조금 전 화살이 날아왔던 방향 보았다.
“숲에 나가는 순간 네 놈들의 목숨을 베어주마!”
서릿발 같은 한기를 흘려내며 그는 몸을 돌렸다.
‡ ‡ ‡
한편, 병사들을 피해 달아나던 레이젠은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주위를 살피던 그는 곁으로 다가온 한 부하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숲이 얼마나 남았느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지금이 공격하기 적기라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알겠다는 듯 끄덕이던 레이젠은 고개를 돌려 뒤로 보았다.
“화공을 준비한다. 먼저, 기름 항아리가 있는 곳에 화살을 쏘아 깬 다음 불화살을 쏜다. 내 말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단장님!”
토니니 자작 병사가 숲으로 들어오기 전 고흥만의 알려진 계책에 따라 나무의 굵은 가지에 기름 항아리를 매달아놓았다.
이는 이곳이 숲은 것을 생각해 화공을 쓰려는 것으로 때마침 짙은 안개까지 끼어 있어 더욱더 안성맞춤이었다.
수풀 속에 숨어 적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레이젠은 주위에 있던 기사단원들을 보았다.
“쏴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궁을 들고 기름 항아리가 있는 곳을 향해 쏘기 시작하였다.
또다시 시작된 화살 세례에 급히 발걸음을 멈추던 토니노 자작의 병사들의 머리 위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쨍그랑! 쨍그랑!
쏟아지는 항아리 조각과 함께 끈적한 액체가 그들을 덮쳐왔다.
“뭐, 뭐야?”
당혹스러워하던 그때 한 병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기……기름이다!”
“기름이라고?”
서로들 몸을 적신 것인 뭔지 확인하던 그때 불화살이 허공을 붉게 물들인다.
“화공이다! 화공이다!”
화공이라는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주위로 시뻘건 불꽃이 솟구쳐 오른다.
“크아아악!”
“사……살려줘! 아악!”
온몸에 불을 매단 채 허우적대던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져간다.
운 좋게 벗어난다 하더라도 주위 가득한 불길에 결국 몸에 불꽃이 옮겨 붙고 만다.
비명 소리와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인해 대열이 흩트려지자 토니노 자작이 다급히 뛰어왔다.
“대체 웬 불길이냐?”
“적들이 화공을 쓴 듯합니다.”
“화공을?”
순간 토니노 자작의 얼굴이 와락 구겨져간다.
암습에 이어 화공까지는 지나치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
한바탕 성이라도 내고 싶건만 곧이어 들려온 쇼에이의 말에 그만 입을 닫고 만다.
“자작님!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어서 이탈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진군 명령을 내려달라는 말에 토니노 자작은 할 수없이 입을 열었다.
“전군, 이곳을 이탈하라! 이탈하라!”
그의 말에 따라 정체되어 있던 병사들이 숲 이곳저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토니노 자작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릭 캐슬, 네 이놈들!”
절대로 가만 놔두지는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 ‡ ‡
시간이 흘러 숲을 빠져나온 그들은 서둘러 대열을 정비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진격해 영지성 앞까지 가야하겠지만 언제 암습을 해올지 모르는데다가 숲을 빠져나오면서 진형도 많이 망가져 정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열을 정비하는 동안 어느새 시커먼 하늘은 희뿌연 빛을 보이더니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예정보다 많이 늦어진 토니노 자작은 영지성 앞에서 숙영지를 조성키로 하고 속보로 나아갔다.
다행이 숲을 빠져나온 뒤로 적의 암습은 없어 그나마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정오가 지날 때 쯤 영지성 근처에 도달한 그들은 일단 짐을 풀어놓고 쉬도록 하였다.
암습에, 화공에, 강행군까지.
워낙 많은 일이 있었던 터라 병사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임시 막사에서 각 부대장을 통해 피해상황을 살핀 토니노 자작은 그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육백여 명이 사망하고 이백여 명이 중경상에, 공성무기 세 개가 파손되고, 이탈자는 천여 명에 달한다고?”
말도 안 나온다는 듯 토니노 자작은 그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건 옆에서 피해 상황을 접수하던 쇼에이도 마찬가지였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피해를 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참담한 빛까지 자아내는 그와는 달리 토니노 자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지금껏 당한 그 모든 수모를 꼭 되돌려 주리라!”
빠드득 이를 갈아대던 토니노 자작은 옆에 있는 쇼에이를 보았다.
“모든 부대장을 불러주게!”
한 차례 끄덕이던 쇼에이는 부하를 보내 부대장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