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51
차원상인 151화
그의 말대로 지금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릭 캐슬은 물론이고 화포까지 손에 넣는 쾌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자국도 아닌 타 왕국의 영지를 어떻게 보호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영주와 협상을 했다고 해도 타국이 맘대로 왕국으로 들어와 보호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다간 자칫 왕국과 제국 간에 영토 분쟁으로 번져 한 바탕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점이 신경 쓰였던 베야크 칸은 시선을 들어 테베코를 보았다.
“아무리 협상을 했다고는 하나 타국의 영지 문제를 우리가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확실한 명분이 없지 않는 한 말이야.”
뾰족하게 튀어나온 수염을 매만지는 테베코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걱정 마십시오. 명분은 있습니다. 그것도 확실한 명분이!”
“그 명분이라는 것이 뭐야?”
“바로 아국에 설치키로 한 위성 지부 및 그의 상단과 계약 중인 사업들입니다. 뭐, 그저 단순한 계약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아국을 비롯한 많은 왕국들과 연관이 되어 있는 터라 그리 가볍다 할 순 없을 겁니다.”
“한 마디로 계약상의 의리라 할 수 있다는 거군.”
“그만큼 릭 캐슬 상단과의 거래에서 얻을 것이 많으니 말입니다.”
피식 웃던 베야크 칸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말대로 릭 캐슬과의 거래는 얻는 것이 많다.
특히나 상단에 관련된 갖가지 거래와 사업들로 인해 세투란 제국을 비롯해 타 왕국과도 알게 모르게 연관들이 되어 있는데다가 그로인해 서로 간에 엄청난 액수의 돈들이 오가는 상황에서 릭 캐슬의 위험은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기에 맘에 들지는 않지만 제국의 개입을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확실한 명분도 있으니 제국의 개입에 관해 허락만 하면 될 텐데 어째 아까부터 한 가지 의문점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아무리 친왕파를 견제하고, 바딘 백작을 제거하기 위해 그런다지만 네이트 백작까지 움직이면서까지 한다는 건 좀 무리지 않은가…….’
그랬다. 국경을 지키는 이가 자리를 비운만큼 타국의 침입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이 큰데다가 친왕파와 조바오니 공작 간의 대립이 본격화 될 경우 자칫 내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만약 그리될 경우 이제 겨우 안정세에 들어간 왕국이 또 한 번 기나긴 혼돈 속에 빠져들 것이 분명했다.
이건 왕국의 실세인 조바오니 공작에게도 그리 좋은 그림이 아닌지라 과연 그리할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근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내란까지 조장하면서까지 안정세에 든 왕국을 혼란에 빠트릴 필요까지는 없을 성 싶은데……. 테베코, 네 생각은 어때?”
잠시 머뭇대던 테베코는 나지막이 답했다.
“사견이지만 아무래도 그가 바라는 건 어쩌면 내란이 아닌 왕위 찬탈이 아닐까 싶습니다.”
“왕위 찬탈? 설마 조바오니 공작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이야?”
“그런 듯합니다.”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거뭇한 수염을 매만지던 베야크 칸이 물었다.
“왜 왕위 찬탈을 꿈꾸는 거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차피 왕국 내 권력은 모두 손에 틀어쥐고 있을 텐데 말이야.”
“아마도 릭 캐슬 때문으로 보입니다.”
“릭 캐슬? 혹시 친왕파와의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야?”
얼마 전, 릭 캐슬를 이용해 친왕파가 세력 확장에 나섰다는 보고를 떠올리며 베야크 칸은 말을 하였다.
한 차례 끄덕인 테베코는 차근차근 대화의 끈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지금껏 난파선처럼 힘없이 떠돌던 친왕파가 바딘 백작의 귀환으로 차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습니다. 물론 조바오니 공작에 비하면 아직은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릭 캐슬의 재력이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릭 캐슬을 제거하자니 가진 바 재능이 아깝고 내버려 두자니 자칫 친왕파에게 날개를 달아줄까 심히 염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차에 왕이 릭 캐슬을 후작으로 임명하는 등 친왕파의 상징처럼 내세우는 강수를 두었고,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그가 차라리 자신이 왕이 되는 편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가진 능력이라면 그리 힘들지 않게 왕을 제압할 수 있는데다가 릭 캐슬 또한 힘들게 포섭할 필요 없이 자신의 발밑에 두게 되니 말입니다.”
“하긴, 릭 캐슬과 친왕파의 관계가 지속될 경우 조바오니 공작으로서는 이후 벌어질 그들과의 싸움에서 제법 많은 것을 잃게 되겠지. 자칫 그간 지켜온 권세가 무너질 수도 있고 말이야.”
“저 역시 그 점이 조바오니 공작으로 하여금 역모를 꾸미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같은 생각이라며 테베코가 동의를 표한다.
의자에 달린 손걸이를 검지로 톡톡 치던 베야크 칸이 시선을 쳐들었다.
“그 늙은 여우에게 릭 캐슬을 뺏기느니 차라리 전쟁을 하는 게 낫겠어! 테베코! 지금 당장 하임이트 영지로 달려가서 우리의 뜻을 전하고 협상을 해봐! 당연히 화포 판매건도 같이 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황제 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한 차례 조아린 테베코가 막 발끝을 돌리려는데 베야크 칸이 멈춰 세운다.
“참! 토니노 자작 측에 있는 우리 애들 잘하고 있지?”
“걱정 마십시오. 이미 토니노 자작의 통신 체계는 물론이고, 그의 계획까지 릭 캐슬의 손에 들어가 손 써놨으니 말입니다.”
그랬다. 우현 측이 그리도 쉽게 적의 통신 체계를 장악한 것은 사실 세투란 제국 덕이었다.
메로나 자작의 음모를 통해 영지전 발발 조짐을 느낀 그는 세투란 제국 정보원들을 통해 정보 조작 밑 통신 체계에 혼란을 가중케 하였다.
이틈을 노려 침투한 우현의 정보원들이 통신 체계를 장악하면서 앞서 펼쳐진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이번에 행해진 1차 전투에서 우현이 이긴 것은 다 세투란 제국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세투란 제국이 우현을 도와준 것은 빚을 지워 훗날 있을 거래 및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에 만족한 듯 베야크 칸은 입꼬리를 미소를 매단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영지전이 끝날 때까지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고 해!”
“그리 전하겠습니다, 칸!”
됐다는 듯 내젓는 손길에 테베코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홀로 남은 베야크 칸은 옆에 놓인 술잔을 들고 마셨다.
독한 향과 함께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간다.
절로 찌푸려지는 눈살을 감추지 않은 채 손을 들어 입가를 훔치던 그에게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릭 캐슬과 화포! 둘 다를 손에 쥔다, 라……. 거, 맘에 드는 군! 맘에 들어! 큭! 크하하하!”
앞으로 일이 기대가 된다는 듯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 ‡ ‡
쾅!
탁자가 들썩이며 토니노 자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이 보였다.
“팔천 명이 출진해 고작 삼천이백이 살아남다니? 그것도 공성무기까지 끌고 왔는데 말이야. 졸전이 따로 없군! 졸전도 이런 졸전이 없어! 이러고도 토니노 자작가의 병사라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느냐 말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노기를 있는 대로 드러내던 그는 고개를 돌려 쇼에이를 보았다.
“쇼에이! 자네가 보냈다던 선발대는 어찌 되었기에 소식 하나 없는 것인가? 거기다 적에게 저런 무기들이 있다는 것을 어찌 몰랐는가? 적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기는 한 것인가? 폴란! 넌 어찌 병사를 훈련시켰기에 그리도 우왕좌왕하는 것인가? 피델로! 기사라면 응당 적과 맞서 싸우려해야지 꽁무니부터 말고 도망치다니 그게 기사로서 할 짓인가?”
계속되는 책망에 세 사람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토니노 자작은 몸을 홱 돌렸다.
마치 보기 싫다는 듯한 그의 행동에 세 사람은 더욱더 고개를 숙였다.
조용히 분을 삭이던 그는 고개를 돌려 쇼에이를 보았다.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
쇼에이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이번 전투로 인해 아군의 기세가 많이 꺾인 만큼 그것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단은 증원 부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좀 두자는 말인가?”
“물론 지금 즉시 전투를 재개할 수도 있으나 지금의 전력이나, 기세라면 아군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 채 자멸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어쩌면 나서기도 전에 전열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은 휴식을 취하면서 적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토니노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러는 편이 좋겠군.”
“그리고 현재 공성무기를 책임지고 있는 용병을 빼 어디 좀 보낼 곳이 있습니다.”
“어차피 공성무기도 없으니 그래도 되긴 한데 그 보낼 곳이라는 곳이 어딘가?”
“아까 전투 중에 좌우측에서 협공을 가해온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가 아직 남아 있는 듯해 그들을 용병들을 보내 쫓아낼 생각입니다.”
“하긴 후환을 남겨둬서 좋을 건 없지. 자네 생각대로 하게! 그리고 남은 용병들은 앞으로 전진 배치하도록 하게! 우리 병사대신 화살받이가 되도록 하게.”
순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화……화살받이라니……. 그건 좀…….”
“그럼 우리 병사들을 앞에 세우라는 말인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만 치는 그들을 둬서 뭐에 쓰겠다는 건가?”
“하지만 그리한다면 용병들의 반발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인가? 이건 전쟁일세. 목숨을 걸고, 영지를 걸고, 운명을 걸고 하는 전쟁이라 이 말일세. 그런 상황에서 굳이 용병을 동정해서 뭐에 쓰겠다는 말인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입을 닫았다.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뭐라 말해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잠자코 있는 그들을 노려보던 토니노 자작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럼,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증원 부대가 올 때까지 대기하도록 하지. 그동안 쇼에이는 전열을 재정비함과 동시에 용병들을 모아 인근에 남아 있을지 모를 적들을 찾아 없애도록 하게. 남은 사람들은 병사들을 잘 다독이도록 하게. 방금 전투로 인해 기세도 꺾이고 많이 불안해 할 테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자작님!”
고개를 숙인 부대장들은 몸을 돌려 천막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들을 보던 토니노 자작은 의자에 기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만 바라보다 나지막이 말을 하였다.
“쇼에이!”
“부르셨습니까?”
“슈펜 꽃이 보고 싶군!”
순간 쇼에이의 이맛살이 좁혀졌다.
“슈……펜 꽃 말입니까?”
“그래! 몰핀이 순백의 꽃이라면서 무척 좋아했던 그 꽃 말이야.”
그의 말에 쇼에이는 고개를 숙였다.
“이번 전투만 끝나면 보시게 될 겁니다.”
토니노 자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말이야. 이곳을 얻으면 슈펜 꽃밭을 만들 걸세. 몰핀이 언제든 하늘나라에서 와서 볼 수 있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