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54
차원상인 154화
“아깝군! 나름 토니노 자작도 괜찮은 위인인데 말이야.”
“아무리 그렇다 한들 복수에 눈이 먼 자를 쓸 곳이란 별로 없습니다.”
“하긴 그렇지. 고작 해봐야 피는 보는 일 외에는 쓸 데가 없으니 말이야.”
그래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옆에 놓인 바구니에서 포도 한 알을 따 입에 넣은 조바오니 공작은 깜박했다는 듯 소프렌에게 물었다.
“참! 네이트 백작 쪽은 어찌 되었느냐? 바딘 백작을 만났느냐?”
“조금 있으면 만날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바딘 백작과 동행한 이들은 누구더냐?”
“휘하 기사단과 함께 병사들을 데리고 갔다 합니다.”
조바오니 공작은 제법이라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래도 생각은 좀 할 줄 아는 모양이야. 병사들을 끌고 간 것을 보면 말이야.”
“그래 봐야 네이트 백작에게 제압당할 것입니다. 둘 간의 실력 차는 확연하니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
피식 웃던 그는 술잔을 들어 마셨다.
단숨에 잔을 비우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내 결정인가 보군.”
그의 말에 소프렌이 고개를 들었다.
“왕도를 집어 삼키실 겁니까? 아님…… 이대로 관망하실 생각이십니까?”
조바오니 공작은 한껏 좁힌 눈매를 돌려 바라본다.
“난 정치꾼이지 장사꾼이 아닐세. 즉, 난 실리보단 이상을 추구한다 이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소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사람들에게 공작님의 뜻을 알리는 것뿐이군요.”
“그런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최대한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차례 고개를 숙인 소프렌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그를 뒤로 한 채 술잔을 집어든 그는 슬며시 미소를 그린다.
“남은 건 하나군. 기다리는 것! 내 왕좌가 빌 때까지 말이야.”
이렇게 말한 그는 시커먼 하늘을 보며 묵묵히 잔을 기울였다.
‡ ‡ ‡
“저기 나옵니다.”
순간 들려온 소리에 레이젠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두컴컴한 숲 속에 상국의 증원 부대가 공성무기를 앞세우고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기세등등한 그들의 모습은 대륙의 그 어떤 이가 온다 해도 다 이길 것만 같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레이젠은 입꼬리를 뒤틀던 고개를 돌려 도키샤를 보았다.
도키샤는 차카타파 마법사로 일루전 마법과 안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자로 고흥만이 보낸 화약통과 함께 온 이이다.
레이젠의 시선을 받은 도키샤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화약통이 있는 마차로 보내고는 슬며시 앞으로 나섰다.
숲을 걸어오는 병사들을 묵묵히 도키샤는 묵묵히 주문을 외웠다.
마법 특성상 마법을 시전하게 되면 마나의 파동이 급격하게 퍼져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는 여타 마법사들의 눈에 쉽게 띄어 자멸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전투 상황에서는 주문에 의한 마법시전 보다는 마법진이나, 마법스크롤을 통해 마법을 펼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도키샤가 대놓고 주문을 외는 것은 증원 부대에는 마법사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주문을 외우던 그는 손을 들어 증원 부대를 향해 뻗었다.
“포그 클라우드(fog cloud)!”
그러자, 희뿌연 안개가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안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짙어지고 있었다.
난데없는 안개에 증원 부대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도키샤는 곧이어 준비한 마법을 시전했다.
“카오스!”
상대를 공황상태에 빠지게 하는 마법으로 주위에 있는 자를 적으로 착각하게끔 하는 환상 마법이기도 하였다.
그가 마법을 시전하기 무섭게 증원 부대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오……오우거다!”
“오크 떼다!”
“살려줘! 켄타우르스다!”
삽시간에 숲은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레이젠이 화약통을 짊어진 마차로 신호를 보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화약통 심지에 불을 붙이고는 마차를 끄는 말의 엉덩이를 힘껏 내리쳤다.
히이이잉!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말은 마차를 꽁무니에 매단 채 미친 듯이 달려갔다.
“오크 떼가 몰려온다.”
“살려줘! 이쪽은 오우거들이다.”
“크아아악!”
공포에 물든 그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굉음이 천지를 울리기 시작했다.
콰콰쾅! 콰쾅!
요동치는 숲 속 사이로 솟아오르는 그 불길 아래로 핏빛 불이 땅바닥을 적신다.
또다시 울려 퍼지는 굉음과 함께 레이젠이 데려온 기사단은 물론이고 중원에서 넘어온 남궁세가 사람들까지 모두 몸을 일으키고 화살을 쏘았다.
“크아악! 저……적이다!”
“응사하라! 적에게 쏴라!”
미친 듯이 응사하라며 소리쳤지만 곧이어 터져 나온 폭음에 그만 묻히고 만다.
콰콰쾅!
치솟는 불길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육편들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새 사라져 버린 밑동으로 인해 공성탑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그로인해 밑에 있던 병사들이 피로 곤죽이 되어 속절없이 목숨을 잃어 간다.
“으아악!
귀청을 때리는 참혹한 비명에도 불구하고 레이젠은 손에 든 궁을 놓지 않았다.
파파파팍!
“크악!”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 중 하나가 어떤 병사의 목에 꽂혀 목숨을 앗아갔다.
계속되는 화살세례에 허겁지겁 자리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남궁세가 사람들이 보는 족족 검으로 목을 벤다.
그나마 좀 피했다 싶으면 언제 또 왔는지 화약통을 매단 마차가 뛰어 들어와 시뻘건 불길을 피워 댄다.
콰쾅! 콰콰쾅!
폭음과 단발마가 주위 가득 울려댔고 핏물은 어느새 강을 이루어 바닥에 고인다.
이게 싸움인지 학살인지 모를 전투는 두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안개마저 사라진 가운데 적군은 고작 이백 명이 채 남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오천이라는 병력이 너무도 허무하게 당하고 만 것이었다.
“사……살려줘!”
애원을 하는 병사들을 내려다보던 레이젠은 들고 있던 궁을 쳐들고는 시위를 당겼다.
심장을 정확히 맞은 병사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그렇게 남은 적군까지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처리해가던 그들은 잠시 후, 숲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보고를 들은 레이젠은 고개를 돌렸다.
잠시 공성무기에 시선을 두던 그는 도키샤를 향해 말을 건넸다.
“남은 공성무기 모두 부순 후 본진 후방을 치러 천랑대와 합류한다.”
그의 말을 들은 도키샤는 남은 화약통을 가지고 공성무기 근처로 향했다.
잠시 후, 천지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하늘을 뒤덮고 숲 속 위로 시뻘건 불길이 치솟던 그때 한 무리의 사내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 ‡
쿠쿵!
진저리 치듯 떨어대는 나무 기대고 있던 한 사내가 힘없이 주저앉는다.
움푹 들어간 왼쪽 가슴에 꽂힌 장검 주위가 시뻘겋게 물든다.
그걸 지켜보던 천랑대 대주 남궁연이 다가와 어깨를 발로 밟고는 장검를 뽑아냈다.
순간 핏물이 얼굴로 튀건만 별 감흥이 없는지 그저 싸늘히 식어가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네 번째인가?”
행색으로 보아 낭인으로 짐작되는, 대륙에서 말하는 용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행한 습격만 벌써 네 번째다.
그동안 자신이 죽인 사람 수만 해도 도합 열은 넘은 듯하니 얼마나 많이 공격을 받았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거기다 눈에 불을 킨 채 주위를 샅샅이 뒤지는 것이 아무래도 천랑대를 찾기 위해 온 것 같다.
골치 아프게 됐다는 듯 이맛살을 좁히던 그때 웬 기척이 들린다.
거기다 점점 빨라지는 것이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주위를 살피던 남궁연의 시선이 한순간 딱 멈췄다.
‘남동쪽! 점점 가까워진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알아채기 무섭게 그는 수하들에게 숨으라고 손짓을 하고는 본인도 눈앞에 있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근데 뭐 그리 빠르게 올라가는지 꼭 날다람쥐를 보는 것 같다.
모두 자취를 감춰버린 가운데 수풀 속에서 십여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신 주변을 살피던 걷던 그들은 나무 밑동에 기대 주저앉아 있는 이를 보고는 멈췄다.
“조베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시체를 살피던 새치머리 사내가 끄덕거린다.
“어! 한방에 죽은 것 같은데, 상처 크기나 깊이로 보아 아무래도 검에 찔려 죽은 것 같아!”
그때 왼편에 풀숲에 있던 이가 손을 쳐든다.
“이쪽엔 제밍스와 토카도 있는데…….”
“그쪽도 한 방이야?”
“그렇긴 한데 거기처럼 검은 아니야. 제밍스의 상처 모양도 그렇고, 쇄골이 으스러질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도끼 같아 보이거든. 옆에 있는 토카는 얼굴이 완전히 짓눌린 듯 으스러진걸 보이니 메이스 계열의 철퇴일 것 같고 말이야.”
묵묵히 듣고 있던 한 사내가 고개를 쳐든다.
“철퇴나 도끼는 쓰는 방법이 같으니 한 명이 했다 해도 검은 다르지. 이 말은 곧 최소한 둘 이상은 된다는 말이 되겠군!”
“거기다 시체가 아직 따뜻한 걸로 봐서는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말이야.”
주위 사람들의 말을 끝나기 무섭게 활을 든 투구를 쓴 사내 오슨이 연신 주위를 살펴간다.
상대가 검이나, 도끼, 철퇴를 쓴 것으로 보아 근접전에 강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곁으로 모여드는 용병들은 어느새 무기를 꺼내들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붉게 물들어 버린 숲을 보는 그들의 시선 위로 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런 그들을 본 남궁연은 피식 웃었다.
‘그나마 제대로 된 놈들이 있었군.’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주위 상황을 빠르게 읽는 그들을 보며 찬사를 보내던 그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방패수 앞으로 나서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음을 들은 방패수가 방패를 쳐들고 일어선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새치머리 사내는 돌연 풀숲에서 치미는 시커먼 인영에 검을 쳐들었다.
“누구냐?”
서릿발 같은 외침과 함께 오슨이 활을 들어 쏴댔다.
캉! 카캉!
쇳소리와 함께 방패에 튕겨 나가는 화살에 일순 눈살을 찡그린다.
“방패를 들고 있었나?”
짜증을 토해내는 그를 대신해 곁에 있던 이들이 앞으로 나선다.
상대가 방패를 든 이상 궁수의 역할은 여기까지라 생각한 것이었다.
오슨도 같은 맘인지 서둘러 발길을 뒤로 주르륵 물린다.
하나, 채 세 걸음도 내딛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한 쌍의 시선과 마주쳤다.
‘저쪽도 궁수가 있었나?’
상대 또한 자신과 같은 궁수임은 예감한 오슨이 황급히 활을 쳐들지만 쏘기도 전에 화살 하나가 목을 꿰뚫는다.
“끄르르륵!”
허무한 빛을 자아내며 그는 가래 끓는 듯한 소리와 함께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