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55
차원상인 155화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당황할 틈도 없이 방패수 뒤로 십여 명의 사내들이 쏟아져 나온다.
차차차창!
정신없이 부딪치는 무기 사이로 비명 소리가 피어오른다.
“크으윽!”
“아악!”
속절없이 바닥에 몸을 눕히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한 용병이 근처 나무를 방패 삼아 뒤로 숨는다.
하나, 곧이어 날아든 화살을 가슴과 어깨에 꽂힌 채 비명을 토해 내며 쓰러졌다.
그것을 본 새치머리 사내는 싸우던 천랑대 대원을 발로 차 곁에서 떨쳐내고는 황급히 근처 돌덩이 뒤에 숨어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궁수까지 있었던 것인가? 젠장! 제대로 걸렸군!’
욕설을 지껄이던 그의 귀에 빠르게 요동치는 심장소리가 울려 퍼진다.
바짝 마른 입술에 파르르 떨리는 손까지.
아마 생사기로에 섰다는 긴장감이 이리 만든 것이리라.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공포감이, 긴장이 극에 달한다 싶던 그때 왼편에서 수풀들이 물결이 일듯 춤을 춘다.
놀란 그가 검을 쳐들자 시커먼 인영 하나가 툭 튀어나와 한줄기를 빛이 내리긋는다.
카캉!
간신히 상대의 공격을 튕겨낸 새치머리 사내는 역공을 취해보지만 언제 날아왔는지 단검이 목에 틀어박혔다.
컥컥대며 핏물을 토해대는 그의 앞으로 새하얀 빛을 머금은 검이 지나친다.
서겅!
허공으로 치솟던 머리는 이내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어느덧 잠잠해진 숲에 나무에 매달려 있던 남궁연이 내려왔다.
핏물로 가득한 주위를 훑어가던 그가 나지막이 말을 하였다.
“조금 있으면 레이젠 단장이 합류한다. 그전까지 어떻게든 버틴다! 내 말 알겠나?”
적지여서 그런 것인지 천랑대는 남궁연의 말에 그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어둠보다 더 짙은 살기를 뿌리며 말이다.
제7-3장
잠시 눈을 붙였던 토니노 자작은 자리에서 일어서 갑옷을 챙겼다.
막 투구를 집어들던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간만에 꾼 꿈이 악몽이라는 사실에 왠지 불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뒤숭숭한 맘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의 패배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옆에 둔 데스사이드를 들고는 밖을 나섰다.
밤의 어둔 기운이 서서히 물러나고 차츰 밝아져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연락병이 허겁지겁 곁으로 다가온다.
“크……큰일 났습니다.”
순간 토니노 자작의 미간이 있는 대로 좁혀졌다.
“무슨 일인데 그리도 호들갑인 것이냐?”
그의 호통에 병사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죄송합니다.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됐다! 일단, 들어오너라!”
왠지 안 좋은 소식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그를 천막 안으로 들였다.
간이 의자에 앉은 토니노 자작은 연락병을 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런 것이냐?”
“간밤에 출발한 증원 부대가 적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토니노 자작의 이맛살이 확 좁아진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다시 한 번 말해 보거라.”
그의 말에 주눅이 든 병사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답을 한다.
“증……원부대가 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증원 부대가 말이냐?”
“그……그렇습니다.”
순간 토니노 자작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하였다.
간밤에 꾼 꿈이 뒤숭숭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지만 증원 부대가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멍하니 앞만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병사를 보았다.
“그럼, 증원 부대의 피해 상황은 어찌 되느냐? 그들이 가져오던 공성무기는 어찌 되었고 말이다.”
“공성무기는 모두 파괴되었고, 뒤따르던 병력 역시 전멸을 하다시피 해 살아남은 자라 해봐야 채 백이 안 된다 들었습니다.”
공격 당했다는 소릴 들었을 때 대충 짐작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당할 줄은 몰랐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한참을 묵묵히 있던 토니노 자작은 탄식과 함께 말을 건넸다.
“지금 부대장들을 부르도록 하라!”
“지금 말입니까?”
“그래! 지금 즉시 말이다.”
지금 즉시 부르라는 말에 연락병은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호출을 받은 부대장들을 비롯하여 쇼에이와 피델로, 폴란이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토니노 자작은 나지막이 말을 하였다.
“연락병이 소식을 전해 왔다. 간밤에 출발한 증원 부대가 섬멸됐다고 말이야!”
“그, 그게 정말입니까?”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피어오른다.
앞서한 전투에서 대패를 했지만 증원 부대만 합류하면 능히 이길 수 있다 여겼는데 막상 뒷배가 사라지니 어찌할지 당혹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듯 되묻는 사람들에 토니노 자작은 나지막이 답을 하였다.
“정말이네. 조금 전 병사가 증원 부대 섬멸 소식을 알려왔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점점 소란해지는 것을 보던 토니노 자작은 손을 들어 탁자를 쳤다.
쾅!
“이제 좀 조용히 하게!”
그의 말에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천막 안을 둘러보던 그는 슬며시 쇼에이를 보았다.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그의 말에 쇼에이는 한껏 미간을 좁혔다.
그로서도 지금의 상황이 난감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전투의 영향으로 숙영지에서 이탈한 용병과 병사들이 제법 되는데다가 막상 후퇴를 하자니 증원 부대를 섬멸한 적의 부대가 지금쯤은 후방을 차단하려 나설 것이 분명한지라 그것도 쉽지가 않다.
운 좋게 후퇴를 한다 해도 그것 역시 문제다.
영지전인 만큼 토니노 자작가가 가지고 있는 영지를 우현에게 주거나, 또는 그에 상응하는 위로금을 지급해야만 한다.
만약 그리된다면 토니노 자작가의 위신이 곤두박질치는 것은 물론 경제난까지 겹쳐 매우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였다.
이래저래 좋은 상황이 아니기에 쉽사리 결정 내리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묵묵히 있던 그는 고개를 들어 토니노 자작을 보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입니다. 지금 벌이고 있는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 그것만이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자, 최선책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지원도 없는 데도 말인가?”
“적이 증원 부대를 섬멸한 순간부터 후방과의 연결점은 사라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원에 대해 논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공격을 하여 상대를 무너트리는 것이 우리에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사내가 손을 들고 말을 한다.
“그리 무리수를 두는 것보단 후퇴를 하여 다음 기회를 엿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슬며시 고개를 돌려 질문한 이를 보던 쇼에이는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벌린다.
“증원 부대를 섬멸한 적부대가 다음으로 노릴 것이 뭐라 생각합니까? 그건 바로 아군 후방에 대한 압박일 겁니다. 즉, 더 이상의 지원을 차단함과 동시에 아군을 압박해 지레 전쟁을 포기하게 만들 거란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퇴란 적에게 죽여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병력으로 저들과 공성전을 펼치는 것도 무리지 않습니까?”
“이후 공성전 따위는 더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후방과의 지원이 차단된 것을 성안에 있는 적들이 알게 되면 더는 성을 지키려 하지 않고 나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성 밖으로 뛰쳐나올 때를 노려서 전투를 벌이자는 것입니까?”
“공성전에서는 우리가 패배했을지 모르나 병사들의 훈련량나, 조직력, 개개인의 능력은 저들보다는 우리가 월등합니다. 그 말은 성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닌 평지에서 병력 대 병력으로 싸울 경우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확실히 공성전에 익숙하지 않는 병사들인 만큼 앞서 펼쳐진 전투에선 질 수 있으나 성 밖으로 나와 싸운다면 절대 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토니노 자작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묻지! 적을 어떻게 성 밖으로 끌어낼 것인가?”
“공성전을 펼치는 척하다 뒤로 물러나는 방법을 써 적으로 하여금 성 밖으로 나서도록 유도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가능할 것 같은 가?”
“승리라는 것이 너무도 달콤하여 때론 상황 파악을 흐리게 하는 독이 되곤 합니다. 앞서 싸운 전투 승리와 증원 부대의 섬멸 등 연이어 터진 승전보는 적으로 하여금 강한 자신감을 가지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치는 우릴 본다면 필시 겁을 먹은 것으로 판단하고 더는 성안에 있질 못하고 뛰쳐나올 것이 분명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토니노 자작은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쇼에이의 말대로 적을 성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을 쓸 것이니 지금 즉시 병력들을 집합시키도록 하게.”
그의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원도 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이 맘에 걸리긴 했지만 병력 대 병력이라면 능히 적을 섬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냥 넘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병사들을 집합시키려 밖으로 나간 후, 투구를 들고 천막을 나서려던 토니노 자작은 아직도 천막에 있는 쇼에이를 보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남아 있는가?”
쇼에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죄송합니다만 간밤에 많은 수의 병사들이 숙영지에서 이탈하였습니다.”
순간 토니노 자작의 몸이 멈칫하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저 묵묵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충 예상은 했네. 얼마나 이탈했는가?”
“사오백 정도는 될 것입니다.”
“많이도 했군!”
무릇 전쟁을 하면 이탈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크게 패배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관리를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매섭게 다그칠 수도 없다.
그랬다간 반발심에 더욱더 많은 이탈자가 나올 것이니 말이다.
한숨을 몰아쉬던 그는 굳게 다문 말문을 열었다.
“가져온 곡식을 나눠 병사들을 배불리 먹게 하게!”
“모든 식량을 말입니까?”
“그리고 이번 전투에는 나 또한 참가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하게.”
이 말을 끝으로 토니노 자작은 투구를 머리에 쓰고 밖으로 나섰다.
배수진을 치겠다는 그를 보며 쇼에이는 가슴이 아파왔다.
설마하니 상황이 이렇게까지 내몰리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던 그는 천막 밖으로 나가 병사를 불렀다.
“지금 즉시 모든 병사에게 알려라! 더 이상 숙영지를 살필 병사는 필요 없으니 모두 모이라고 말이야!”
“부사령관님도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나도 간다.”
자신도 간다는 말에 병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걸 지켜보던 쇼에이는 고개를 돌려 서슬 퍼런 눈빛으로 성 쪽을 보았다.
“오늘 내 목숨을 걸더라도 기필코 너희를 패배시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