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58
차원상인 158화
순간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불과 이틀, 겨우 두 번 전투로 팔천의 병력이 천오백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자신의 병력 대부분이 정예병이고, 적들은 용병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할지 말지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 쇼에이가 황급히 말을 건넸다.
“자작님! 이제 그만 병사를 물리십시오.”
“자네, 물리라 했는가?”
순간 토니노 자작의 두 눈에 쌍심지가 켜진다.
꼬리를 말고 도망치라는 말이 심기를 건들었기 때문이었다.
분노에 찬 그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쇼에이는 계속해서 말을 하였다.
“병력에서 우월하다한들 이미 전세는 기울어진 상태입니다. 거기다 아까와 같은 공격이 다시 퍼부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고 말입니다. 그러니 어서 병사를 물리십시오. 더 싸워봤자 개죽음만도 못하게 됩니다.”
후퇴를 간곡이 청해보지만 이것이 이내 사그라지고 만다.
곧이어 들어온 병사가 그들을 궁지로 모는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었다.
“자……자작님! 후방에 일단의 무리가 퇴로를 차단한 채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퇴로를 차단해? 어디 병사인가? 혹시 릭 캐슬의 병력인가?”
“모양새로 보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순간 토니노 자작과 쇼에이에게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설마 했건만 이렇듯 빨리 퇴로를 차단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묵묵히 있던 토니노 자작은 나지막이 말을 토했다.
“고작 상인에 불과하다 했던 그가 나에겐 벽이었던가?”
회한 섞인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물론 몰핀의 복수를 한다며 후작에게 덤비려 했던 것부터가 잘못이다.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좀 더 치밀하게, 좀 더 확실하게 움직였어야 했다.
하나, 이제와 때늦은 후회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숨만 푹 내쉬던 그는 쇼에이를 보았다.
“미안하군! 이런 곳에서 죽음 맞이하게 해서 말이야.”
“아닙니다, 자작님! 그동안 원 없이 살았으니 별 후회는 없습니다.”
몰핀이 죽은 후 토니노 자작이 변하기 전까지는 자작가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써 위명도 제법 쌓으며 나름 행복하게 살았었다.
지금 이 상황에선 별 도움 안 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기 스스로에게 결코 헛된 삶을 보내진 않았다고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를 보며 미소를 짓던 토니노 자작은 데스사이드를 쳐들고는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 가는 길 토니노 자작가의 이름에 걸맞게 화려하게 가보세!”
“알겠습니다!”
한 차례 끄덕인 쇼에이는 큰 소리로 외쳤다.
“전군 앞으로 진격하라!”
이 말에 이끌리듯 병사들이 앞으로 나선다 싶더니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우현의 병사들이 일제히 궁을 쳐들고 화살로 하늘에 수를 놓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진격하라!”
‡ ‡ ‡
“아아악!”
날아든 창에 목과 가슴이 꿰이고 만다.
거친 비명과 함께 쓰러져가는 이들 위로 거친 일갈이 흘러나온다.
“상대의 진을 뚫어라!”
거북이 등처럼 탄탄하게 짜인 토니노 자작의 병사들이 사방진에 맞서 우현의 병사들이 공격해보지만 뚫지 못하고 방패 위로 날아든 창에 목숨을 잃고 만다.
“크아아악!”
힘없이 무너져 가는 우현의 병사를 밟고 나아가던 적 병사의 귀에 토니노 자작의 명령이 들려온다.
“전방 경계! 방패를 들어라!”
방패수들이 방패를 들기 무섭게 화살비가 떨어져 내린다.
타탁! 타타탁!
“크으윽!”
“아악!”
겹겹이 쌓인 방패 틈새를 뚫고 들어온 화살에 시뻘건 핏물을 쏟아내며 쓰러진다.
굳건하던 사방진의 한쪽이 이로 인해 무너지자 보고 있던 우현의 병사들이 나선다.
“이때다! 뚫어라!”
오른쪽 팔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갑주를 두른 더벅머리 사내, 카샤는 방패 위로 철퇴를 연신 내리찍으며 상대를 압박한다.
뒤이어 양 모양의 투구를 쓰고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턱수염의 소유자, 노리스까지 공격에 가담하자 우현의 병사들에게서 함성이 울려 퍼진다.
“카샤와 노리스다!”
“둘의 뒤를 따라라!”
두 사람을 중심으로 삼아 밀고 들어오는 우현의 병사에 토니노 자작 병사들이 무너져 간다.
사방으로 튀는 핏물 아래로 검, 창, 철퇴에 맞아 목숨을 잃은 이들이 힘없이 바닥에 몸을 눕힌다. 진이 깨졌다 싶던 그때 토니노 자작의 외침이 들려왔다.
“원을 둘러라!”
철옹성을 만들 듯 촘촘히 방패로 세워보지만 진을 재편하기에는 상황이 안 좋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 보려는 순간, 돌연 시커먼 그림자가 토니노 자작 위를 덮쳤다.
“토니노 자작! 죽어라!”
방패를 밟고 날아오른 카샤가 철퇴를 쳐들고 거칠게 일갈했다.
놀란 토니노 자작은 재빨리 데스사이드를 휘둘러 철퇴를 쳐냈지만 부딪쳐오는 상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쿠쿵!
상대를 안고 말 아래로 떨어져서 그런지 일순 입에서 핏물이 튄다.
극심한 고통에 힘겨워하면서도 토니노 자작은 데스사이드를 잡고 휘둘렀다.
“죽어……. 크아아악!”
철퇴를 들고 내리 찍으려던 카샤는 순간 날아들 데스사이드에 목이 잘려 쓰러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토니노 자작의 시야에 떨어져 내리는 화살을 보고는 황급히 옆으로 몸을 굴렸다.
파파파팍!
가까스로 피한 그는 서둘러 일어서 다가오는 우현의 병사들을 베었다.
비명 소리 위로 쏟아지는 핏물을 얼굴로,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던 토니노 자작은 거친 숨소리를 자아내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느새 산 자보단 죽은 자가 많아졌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그 참혹한 광경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옥도가 따로 없군!”
자신이 있는 곳이 지옥이라는 말을 내뱉던 그는 데스사이드를 휘둘러 또다시 밀려드는 병사에 맞서 싸운다.
“크아아악!”
반 토막이 난 검과 함께 땅바닥에 엎어진 병사의 머리를 향해 막 데스사이드를 휘두르려던 그때 외침 하나가 귓가로 들려온다.
“적의 기사단장을 잡았다!”
환호성과 함께 들려오는 그 말에 서둘러 고개가 돌아간다.
그러자 한 병사가 높이 든 손에 잡힌 잘려진 머리 하나가 보였다.
그것도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말이다.
“피……피델로!”
너무 놀라서 그런지 돌부처처럼 멈춰 선다.
이틈을 타 쓰러져 있던 병사가 반 토막 난 검으로 찔렀다.
“커어어헉!”
비명과 함께 얼굴을 적시는 핏물에 토니노 자작의 고개가 떨어진다.
그러자 자신의 앞을 막아선 검에 찔린 쇼에이가 시야에 들어온다.
“자……자작님!”
고통 때문인지 일그러진 그의 낯을 본 토니노 자작은 병사의 목을 데스사이드로 쳐 버렸다.
그러고는 무너져 내리는 쇼에이를 품에 안은 채 연신 외쳤다.
“쇼에이! 쇼에이! 정신이 드는가?”
“자작…….”
숨을 헐떡이던 그는 채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만다.
품에 안겨 싸늘히 식어가는 쇼에이를 안은 채 파르르 떨어대던 토니노 자작에게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터져 나온다.
“으아아아!”
미친 듯이 소릴 질러대던 그는 데스사이드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달려들던 병사들은 광기로 일렁이는 눈빛에 놀라 걸음을 멈춰 세운다.
마치 사자 앞에 놓인 토끼를 보는 듯한 광경이다. 하나, 토니노 자작은 별 감흥 없는 듯 손에 든 데스사이드를 휘두른다.
“아아악!”
“크악! 내 팔…… 내 팔……!”
쓰러지는 병사들의 몸을 난도질하듯 찍어대던 그는 건너편의 다른 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팬텀 섀도!”
거친 일갈과 함께 휘둘러진 데스사이드를 타고 붉은 마나가 갈고리처럼 찍어 내려온다.
오체분시가 되듯 한순간에 잘려진 병사들의 팔, 다리 머리가 허공에 날아오른다.
하지만 이걸로는 분이 안 풀린다는 듯 쓰러진 병사를 반 토막을 쳐 버린다.
너무도 잔혹한 모습도 그렇지만, 혈귀처럼 온통 핏물을 뒤집어 쓴 채 실실 웃어대는 그의 모습에 질린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물린다.
“크크큭! 죽어랏! 모두 죽어! 크크크!”
광인처럼 미친 듯이 웃어대던 그는 도망치는 병사들을 쫓아 데스사이드를 휘두른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서너 명의 사내들이 힘없이 바닥에 몸을 떨군다.
그런 그들 위로 연신 데스사이드를 내리찍던 토니노 자작의 신형이 멈칫했다.
거대한 마나의 기운이 전신을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다.
스르륵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은빛 갑옷을 입은 한 중년 사내가 검을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너무도 평범한 모습과는 달리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중압감과 하늘을 찌를 듯한 드높은 기세, 끝없이 펼쳐진 대해를 보는 듯한 엄청난 마나의 기운까지.
천지에 이렇게까지 거대하게 느껴지는 이는 처음 보는 듯하였다.
“레……레이젠 단장님이다!”
“기사단장 레이젠 님이 오셨다!”
“와아아아!”
단 한 사람이 왔을 뿐인데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환호성을 질러댄다.
주위가 좋아하든 말든 광소를 흘리며 바라보는 토니노 자작에 레이젠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광기에 먹혀 버렸군.”
불쌍하다는 듯 말하면서도 손에 든 검에 힘을 빼지 않는다.
상태가 어쨌든 최선을 다해 상대하는 것이 그를 위한 예의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죽……어! 히히히! 죽어!”
실실 웃어대던 그가 돌연 데스사이드를 빙글빙글 돌려 거리를 좁힌다.
“스파이더 웹!”
거미줄을 치듯 휘저어지는 데스사이드를 따라 허공에 그물 하나가 그려진다.
이에 레이젠은 검을 들어 한 바퀴 회전을 하면서 그대로 내리친다.
“문 커터!”
퍼퍼펑!
거칠게 불어대던 둘 사이의 마나의 바람이 맞부딪쳐 격렬한 폭음을 자아낸다.
한순간 안개처럼 허공에 뿌려지는 흙먼지를 가르며 데스사이드를 찍어 내린다.
하나, 한발 앞서 검이 쳐낸다.
맞부딪치는 두 무기 사이로 불꽃이 튀고, 토니노 자작은 아래에서 치솟아 오른 발길질에 배를 맞고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멈춰 세우지만 시뻘건 핏물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와 토니노 자작의 상의를 더럽힌다.
“쿨럭!”
재차 피를 토해낸 토니노 자작은 실실 웃었다.
“크크크! 죽어! 죽엇!”
미친 듯이 휘둘러지는 데스사이드를 피해 물러서던 레이젠이 살짝 발을 들어 굴렀다.
쿵!
움푹 파인 발 주위에 자그마한 먼지가 피어오른다 싶더니 호수로 날아든 돌이 일으킨 파장처럼 주위로 뻗어 간다.
레이젠의 마나와 뒤섞여 뿜어지는 그 엄청난 기운은 무슨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주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퍼퍼펑!
굉음과 함께 몸이 주르륵 뒤로 물러난다.
양팔 위로 마나까지 두르고 막아보았지만 손목, 팔 곳곳이 통증을 호소한다.
하나, 토니노 자작은 이것마저도 즐겁다는 듯 또다시 웃는다.
“크크크! 툼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