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59
차원상인 159화
사위를 점해서 날아드는 마나의 칼날을 쳐내던 레이젠의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당연히 몸을 뺄 것이라 모두들 예상했지만 오히려 레이젠은 데스사이드 잡은 토니노 자작의 손을 칼등으로 쳐내며 앞으로 달려들어 몸통 박치기를 한다.
“페인 오브 킬!”
“크으윽!”
토니노 자작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발걸음을 뒤로 물리면서도 여전히 데스사이드를 휘둘렀다.
간단히 허리를 숙여 피한 레이젠은 팔꿈치로 상대의 등을 치고는 그대로 찔렀다.
“샤이닝 스피어!”
한순간 마나에 휩싸인 묵빛 덩어리로 화해 꽂힌다.
휘청대며 몸을 돌리던 토니노는 자작이 거칠게 외쳤다.
“블러드 스톰!”
내던진 데스사이드 주위로 핏빛 마나의 폭풍우가 몰려든다 싶더니 그대로 묵빛 덩어리와 마주친다.
귓가를 멍멍하게 만드는 굉음과 함께 튕겨 오르는 데스사이드를 잡은 토니노 자작은 다시 한 번 허공에서 데스사이드를 내저었다.
허공에 그려지는 반사광을 따라 흐르는 마나의 칼날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전신을 뒤덮는 듯한 착각마저 들던 그때 레이젠이 검을 치켜들고 힘차게 찔렀다.
“마운틴 소드!”
거대한 산이 치솟듯 검이 주위에 뿌려진 모든 마나를 꿰뚫고 지나간다.
어느새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두 사람 사이로 시간이 멈춘 듯 깊은 정적이 파고든다.
창백한 낯빛을 한 채 거친 호흡을 토해내던 토니노 자작의 입에서 주르륵 핏물이 흘러내리더니 그 몸이 이내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이미 숨을 다한 듯 축 늘어진 그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있는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다.
지독한 침묵만이 자리하던 그때, 한 병사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토……토니노 자작이 죽었다.”
이 말을 시작으로 웅성거리던 병사들 사이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적의 수괴가 죽었다.”
“우와아아! 전쟁에서 이겼다!”
또다시 울려 퍼지는 환호성을 끝으로 그 기나긴 싸움은 종지부를 맺게 되었다.
제7-4장
1차 전투에서의 승리에 반신반의하던 대륙 타 왕국들은 이어 들려온 하임이트의 승전보에 모두가 놀랐다.
특히나 본진이 격돌하기도 전에 반수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화약이란 것에도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화포에 이은 화약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대륙은 그것을 가지기 위한 왕국간의 암투가 물밑에서부터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훗날, 기사와 마법에 더불어 전쟁사의 한 축이 될 화약과 화포의 등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 ‡
“신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도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이 말을 끝으로 기나긴 미사가 끝났다.
나서기 전 예를 표하는 그들을 받아주는 엘르느 성황 곁에 카미엘이 다가갔다.
“무슨 일이더냐?”
“하임이트 영지의 릭 캐슬 후작이 영지전에서 이겼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성서를 옆에 있는 이에게 넘기던 그는 놀랐다는 듯 바라본다.
“릭 캐슬, 그자가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앞서 벌어진 전투로 이기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진짜로 승리할 줄은 몰랐구나!”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도들을 뒤로 한 채 기도실을 나서는 엘르느 성황을 따라 카미엘 역시 쫓아간다.
“그래, 영지전으로 인해 릭 캐슬 측이 입은 피해는 어떤가?”
“성벽이 조금 무너진 것과 공성무기로 인한 영지민들이 약간의 피해를 본 것 외에 그다지 큰 건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은 토니노 자작이 성안으로 진입도 못했다는 말이더냐?”
“예, 그렇습니다.”
걸어가며 사도가 내민 나무통에 담긴 물에 손을 씻던 엘르느 성황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상대가 공성무기를 대량으로 투입해 공격할 경우 대규모 마법병단이 없는 이상 대부분 성 밖이 아닌 성안에서 승패가 난다.
그건 성안에 공성무기를 배치해 대응한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는 성을 지키는 쪽이 공격하는 쪽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입은커녕 성벽 조금 부서지는 것으로 끝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릭 캐슬이 내세운 화포라는 그 신무기가 제법 유용한 모양이구나. 토니노 자작의 병력이 진입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블랙파우더라는 것도 한몫했다고 합니다.”
“블랙파우더? 그게 무엇이냐?”
“정보원들이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차카타파 마법사들이 만든 것으로 화포를 사용할 때 쓰며 불을 붙이면 폭발하는 가루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냐며 끄덕이던 엘르느 상황이 문득 든 생각에 서둘러 물어온다.
“폭발을 한다라? 그럼, 그 파괴력은 어떻다고 하더냐?”
“전투를 지켜본 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 번 폭발할 때마다 십여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치는 등 상상을 초월한 파괴력을 가졌다 합니다.”
보통 화약통이 터지면 아무리 폭발력이 커도 그 피해는 인근에 위치한 사람들로 한정된다.
이는 현대의 화약이 아닌 초창기의 흑색 화약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에 고흥만은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화약통에 경철을 넣어 클레이모어처럼 썼던 것인데 이런 상황을 모르는 이들은 그저 화약이라는 것이 살상력이 높은 무기로만 알았던 것이다.
수건에 손을 닦던 것도 멈춘 채 두 눈을 둥그렇게 뜬 엘르느 성황은 연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위 마법사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법 파괴력이 높구나!”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활용성에 비해선 그들보다 더 나을 성 싶습니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구나! 고위 마법사를 가지려면 많은 재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화약이나 화포는 만들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사견이지만 이 두 가지의 등장으로 인해 마법 자체의 지위가 흔들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위축은 될 것 같습니다.”
“그럴테지. 굳이 마법사나 공성무기를 구비하지 않더라도 그 이상 효과를 내는 화약과 화포가 있으니 말이야.”
서재에 도착한 엘르느 성황은 따라오는 이들을 물리고 카미엘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앞에 있는 의자를 권한 그는 커피 잔에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근데 화약과 화포 말이야. 그리 중요한 것이라면 쉬이 정보를 내놓지 않았을 텐데 어찌 내 귀에까지 들려오게 된 것인가?”
“내부에서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릭 캐슬이 고의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일부러 정보를 유출시키고 있다 이 말인가?”
엘르느 성황은 커피 잔을 건네며 물었다.
“아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을 겁니다. 상인인 그가 화포와 화약을 쓰면 왕국을 비롯해 타국이 어찌 나올지 모를 리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감추자니 아직은 무력이 약해 그럴 수도 없습니다. 괜히 위험을 자초하느니 개방을 함으로써 필요로 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편이 더 낫다 싶을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런 움직임들이 보이고 말입니다.”
“하긴 다른 것도 아니고 공성무기보다 탁월한 성능의 무기를 제공하는 이를 쉬이 버리긴 힘들겠지.”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잠시 향기에 취해 미소를 짓던 그는 한 모금 입에 머금은 채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런 엘르느 성황과는 달리 카미엘은 무슨 냉수 마시듯 시원하게 한 번에 들이킨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날 정도로 뜨거운 물로 커피를 타서 혀에 담기도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던 엘르느 성황은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그나저나 어제 말한 조바오니 공작과 친왕파간의 다툼은 어찌 되고 있는가?”
“아까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네이트 백작이 남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막기 위해 나선 바딘 백작을 잡기 위해 매복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바딘 백작은 이 사실에 대해선 모르고 있는 것인가?”
“인척 관계인 토니노 자작을 위해 남하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니 전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안타깝다는 듯 혀를 내차던 엘르느 성황은 다시 커피 잔을 들어올린다.
“바딘 백작이야 그렇다고 치고, 조바오니 공작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왕도 사람들은 물론 귀족들을 포섭하여 내란을 준비 중이라 들었습니다.”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이라고 하던가?”
“아마도 네이트 백작과 바딘 백작간의 싸움이 끝나는 순간 행해질 것 같습니다.”
알겠다는 듯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손에 쥔 커피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내란이 시작된 후의 계획은 어찌 되는가?”
“왕성은 물론 왕도 주변에 은밀히 대기하고 있는 아국의 사도를 통해 레조스 왕이 죽지 않고 도망칠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그 후엔 은밀히 접촉하여 아국이 왕국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겠다며 그가 우리와 손을 잡게끔 할 생각입니다. 내란이 종결 뒤엔 불안한 왕국 정세를 들어 아국이 알카인 왕국을 치정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말입니다.”
“성국이 서남부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선 알카인 왕국이 꼭 필요하니 모든 것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게.”
“신의 대리자이자, 그 뜻인 성황 폐하의 말에 따르겠나이다.”
손을 들어 머리와 입, 가슴을 친 카미엘은 고개를 숙이며 뒷걸음질을 하여 밖으로 나섰다.
그것을 보며 남은 커피를 마시던 엘르느 성황은 성서를 펴 읽기 시작한다.
마치 앞으로 뿌려질 핏물에 대한 애도를 하듯 말이다.
‡ ‡ ‡
“현재 파악된 피해인원은 사망 이백육십 명에, 중경상 삼백칠십육 명으로 총 육백삼십육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망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들 피해 인원 중 병력에 해당하는 인원은 약 칠 할로 사백삼십 가량이 되며 그중 치안대가 무려 삼백이십칠 명에 달해 용병들의 피해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지민은 나머지 인원인 백삼십 명 정도 됩니다. 다음으로 건축물에 대한 피해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현재 영지성의 성문을 중심으로 왼쪽 성벽 중 십여 곳이 무너졌거나 완전히 파괴되어 보수가 시급한 상태이며, 공성무기로 인한 전소 및 파괴된 주택은 이십여 채입니다. 그중에는 치안대가 쓰는 경비 탑과 숙소 및 보급품 건물도 포함이 된 상태입니다. 용병 길드에서도 피해 보고를 올렸지만 아직까지는 그리 큰 것으로 파악되지 않습니다.”
듣고 있던 소네스의 이맛살이 한없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피해 상황들이 어느새 돈 달라는 소리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지전을 벌인 토니노 자작의 가문인 보르네오가에서 피해보상금을 받아낼 것이긴 하지만, 그전까지는 온전히 영주인 우현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피해 상황에 한숨을 푹 내쉬던 소네스는 건너편에 텅 빈 의자를 보고는 눈살을 찡그렸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전쟁할 땐 신나게 하더니만 끝나자마자 피해복구는 자기 몫이 아니라며 뒷짐 지고 물러서는 건 또 뭐야? 똥 퍼질러 놓는 건 자기 몫이고, 치우는 건 내 몫이라는 거야,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