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6
차원상인 016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백작님!”
우현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본 바딘 백작은 아니라는 듯 손사래 친다.
“농으로 한 소리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너털웃음 짓는 바딘 백작과는 달리 펨 총관은 살짝 고개만 숙였다.
두 사람을 자리에 앉힌 우현은 사람을 시켜 가져온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타 건넸다.
차치고는 시커먼 것이 이상타 싶어 한 모금 들이켜던 그들은 놀랍다는 빛을 자아냈다.
“이건 또 무엇인가?”
“커피라는 것으로 한 왕국에서 귀족들만 마시는 걸 가져왔습니다.”
“오호! 그래서 그런지 맛이 독특하면서도 향이 그윽하니 좋구만!”
바딘 백작은 연신 탄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크크크! 이래서 사람들이 믹스 커피! 믹스 커피 하는 거지.’
남몰래 조소를 하던 우현은 레이젠에게 사람을 시켜 종이를 가져오라 시켰다.
재차 커피를 마시던 바딘 백작은 깜박했다는 듯 말을 건넸다.
“들어올 때 들었네만! 이 집 자네 거라면서?”
“제 거라기보다는 상단 사람들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여기에 터를 잡기로 했으면 나에게 먼저 알릴 것이지. 왜 소리 소문 없이 일을 치르는 것인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백작님!”
“그래도 한마디 언급이라도 해줄 것을……. 좀 섭섭하네!”
“죄송합니다.”
난데없는 투정(?)에 우현은 진땀을 뺐다.
그걸 보며 웃던 바딘 백작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근데 물건은 가져온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이리로 들여오라 했습니다.”
그러냐며 끄덕이던 그는 재차 물어왔다.
“그래, 이번엔 몇 장이나 들고 온 것인가?”
“오만 장을 가져왔습니다.”
“오…… 오만 장 말인가?”
바딘 백작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펨 총관까지 놀랐다. 저번에 사들인 종이는 전부 해 이천 오백 장이다. 그중 일부만 소유하고 나머지는 다 왕실에 주었다. 한데 종이를 진상하기 무섭게 온갖 사람들이 찾아와 종이가 더 없냐고 물어왔다. 개중에는 얼마냐고 묻는 이도 있어 백작은 딱 스무 장만 맛보기로 팔아보았다고 한다. 고작해야 은화 열 냥이나 되려나 싶던 종이는 천정부지로 값이 오르더니 금화 한 닢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낳았다. 그것도 스무 장 가격이 아닌 고작 한 장에 말이다. 진기록이라면 진기록일 수 있는 그 엄청난 가격의 종이가 이번엔 무려 오만 장이나 들어왔단다.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 돈줄이 마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잠시 멍하니 있던 바딘 백작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렸다.
“진짜로 오만 장 가져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대체 그런 물건을 어디서 가져오는 건가?”
“그건 사업상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독점이라 이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순간 바딘 백작의 눈매가 싸늘해진다. 맘 같아서는 어디서 가져오느냐며 묻고 싶지만 자칫 거래가 끊길 위험도 있어 참기로 하였다. 물론 레이젠이 그의 곁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도 한몫하였다.
이때 문이 열리고 십여 명의 사람들이 가죽에 싸인 A4 용지를 들고 들어왔다.
이는 소네스가 우현과 함께 출발하기 전에 상단에 용지를 보내 이리하라 이른 것으로 A4 용지만으로도 놀라는 이들 앞에 박스째 내보일 수는 없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물론 하나하나 박스를 열고 그 안에서 종이를 꺼내 다시 가죽에 싸는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찮지만 말이다. 어쨌든 차곡차곡 쌓이는 그것들을 보며 바딘 백작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돈 덩어리를 쌓는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마지막 것까지 쌓이자 우현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그중 하나를 들고 와 개봉하였다.
아까 말한 대로 가죽 안에 물건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케 하고는 슬쩍 옆에 놓았다.
“그럼, 백작님! 종이 판매에 대한 논의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눈앞에서 사라진 종이에 입맛을 다시던 바딘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번에 오백 장에 금화 열 냥으로 했으니, 오만 장 모두 해서 금화 천 냥 주겠네.”
“금화 천 냥 말입니까?”
“그렇다네.”
잠시 멈칫대던 우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십시오!”
“잘 생각했네. 그럼,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세.”
그는 펨 총관을 불러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꺼내 놓게 하였다.
소네스와 함께 잠시 계약서를 살피던 우현은 잉크 묻힌 깃털을 들어 서명을 하였다.
뒤이어 바딘 백작까지 서명하자 펨 총관은 각자 1부씩 계약서를 나눠주었다.
받아 든 계약서를 보며 웃던 우현은 대뜸 물어왔다.
“참! 제가 알아보니 종이 하나당 금화 한 닢을 받고 파신 것으로 아는데 맞습니까?”
“그렇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백작님! 앞으론 최대치를 이십 실버로 잡으십시오.”
바딘 백작은 의아한 빛을 자아냈다. 보통 값을 올려 받으려 하지 내리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건 주위 사람들도 그런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우현은 별 감흥이 없는지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지금이야 물건이 희귀해서 그리 받을 수 있다지만 계속해서 고가로 받으실 경우 대량으로 물건을 가져와도 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십 실버로 만족하십시오. 어차피 제게 사 가시는 금액이 한 장당 이 실버이니 그 정도만 해도 꽤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그렇습니까?”
물끄러미 바라보던 바딘 백작이 말을 건네 왔다.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잠시 멈칫대던 우현은 과거 김 선배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읊었다.
“제가 듣기론 상인이란 백성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라 들었습니다.”
“백성을 이롭게 한다고?”
“물건이란 누군가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겁니다. 만약 상인이 지나치게 이득에 눈이 멀거나 딴 맘을 품는다면 그만큼 손해는 백성들이 갖게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너무 가격을 내려 그로 인해 상인들이 다툼을 벌이면 이 또한 손해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적당한 가격으로 자신의 백성을 포함한 물건을 필요로 하는 대륙의 모든 이들의 손에 쥐여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상도이며, 상인이 나아갈 길입니다.”
그랬다. 우현이 굳이 종이 값에 관여를 한 것도 다 대중화를 위해서였다. 자신이 언제까지 팔지는 모르겠지만 종이를 귀족만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쓸 수 있는 기쁨을 누렸으면 해서 그런 것이었다. 물론 자신에 비해 더 큰 폭리를 취하는 바딘 백작이 얄밉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속내와는 다르게 주위 사람들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륙 상인들의 목적이자 목표는 다름 아닌 이득, 즉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것이다.
그럴 것이 상인 대부분이 귀족들로 자신의 왕국, 영지, 백성을 위해 돈을 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현은 바딘 백작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의 한계치를 정해버렸다. 물론 적지 않은 이득을 얻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륙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생각지 못한 말에 바딘 백작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나 왕국을 넘어 대륙의 모든 백성들을 위하는 것이 바로 상인의 길이라는 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상도, 상인이 나아갈 길이라…….’
피식 웃던 바딘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대로 하지.”
“제 생각에 따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작님!”
“감사는 무슨……. 오히려 내가 자네에게 고맙다 해야겠네. 상인이란 뭔지 알게 해줬으니 말이야.”
“주제넘게 나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좋은 가르침이라면 앞으로도 그리해도 되니 너무 염려 말게.”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는 그에 우현은 가슴 한편을 쓸어내렸다. 말하고 보니 백작을 가르치는 꼴이 되어버려 자칫 화나 내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남몰래 이마의 땀을 훔치던 그는 문득 뭔가 떠오른 듯 서둘러 말을 건넸다.
“그리고 백작님! 죄송하지만 당분간 거래 방식을 조금 바꿨으면 합니다.”
“뭘 어찌 바꾸자는 것인가?”
“계약서에 공시된 바로는 백작가에서 정한 거래 품목과 수량을 받기로 했으나, 당분간은 거래할 품목과 수량은 저희 측에서 정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혹시 물량 확보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것도 있고,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어쨌든 말 그대로 잠시뿐이니 불편하더라도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알겠네. 근데 이것 말고 딴 건 없는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대금 문제인데…… 되도록이면 금괴로 주셨으면 합니다.”
“금괴로 말인가?”
바딘 백작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금 금괴를 가져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앞으로 계속 거래량을 늘리다 보면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백작님!”
“그렇게 하려면 준비 시간이 필요한데 괜찮겠는가?”
“그것 때문에 품목 수량을 미리 보내 드린다는 겁니다.”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듯 바딘 백작은 주억댄다.
“아, 그런 것인가? 그럼, 별문제 없겠구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자네 사정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내가 맞춰야지. 근데 물량 확보 때문에 그렇다면 이곳에 공장을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나?”
그렇지 않아도 종이 제작 기술이 탐났던 바딘 백작이 슬쩍 찔러 본다.
그런 그의 속내를 짐작한 듯 말을 듣기 무섭게 우현은 고개를 내저어 갔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까 생각 중입니다만…… 워낙 기술자 확보도 어렵고, 설비에 드는 돈도 많아 당분간은 어려울 듯싶습니다.”
“돈이라면 내가 줄 수도 있네만…….”
“세상이 그렇듯 돈이 다 해결해 주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거 참 안타깝구만 그래!”
돈으로 장난치지 말라는 말에 바딘 백작은 피식 웃었다.
‘닮아도 너무 닮았군. 어릴 적 상단주였던 나와 말이야.’
또 한 번 지난날 일이 생각났는지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어느덧 커피도 다 마시자 그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아, 그럼 거래도 성사됐으니 이제 그만 가보겠네. 참! 대금은 언제 치르면 좋겠는가?”
“지금 가실 때 물건을 마차에 실어서 보내 드리겠으니 그편에 보내주십시오.”
“알겠네. 그리하지.”
펨 총관과 함께 바딘 백작이 방 밖으로 나서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네스가 웃음을 흘린다.
“크크크! 금화 천 닢이란다. 천 닢! 역시 릭 캐슬을 기다린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어.”
“크흠! 그 선택, 내가 우겨서 한 것이다.”
“형님은 그리 생색을 내고 싶수!”
“하고 싶다. 왜?”
오늘따라 왜 그런지 레이젠은 생색에 목숨을 건다.
입을 삐죽이던 소네스는 이내 피식 웃고 만다.
“좋소! 생색 내슈! 오늘처럼 기쁜 날에 그 정도 해도 되오.”
“생색은 무슨……. 내려면 릭 캐슬이 내야지. 안 그러냐?”
“크크크! 맞수!”
어느새 돌아온 둘의 시선에 우현은 고개를 내젓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