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61
차원상인 161화
“왕이 나설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된다면 영지전에 불과했던 싸움은 내란으로 번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릴 것이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왕은 절대 나설 수는 없네.”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운혜는 알 수 없다는 듯 갸웃댄다.
“만약 왕위 찬탈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우릴 건들 이유가 있었을까요?”
“아마도 왕위를 찬탈한 후, 남은 친왕파 세력과 손을 잡을까 염려했겠지. 그래서 영지전을 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혀 쉬이 나서지 못하게 한 것일세. 물론 차후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함도 있었고 말이야.”
“한 마디로 친왕파와 우릴 떼어놓기 위해 그런 거란 말이군요.”
“그런 셈이지.”
남은 두 사람도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그들에게서 시선을 뗀 고흥만은 라냐스카를 보았다.
“전후 사정을 알게 되어 고맙긴 하네만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인가?”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본국인 세투란 제국이 영지를 보호해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제국이 우리 하임이트 영지를 보호해주겠다는 말인가? 왕국이 아니고?”
“예! 그렇습니다.”
어느새 축축해진 수건 대신 새것을 꺼내 얼굴을 닦던 라냐스카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흥만은 한껏 눈매를 좁힌 채 상대를 바라본다. 대체 상대가 원하는 것이 뭔지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제국이라면 영지보다는 친왕파가 조바오니 공작을 몰아내고 다시 왕위를 찾도록 도와준 후, 왕국을 손안에 넣고 주무를 텐데 왜 우리 영지를 선택한 것이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아! 납득이 말이야.’
먹음직한 삼겹살을 놔두고 마른 오징어나 먹겠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네이트 백작과 바딘 백작에 대한 일을 말해준 것은 상황파악하고 납작 숙이고 들어오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즉, 그들 입장에선 굳이 보호해주겠다는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밑으로 기어들어올 것이 뻔한 일인데 이렇듯 제의를 해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화포와 화약 때문일까도 생각을 했지만 왠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왕국을 먹고 난 뒤에 조공으로 하임이트를 바치라 해도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대던 그가 말을 건넨다.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다른 건 없습니다. 그저 상단과 계속 거래를 하고 싶다는 겁니다.”
“상단과의 거래를 지속하기 위해 그런단 말인가?”
반문에 땀을 닦던 라냐스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십니까? 캐슬 후작님의 상단이 대륙에 미치는 파급력을 말입니다.”
“파급력? 우리 상단이 말인가?”
“정말 모르시는군요.”
“모른다네. 그러니 알기 쉽게 말해보게.”
왠지 무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꾹 참고 설명해 달라 청한다.
고개를 내젓던 라냐스카는 다시 수건을 들어 땀을 닦는다.
“여기 상단이 물품을 팔아 번 돈이 고작 백 골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팔린 물품들로 인해서 움직이는 돈은 수십만, 수백만, 아니 천만이 넘을 것입니다. 즉, 현 대륙 경제 흐름의 시작이 이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파급력이 강한데 어찌 왕국을 구하려하겠습니까?”
그랬다. 현재 우현의 상단이 한 번의 거래로 벌어들이는 돈은 천만 골드에 육박한다.
하나, 팔린 물품들이 대륙을 돌아다니며 만들어내는 금액은 그것의 천 배, 만 배에 가까울 정도로 부풀려진다.
즉, 우현의 상단이 사라질 경우 대륙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대국이라 칭하는 세투란 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나 과거, 유가 폭등이나, 세계 증시의 폭락 등 갖가지 사건들을 접해본 고흥만은 라냐스카가 말하는 경제적 파급력이 뭔지 알기에 더욱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영주가 파는 물건 대부분이 이곳에서는 쉽사리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 그만큼 우리 상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말이야. 그런 상황에서 상단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대륙 경제가 급속도로 무너진다는 의미겠지.’
이제야 좀 제국이 왜 영지를 보호하려 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들 역시 우현의 상단이 문을 닫을 경우 밀려올 경제적 몰락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현재 최고 화젯거리인 화약이나 화포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고 말이다.
“제국 측에서 왜 그러는지는 알겠네! 하나, 같은 왕국도 아니고, 타국에 있는 우릴 보호하려 나서는 만큼 원하는 것도 있을 성 싶네만…….”
조건을 말해보라는 말에 라냐스카는 닦던 수건을 다시 새것을 바꾸며 답했다.
“조건은 간단합니다. 이번에 영지에서 보인 신무기인 화포와 화약을 제공해줄 것과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을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 나갈 것. 이 두 가지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을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군사적 이득을 모두 취하겠다는 말이다.
욕심이 과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일까? 고흥만은 절로 구겨지는 눈살을 감추지 않은 채 말을 건넨다.
“그 조건에 대한 보상은 어찌 되는가?”
“협상이 끝날 때까지 이곳 하임이트 영지를 제국과 상하 없는 동등한 위치의 동맹국으로 보고 모든 보호 조치를 취할 것이며, 이후 상호간에 행해지는 모든 정치적, 군사적 관계 또한 서로간의 상의 후 일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순간 고흥만의 낯에 놀라움 가득한 피어오른다.
한낱 영지에 불과한 이곳을 대국인 세투란 제국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도 그렇지만 동맹이란 각 왕국이나, 국가가 가진 힘을 통해 상하 수직적 형태를 갖추고 이를 빌미삼아 자국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즉, 그 어떤 동맹국이라 한들 서로 간에 평등한 위치에서 동맹을 맺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한데 지금 제국 측이 말한 것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강점을 내려놓고 손을 잡겠다는 것이다.
물론 화포나 화약에 대한 거래가 조건으로 들어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영지전이 끝나면 일정부분은 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라 그다지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영지로 보면 세상에 둘도 없는 내용이지만 고흥만은 쉽사리 답을 하지 않았다.
협상이란 것이 지금껏 역사에서 보다시피 대부분 선조건 후조치의 경우를 취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이득만 취한 후, 나몰라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못을 박아둘 필요가 있었다.
“근데 보호조치를 취한다 했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모르고 계셨겠지만 서남부 끝단인 셀핀 자작의 영지인 메아리스 영지엔 아국의 병사들이 천 명 정도가 포진해 있어 협상만 끝나면 언제든 이곳으로 올 수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알카인 왕국의 서북부에 위치한 왕국이자 아국과 동맹국인 마크스카 왕국에도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니 아무리 조바오니 공작이라 한들 쉽사리 공격해오지 않을 겁니다.”
“그럴 테지. 집안 정리하는 것만도 복잡할 것이니 말이야.”
고개를 끄덕대면서도 고흥만의 미간이 한껏 좁혀든다.
네이트 백작과 바딘 백작 사이의 싸움을 비롯해, 메아리스 영지에 숨어든 천명이 넘는 제국의 병사들과 마크스카 왕국에 자리한 지원 병력까지.
그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물론 영지전 준비로 토니노 자작에게 집중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정도까지 까막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보조직을 영향력 확대가 시급한 문제로군!’
그것 말고도 화포수 양성 및 화약 운영방안 등 손봐야 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많은 지라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언제 가져다 놓은지도 모를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던 고흥만은 슬쩍 시선을 쳐들었다.
“알겠네. 제국 측이 전해온 제안을 영주님과 논의 후에 조만간 답을 해주도록 하겠네.”
“그럼, 빠른 시일 안에 얼굴을 마주한 채 논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네.”
이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라냐스카는 밖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를 따라 밖으로 나선다.
묵묵히 커피만 마시던 소네스는 슬쩍 고개를 돌려 고흥만을 바라보았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별수 있겠나? 제국 측의 제의를 받아드리는 수밖에…….”
“그렇게 되면 엘테르 성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고흥만은 시선을 돌려 소네스를 보았다.
“지금까지 한 말 듣고도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떤 상황이라니…….”
“지금 이 상황! 성국에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안 드냐, 이 말일세.”
소네스와 남궁운혜는 서로를 보며 갸웃거렸다.
이 상황에서 왜 엘테르 성국을 들먹이는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잠시, 둘의 입술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일련의 상황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이 상황을 성국 측에서 만들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그렇지 않고서야 조바오니 공작이 이렇듯 막 나갈 수는 없으니 말이야.”
그랬다. 굳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아도 모든 권력은 조바오니 공작에게 있다.
물론 친왕파와 우현과의 관계가 걸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듯 대놓고 나설 필요는 없다.
누군가 부추기는 이가 있지 않고서는 말이다.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가던 소네스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주위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능히 그럴 것이라 짐작은 되지만 대체 왜 성국이 이러는지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참모관님의 말씀대로 성국이 개입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설마하니 알카인 왕국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자 이런 일을 벌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 말대로 알카인 왕국이 목표는 아닐 걸세. 왜냐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우리이기 때문일세.”
“저희가 목표라고요?”
끄덕이던 고흥만은 반문에 대한 답을 했다.
“흔히들 뱀을 잡기 위해선 몸통이 아닌 머리를 잡으라고 했지. 이 말에 비춰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면 알카인 왕국이 머리이고, 우리는 몸통일세. 즉, 그들은 알카인 왕국을 지배함으로써 우리 역시 손에 넣을 생각인 것일세.”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 아닙니까?”
“해결할 계책이 있으니 걱정 말게.”
“그게 무엇입니까?”
“그거 바로 성국에게 보호 요청을 하는 것일세.”
기가 막히다 못해 어이없어하였다.
설마하니 성국에 보호 요청하는 것이 계책이라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고흥만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성국의 목표가 조바오니 공작을 통해 역모를 획책하는 것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감춰진 속내일세. 즉, 모든 것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쉽사리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 이 말이네. 그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우리가 보호 요청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받아드려야만 할 것이네. 알카인 왕국을 손에 쥐고도 우리를 보호해야만 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