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63
차원상인 163화
“그래? 근데 왜 아무것도 안 써 있어?”
안 써있다는 말에 일동은 서찰을 뺏어 다시 읽어보았다.
[조지아 영지 통신부 등급: 백]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사들이 현재 북상 중.현재 파악된 자들로는 맨 앞에선 포마리아 영주인 케일라 자작과 젠다 남작, 데칸 자작이 있으며, 개중에는 동쪽 국경을 맡고 있는 조시타파 백작이 있다는 소식도 들려옴.
아직까지 그들이 왜 병사를 끌고 왔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음.]
분명 종이에는 급한 서신이 써 있건만 왜 아무것도 없다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부…….”
테일을 부르려던 멜라빈의 가슴에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등 뒤에서 파고든 듯한 그것은 심장을 뚫고 가슴 위로 솟아있었다.
솟아 있는 붉게 물든 단검을 보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눈빛의 테일이 보였다.
“우에…… 우에에?”
왜냐고 묻고 싶지만 목구멍을 타고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핏물로 인해 발음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테일의 입꼬리가 틀어졌다.
“그러게 아무것도 써 있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그냥 내 말만 듣고 넘어갈 것을 굳이 우겨서 이런 화를 자초하는 것인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던 그는 찔렀던 단검을 뽑아서는 목을 향해 휘둘렀다.
비명 한 번 제대로 못 지른 채 쓰러진 그를 보던 테일은 옆에 떨어진 서찰을 쥐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그를 본 테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공작님의 일에 그 누구도 간섭할 순 없지. 안 그런가?”
그렇게 말을 한 그는 종이를 들어 입에 넣고는 꿀꺽 삼켜갔다.
텅 빈 입안을 보여주는 테일을 보던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마치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지 잘 안다는 듯 말이다. 그런 그를 보던 테일은 이내 바닥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말 잘 듣던 놈인데……. 제길! 사람을 새로 또 뽑아야 하나?”
골치 아프다는 듯 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자리에 누웠다.
못잔 잠을 보충이라도 하듯 말이다.
‡ ‡ ‡
한편, 외성 성문 하단에 열려진 문을 나서던 중년 사내는 한 차례 하품을 내뿜는다.
분명 어제 잠 한 번 안 깨고 숙면을 취했건만 어찌 된 일인지 한 번 하품을 멈추지 않는다.
“하아암! 나도 나이를 먹었나? 그리 많이 자고도 왜 또 졸리는 거야?”
성문 경비대를 맡고 있는 몬도는 최근 들어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가 맘에 걸린다.
특히나 작년부터 눈에 띄게 체력은 물론 기도 약해지고 있어 더욱더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많다며 그만두라는 부대장의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던 터라 더욱더 그렇다.
“뱀이나 잡아서 몸보신 좀 할까?”
나름 대책(?)을 세우며 성문 밖을 나선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이 반가우면서도 절로 눈이 찌푸려진다.
“난데없이 특별 감사는 뭐야?”
짜증어린 표정으로 입을 삐죽였다.
며칠 전 왕실 기사단장이 헤이해진 군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특별 조치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것이 특별 감사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성문 밖에서 은근 슬쩍 찔러주는 돈이 제법 쏠쏠한데 그걸 포기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 달에 집을 넓히느라 돈 좀 들었는데……. 제길! 돈을 꾸러 다녀야 하나?”
난색을 표하며 검문 중인 동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델이 어제 혼인을 하는 바람에 토카 혼자 근무한다는 것을 떠올린 그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위아래를 살필 줄도 알고, 배려심도 좋고…… 제법 맘에 드는 놈이란 말이야.”
연신 칭찬을 하던 그는 출출할 때 먹으려고 가져왔던 빵을 들어올렸다.
“혼자 일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이거라도 먹게 해줘야겠군.”
피식 웃던 그는 빵을 든 손을 뒤로 한 채 다가갔다.
혼자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사람들의 방문 목적을 적어가던 토카는 곁으로 다가오는 몬도를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나오셨습니까?”
“그래, 수고가 많군!”
힘들었는지 이마에 난 땀을 훔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좀 힘들었나 보군.”
“아, 아닙니다.”
말은 아니라고 하면서 손은 연신 이마로 향한다.
그런 그가 재미있다는 듯 보던 그때 돌연 두 눈이 좁혀졌다.
발밑으로 땅이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나긴 행렬 뒤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싶더니 점차 다가오기 시작한다.
“대체 저게 뭐야?”
황당하다는 듯 보던 그때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수백 마리가 땅을 박차는 듯 크게 울린다.
두두두두!
거센 말발굽이 자아내는 뿌연 흙먼지를 쫓아 온몸에 철갑을 두른 기나긴 행렬이 바삐 움직인다.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는 그 광경에 지나가던 모든 이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몬도 역시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다 이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저, 저거! 포마리아 영주인 케일라 자작의 깃발인데……. 아탈리, 소스란, 요하넨 영주 것까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심상치 않다 싶던 그때 새하얀 빛이 목을 뚫었다.
순간 뿌려진 핏방울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놀랐다.
아우성대는 그들에도 불구하고 토카는 몬도의 목에 박아 넣은 단도를 뒤튼다.
왜냐고 묻는 듯한 그의 눈빛에 토카는 나지막이 말을 하였다.
“아시지 않습니까? 가끔은 봐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다는 걸.”
순간 몬도에게서 불신의 눈빛이 새어나왔다.
하나, 채 검도 잡아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붉게 물든 바닥을 보던 토카 위로 사내들이 떨어져 내린다.
성벽은 물론이고 경비 탑까지 경비대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람들이 떨어져 내린다.
주위가 온통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하건만 몬도는 무심히 단도를 들어 팔에 쓱쓱 문지른다.
“그러기에 좀 늦게 나오지 그랬습니까?”
안타깝다는 듯 말을 내뱉은 그는 성문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병사들이 들어온다. 성문을 활짝 열어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굳게 닫혀있던 성문이 차츰 벌어지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굉음과 함께 활짝 열려진 문 사이로 왕국 곳곳의 영지 깃발이 든 병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공작님께서 기다리십니다.”
토카의 마중 인사와 함께 말이다.
‡ ‡ ‡
햇빛이 환히 비치는 창문 위로 새하얀 손 하나가 허공을 스쳤다.
하늘하늘거리는 손을 시작으로 폭포수처럼 뿌려지는 묵빛 머리카락과 함께 온몸을 타고 흐르는 그 가냘픈 몸짓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햇빛을 후광으로 삼아 비치는 그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듯한 그 모습과는 달리 손끝에선 싸늘한 한기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파파파팍!
“크아아악!”
“아아악!”
연신 울려퍼지는 비명 소리 사이로 붉은 핏물이 튀어올랐다.
썰물에 밀려가듯 무너져가는 왕성 수호대(왕성 외곽을 경계하는 기사대)기사들 사이로 그녀는 또 한 번 춤을 췄다.
그리고 그 손끝에서 수많은 암기들이 허공에 몸을 실었다.
어느새 비명보다 파공성이 더 많은 듯 싶던 그때 기사 둘이 검을 들고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갔다.
암습이 나쁘고 좋고, 상대가 여자고 뭐고 할 것 없이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나, 그들이 그녀에게 다가설 때 쯤 시커먼 그림자가 앞을 가로 막았다.
퍼퍽!
“크아아악!”
애처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둘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턱과 복부를 각각 부여잡은 그들 위로 갈색 옷에 금발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그 사내는 두 사내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그의 행동에 순간 화가 치민 기사 하나가 버럭 소릴 질렀다.
“네 이놈! 절대 용서치 않으리라!”
금발 사내는 입꼬리를 비튼다 싶더니 뭔가를 툭 뱉어 내었다.
“퉤!”
워낙 가까운 거리인지라 미처 피하지 못한 기사는 눈언저리에 그대로 맞았다.
놀란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쪽 눈을 감았고 그 순간 금발 사내는 검지가 쭉 뻗었다.
시뻘건 핏물이 허공을 치솟아 오른다 싶더니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으윽! 누……눈이…….”
붉게 물든 얼굴 사이로 한 쪽 눈썹 밑으로 뻥 뚫린 구멍하나가 보였다.
손가락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던 그는 재빨리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그는 오른손을 들어 상대의 목울대를 잡았다.
그러자 기사는 숨통이 막히는 듯한 고통과 함께 사지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축 늘어지는 상대의 몸에 금발 사내는 자신의 어깨를 버팀목 삼아 검을 든 손의 팔목을 밑으로 잡아당겼다.
으드드득!
“으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기사의 팔 밑으로 뼈가 툭 튀어나왔다.
새하얗기 그지없는 뼈는 이내 붉게 물들었다.
동료를 해하고 있음에도 가만히 있는 다른 사내에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그의 눈빛이 싸늘해진다 싶더니 목울대를 잡고 비틀어버렸다.
“커컥! 커커컥!”
목을 부여잡은 채 뒤로 물러서던 사내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천천히 몸을 돌려가는 그에 곁에 있던 기사 하나가 검을 쳐들었다.
“이야아아!”
고함을 지르며 다가오는 그에 금발 사내는 가볍게 몸을 틀어 피했다.
그러고는 검지와 중지를 들어 상대의 입에 넣고는 사정없이 왼편으로 당겼다.
낚시 바늘에 꿰인 물고기처럼 따라가는 그의 턱을 잡고는 힘껏 위로 돌려버렸다.
콰드드득!
듣기에도 거북한 뼛소리와 함께 기사는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보는 이가 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도 쉽게 쓰러트리고 있었다.
다음 차례를 찾아 시선을 돌리는 그의 귓가에 웬 박수소리가 들렸다.
짝짝짝!
“언제 봐도 오라버니의 그 기술은 멋있어요.”
순간 주위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언제 춤을 멈췄는지 묵빛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인이 팔짱낀 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멈췄다는 것은 적이 다 죽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아는 그는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두 팔이 밑으로 다 내려올 때쯤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 미리엔! 왕성 안으로 들어간다!”
그 말에 두 사람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린다.
“공작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공작의 충복이자,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 중 두 명인 그들은 서둘러 땅을 박차간다.
‡ ‡ ‡
또로로록!
채워진 커피 잔을 든 테온은 몸을 돌렸다.
다가오는 그를 보며 웃던 조바오니 공작은 건네받은 커피를 들어 향을 맡았다.
“참! 바딘 백작 쪽은 어찌 되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