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64
차원상인 164화
깜박했다는 듯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묻는다.
그새 한 모금 마시던 테온은 황급히 몸을 바로 했다.
“네이트 백작이 보낸 소식에 따르면 병력은 모두 섬멸은 했는데 바딘 백작, 그만은 아직 제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치기라도 한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라 매복한 곳에 그를 끌어 들이는 것까지는 성공을 했는데 그 후, 거세게 저항하는 병사들 때문에 그만 놓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 먼 곳은 가지 못했겠구나!”
테온은 난감한 빛을 띠었다.
“그게…… 다른 사람의 개입으로 행적을 놓쳤다고 합니다.”
“다른 이가 개입을 했다고?”
“워프 마법진이 있었다고 하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왕실 마법단 단주인 올레드 백작인 것 같습니다.”
“왕 옆에 있어야 할 그가 거긴 왜 갔단 말이더냐?”
“아무래도 국왕이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커피를 마시던 조바오니 공작은 피식 웃었다.
그를 왜 보냈는지 대충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름 친왕파의 핵심 인물이라고 챙기는 모양이군.”
“그 덕분에 자신은 죽게 생겼지만 말입니다.”
그랬다. 왕국에서 마법 구사력이 최고라 칭하는 올레도 백작이 있었다면 이렇듯 손쉽게 왕도를 점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둔다면 레조스 왕이 그를 바딘 백작에게 보낸 것도 그리 썩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쩍 쳐든 시선 아래로 짙은 미소를 그린다.
그런 테온이 싫지 않은 듯 조바오니 공작은 피식 웃는다.
“그래, 왕도 상황은 어떻게 됐느냐?”
“동쪽 국경을 맡고 있는 조시타파 백작을 비롯해 총 서른두 명의 귀족이 이번 일에 동참을 한 상태이며 왕도에는 천여 명의 정예 기사 및 병사가 외곽 주변에는 육천 여명의 병사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또한 순조롭게 계획이 진행되고 있어 현재 왕성 외곽까지 접수가 끝난 상태입니다.”
“피해 상태는 어떤가?”
“지금까지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십여 명 정도 되는 듯 보입니다.”
커피를 들던 조바오니 공작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명색이 왕도인데 못해도 백여 명 정도는 피해를 보지 않을 까 예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면 다른 누가 와도 왕도를 점령하겠구먼!”
“그동안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탓에 그런 것일 겁니다.”
“왕좌에 오르면 그것부터 고쳐야겠군. 아까운 내 목숨 날아가기 전에 말이야.”
“저 역시 그러는 것이 좋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의를 표하던 그때 사내 하나가 들어와 고개를 조아린다.
“왕성에 진입했다는 소식입니다.”
남아있는 커피를 모조리 털어놓은 조바오니 공작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군.”
“아마도 그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출발하시면 도착하실 때쯤이면 왕성 내부가 얼추 정리가 된 상태일 테니 말입니다.”
알겠다는 듯 끄덕이는 그에 테온은 옆에 있는 이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은 왕들만 입는다는 황금색 옷을 가져와 공작의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언제 준비했는지 왕관까지 쓴 그는 테온을 향해 손을 건넸다.
“어서 앞장서거라! 내 왕좌가 보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한 후 몸을 일으킨 테온은 몸을 돌려 앞장섰다.
그리고 그 뒤를 조바오니 공작이 근엄한 표정으로 쫓기 시작했다.
‡ ‡ ‡
“적을 섬멸하라!”
“호위대를 죽여랏!”
서로를 향해 살기를 뿜어대며 무섭게 외쳐대는 두 무리의 사내들.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주위를 붉게 물들인 대지 위로 죽고 죽이는 그 꼬리를 무는 살육전이 계속해 되풀이된다.
“크아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기사 하나가 힘없이 무릎을 꿇는다.
피투성이의 그는 상대를 어떻게 막아보려고 팔을 허우적대지만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비통한 듯 눈도 감지 못한 그 기사를 밟고 한 병사가 창을 들고 나선다.
“죽어랏!”
서릿발 가득한 말과 함께 달려들지만 조금 전 기사와 같은 차림을 한 중년 사내의 검에 복부를 찔리고 만다.
고통스러워하는 상대의 어깨를 발로 차 떨쳐 낸 그는 재차 검을 날려 목을 벤다.
“크어헉!”
축 늘어져가는 병사 위로 피투성이가 된 중년 사내, 왕실 호위대장 롭이 큰 소리로 외친다.
“막아라! 적이 내전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어떻게든 막아야한다!”
독려에 이끌리듯 호위대가 적들을 향해 뛰쳐나간다.
비명이 난무하고, 핏물이 온몸을 적시건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싸웠다.
하나, 거친 그 기세와는 달리 호위대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워낙 병력에서 차이가 나는 탓에 제대로 싸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마법병단이라도 있으면 다행이겠건만 이미 전멸을 당하기라도 한 건지 코빼기 하나 보이질 않는다.
“아아악!”
순간 뿜어져 나오는 핏물이 얼굴을 뒤덮고 눈 속으로 파고들건만 호위대장 롭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검을 휘두른다.
또 한 명의 적의 목을 베어 쓰러트린 그는 목청껏 소리쳤다.
“막아라! 막아야한다!”
미친 듯이 외치지만 그의 말을 들어줄 이는 이제 몇 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서서 공격하는 적들을 베어 넘기지만 혼자만의 고군분투 일뿐 전세를 역전시킬 수는 없었다.
“혼자서 애쓰는구먼!”
기사 전신을 난도질하던 낫을 뽑아내던 붉은 펑크 머리 사내는 호위대장 롭을 보며 애처롭다는 듯 바라본다.
“러프킨! 저들 하는 일이 원래 저런 거거든!”
눈사람이 연상될 만큼 넉넉한 몸집에 더벅머리를 하고, 코에 멋들어진 수염을 기른 사내는 주위 가득한 시체 가운데 앉아 닭다리를 뜯으며 말을 건넨다.
그걸 본 붉은 펑크 머리 사내, 러프킨는 못 말린다는 듯 내젓는다.
“텐진! 누가 그걸 몰라? 그리고 그만 좀 먹어라! 어떻게 된 게 넌 싸우러 와서도 닭을 뜯고 있냐?”
“사람 죽이는 것도 엄청난 육체노동이야! 당연히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이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체들 틈바구니에서 먹고 있냐?”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장소 타령은 무슨…….”
맛만 좋다는 듯 연신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먹는다.
이마를 딱 치며 내젓던 그때 묵빛 플레이트 아머를 쓴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텐진! 길을 열어라! 공작님께서 오셨다.”
싸우라고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식사를 방해해서 그런 건지 인상을 팍 쓰던 텐진은 먹고 있던 닭고기를 품에 넣고는 자신의 덩치 반쯤 되는 넓이의 철퇴를 들고 일어섰다.
“밥값 좀 하라고!”
러프킨의 핀잔에 입술을 삐죽이던 그는 땅을 박차간다.
육중한 몸집의 소유자답게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굉음이 일어난다.
지축이 들썩대는 듯한 요동과 함께 텐진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들고 있던 철퇴를 내리꽂는다.
“랜드 해머!”
거친 일갈과 함께 뿌려지는 마나의 기운에 이끌린 주위 바람이 휘몰아쳤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막아서던 기사 다섯이 방패와 함께 피곤죽이 되어 날아간다.
뒤이어 휘둘러지는 철퇴에도 기사들이 이리저리 나자빠진다.
맞서보지만 천력을 타고났는지 힘이 워낙 세서 단 한 번도 막아내질 못하고 날아간다.
텅 비어진 공간으로 러프킨이 양 손에 낫을 들고 끼어든다. 삽시간에 주위는 시뻘건 핏물로 도배가 되고 잘려진 육편들이 어지러이 땅바닥에 널려진다.
“막아야…… 한다! 적을…….”
쓰러진 와중에도 독려를 하는 호위대장 위로 러프킨의 낫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너나 제대로 막고 그런 말을 해!”
툭 뱉는 말 위로 내리 꽂히는 낫을 따라 몸이 들썩댄다.
헤집어 놓는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난도질을 해대던 러프킨는 얼굴에 핏물로 뒤범벅이 된 채로 웃기 시작한다.
실성한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을 갖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잠시 후, 다른 병사들까지 합세해 앞길을 트자 그제야 묵빛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사내, 펜실이 앞으로 나섰다.
내전으로 들어가서도 호위대의 공격이 지속됐지만 이미 많은 인원이 당해서 그런지 고작 두어 명이 다다.
가볍게 그들을 물리치고 대전으로 들어가자 미처 도망가지 못한 왕을 몇몇의 신하들이 에워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꼴에 왕이라고 보호하고 있구먼!”
맘에 안 든다는 듯 내뱉던 러프킨은 핏물 가득 머금은 낫을 들어 어깨에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그가 맘에 안 드는 지 총집사인 코르나가 소리를 친다.
“감히 국왕 폐하 앞에서 그런 망발을 서슴지 않다니 그게 기사로서 할 행동입니까?”
서슬 퍼런 그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던 러프킨이 낫을 쳐든 채 나서려던 펜실이 막아선다.
“공작 각하께서 내전으로 들어오셨다는 소식이다. 행동 조심하도록!”
맘에 안 든다는 흘기던 그는 이내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괜히 멋대로 굴었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러프킨이 물러서자마자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바오니 공작님께서 오셨습니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길이 하나 생겨났고 그 길을 따라 왕관을 조바오니 공작이 근엄한 모습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걸 본 총집사 코르나는 주위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불같이 노한다.
“국왕 폐하의 앞입니다. 신하인자가 어찌 왕관을…….”
채 말을 다 뱉지 못한 채 목에 단검이 꽂힌다.
힘없이 무너져가는 그를 보며 왕과 측근들은 겁에 질렸다.
단검을 쳐든 미리엔을 보며 고개를 내저은 조바오니 공작은 멈추었던 발길을 옮겼다.
이윽고 레조스 왕 앞에 당도한 그는 슬며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조바오니 경! 이……이게 무슨 일이오?”
“뭐가 말입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역모를 벌였느냔 말이오?”
분노를 표출하는 레조스 왕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마치 귀엽다는 듯, 아니 가소롭다는 듯 말이다.
“역모라……. 국왕 폐하께서는 역모라 부르는 그것도 백성이 원하면 역모가 아닌 것입니다.”
“역……모가 아니라고?”
“국왕 폐하께선 지금껏 왕국의 백성들이 왜 피폐한 삶을 사는지 아십니까? 그건 다 왕실 내 왕권 다툼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외척의 시대가 도래 하였으며 많은 죄 없는 이들이 죽어야만 했습니다. 무려 5번에 걸친 내란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랬다. 알카인 왕국의 기나긴 내란의 시작은 다 후계자들의 왕권 다툼에서 시작되었다.
8대 조모네 왕이 스물두 살에 병사한 후, 후계자로 지목된 이들 사이에 벌어진 왕권 다툼은 단순 왕실 문제가 아닌 외척이 모두 투입되는 그야말로 파벌 전쟁이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왕권 다툼에서 희생되었고 이는 왕국 내 잠재적 문젯거리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핏물 가득한 왕좌에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오른 9대 왕인 코리스 왕이 오르면서 점점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