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65
차원상인 165화
당시 재상이자 오넬리아 타오니는 파벌 전쟁으로 번져버린 왕권 다툼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척이었던 코리스 왕을 추대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많은 이들이 죽이거나 권력에서 멀어지게 만들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목표한 대로 코리스 왕을 왕위에 올릴 수는 있었지만 그동안 했던 일들에 대한 반발심을 잠재우기 위해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 기나긴 내란의 발단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레조스 왕은 그저 입술을 꽉 깨문 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다.
“그건 경 또한 마찬가지 아니오! 본 왕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과거 왕권 다툼을 벌이지 않았소!”
“맞습니다. 과거 저는 국왕 폐하를 왕위에 올리려 다툼을 했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없애버리려고 그리했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없애? 설마 처음부터 왕가인 알바레스 티안가를 없앨 생각이었다는 말이오?”
“상처가 곪아 가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까지고 방치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더 늦기 전에 째고 짜내서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레조스 왕은 불끈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하니 자신을 왕위로 올린 것이 왕가를 좀더 쉽게 없애기 위한 방도였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조롱이라도 하듯 조바오니 공작은 말을 계속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왕가를 무너뜨리기 전, 왕실에 관련된 남은 이들을 어찌 처리할까 싶었는데 고맙게도 국왕 폐하께서 왕실에 관련된 이들을 모아 친왕파란 이름으로 내세우시더군요. 덕분에 별 어려움이 없어 골칫거리를 숙청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습니다.”
“바드득! 조……바오니……경!”
이를 갈아대는 레조스 왕의 눈에서 살기가 일렁인다.
그의 손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한심함과 자책감이 어느새 미움과 증오로 바뀌어 조바오니 공작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독기로 가득 찬 그의 모습에도 그저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조바오니 공작은 슬쩍 창문을 보았다.
“슬슬 이쯤에서 이야기는 접어 두기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아 있는 할 일도 많은데 말입니다. 국왕 폐하!”
“시끄럽다! 그 더러운 입으로 폐하란 소릴 뱉지 마라! 듣는 것만으로도 노화가 치미니 말이다!”
서릿발 가득한 그의 말에 조바오니 공작은 알겠다는 듯 끄덕인다.
“그러지 않아도 안할 생각이었어. 이제 왕은 주위 사람들에게 칭얼대기만 하는 네가 아니라 본인이 될 것이니 폐하란 소릴 들을 쪽은 이쪽이거든. 안 그래? 떼쟁이 꼬마야!”
“이……이이…….”
노기를 감추지 못하고 나서보지만 주위 사람들에 붙잡혀 그저 바동거리기만 한다.
그런 그를 재미있다는 듯 보던 조바오니 공작은 슬쩍 시선을 돌려 펜실을 보았다.
“이제 그만 저것들을 정리해라! 더는 상종할 것들이 못되니…….”
한 차례 허리를 숙인 펜실을 검을 빼들고 앞으로 나섰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그가 마치 사신처럼 느껴져 온몸이 두려움과 공포로 물들어 간다.
어느덧 레조스 왕은 체념한 듯 두 눈을 감던 그때, 거친 일갈이 귓가로 파고들었다.
“파이어 월!”
순간 불길이 치솟는다 싶더니 펜실과 레조스 왕 사이에 장벽처럼 늘어선다.
동시에 조바오니 공작 뒤편에서 후드를 쓴 이가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당혹감을 금치 못하던 그때 한 사람이 소리를 쳤다.
“오……올레도 백작?”
그랬다. 점차 줄어드는 불길 사이로 올레도 백작이 후드를 벗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조바오니 공작은 바드득 이를 갈았다.
“네놈이 감히…… 본인의 일에 훼방을 놓겠다는 것이냐?”
한기 어린 그의 목소리에 올레도 백작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조바오니! 네놈의 야심은 일찍부터 알아봤다. 이리 행할 것도 말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기 전에 막지 못한 자책감뿐이다.”
“흥! 고작 마법사인 네놈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그리 큰소리더냐?”
“물론 이 자리에서 널 막지는 못하겠지만 도망치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나!”
“뭐, 뭐야?”
조바오니 공작은 부릅뜬 눈을 부라리며 주위를 훑는다.
“뭐하느냐? 어서 저놈을 죽이지 않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서둘러 앞으로 나선다.
그런 그들을 보던 올레도 백작은 남몰래 외우던 주문을 소리쳐 외친다.
“파이어 볼!”
또다시 치솟아 오르는 불길에 달려들던 사람들을 멈춰 세운다.
그러고는 품에 있던 스크롤을 찢어 불길에 던졌다.
“블라인드 스모크!”
펑!
자그마한 폭발음과 함께 어디선가 안개가 흘러들어와 내전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당황했고, 그 틈을 타 올레도 백작은 레조스 왕을 곁으로 갔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어서!”
다급한 그의 목소리를 쫓아 레조스 왕은 신하와 함께 나섰다.
그들을 데리고 왼쪽 벽 모서리 부근으로 간 올레드 백작은 벽면에 손을 대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벽면이 옆으로 스르륵 움직이더니 통로 하나를 만들어냈다.
“과거 왕조가 타국의 공격에 대비해 만든 비밀 통로입니다. 길은 제가 잘 알고 있느니 제 뒤만 잘 따라 오십시오.”
“알겠네! 어서 앞장서게!”
끄덕이던 올레드 백작은 라이트 마법을 시전해 그것을 횃불 삼아 앞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레조스 왕이 들어가고 남은 신하들 모두 통로로 들어가자 이상하게 뚫려있던 벽면이 제 위치를 찾으며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잠시 후, 내전에 가득 찼던 안개가 사라지자 펜실을 비롯해 사람들 모두 레조스 왕과 올레드 백작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그들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불나방에 불과한 그놈들을 코앞에 두고 놓치다니! 대체 뭐하는 것이냐?”
노성을 질러대는 조바오니 공작에 주위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거듭 소리를 쳐 보지만 쉬이 식지 않는 노화에 부르르 몸을 떨어대던 그때 펜실이 왼쪽 벽 모서리 밑에 떨어진 신발 하나를 보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휘황찬란한 신발의 모습으로 보아 아무래도 레조스 왕의 것으로 보였다.
왜 이곳에 떨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던 그때 얼굴 위로 서늘한 기운이 밀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잠시 벽을 살피던 그는 뒤로 물러난 들고 있던 검을 쳐들었다.
온몸 가득 피어오른 시커먼 기운은 휘둘러지는 검을 따라 십여 개의 칼날로 화하여 벽에 부딪쳤다.
콰콰쾅!
갑작스러운 폭음에 놀란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자 무너진 왼쪽 모서리 벽 위로 통로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공작님! 비밀통로입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이쪽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펜실이 들고 있는 신발이 평소 레조스 왕이 최근 들어 좋아해하던 것임을 떠올린 조바오니 공작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병력을 둘로 나누어 내성을 기점으로 안과 외곽에 병력을 배치하고 그들의 흔적을 찾아라! 그리고 모헤라 자작과 테트라 남작 휘하 병사들은 저 통로를 통해 쥐새끼 같은 레조스, 그놈을 잡아 오도록 하거라!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도 같이 말이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던 사람들은 서둘러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흩어졌다.
조바오니 공작은 펜실이 건네준 신발을 바닥에 내던지며 노성을 질러갔다.
“올레도 백작!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다니……. 죽어도 좋게 죽지는 못할 것이야!”
살기 가득한 눈빛을 쏘아대며 말이다.
‡ ‡ ‡
드르르륵!
옆으로 움직이는 벽 너머로 통로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던 레조스 왕은 주위 가득한 책들과 책장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이 지금 있는 곳은 자신은 물론 내성에 있는 모든 이가 다 아는 왕실 도서관 중 하나인 제5도서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왕도는 벗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성 밖으로는 나갈 줄 알았는데 내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는 이곳으로 올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올레도 백작! 대체 어떻게 된 것이오? 왕실 도서관이라니……. 잘못 나온 것이 아니오?”
벽에 새겨진 마법진을 사용해 벽을 원래대로 되돌린 올레도 백작은 고개를 내젓는다.
“아닙니다. 맞게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설명할 시간 없으니 일단 따라 오십시오.”
제 할 말만 하고 돌아서서 가는 그가 왠지 맘에 안 들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꾹 참고 넘어갔다.
그를 따라 제3 도서실로 가자 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을 손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찌 됐나?”
“준비 다됐습니다.”
“다들 수고했네!”
고맙다는 듯 마법사의 어깨를 툭 치던 올레도 마법사는 고개를 돌려 레조스 왕을 보았다.
“워프 마법진입니다. 비밀 통로처럼 선대왕들께서 준비한 것입니다.”
비밀 통로에 이어 비밀 마법진까지. 자신은 전혀 모르는 것을 척척 내놓는 그에 레조스 왕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경은 대체 이것을 어찌 다 아는 것이오?”
“왕실 마법병단의 수장이 되면 알 게 되어있는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그런 게 있었으면 미리 알려주지 그랬소? 그랬다면 아까와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니오?”
이 와중에도 책망을 하는 레조스 왕이 맘에 안 들었지만 지금껏 속여 왔다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비밀 통로나 이 마법진은 왕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만약 이것이 드러난다면 적들은 필히 이곳부터 부셨을 것이 분명하기에 지금껏 숨긴 것이니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자신을 위해 그리했다는 말에 레조스 왕도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것을 따지고 있다는 것이 왠지 바보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마법진 위로 오르십시오!”
“알겠소!”
재촉에 레조스 왕과 신하들은 황급히 마법진 안으로 들어간다.
뒤이어 마법사 몇을 마법진 안에 들여보낸 올레도 백작은 주문을 시전 할 준비를 하였다.
“잘 들으십시오! 마법진 통해 간 곳에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가 바딘 백작이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안심하시고 따라가십시오.”
순간 레조스 왕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여전히 마법진 밖에 있는 것도 그렇고, 사람이 준비되어 있으니 따라가라는 것도 영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경은 가지 않는 것이오?”
“곧 뒤따라 갈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꼭 쫓아오시오! 이제 본 왕에게 남은 건 경과 바딘 경뿐이니 말이오.”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고개를 숙이던 올레도 백작은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한 차례 빛무리가 도서실을 가득 메운다 싶더니 이내 본래의 색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