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72
차원상인 172화
바드득 이까지 갈아대는 것이 제법 노화가 쌓인 모양이다.
씩씩대던 테온은 이제 됐다는 사내를 향해 가보라며 손을 내젓는다.
방문을 나서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그에게 묵빛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펜실이 다가왔다.
“성국에는 뭐라 답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바딘 백작과 레조스 왕에 대해선 암살 성공한 것으로 알려줘!”
“감춘 것을 들킬 경우 몹시 곤란해지실 겁니다.”
“누가 그걸 몰라? 그렇다고 사실 그대로 말할 수도 없잖아!”
물끄러미 바라보던 펜실은 알겠다며 끄덕였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테온 님!”
그까지 나서자 홀로 남은 테온은 바드득 이를 갈아간다.
“절대로 내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게 두지 않겠어. 어떻게든 말이야!”
서릿발 가득한 목소리로 위로 한기가 흘러내린다.
살기 섞인 그것이 말이다.
‡ ‡ ‡
“조바오니 국왕 폐하! 반도를 찾았습니다.”
이마를 싸매고 있던 조바오니 왕의 고개가 쳐들린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보모스 영지에 있었다고 합니다.”
“보모스 영지? 역시 테온, 그놈이었던 모양이군.”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아 그런 것 같습니다.”
한껏 허리를 숙여 보이는 소프렌 위로 미간에 내천자를 새긴 조바오니 왕이 보인다.
바딘 백작에 이어, 레조스 왕까지 왕도를 빠져 나가자 그는 소프렌에게 은밀히 조사를 명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부에 돕는 자가 있지 않고서야 연속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기 어렵다 여긴 것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내전 습격 당시 참여했던 한 병사를 통해 아크리가 실은 올레도 백작이며, 성국이 비밀리에 파견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좀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니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 전체가 테온의 수족이며, 그 역시 성국이 보낸 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은밀히 테온의 동태를 살폈고 그와 각별한 사이인 세토 자작의 영지인 보모스에서 이 모든 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바딘 백작과 레조스 왕의 은신처까지 찾아낸 것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자신의 발밑에서 독화가 피어나고 있음을 깨달은 조바오니 왕은 분노에 몸서리를 쳤다.
쾅!
“테온! 설마하니 네놈이 내 목을 조르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탁자 위로 내리치는 불끈 주먹이 파르르 떨려온다.
점점 거세지는 노화에 얼굴을 붉게 물들어가던 그때 소프렌이 앞으로 나섰다.
“국왕 폐하! 지금은 노성이나 지를 때가 아닙니다. 어서 이 모든 것을 정리해야만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도가 생길 것입니다.”
자중하라는 말에 잠시 눈을 감고 노기를 잠재운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조바오니 왕은 감았던 눈을 치켜떴다.
“자네 생각에 이번 일을 어찌 처리했으면 좋겠는가?”
“일단, 도망 중인 레조스 왕과 바딘 백작을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 먼저 처리해야하는 이유가 있는가?”
“그래야만 제국이 더는 개입을 하지 못하고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간 줄기차게 제의해오던 성국의 제안 역시 전과는 달리 우리 측에 매우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 분명합니다.”
조바오니 왕은 손을 들어 턱을 매만졌다.
그의 말대로 바딘 백작과 레조스 왕의 죽음으로 자신이 얻을 것은 많다.
문제는 성국 역시 같은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제국이 개입을 멈추면 곧바로 성국이 치고 들어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소프렌 경, 왠지 망설여지는군. 분명 그 둘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것은 많긴 하나 그건 성국 쪽도 마찬가지라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그렇긴 합니다만 그들이 모르는 한 가지가 우리에겐 더 있습니다.”
“그게 뭔가?”
“바로 테온과 그의 측근들의 정체입니다.”
순간 조바오니 왕의 콧등이 찡그려져 간다.
상대가 뭘 하려는지 얼핏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자네! 테온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없앨 생각인가?”
“예! 그걸 통해 성국에게 더는 우릴 압박할 것이 없음을 보여줌으로서 이후 벌어질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입니다.”
조바오니 왕은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고심에 빠져들었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나쁜 생각 같지는 않다.
독버섯처럼 자라는 암독을 제거해 혹시 모를 위협에서 벗어난다는 것도 그렇고 제국이 공표문을 발표한 뒤 의기양양하니 찾아오는 성국의 사자를 발밑에 꿇릴 수 있다는 점도 맘에 든다.
문제는 테온과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을 제거할 수 있냐는 것이다.
자랑 같지만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은 왕국 내 최고라 할 만큼 강하다 자부를 한다.
즉, 그들을 제압할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병력을 동원하자니 그 눈치 빠른 테온이 알아채고 도망칠 우려가 높아 그럴 수도 없다.
난감한 빛을 자아내던 그의 시선이 앞에 시립해 있는 소프렌에게로 향했다.
“한 가지 묻지! 자네 생각에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을 제압할 수 있다 보는가?”
“충분히 가능하다 여겨집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가?”
고개를 든 소프렌은 차근차근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왕성의 내전과 외곽 경비는 모두 총 다섯 개의 병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하나가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입니다. 다른 네 개의 병력이 왕성의 안팎을 골고루 맡아 경비를 서고 있는 반면,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은 잘게 쪼개어 네 개의 병력 곳곳에 끼워 넣으셨습니다. 국왕 폐하께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그리하셨겠지만 현 상황으로 볼 때는 그들을 제거하기에 더없이 좋습니다. 거기다 현재 테온, 그자가 머무는 곳은 왕도를 경비를 책임지는 치안청입니다. 우리 병사들로 꽉 메운다 해도 별 의심을 하지 않을 그런 곳이란 말이지요. 즉, 사람 죽이기에 딱 안성맞춤인 곳에 있다는 말입니다.”
“확실히 사람 죽이기에는 좋은 곳에 살기는 하는군.”
끄덕거리는 조바오니 왕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지어진다.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잠시 후,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운 조바오니 왕은 시선을 내려 소프렌을 보았다.
“대충 준비는 언제쯤 되겠는가?”
“언제든 말씀하시면 됩니다.”
조바오니 왕에게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뒤에 말을 하는 이가 소프렌이라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물끄러미 그를 보던 조바오니 왕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그럼, 지금 즉시 준비한 것을 이행토록하게!”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고개를 숙이던 소프렌은 몸을 돌려 내전을 나섰다.
이렇게 안갯속에 잠긴 듯 복잡하기만 하던 알카인 왕국의 내란은 점점 그 끝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헉헉!”
미친 듯이 토해내는 숨소리 위로 초췌해진 바딘 백작의 얼굴이 보였다.
기세등등하게 은신처를 빠져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아크리의 병사들이 등 뒤에 바짝 달라붙는다 싶더니 언제 또 나타났는지 전방에 수많은 병사들이 길목을 틀어막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급한 대로 말을 버리고 인근 산길로 들어갔지만 그곳 역시 얼마 못 가 병사들로 쫓아오고 있었다.
잠시 나무에 기대 거친 숨을 토해내던 그에게 한 기사가 말을 건넸다.
“저기 숲만 들어가면 곧 데이토나 영지입니다. 그때까지만 힘을 내십시오.”
절벽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숲을 가리키는 그에 바딘 백작은 한숨을 내쉬고 만다.
지금 상황으로는 절벽을 넘기는커녕 이곳에서 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잡히는 순간 나도 죽고 국왕 폐하도 죽으니 말이야.’
나약해지는 맘을 다잡아가던 그때 한 병사의 등에 업힌 레조스 왕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말을 타고 도망치던 중 갑자기 날아든 적의 화살에 그만 등을 맞고 말았다.
다행히 목숨만은 건진 상태이지만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 혹시나 잘 못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어쩌지 못하던 그때 옆에 있던 기사 둘이 그를 앞으로 밀쳐냈다.
“적들입니다!”
“버, 벌써 말인가?”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떠밀리듯 나선 그는 주위 사람들 데리고 절벽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뒤로 한 채 핏물을 한껏 머금은 검을 쳐든 기사 둘은 서릿발 같은 외침을 토해내며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이놈들아! 내 검을 받아라!”
“국왕 폐하를 위해 하려는 자! 내 절대 용서치 않으리라!”
“적이다! 죽여라!”
“크아아악!”
귓속 가득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에 두 주먹이 불끈 쥔다.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검을 들고 나서고는 싶지만 국왕 폐하를 위해서 꾹 참는다.
차차창!
“으아악!”
“국왕 폐하를 위하여! 크악!”
국왕 폐하를 외치는 그 비명 소리에 순간 멈칫댄다.
그것도 잠시 바딘 백작은 아까보다 더 빠른 몸놀림으로 절벽을 올라갔다.
자신들을 살리고자 불나방처럼 목숨을 내어주고 멀리 떠난 기사들을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멈춰서서는 안 된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막 절벽 위로 올라서려는 찰라 하늘 위로 시커먼 점들이 늘어선다 싶더니 그들 위로 화살세례가 퍼부어진다.
피피피핑!
“크아아악!”
“내…… 눈…… 눈! 으악!”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화살을 몸에 두른 채 쓰러진다.
“으윽! 배……백작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레조스 왕을 업고 있던 기사가 쓰러진 것이 보였다.
화들짝 놀라해 하던 바딘 백작은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괘, 괜찮은가?”
“백작님! 죄송하지만 저는 더는 못 갈 듯합니다. 그러니 국왕 폐하를 데리고 가십시오.”
그의 말마따나 종아리에 박힌 화살로 인해 더는 걷질 못할 것 같았다.
알겠다며 끄덕인 바딘 백작은 레조스 왕을 들어 자신의 등에 얹었다.
그걸 본 살아남은 기사 둘과 수행원 하나가 황급히 그의 꽁무니에 붙었다.
혹시나 날아든 화살에 왕이 다치지 않을까 싶어 방패막이로 나선 것이었다.
“어서 가십시오! 어서!”
종아리에 화살을 박힌 기사는 활을 쳐들어 쏘며 소리친다.
조심하라는 말 한 마디 못한 채 그들을 그를 버려두고 절벽을 넘었다.
하염없이 가파른 산속을 미친 듯이 뛰어간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위험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하나 멈추질 않았다.
“저기 있다! 화살! 화살을 쏴라!”
거칠게 토해지는 그 외침을 따라 화살들이 허공을 가득 메꿔간다.
피피핑!
“커어헉!”
퍼부어지는 화살세례에 뒤따르던 수행원이 등과 허벅지에 맞고는 쓰러진다.
그래도 살고는 싶은지 상체를 일으키지만 곧이어 날아든 화살이 뒤통수에 틀어박히자 힘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런 그를 밟으며 수십 명의 병사들이 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디 있어?”
“이쪽은 없어! 그쪽은?”
“여기도 마찬가지로 안 보여!”
갑자기 사라진 모두들 당황해하던 그때, 왼편에 자리한 돌무더기 밑에서 있던 바딘 백작은 곁에 있는 기사들에게 나지막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