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74
차원상인 174화
헐떡대던 숨을 고른 사내는 그의 말에 답했다.
“우리가 성국 사람인 걸 알고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죽여요? 대체 누구를 말입니까?”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은 물론이고 우리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테온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언젠가는 알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이토록 빨리 알아챌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입술을 꾹 깨물던 그는 주위에 있던 서류는 물론이고 혹시나 성국에 피해가 갈만한 것들 모두 꺼내들었다.
양초를 들어 막 불을 붙이려는 순간 방안으로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금발에 조금은 삭막한 인상을 한 기사가 조용히 나섰다.
“안드레 남작!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슨 일은? 왕국에 숨죽이고 있는 성국의 쥐새끼들을 잡으러 왔지.”
“성국의 쥐새끼? 그건 또 뭔 말입니까?”
“그건 나보다는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네만…….”
테온은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웃는다.
“제가 더 잘 안다니요? 설마하니 저더러 성국의 쥐새끼인지 뭔지 하는 것은 아니겠죠?”
“왜 아니겠나? 자네 말고 그 일을 잘할 이가 누가 있다고 말이야.”
“다 오해이고! 중상모략입니다. 제가 어찌 그런…….”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아니라 보이지. 그래서 자넨 더 쉽게 일을 추진해왔을 것이야. 그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말도 안 된다며 내젓던 테온의 손이 딱 멈추고 미소대신 냉기 덮인 낯으로 바뀐다
“그 말씀은 전후가 어떻든 절 죽여야 끝난다 이 말씀이시군요.”
피식 웃던 안드레 남작은 손을 들어 수북히 쌓인 서류들을 가리켰다.
“자네 말대로 오해이고, 중상모략이면 이 앞에 쌓인 것은 무엇인가?”
“그게…… 방 정리를 좀 할 것이 있어서…….”
“자넨 방 정리 할 때 버릴 물건을 방안에서 태우나 보군그래!”
더는 안 되겠다 싶던 테온은 들고 있던 양초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언제 아신 겁니까?”
“솔직히 말해 어제 알았네. 소프렌 상단주가 말해줘서 말이야.”
“소프렌……?”
그렇지 않아도 요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하더니만 다 자신의 뒤를 캐느라 그랬던 모양이다.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며 뇌까리던 테온은 시선을 들어 안드레 남작을 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조바오니 공작을 없앨 걸 그랬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멍청한 레조스 왕이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살을 와락 구기던 안드레 남작은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이놈!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이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드레 남작!”
“그래도 이놈이!”
불같이 노하던 안드레 남작은 들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순간 테온의 가슴 위로 사선이 길게 그려지며 시뻘건 핏물이 뿜어져 나온다.
힘없이 꿇려지는 두 무릎을 보며 웃어보이던 그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혹시나 싶어 등 위로 재차 찌르던 안드레 남작은 검을 뽑아 닦았다.
“일찍이 공작님 옆에 있을 때부터 그리 좋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검을 닦은 핏물 가득한 천을 테온의 머리 위로 내던지곤 큰 소리로 외쳤다.
“국왕 폐하께 알려라! 적의 잔당을 모조리 소탕했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병사는 서둘러 방밖으로 나섰다.
‡ ‡ ‡
“큰일입니다, 성황 폐하!”
카미엘과 논의 중이던 엘르느 성황은 황급이 안으로 들어온 사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신성한 신전 안에서 이렇듯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이더냐?”
“방금 알카인 왕국에서 급보가 날아왔습니다.”
“급보? 혹시 조바오니 왕이 우리 제안을 받아드렸다는 소식이더냐?”
“그게 아니라 테온 사도를 비롯해 왕국 내 있던 저희 성국 사람들 모두가 죽임을 당했다 합니다.”
많이 놀란 탓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그게 사실이더냐?”
“조금 전 다 죽였다고 조바오니 왕이 저희에게 알려왔습니다.”
“뭐라? 조바오니 왕이 알려와?”
엘르느 성황은 이마를 거머쥔 채 털썩 의자에 앉았다.
설마하니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실의에 빠져있는 그를 대신해 카미엘 물었다.
“그것 말고 조바오니 왕이 알려온 것은 더 없는가?”
“저희 측이 제의했던 것을 받아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일전에 제안했던 지지표명 말이더냐?”
“예! 대신 우리가 제의했던 조건들 모두 바꿀 것이라 했습니다.”
카미엘의 두 눈에 불똥이 튄다.
감히 성국을 두고 협상을 하겠다고 나서는 조바오니 왕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핏물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나는 가운데 성전을 펼치겠노라 선언을 하려는 찰나, 엘르느 성황이 손을 치켜들었다.
“조바오니 왕의 말을 받아드리겠다 알려라!”
“알겠습니다. 성황 폐하!”
성호를 긋던 그는 조심스레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카미엘이 고개를 홱 돌렸다.
“성황 폐하! 어째서 그런 하찮은 놈이 내건 제의를 받아드리시는 겁니까?”
“이미 판세가 기울었느니라.”
“아닙니다. 성전을 하도록 열어주십시오. 제가 이끄는 성전사라면 그의 헛된 야망도 능히 부술 수…….”
“카미엘! 신이 원치 않은 성전을 억지로 열 수는 없는 법이다!”
강한 어조로 토해내는 엘르느 성황의 모습에 카미엘의 입이 다물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듯 꽉 쥔 주먹 밑으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그것을 지켜보던 엘르느 성황이 말을 하였다.
“카미엘! 노하거나, 슬퍼하거나, 자책하지 말거라!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알카인 왕국에 신이 성전을 열어줄 것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성황 폐하!”
이 말을 끝으로 카미엘은 더는 알카인 왕국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 느끼는 모든 것을 가슴에 품었다.
언제든 때가 오면 열고 다 토해내리라 맘먹으며 말이다.
‡ ‡ ‡
레조스 왕의 죽음과 더불어 조바오니 왕에 대한 성국의 지지표명으로 인해 더는 개입이 어려워진 세투란 제국은 남하시키던 병력을 다시 불러들였다.
대신 릭 캐슬 후작과의 관계를 다시금 밝히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성국이나, 조바오니 왕의 도발을 잠재웠다.
이렇게 알카인 왕국의 내란은 끝이 났지만 잠재적인 재앙의 씨앗들은 여전히 서로의 마음속에 조금씩 싹을 틔워가고 있었다.
제7-9장 (에필로그)
똑! 똑!
종유석 밑으로 떨어져 내린 물방울이 동굴을 울린다.
천연적으로 생긴 것치고는 제법 큰 듯한 그곳에 횃불을 든 한 사내가 걸어간다.
후드를 뒤집어쓴 데다가 일렁대는 불빛 탓인지 쉽사리 외양이 드러나질 않았다.
한참을 동굴을 걸어가는가 싶던 그의 앞에 공동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정에 불빛이라도 들어오는지 정중앙에 빛줄기 내리쬐고 있는 그 모습이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
사내는 이곳이 익숙한 듯 벽에 횃불을 걸고는 빛줄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오래간만이야. 이러다 얼굴 잊어버리겠어?”
뒤편에서 들려오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사내는 피식 웃었다.
“잊어버리기 전에 내 얼굴부터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러고 싶은데 워낙 네 얼굴이 정감이 안가서 말이야. 쏴리!”
무슨 자신이 드라마 속 누구라도 된 것처럼 한손을 치켜든다.
그것도 여자가 아닌 남자가 말이다.
못 들어주겠다는 듯 내젓던 그때 왼편 위에 드리워진 시커먼 그림자가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아까운 목숨 하나 사라져서 아쉽겠어. 뭐, 목숨이 여덟 개라 상관은 없으려나? 테온, 아니 제르바쯔 오온 카테아!”
순간 사내가 둘러쓴 후드가 젖혀지며 죽은 줄 알았던 테온, 아니 제르바쯔 오온 카테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야 고작 목숨 하나 잃은 거지만 넌 늙은이가 무서워 그 성에 처박혀 있잖아? 안 그래? 겁쟁이 천마 역천행!”
“겁쟁이? 이 자식이 죽고 싶어?”
순간 시커먼 그림자 주위가 환해진다 싶더니 고대 중국 차림의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무섭기 그지없건만 테온은 연신 웃기만 한다.
이때 정면에 있던 그림자 중 우측에 있던 사람에게서 말을 건넸다.
“시끄럽다! 싸우고 싶거든 나중에 단 둘이 만나서 하고 지금은 회의에 집중하도록 하라!”
위압감 가득한 그 목소리에 케테아는 물론 역천행 역시 입을 다문다.
차츰 주위가 조용해진다 싶자 정면 왼편에 위치한 그림자에게서 말이 흘러나왔다.
“카테아! 자신의 유희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불렀을 리는 없고 대체 우릴 소집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동자다!”
“이동자? 차원이동자를 말하는 것인가?”
“분명 차원이동자다.”
순간 주위가 어수선해진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그에게서 뱉어졌기 때문이었다.
“그게 사실인가?”
“그것에 대해선 나보다는 오르큰에게 묻는 것이 더 빠를 것 같군.”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테온의 시선을 따라 모든 그림자들의 고개가 돌아간다.
“오르큰! 그게 사실인가?”
시커먼 그림자 주위가 환해진다 싶더니 예상 밖에 백파가 얼굴을 보였다.
“사실이네.”
“그걸 알면서도 왜 가만히 있었던 거지?”
“나도 최근에 카테아가 보내준 금괴를 보고 알았네. 감추고 할 것도 없었단 말일세.”
부정을 하지만 주위 분위기로 보아 아무도 안 믿는 눈치다.
하긴 인간의 욕망을 먹고 자는 오르큰인데 믿는 건 또 아닌 것 같다.
카테아로 시선을 돌린 그림자들 중 하나가 물었다.
“이동자라면 어느 족이라 예상이 되나요?”
케테아는 지금껏 쭉 생각했던 것을 입에 담았다.
“니키도니아 족 같다!”
“니키도니아 족?”
“설마…….”
“분명 그 종족은 멸망했을 텐데…….”
또다시 주위가 시끄러워진다.
그만큼 니키도니아 족이 갖는 의미가 컸다.
어수선하기 짝이 없던 이때 돌연 도호가 울려 퍼진다.
“무량수불! 니키도니아 족의 마지막 생존자는 벨로나 네미사 아셀리오나 하나뿐이었소. 하지만 사백년 전, 우리 여섯 크로스 블러드에 의해 그녀는 죽임을 당했소. 그런데 어찌 그녀 말고도 니키도니아 족이 있다는 말이오.”
무림맹주이자, 무당파 장문인인 운진자의 말에 모두들 끄덕거렸다.
마지막 생존자인 그녀는 이곳에 있는 이들에 의해 사백년 전에 죽임을 당했다.
죽은 것을 역천행이 확인했던 것이라 모두들 기억하고 있다.
즉, 그 말은 당연히 니키도니아 족이 멸족을 했다는 말과도 같다. 근데 니키도니아 족의 생존자가 남아있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 정면 왼편 그림자가 말을 건넸다.
“그녀가 죽기 전 낳았군.”
“자식을 낳았다는 말이야?”
“내가 기억하기론 그녀가 죽기 전 골드 드래곤 중 한 고룡의 레어에서 장시간 머문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그때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골드 드래곤? 클라블레 데치 카이먼 말이야?”
“아마 그런 이름으로 얼핏 기억이 난다.”
묵묵히 듣고 있던 역천행도 동의를 표한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크군! 골드 드래곤 카이먼과 아셀리오나는 매우 각별한 사이였으니 말이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듣고만 있던 뒤편에 있던 이가 말을 건넸다.
“그럼, 우리가 할 것은 정해졌네. 차원이동자라 보이는 그를 찾아서 확인하는 것! 죽이든 살리든 그때 결정하는 것으로 말이야.”
정면 왼쪽 그림자가 말을 건넨다.
“그편이 더 낫겠군. 차원이동자가 아닌 마법을 통한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럴 가능성도 좀 있고 말이야.”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정면 오른쪽에 있던 그림자가 말했다.
“결정 내리겠다! 지금 즉시 크로스 블러드는 차원이동자로 보이는 그를 찾아서 확인하라! 만약 니키도니아 족일 경우 어떤 경우에서든 무조건 사살하라! 그들은 동대륙을 멸망하게 하고 우리 종족을 멸족시킨 원수이니 말이다.”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한목소리로 공간을 울린 시커먼 그림자들이 사라진다.
그건 빛줄기에 위에 서 있던 카테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 사람, 백파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거참! 묘한 인연이구먼! 아버지도 그렇더니만 자식까지 내 손에 죽게 생겼으니 말이야.”
이 말을 끝으로 그 또한 사라졌다.
『차원상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