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8
차원상인 018화
“고맙……습니다.”
울컥 올라온 감정에 말을 쉬이 잇질 못한다.
그런 그를 토닥이며 김 팀장이 말을 건넸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만 하면 넌 잘 살 수 있을 거야. 알지? 영업맨 정신!”
“맨땅에 헤딩한다고 꼭 내 머리가 깨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부딪치고 부딪쳐라!”
“그래!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전처럼 열심히만 하면 다 잘 될 거야. 내 말 알았지?”
“팀장님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피식 웃던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이쯤 하자. 오늘이 마지막 시음회 중이라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울 순 없으니까 말이야.”
서둘러 일어선 우현은 넙죽 허리를 숙인다.
“고맙습니다. 팀장님!”
“짜식! 그런 말은 빚 다 갚고 나서 해도 돼!”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나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도울 수 있으면 도와줄 테니까 말이야.”
알겠다는 듯 끄덕이는 우현을 본 김 팀장은 몸을 돌려 갔다.
이제 그만 가라는 듯 손을 들어 내저어 보이며 말이다.
그런 그를 향해 우현은 또 한 번 허리를 숙인다.
봉투를 꽉 쥔 손을 부르르 떨어대며 말이다.
“고……맙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우현은 커피 판매 증진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김 팀장과 만난 후,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고,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길은 조금이라도 빨리 빚을 변제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필히 커피 판매를 증진시켜 좀 더 많은 이득을 얻는 것이 최선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맘을 다잡아서 그런 것일까? 판매 부진의 원인이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그 내용이 너무도 기가 막힌지라 이내 할 말을 잃고 만다.
“명색이 영업맨인데 홍보 하나 없이 팔려고 했다니…… 어이가 없구만!”
한심하다는 듯 내뱉던 그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빠르게 계획을 세워 갔다.
사흘 후, 필요한 물품을 챙겨서는 차원을 넘어간 우현은 소네스를 호출하여 자신이 짠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듣고 있던 그는 나직이 물어왔다.
“그러니까 판매 증진을 위한 홍보를 하겠다는 건데…… 방법이 걸리네. 거, 있잖아! 모델이라는 것을 사용해 귀족들이 커피 먹는 장면을 연출하겠다는 것 말이야. 자칫 귀족 희롱 죄로 잡혀 들어갈 수도 있다고!”
“형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애초부터 그건 홍보를 위한 광고라고 못 박아둘 것이니 말입니다. 그보다는 커피 한 잔으로 고귀한 귀족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대리만족이 더 커 상인들의 입맛을 동하게 할 것입니다.”
“대리만족이라…….”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듯 관자놀이를 긁적댄다.
“일단, 모델 광고라는 것부터 말을 해봐!”
“남녀 한 쌍이 필요합니다. 둘 다 외견만 봤을 때 귀족으로 보일 만큼 고귀함과 품격이 보여야 합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우아함도 같이 있어야 하겠죠.”
“귀족의 품위가 느껴지는 남녀라……. 뽑는 데 꽤 까다롭겠는데?”
“어렵더라도 꼭 찾아야 합니다. 모델이란 대화가 아닌 그저 눈으로만 보이는 것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순간 소네스의 미간이 좁혀 들어간다. 조건이 너무 어려워 제법 골치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우현 또한 같은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한번 찾아보지.”
“그다음엔 그들이 입을 의상과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표현할 수 있게 교육이 필요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두 가지 교육을 바딘 백작에게 부탁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바딘 백작에게? 가능할까?”
“설득을 해봐야겠지만 만약 안 된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죠.”
소네스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긴다.
“네 말대로 바딘 백작이 나서주면 좋지. 안목도 우리보다 나을 테고, 자신이 귀족이니 교육도 쉬울 테고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소네스의 시선이 우현을 찾는다.
“좋아! 모델 광고는 대충 이 정도로 하고 점원 교육은 어떻게 할 거야? 네가 계속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본래 점원 교육은 반복 숙달 작업입니다. 한마디로 무한한 반복을 통해 몸에 배게 하는 것이죠. 뭐, 감독관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굳이 제가 계속해서 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반복 숙달이라……. 그럼, 점원 교육은 언제부터 할 수 있어?”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럼, 조금 있다 상단 사람들 중에 몇 명 뽑아서 보내 줄 테니 해봐!”
우현은 고마움에 소네스의 두 손을 잡았다.
“형님! 제 말에 따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어. 솔직히 네가 말한 대로 하면 어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좋은 커피를 이대로 사장시키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런 것뿐이니까 말이야.”
더는 고마워할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그런 그를 보며 미소 짓던 우현은 이후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한참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소네스가 돌연 말을 건네 왔다.
“근데 바딘 백작을 통해 다른 귀족들에게 견본품을 돌린다는 것 말이야. 꼭 그여야만 하나?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돼?”
“다른 사람 누구 말입니까?”
“국왕에게 청해 보는 게 어때?”
“국왕이요?”
“응! 바딘 백작은 친왕파로, 왕과 긴밀한 관계라고 들었거든. 거기다 매 거래 때마다 삼사십 개씩 커피를 사는 것도 다 왕실에 진상하려고 그런 거고 말이야.”
하긴 권력 싸움에서 밀려 변두리 영지에 온 사람이 아직도 왕실 상단을 맡고 있다는 것만 봐도 뭔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소네스가 말한 내용을 조용히 곱씹던 우현의 고개가 쳐들린다.
“형님, 그거 아주 괜찮은 생각 같네요. 그간 왕실에 커피가 공급되었다면 왕 역시 먹어 봤을 것이고, 주위 귀족들에게 권할 때도 수월할 겁니다. 그렇게 전해진 커피는 호기심에, 왕이 먹는 것을 자신이 먹는다는 대리만족에서 대다수의 귀족들이 마시게 될 것이고 말입니다.”
맞는다는 듯 끄덕이던 소네스는 이내 턱을 쓰다듬었다.
“문제는 양인데…… 30봉짜리 2개? 바꾸지 않을 거지.”
“예! 그게 딱 좋습니다. 두 달은 충분히 먹을 양이지만 허세와 자기만족을 중히 하는 귀족이라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먹을 것이고 기간을 채 채우기도 전에 커피는 사라질 겁니다. 그때쯤이면 귀족들은 커피에 상당히 빠져 있을 테고 많은 이들이 구매하기 위해 상인들을 찾을 것입니다. 물론 그로 인해 차츰 구매층이 형성될 것이고 말입니다.”
“전적으로 귀족에게 맡겨야 한다는 점이 좀 걸리긴 하지만 내가 맛본 커피의 맛이라면 능히 가능하다 생각해!”
소네스 역시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를 표한다. 이렇게 왕에게 진상해 구매층을 형성하는 방안을 만드는 한편, 만일에 대비해 상단 자체에서 귀족들에게 홍보하는 계획도 세웠다. 무작위로 귀족들에게 커피를 보내는,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이지만 현재 그가 취할 수 있는 제일 부담 없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아까 말한 대로 사람들 붙여줄 테니까 네 계획대로 해보자고!”
“그 전에 왕에게 커피를 진상하는 문제로 바딘 백작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모델들의 교육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 나보다야 네가 직접 가는 편이 더 설득하기 좋을 테니까 말이야.”
맞는다는 듯 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막 일어서던 소네스는 깜박했다는 듯 말을 건넨다.
“참, 캐슬! 무료 시음 문제 말이야. 바딘 백작이 상인들을 만날 때 한 잔씩 권하는 걸로 바꾸는 게 어때?”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국왕에게 진상케 했다는 소식을 듣고 백작에게 상인들이 찾아올 것 아니야. 그때 커피를 대접해 맛을 보여주자는 거지.”
잠시 생각을 하던 우현은 고개를 주억댄다.
“확실히 그편이 좀 더 나을 듯싶네요.”
“그렇지?”
슬쩍 웃어 보이던 소네스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갔다. 계획에 맞춰서 하려면 한시가 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와 마찬가지로 우현 또한 서둘러 밖으로 나가 지금껏 만들어둔 30봉짜리 천 개를 마차에 싣고 영주관으로 향했다. 다짜고짜 커피를 싸 들고 찾아온 것에 바딘 백작은 당혹해했지만 곧 이어진 그의 말에 흔쾌히 수락했다.
세부 계획에 대해 더 논의를 한 후, 우현은 마차를 타고 상단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커피 판매는 완판하고 만다. 영업맨의 자존심을 걸고 말이야.”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 또 다짐을 해 간다.
두 달 후, 알카인 왕국의 상계는 한바탕 몸살을 앓고 있었다.
왕실을 시작으로 대다수의 귀족들이 커피를 구매하고 싶다고 난리를 쳐 댔기 때문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상인들은 난생처음 들어본 커피라는 물품에 당혹해하면서도 그것을 구할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어렵게 커피를 왕에게 진상한 사람이 바딘 백작이라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하임이트 영지에 가보지만 상단이 보름 후에나 판매를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돌아서는 상인들에게 바딘 백작은 이런 말을 하였다.
“참! 자네 말고도 지금까지 온 상인은 대충 백 명 정도 될 걸세. 근데 그들 대부분 돌아가지 않고 이 근처에서 기다린다고 들었네.”
별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이건만 정작 상인은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백 명 이상이 이곳을 방문했고, 근처에서 기다린다? 상인으로서 이 말을 듣고 그 누가 가려고 하겠는가? 거기다 한 잔의 커피를 통해 맛까지 본 상태인지라 더욱 그랬다.
영주관을 나서기 무섭게 근처 여관에 둥지를 틀어보려 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다.
백작의 말대로 여관이란 여관은 모두 상인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커피에 대한 구매 욕구는 더욱더 커져만 갔다. 이런 것을 보며 슬쩍 미소 짓는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바딘 백작이었다. 우현이 원하는 대로 커피에 대한 구매 욕구를 올림과 동시에 상인들은 발길을 영지에 묶어둬 영지 경제를 단숨에 끌어올렸던 것이다. 한 마디로, 일타이피, 도랑 치고 가재 잡았던 것이다. 이렇게 우현과 바딘 백작 둘 다 윈윈 전략을 구사하는 동안 어느새 시간은 화이트 그리핀 상단 오픈 날짜가 코앞까지 와 있었다.
“귀족들 사이에서 커피 구매율이 더 높아졌다지?”
“말도 마! 마누라 없이 살아도 커피 없이는 못 산다고 난리들이야.”
이른 아침, 영주관 앞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벌써 보름 동안이나 밤낮으로 입에 커피 이야기를 달고 있건만 질리지 않은지 상인들은 계속해서 얘기하고 있다. 언제나 정문이 열릴까?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영지 병사들에 의해 천천히 열렸다. 틈이 벌어지기 무섭게 우르르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그들을 맞이한 것은 정체 모를 다섯 여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하임이트 영주관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배꼽 위에 얹은 채 허리를 숙이는 그녀들은 머리는 가지런히 뒤로 넘겨 틀어 올리고, 상의는 빨간색, 하의는 흰색으로 깔끔하게 입고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연신 허리를 숙였다. 마치 기계를 보는 듯한 몸, 한목소리로 행동하는 그녀들을 보며 상인들은 얼떨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