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2
차원상인 002화
뒤따라 뛰어올까 봐 걱정 붙들어 매라고 외친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가는 그를 보며 할머니는 또 한 번 웃으신다.
“복 받을 거여! 아암, 하늘이 복을 가져다주고말고…….”
주문처럼 이 말만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하아! 하아! 다 왔다!”
언덕에 올라선 우현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그리 높진 않건만 손수레를 끌고 와서 그런지 제법 힘이 든다.
순간 6월 초여름의 바람이 살랑살랑 대며 몸을 훑고 간다.
“시~원하다!”
어느새 눈까지 감은 그는 그 시원한 기운을 맘껏 즐겼다. 열기도 식혔다 싶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담배 한 대는 그 어떤 것보다 달디달다.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는데…….
어라리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집에 놔두고 온 듯싶다.
“아쉽네!”
막 입에서 담배를 떼려는데 이때 웬 손 하나가 불쑥 코앞에 디밀어진다.
“라이터 찾아?”
언제 왔는지 할머니가 라이터 하나를 꺼내 들고 있다.
“아…… 예!”
“그럼, 이거 써!”
건네받은 것을 켜려던 우현은 기묘한 눈빛을 자아냈다.
그럴 것이 라이터 중간에 모래시계 같은 것이 박혀 있고 그 주위엔 이상한 문양과 글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라이터네.’
갸웃대며 막 담배에 갖다 대던 그는 화들짝 놀랐다.
“맞다, 출근!”
손수레 끄느라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시간을 보니 벌써 8시 5분 전.
‘죽었다!’
물고 있던 담배를 넣은 우현은 고개를 넙죽 숙였다.
“할머니, 출근 시간이 늦어서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어서 가봐!”
“예!”
“조심혀서 가!”
“걱정 마세요, 할머니!”
밝게 웃어 보인 그는 내리막길을 사정없이 뛰어 내려간다.
입안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미친 듯이 달려 집 앞에 세워둔 애마인 프라이드로 갔다.
“죽겠네!”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던 그는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키를 꽂고 시동을 걸어 보지만 도통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재차 걸어보지만 요지부동이다.
“다음 달에 월급 타면 할부라도 해서 꼭 새 차 사고 만다.”
명색이 영업맨인데 차 하나 없는 게 그래서 산 것인데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중고차 시장에서 구매할 때부터 워낙 연식이 오래된 거긴 하지만 툭하면 시동이 꺼지는 등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차로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긴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그러기는 힘든지라 그저 이 말만 3년째 되풀이하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나?”
이맛살을 좁히던 그는 차에 내려서 좌측 앞바퀴를 힘껏 찼다.
그걸로 부족한지 두어 대 더 때리자 돌연 시동이 걸린다.
부릉! 부르릉!
“하여튼 한국 제품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니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아는 불변의 진리(?)를 되뇌며 차에 올라타 출발시켰다.
다행히 오늘따라 차가 적고, 직진 신호등만 연달아 켜져 잘만 하면 지각은 안 할 듯도 싶다.
정신없이 차를 몰아 회사에 당도했더니만 이번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란다.
고치려면 적어도 삼십 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럴 여유 따윈 전혀 없는 우현은 계단으로 가 한 번에 두 계단씩 껑충껑충 올라간다. 그것도 사무실이 있는 8층까지 말이다.
“하아! 하아! 미치겠네!”
온몸에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린다. 아까 손수레를 밀며 뛴 것이 있어서 그런지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당장에라도 세우고 싶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과장이 제일 중요시 보는 건 다름 아닌 출퇴근 시간. 특히나 출근의 경우 늦으면 백 퍼센트 잔소리와 함께 벌금을 먹는다. 잔소리는 몰라도 돈을 내는 건 빡빡한 살림에 적잖은 부담이 가는 지라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온 힘을 다해 올라갔다. 힘겹게 8층에 올라선 그는 사무실 앞에 잠시 멈춰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 우현 씨 왔어?”
마침 영업 4팀 이 대리가 커피를 들고 담배 피우러 복도로 나오다 우현을 보곤 인사를 건넨다.
땀을 뚝뚝 흘리는 얼굴을 쳐든 우현은 그의 인사에 답을 하였다.
“아, 안녕하세요?”
“뭔 땀을 그리 흘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아! 맞다. 그랬었지.”
그제야 생각난 듯 끄덕이던 이 대리는 커피 자판기로 가 물었다.
“커피 한 잔 마실래?”
“조금 있다가요. 아직…… 출근 카드 안 찍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서둘러야 하는 것 아니야? 아까 보니까 오 분도 채 안 남았던데…….”
“5분도 안 남았다고요?”
“응!”
그의 고갯짓에 멈추었던 발걸음을 옮긴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출근 카드를 뽑아 찍는다.
차르르! 딸칵! 8시 58분!
딱 지각 2분 전이다.
“휴우! 지각은 면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시 벽에 기댄다.
너무 지쳐서 그런가? 등에 벽을 붙인 것만으로도 절로 눈이 감긴다.
물먹은 솜이불처럼 축 늘어져 가던 그의 몸을 툭 건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일찍일찍 좀 다녀!”
화들짝 놀라 눈을 뜨니 자신을 쏘아보는 뿔테 안경을 쓴 중년 사내가 보인다.
‘난 간부다!’라는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사람이 바로 아까 우현이 말한 과장이다.
“조, 조심하겠습니다. 과장님!”
숙여지는 고개 사이로 슬쩍 눈치를 살핀다.
한 차례 고개를 내젓던 과장은 뒷짐을 지고 지나쳐 간다.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는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가 털썩 앉았다.
오늘따라 꽉 죄는 듯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던 그때 김 팀장이 뭔가를 들고 왔다.
“자아, 전달 사항 있으니까 모두 자리에 앉아 주세요!”
말을 들은 사람들이 주섬주섬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자신의 위치를 찾자 김 팀장은 멈추었던 말을 이어나갔다.
“며칠 전에 말했듯이 새 상품이 나왔습니다. 기한은 요번 달 말까지이고, 물품은 주청물산의 주방 칼 세트인데 중소기업진흥청에서 인증을 하고, KS 인증 마크도 있으니 영업할 때 참조하세요. 더 자세한 제원은 지금 미스 김이 나눠주는 프린트 물에 있으니 살펴보도록 하세요.”
미스 김이 다가와 프린트를 나눠준다.
받은 것을 막 살피려는데 김 팀장이 재차 말을 하였다.
“참! 이번 상품은 한 사람당 오십 세트 한정이고, 다 팔 경우 보너스가 추가 지급될 예정이라고 하니 대충 할 생각 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 영업에 임해 주길 바랍니다. 이상 전달 사항 끝이니 이후는 각자 스케줄대로 진행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서로들 고개를 숙이곤 자리에서 벗어났다.
프린트 물을 가방에 넣은 우현은 지원팀 대리 홍미연에게 갔다.
“홍 대리님! 혹시 주방용 칼 세트 남은 거 있어요?”
“더 가져가시게요?”
“달랑 하나 갖고 다니는 것보단 두 개가 나을 듯싶어서요.”
“하긴 모양새가 그게 더 낫겠네요.”
막 홍미연이 일어서려는데 우현이 재차 말을 건넸다.
“참! 혹시 A4 용지 다섯 묶음 있으면…… 그것도 가져다주실래요?”
“후훗! 이번에도 친구 아버님 부탁이세요?”
“예…… 죄송하지만 그렇게 됐네요.”
“후훗!”
뒷머리를 긁적대는 그가 우스운지 조소하던 홍미연은 알았다며 뒤편 창고로 향했다.
잠시 후, 안에서 칼 세트 하나와 A4 용지 묶음을 들고 나와서는 앞에 놓고 수령증 하나를 뽑아서 같이 내밀었다.
“여기 수령증 사인하시고요. A4 용지 값은 요번 주말까지 입금되어야 하는 거 아시죠?”
“물론이죠.”
A4 용지와 주방용 칼 세트를 들고 자리에 와서는 책상 밑에서 가방 하나를 꺼냈다. 군대 더플백처럼 커다란 그 가방은 영업맨 특성상 들고 다니는 물건이 많은 것을 고려해 짊어지고 다니기 편하게 따로 구입한 것이었다. A4 용지를 가방에 넣고 지퍼를 잠근 그는 컵을 들고 정수기로 가 시원한 냉수 한 잔을 들이켰다.
“거참! 시원하다!”
만족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에게 김 팀장이 다가왔다.
“우현 씨! 오늘 계약한다며?”
“예, 예전에 거래하던 곳에서 성화실업의 가방이 좋다면서 추가 거래를 요청해 왔습니다. 물량은 대충 종류별로 삼십 개, 약 백오십 개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언제 만나기로 했지?”
“열한 시에 보기로 하였습니다.”
“열한 시라……. 그럼, 어서 나가 봐! 좀 넉넉하게 가는 게 좋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김 팀장은 우현의 등짝을 후려쳤다.
“오늘도 수고하고, 조만간 술 한잔 하지. 저번에 못한 회식도 겸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애처럼 승리의 브이를 그리며 미소 짓던 김 팀장은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던 우현은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어깨에 멨다.
“제……법 무거운데…….”
등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칼 세트 두 개와 서류 가방까지 양손에 쥔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오늘도 힘내!”
주위 사람들의 파이팅과 함께 우현은 사무실을 나섰다. 마침 수리가 끝났는지 운행 중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가서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까 시간이 없어서 못 피운 것을 차에 타기 전 한 대 피울 요량으로 말이다. 유리문을 몸으로 밀고 나가며 힘겹게 라이터를 켜던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뭐, 뭐야?”
어느새 물고 있던 담배까지 떨어트린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분명 도로와 함께 횡단보도, 그리고 수많은 차들이 오고 가야 하건만 지금 시야에 들어오는 건 마른 대지 위에 잡풀들만 자리한 황무지였기 때문이었다.
잘못 봤나 싶어 눈을 깜박여보고, 뒤도 돌아보지만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이건 꼭 사막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듯한 기분이다.
기막혀하던 그때 돌연 손바닥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아악!”
비명과 함께 양손에 쥔 것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어지러이 널린 물건들을 보며 찡그리던 우현은 조금 전 담배를 피우려고 켰던 라이터가 떠올랐다.
“치잇! 라이터를 너무 오래 켜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네.”
일순 치미는 짜증에 그만 눈살을 찡그리고 만다.
통증이 가시지 않은 손을 매만지던 그의 두 눈이 이내 휘둥그레졌다.
“이건 또 뭐야?”
손바닥 한가운데에 새겨진 모래시계 주위로 가득한 기이한 문양과 글들. 문신처럼 새겨진 그것에 그는 어쩔 줄 몰랐다. 그때였다.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점차 색이 바랜다 싶더니 사라져 간다. 마치 피부에 스며들듯 말이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손바닥을 살피던 그는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아까 그거…… 혹시 라이터에 새겨져 있던 거 아니야?”
떨어진 라이터를 집어 살피니 할머니께 건네받을 때 봤던 기이한 문양과 글이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 손바닥에서 봤던 것이 라이터에 있었던 것인가 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