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20
차원상인 020화
손님은 왕이다. 무슨 왕? 호갱왕!
매번 외치는 그 구호에 대체 호갱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었다.
그러자 우현은 빙그레 웃으며 다음과 같이 답을 해주었다.
“호갱이란 말은 어수룩하고 이용하기 좋은 손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흔히들 손님을 왕이라고 하며 떠받드는데 그건 매우 안 좋은 생각입니다. 왜냐면 무조건 떠받들어 주다 보면 일하는 점원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것이 거듭되면 결국 손님을 대할 때 불친절하게 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손님을 호갱이라고 가정할 경우 점원들의 인식이 달라집니다. 아주 적극적이 됩니다. 쉽게 말해 ‘그래, 어디 한번 부려봐라! 내 널 꼭 꼬드겨서 우리 물건 많이 사게 만들어 품 안의 돈주머니를 털털 털어주마!’라는 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손님들의 극악한 횡포에도 점원들은 심리적 동요 없이 더 잘하게 됩니다. 또한 판매율도 올리고 말입니다.”
인식의 차이!
이 한마디가 바딘 백작의 맘을 흔들어 놓았다.
설마하니 진짜로 그러겠냐며 넘기고 싶어도 별것 아닌 듯싶던 그것이 구석에 짱 박혀 놀고 있는 점원을 뛰게 만들고, 파리를 날리는 가게를 손님으로 가득 차게 만들고, 판매도 급등해 같은 시기에 비해 두 배의 이익을 얻었으니 안 믿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바딘 백작 또한 우현이 말한 ‘인식의 차이’란 것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고 훗날, 상인이라면 그 누구나 알아야 할 것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회상에 잠겨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펨 총관이 판매 상황을 알려온다.
“백작님, 종이 십만 장과 30봉짜리 커피 500세트가 모두 팔렸습니다.”
“수고 많았네.”
“근데…… 백작님!”
“뭐 할 말 있는가?”
“오늘 한 기획 행사 말입니다.”
“투 플러스 원 말인가? 아님, 커피 잔 증정 행사 말인가?”
상술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개의 기획 행사는 저번에 처음 선을 보였는데 최단 시간에, 최대 판매고를 기록해 왕국 내 상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의 감동이 떠오르는지 바딘 백작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걸 보는 펨 총관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덧씌워진다. 그 역시 그때 느낀 희열은 바딘 백작 못지않았기 때문이었다.
“커피 잔 증정 행사 말입니다. 언제 또 하냐고 문의가 계속 들어와서 말입니다.”
“하긴 커피 잔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씨익 웃는 얼굴 밑으로 양손에 들린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기의 새하얀 속살 같은 빛깔을 가진 둥그런 받침 위에 놓인 손잡이와 테두리에 금칠이 더해진 자그마한 잔 하나. 앙증맞다 못해 귀엽기까지 한 그 잔에 타 먹는 커피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거기다 은근히 품격마저 느껴지는 것이 귀족 중에서도 최상류층이나 쓸 수 있다는 우현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보라는 듯 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켜던 그는 시선을 돌려 펨 총관을 보았다.
“캐슬의 말로는 조만간 한 번 더 있을 것이라고 하니 그때 와서 구입하라 이르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던 펨 총관을 뒤로한 채 창 너머 바깥의 거래 상황을 지켜보던 바딘 백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휴지와 빨랫비누, 세숫비누가 나가질 않는군.”
“물품 특성상 입소문을 좀 타야 할 듯싶습니다.”
“조금 그렇긴 하지.”
바딘 역시 얼마 전 비누 견본품을 받았을 때 시큰둥하였다.
굳이 씻기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자기 전 손을 닦을 때 보인 검은 땟국물과 세안 후의 개운함과 상쾌함은 더는 그런 생각을 못하게 하였다. 그 뒤론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비누로 씻었다. 그뿐만 아니라 빨랫비누로 빤 새 옷같이 새하얀 옷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기분마저 좋아진다. 이는 휴지 또한 상황이 비슷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휴지와 빨랫비누, 세숫비누 판매는 조금 시일이 걸려도 커피 못지않은 유행 상품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참! 캐슬에게 대금은 보냈나?”
“좀 전 주문서와 같이 보냈습니다. 물량은 휴지와 빨랫비누, 세숫비누를 제외하고는 모두 두 배로 신청했습니다. 특히 커피는 4배로 신청했습니다.”
“그거 아주 잘했네. 앞으로도 차츰 물량을 늘리고 일정 부분을 떼어 창고에 보관토록 하게. 다른 세 품목도 상황 봐서 그리하고 말이야.”
“몰래 물품들을 비축해두라는 말씀이십니까?”
“벌써 반년이 지났네. 이제 1년 반쯤이 지나면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야. 그리되면 타국 상인들의 발길이 못해도 10개월은 뜸해질 것이고, 간신히 정상화에 접어들던 아국의 재정은 또다시 악화일로에 빠질 것이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미리 어느 정도 물량을 확보해 두는 것이 나을 것이네.”
“알겠습니다. 명하신 대로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조아리던 펨 총관이 커피를 마시는 바딘 백작에게 재차 말을 건넨다.
“저어, 백작님!”
“왜 그런가?”
“요즘 들어 화이트 그리핀 상단을 두고 살피는 자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종이 제조 기법이나 물품 판매권 때문에 그런 건가?”
“아무래도 그런 듯싶습니다만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이 지금이야 단순히 접촉만 하고 있지만 조만간 귀족이란 신분을 내세워 강짜를 부리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간 레조스 왕에게 귀족이 아닌 우현이 이런 물품을 파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이가 많아졌다. 특히 승상인 조바오니 공작은 바딘에게 가지고 있는 종이 판매 독점권을 왕실에 넘겨야 할 것이며, 물품을 파는 이를 왕국에 복속시켜 나라의 재정을 충당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 판매 독점권과 우현을 손에 넣어 자신의 뱃속을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 위함일 것이다. 다행히 국왕인 레조스 왕이 바딘 백작의 청에 따라 타국 사람으로 왕국에 상행을 위해 온 것이라며 틀어막고는 있지만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 거기다 2년간의 왕국 내 독점권을 부여해준 종이와는 달리, 커피, 휴지, 비누는 판매권만 준 상태.
이 말은 언제든지 우현 스스로 판매자로 나설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물론 판매자로 나설 경우 각 품목별 총 물량의 20%를 우선적으로 왕국에 주기로 약조를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얻는 수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익을 생각해 강제로 독점권을 달라 하기도 그랬다. 자칫 우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타국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황금알을 더 얻고자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둔한 짓거리를 하는 거나 다름없다. 여러모로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연신 누르던 바딘 백작이 물었다.
“캐슬에게선 별다른 소리 없는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그럼, 상단 주위에 병사들을 배치해 낯선 이들이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정도로 해두게. 지금으로서는 우리도 섣불리 나서기는 좀 그러니 말이야.”
“그리 조치토록 하겠습니다.”
막 물러서려는 펨 총관에게 바딘 백작이 발목을 잡는다.
“참! 알아보라는 것은 어찌 되었나?”
“페릴 형제 말입니까?”
“그래, 그들 말이야.”
“7년 전, 두 형제가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과 마탑에 들어가서 2년 전 그만둘 때까지의 행적을 빼고는 아직 알아낸 것은 없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바딘 백작의 이맛살이 사정없이 좁혀든다.
“릭 캐슬은?”
“그쪽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다만 릭 캐슬이란 이름에서 유추해보건대 세실리안가의 마지막 후손인 릭 캐슬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할 뿐입니다.”
‘세실리안가라…….’
세실리안가.
알카인 왕실의 방계 중 하나로, 초대 왕인 알바세네스 티안 메레이의 딸 하이엔의 남편 릭 오드리안의 가문이 바로 세실리안가다. 그 당시에는 왕국 내 권력의 정점에 있던 가문이기도 했으나 3대째에서 돌연 반역죄로 몰락하고 만다. 그 후, 6대 왕인 제프리코 조인 타소네 왕에 의해 역모죄를 벗고 다시 가문이 백작가로 복속됐지만 가세를 세우기엔 이미 힘든 상황이었다.
‘몰락한 귀족 가문의 마지막 후손과 정체 모를 두 형제라……. 왠지 좀 꺼림칙하군.’
턱에 손을 괸 바딘 백작의 눈살이 조금씩 찌푸려진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그는 슬쩍 시선을 들어 펨 총관을 보았다.
“그 형제와 릭 캐슬과의 접점은 무엇인가?”
“정확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정황상 쎄아프 왕국에서 이곳으로 오던 중에 만난 것으로 짐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말은 본 공작을 만나러 오기 얼마 전이라는 말이군.”
“확실치 않고 그저 추정일 뿐입니다.”
“그럼, 코리아라는 왕국에 대해선 알아봤는가?”
“주위 왕국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물어보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그런 왕국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모른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온통 물음표에 추정뿐인 것에 바딘 백작은 그저 한숨만 내쉰다.
“알겠네. 좀 더 알아보고 나중에 말해주게.”
한 차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선다.
홀로 남은 바딘 백작은 창가로 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캐슬이 우리 왕국 귀족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꼬…….”
그렇지 않아도 레조스 왕이 우현을 꼬드겨 왕국 귀족으로 받아들이자 하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또 일각에선 그를 자신의 세력에 넣기 위해 치열한 암투가 벌어질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좁혀진 이맛살을 펼 생각도 못한 채 그저 남은 커피를 마시며 시름을 달랬다.
“스마~일!”
“스마일!”
“와이키~키!”
“와이키키!”
자신을 따라 하는 이십여 명의 남녀를 보며 우현은 두 검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입꼬리를 올리고! 다시 한 번 김~치!”
“김치!”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느라 표정들이 웃기게 됐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 모습이 오히려 맘에 드는 듯 우현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하였다.
“첫날 첫 수업인데 모두들 열의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이 낯설어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일까?
모두들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한다.
재차 미소를 짓던 우현이 말을 건넸다.
“아마 다들 궁금하실 겁니다. 물건 하나 파는데 번거롭게 웃는 교육을 받고, 배꼽 인사를 하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한 번 미소 짓고, 안 짓고가 얼마나 큰 차이점을 낳는지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자아! 그럼, 마지막 구호와 함께 교육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오른손을 치켜든다.
“손님은 왕이다!”
“무슨 왕?”
“호갱왕!”
마지막 박수 치는 것으로 교육을 마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우현 역시 단상에서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레이젠과 티아 곁으로 갔다.
“모두들 열심히 하는군!”
우현은 티아에게 천을 건네받아 잠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