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22
차원상인 022화
“예, 그럴게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우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이 주판은 앞으로 잘 쓰도록 할게.”
“예! 나중에 뵙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우현은 금괴를 가방에 넣고 어깨에 걸었다.
“그나저나 한 번 거래에 1억이라…… 고생한 보람이 있는걸.”
사흘간 고생했던 것이 한 방에 날아가 버린다.
피식피식 웃던 그때 돌연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깃들었다.
“어차피 퇴사도 했겠다, 아주 그냥 이곳에 백화점 하나 낼까? 딱 봐도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일전에 이곳에서 아주 터를 잡고 사는 건 어떨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허나, 자기 좋다고 동생들의 인생까지 포기하라 할 순 없다 여겨 그만뒀다.
서우 아버지와 했던 약속도 있었고 말이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그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팔자대로 살자. 팔자대로…….”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가죽 주머니를 가방에 넣고 방문을 나섰다.
벽에 걸린 등불 사이를 걸어가다 정문을 나선 그는 저택 왼편을 끼고 돌았다.
그러자 시커먼 창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른바 우현 전용 창고로 철로 만들어진 데다가 다른 사람은 들여다보지 못하게 창도 없어 안을 내다보기 어려워 차원을 넘나들 때 사용하는 곳이다. 막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마법진이 발동하여 안이 환해진다.
“매번 보지만 적응이 안 된다니까…….”
센서 달린 등이라고 속으로 되뇌어 보지만 여전히 적응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텅 빈 손수레들을 잡고, 라이터를 켜자 한순간 시야가 흐려진다 싶더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동시에 어두컴컴한 철공장이 아닌, 낯익은 공사장 풍경이 자신을 맞이하였다. 슬쩍 주위를 살펴 누가 없나 확인하고는 손수레들을 끌고 한 귀퉁이로 갔다.
세워둔 손수레들 위에 천막을 덮어씌워 감춘 그는 슬며시 매만졌다.
“너희를 쓰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구나!”
그랬다. 묘하게도 부진을 겪던 커피 판매가 호전됨과 동시에 금괴 판매 역시 잘되었고 번 돈을 모아 양재동 부근의 창고를 매입하였다. 물론 워낙 가격이 싸게 나온 것이기도 하고, 차원을 넘나들어야 하는 특성상 남의 눈에 띌 위험이 컸던 것도 한몫했다.
더불어 창고를 매입하면서 컨테이너 박스도 같이 샀다.
늘어만 가는 물량을 감당하기엔 손수레만으로는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름 같이 고생을 해서인가? 정이 들어서 그런지 쉬이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중에 용달차 불러서 싣고 창고로 가져가자.”
가져가기로 해서 그런가? 돌아서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금은방에 가기 위해 세워둔 차를 향해 걸어가 막 차 문을 열려는데 돌연 벨 소리가 들려온다.
뭔가 싶어 살피니 차량 충전기에 꽂힌 휴대폰이 옆 좌석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대륙으로 가기 전, 배터리가 없어 꽂아 놓고는 그냥 몸만 나온 모양이다.
서둘러 액정을 보니 낯선 번호 하나가 적혀 있다.
“처음 보는 건데…….”
갸웃대던 그는 울어대는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지 않기에 도망쳤나 걱정했더니만 전화를 받는군, 그래!”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이 목소리. 바로 헤리엇 론 대부업체 담당자이다.
분명 출발하기 전에 통화를 했건만 그새 얼마나 됐다고 또 전화를 했다.
저절로 찌푸려지는 눈살과 함께 조금은 짜증 섞인 말투가 흘러나온다.
“무슨 일입니까?”
“이제 빚 변제 기간은 한 달 조금 안 남았다는 걸 알려주려고 전화했어.”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잘 압니다. 그리고 조만간 찾아갈 테니 이제 이런 쓰잘머리 없는 전화는 그만하십시오.”
우현은 자신의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냥 무시해버렸다.
어차피 어떤 말을 할지 뻔히 아는데 굳이 들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도 그리 생각했는데 두어 번 전화를 해대다 더는 걸어오지 않는다.
“무슨 카운트다운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전화해서 난리야.”
짜증을 토해내던 우현은 차 시동을 걸고 서우네 금은방이 있는 곳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오늘따라 상당히 길이 막히건만 연신 콧노래가 나온다. 오늘 처음 금괴 60개를 돌파한 데다가 서너 번 정도 대륙을 가면 어느 정도는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신이 난 듯하다.
잠시 후, 금은방 앞에 선 그는 차에서 내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버님, 저 왔습니다!”
“우현이 왔느냐?”
문소리를 듣고 나서던 서우 아버지가 환히 웃으며 맞이한다.
“잘 있으셨어요?”
“나야 늘 같지. 별다를 일이 있겠느냐? 참! 오늘도 가져왔느냐?”
끄덕이던 우현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건넨다.
받아 챙기던 서우 아버지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오늘 금괴 사 가는 사람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거래를 했으면 한다 하는데 앞으로 몇 개씩 가져올 셈이냐?”
“아직 금고에 남은 것이 좀 있지 않아요?”
“대충 여덟 개 정도 있긴 한데 일주일에 서너 개씩 거래를 하자고 하니 좀 모자를 듯싶어서 그런다.”
“서너 개나요?”
“그렇단다.”
한 번에 네 개나 판 건만도 놀라운데 계속해서 사 가겠다니…….
이건 하늘의 축복이 내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대보증을 서 그간 맘고생 했을 서우 아버지께 조금은 면목이 서는 것 같다. 이런 속내를 아시는지 빙그레 웃으시며 말을 건네 온다.
“잘될 거라 하지 않았느냐?”
그 말대로라는 듯 주억거린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우현은 아까의 질문에 답했다.
“그럼, 앞으로 여섯 개씩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지속적으로 거래하는 데 별문제는 없을 것 같구나.”
“혹시 모르니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말씀하십시오. 더 가져올 테니 말입니다.”
“그리하마!”
우현은 재차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막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리는데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돌아오는 서우가 보였다.
“우현아, 벌써 들어가게?”
“어, 동생들 올 시간 다 됐거든.”
“그래? 그럼, 이따가 술 한 잔 좀 사주…… 아악! 아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우 아버지가 귀를 잡아끈다.
“망할 놈의 술타령은 그만하고 안에나 들어가 있어라!”
“요즘 통…… 술 구경 못했…… 아아악!”
“술 구경 할래? 아님, 내게 오지게 한번 맞아볼래?”
아버지 손에서 겨우 잡힌 귀를 빼낸 서우가 입을 삐죽인다.
“씨이! 엄마에게 금주 당했다고 아들에게 심통을 부리는 게 어디 있어요?”
“그래도 이놈이?”
눈을 부라리는 모습에 그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실소를 하던 우현은 인사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수신 거부를 한다고? 꼴에 성질은 있나 보군.”
왼쪽 눈썹 위에 상처가 있는 사내, 상치는 나중에 다시 전화하라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씨름선수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엄청난 덩치에다, 또 얼굴은 얼마나 험악한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내들 사이로 의자에 돌돌 묶인 오십 대 사내가 보인다.
제법 험한 꼴을 당했는지 몸 곳곳에서 핏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이봐! 박 사장! 돈 언제 갚을 거야?”
“조, 조금만 시간을…….”
쾅!
탁자에 내리친 각목이 부러져 내린다.
“씨불! 조금만 조금만 한 게 벌써 1년이 넘었어? 대체 언제 갚으려고 그러는 거야?”
“제…… 제발 한 번만 살려 주게!”
“또 그 소리야? 야, 안 되겠다. 그냥 조져라!”
짜증 어린 표정의 사내가 물러서자 뒤에 있던 사내들이 각목을 들고 나선다.
그걸 본 상치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박 사장을 가지고 이들이 씨름을 한 지 벌써 1시간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막 나서려는데 이때 귓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가 있었다.
“썅! 시끄러워서 드라마를 보지 못하겠잖아?”
탁자에 양발을 올린 채 의자에 한껏 기대 앉아 TV를 보는 한 사내.
흰 와이셔츠에 머리를 2대 8로 나눈 비교적 멀쑥한 차림새와는 달리 두 눈동자에선 살기가 돋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주위 사내들이 황급히 허리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형님!”
“씨팔! 업장에서 형님 소리 빼랬지. 그리고 언제까지 그 지랄 떨 거야? 빨랑빨랑 해치우지 못해?”
“아, 알겠습니다.”
허리를 굽히던 사내들의 고개가 일순 의자에 묶여 있는 박 사장에게로 돌아갔다.
매서운 눈초리 속에 살기가 돋는 것이 마치 너 때문이라고 책망하는 듯하다.
“으으……익!”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던 그를 보며 고개를 내젓던 그때 품 안에서 벨이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 들던 상치는 잠시 기다리라 말하고는 2대 8 가르마의 사내 곁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황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쭈글탱이 영감이 이번엔 또 무슨 일이래?”
“사람 하나 작업해 달라고 합니다.”
순간 사내, 백인철의 낯에 짜증이 치민다.
‘망할 놈의 영감탱이! 두어 번 뒤처리 좀 해줬다고 이젠 하인처럼 부리려 들어?’
성질 같아선 확 끊어버리고 싶지만 그가 검찰, 경찰과 맺고 있는 연줄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치미는 욕지거리를 가까스로 목구멍에 구겨 넣으며 물었다.
“보수는?”
“섭섭지 않게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리던 그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상치, 네가 애들 몇 데리고 가서 해결해!”
“알겠습니다.”
이젠 가보라는 듯 손을 휘이휘이 내젓는다.
상치가 밖으로 나가고 다시 TV 시청에 들어간 그 앞으로 명패 하나가 보였다.
헤리엇 론 사장 백인철
제1-9장
“다 실었네.”
“감사합니다. 양 사장님!”
“그 말은 오히려 내가 해야지. 장 사장!”
맞잡은 두 손 위로 중년의 한 사내가 환히 웃는다.
우현은 그런 그가 부담스러운 듯 정색을 한다.
“제가 무슨 사장입니까? 전처럼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무슨 말을 하는가? 이렇듯 번듯하니 창고에 컨테이너 박스까지 갖췄으니 당연히 그리 불러야지. 안 그런가?”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모두 맞는다는 듯 끄덕인다.
“맞습니다. 맞아요!”
“그럼요, 당연히 사장이라고 불러야지요.”
그걸 본 우현은 멋쩍은 듯 그저 뒷머리만 긁적댄다.
이때 양 사장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기왕 하는 것 대박 내서 우리를 종종 불러주게.”
“예, 알겠습니다.”
빙그레 웃던 양 사장은 주위 사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그들이 가는 것을 지켜보던 우현은 몸을 돌렸다. 그러자 문이 활짝 열린 커다란 창고 안에 놓인 컨테이너 박스 세 개가 보인다. 대륙에야 한 개만 들고 가면 되지만 늘어나는 물량을 생각해 넉넉하니 세 개를 사들인 것이다. 물론 팔 물건들 역시 그 속에 이미 꽉꽉 채워놨고 말이다. 절로 뿌듯해져 오는 가슴만큼이나 자꾸 발끝이 들썩거린다. 어서 빨리 컨테이너를 들고 대륙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치밀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