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23
차원상인 023화
애써 마음을 달래던 그때 서우가 누군가를 데리고 곁으로 다가왔다.
“우현아! 인사해! 임동수 씨라고 앞으로 여기서 경비 일을 해줄 분이야.”
마른 몸매이건만 근육 때문인지 옷이 구김 없이 팽팽하게 펴져 있다.
얼핏 보면 운동선수라고 여길 정도로 말이다. 아마도 군대에 오래 있었다고 하더니 그 때문인 듯하다. 서우의 말로는 각종 무술 유단자에 인상도 좋아 면접 보자마자 채용을 하긴 했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건 바로…….
“충성!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칼날 선 눈빛과 전형적인 군대 말투, 거기다 각 잡아 경례를 올려붙이는 것까지.
그렇다. 이 사람의 문제는 아직 군대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할 정도로 말이다. 뭐, 어찌 보면 그게 더 어울리긴 하지만 말이다.
“처음 뵙네요. 장우현이라고 합니다.”
“임동수라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건네는 악수에 임동수는 넙죽 고개를 숙이며 잡는다.
그런 그를 보며 웃던 우현은 서우를 보았다.
“참! 한 분 더 있다고 하지 않았어?”
“박형식이라는 할아버지인데 그분은 내일 출근할 거야. 격일제로 해서 2교대로 돌리기로 했거든.”
그러냐며 끄덕이던 그때 서우가 갑자기 기지개를 켠다.
“끄으응! 이제 할 것 다 했으니…… 들어가서 쉴란다!”
“그렇게 해! 난 잠깐 일 좀 보고 갈 테니까.”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길을 돌린다.
“피곤하긴 한가 보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가는 그에 피식 웃던 우현은 시선을 임동수에게로 돌렸다.
“말한 대로 잠시 일 좀 볼 테니 뭔 일 없나 잘 살펴봐 주십시오.”
“충성! 알겠습니다.”
경례를 올려붙이는 그와 일별한 우현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누가 들어올까 싶어 안에서 자물쇠로 문까지 잠그고는 컨테이너 박스들에 손을 대고는 쥐고 있던 라이터를 켜자, 시야가 흐려져 간다 싶더니 어두컴컴한 철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슬쩍 고개를 들어 마법등을 확인한 우현은 미소를 베어 물었다.
“도착했군.”
컨테이너 박스도 잘 도착했는지 확인한 그가 막 문을 향해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 현기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한순간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어 간다.
“어라?”
휘청대던 그는 재빨리 컨테이너 박스를 잡았다.
박스를 버팀목 삼아 힘겹게 서 있길 십 분쯤 되었을까?
차츰 현기증이 가시면서 시야 역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무의식중에 이마를 훔친 손바닥에 흥건한 식은땀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다. 비워지다 못해 아주 바닥을 드러낸 모래시계가 조금 전 상황이 왜 그랬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컨테이너 두 개는 무리였나 보군! 그래도 코피는 안 흘린 게 다행…….”
뚝! 뚜뚝!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닥에 붉은 핏물이 떨어져 내린다.
허겁지겁 품에서 휴지를 꺼내 콧구멍에 쑤셔 넣었다.
“어째 뒷덜미가 당긴다 싶더니만…….”
돌아가면 꼭 보약 한 첩 먹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던 그때 철문이 열렸다.
철커덩! 쿵!
“렝이젱…… 형닝?”
코맹맹이 소리에 레이젠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근데 코는 또 왜 그런가? 코피 난 것인가?”
“그게…… 일이 좀 있었습니다.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다며 내젓는 손에 레이젠은 갸웃대던 고개를 멈춘다.
“근데 저건 또 뭔가?”
컨테이너 박스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던 우현은 깜박했다는 듯 말을 하였다.
“아앙! 이건 컹테이너 박승이라고 해성 물품 운방할 때 쓰는 겁니다.”
“물품 운반이라면…… 혹시 자네가 항시 가지고 다니던 손수레 같은 것인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냐며 끄덕이면서도 레이젠은 컨테이너 박스의 크기에 놀랐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던 우현이 왜 창고에 들어왔는지 물었다.
“아! 소네스가 네가 좀 많이 늦은 듯하다고 하기에 한번 들어와 봤네.”
“그런 거였군요.”
이제야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젠은 여전히 컨테이너 박스만 본다.
“그나저나 양이 많은 듯한데 뭘 그리 가져온 건가?”
코피가 멎은 듯싶어 꽂아둔 휴지를 빼내며 답을 하였다.
“킁킁! 모든 품목의 딱 세 배를 가져왔습니다.”
“세 배?”
레이젠은 그 엄청난 양에 혀를 내둘렀다.
“예, 요즘 양이 너무 늘어서 그 정도는 가져와야 할 듯싶었거든요.”
잠시 뒷목을 매만지던 우현이 발걸음을 옮겼다.
“형님! 이럴 게 아니라 양도 많은데 어서 나가 사람들을 부르죠. 옮기는 것만도 제법 시간이 들 듯싶은데 말이죠.”
“그리하세나.”
둘이 창고 문을 열고 막 밖으로 나서려는데 필리온과 티아가 사람들과 함께 뛰어온다.
“대장님! 어서 총관실에 가보셔야 할 듯싶습니다.”
“무슨 일이지?”
“아까 상단에 알카인 왕국 귀족 하나가 왔었잖아요.”
“거, 남작인가 하는 놈 말이냐?”
레이젠이 기억난다는 듯 반문을 한다.
이에 티아는 맞는다는 듯 끄덕였다.
“예! 근데 그자가 지금 귀족 모욕죄를 들어 소네스 님을 처벌하겠다고 난리를 피워대고 있습니다.”
‘결국 사고가 터지는군!’
요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더니만 이내 사달이 일고 만다.
거기다 귀족 모욕죄라면 흔히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악법 중에 악법.
한마디로 제대로 맘먹고 시비를 걸러 왔다는 말이 된다. 이맛살을 한껏 좁히던 우현은 슬쩍 레이젠을 보았다.
“형님! 이럴 게 아니라 일단 가보도록 하죠!”
동감이라는 듯 끄덕대던 레이젠은 창고 밖으로 나섰다.
근처 사람들에게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는 물건을 옮기라 명하고는 서둘러 저택으로 향했다. 벌써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지 저택 앞이 시끌벅적하다. 그런 그들을 비집고 저택으로 들어간 레이젠이 총관실로 가 문고리를 잡는데 거친 일갈이 너머에서 터져 나온다.
“네 이놈! 진정 죽고 싶은 것이냐?”
“죽는다는 말을 왜 안 하나 했다. 하여튼 귀족들은 다 말로 안 된다 싶으면 칼을 들이민다니까!”
“뭐, 뭣이 어쩌고 어째? 이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뭐 하느냐? 저놈을 당장 죽이지 않고!”
“알겠습니다!”
죽이라고 서릿발 가득한 외침을 날리는 귀족도 문제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말로 응대하는 소네스가 더 큰 문제인 듯싶다. 허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닌지라 일단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쾅!
“당장 멈추지 못할까!”
귀청을 울리는 그 소리에 검을 치켜든 채 소네스에게 다가서던 사내들이 멈춰 섰다.
“형님!”
“괜찮으냐?”
“다친 곳 하나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럼, 됐다!”
레이젠의 등장에 기가 산 소네스는 쌍심지를 켜고 탁자 건너 녹빛 머리를 쏘아본다.
갑작스러운 난입으로 인해 자신의 일이 엉망이 되어서일까?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하는가 싶더니 이내 거친 일갈을 날린다.
“감히 본인의 일을 방해하다니…… 뭐 하느냐? 지금 들어온 놈까지 모조리 다 없애 버려라!”
“알겠습니다!”
주억대던 사내들은 치켜든 칼끝을 레이젠에게로 돌렸다.
동생을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심기가 불편한데 이젠 자신까지 없애려는 모습에 진한 살기를 뿜어낸다. 순간 방 안에 차가운 냉기가 휘몰아치고 그 위로 뽑혀지는 레이젠의 검에 마나가 깃들기 시작한다. 살기와 마나가 뒤범벅이 되어 주위 공기가 점차 팽배해져 가던 그때 우현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금 대체 뭣들 하는 짓입니까?”
또다시 제지를 당하자 녹빛 머리 사내, 몰핀 남작은 버럭 소릴 질렀다.
“네놈은 또 뭔데 끼어드는 것이냐?”
“제가 여기 상단주입니다만…….”
상단주라는 말에 헛웃음이 피어오른다.
“총관이란 작자가 위아래도 몰라보고 설친다 싶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구만!”
“제 사람 관리하는 거야 제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쪽이 관여할 바는 아닌 듯싶습니다. 거기다 상단의 총관실에서 검 들고 설친 것은 그쪽입니다. 누가 봐도 우리 문제는 아닌 듯싶은데 아니 그렇습니까?”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던 우현은 그대로 쏘아붙인다.
가시 돋친 그 말에 몰핀 남작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낯을 일그러트렸다.
“그, 그쪽? 네…… 이놈! 하찮은 상인 주제에 감히 본인을 두고 그쪽? 말이면 다인 줄 아느냐?”
시뻘게진 두 눈을 부라리며 바드득 이를 갈아댄다.
허나, 우현은 별 감흥 없는 듯 그저 소네스만 바라본다.
“소네스 형님!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까?”
잠시 몰핀 남작을 쏘아보던 소네스가 답했다.
“종이 판매권과 제조 기법을 넘기란다. 그것도 금화 한 닢에 말이야.”
“그 모든 것을 금화 한 닢에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뒤에 선 티아에게 커피를 부탁하던 우현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나, 몰핀 백작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말을 건네 온다.
“흥! 우리 손을 잡는 순간 보르네오 자작가를 통해 왕국은 물론이고, 온 대륙을 누비는 거대 상단이 될 테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뭘 더 바란단 말이더냐?”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 저희 상단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것이로군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비루한 삼류 상단에 이 몸이 굳이 올 필요가 있겠느냐?”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듯 연신 얼굴을 찌푸린다.
선심 쓰는 듯한 그의 발언에도 우현은 어이없어 하다 이내 빙그레 웃었다.
“그러게 귀찮게 이곳까지 왜 오셨습니까? 굳이 올 필요도 없었던 듯싶은데 말입니다.”
눈살을 꿈틀대던 몰핀 남작이 되물었다.
“지금 한 말…… 내 제안 따윈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보이는데 맞느냐?”
우현은 슬쩍 입꼬리를 밀어 올린다.
“이렇듯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거추장스럽게 남의 날개 따윌 달 필요가 있겠습니까? 굳이 그리하지 않아도 저희 스스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듯싶은데 말입니다. 거기다 남작님의 능력이 그리 썩 좋아 보이지도 않고 말입니다.”
“바드득! 이놈…… 감히 일개 상인 주제에 알카인 왕국 보르네오 자작가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살기 충만한 그의 눈빛을 우현은 피하지도 않은 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바딘 백작의 제안도 거절한 접니다. 하물며 인맥으로나 권력으로나 자작가가 백작가에 비할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조롱하는 듯 웃는 그에 몰핀 남작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백작님이 좀 귀여워해준다고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구나! 뭐 하느냐? 세 치 혀를 놀리는 저 몹쓸 놈을 잡아들이지 않고!”
그의 호통을 기다렸다는 듯 같이 온 기사 넷이 칼을 뽑아 든다.
눈앞에 서늘한 한기가 내비치는데도 우현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어댄다.
“칼을 휘두르기 전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 옆에 있는 사람들……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출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