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24
차원상인 024화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은연중에 나서려던 기사들은 마나를 피워 올리는 레이젠과 필리온, 티아 등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하니 일인군단이라 불리는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살짝 겁만 좀 주면 넘어올 거라 생각했던 몰핀 남작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웠다.
“이…… 이놈! 협박하는 것이냐?”
“이 정도로 협박이라니…… 무슨 섭섭할 말씀을 하십니까?”
냉기 어린 미소를 피워 올리던 우현이 소네스를 보았다.
“소네스 형님! 지금 이 시간부로 상단에 있는 모든 작업을 중단시키시고 물품을 모두 불태우라 하십시오.”
“캐…… 캐슬!”
“장사 못하게 한다는데 굳이 여기에 남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 참! 그리고 바딘 백작님께 이 한마디 전해주십시오. 알카인 왕국의 그 이름 높으신 몰핀 남작 때문에 이곳을 떠난다고 말입니다.”
몰핀 남작의 낯은 창백하다 못해 사색이 되어버린다.
파리해진 그의 얼굴을 본 우현은 피식 웃었다.
“사실 남작님이 이리 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요즘 종이가 워낙 잘 나가 단가를 좀 더 올릴 걸 하는 후회를 했거든요. 나중에 타국에 자리를 잡고 다시 종이를 팔 땐 필히 알카인 왕국만은 두 배의 값으로 팔겠습니다. 이번처럼 후회는 남기지 않도록 말입니다.”
낯빛이 일그러지다 못해 완전히 구겨졌다. 만약 그의 말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왕국 내 모든 이들의 불만이 자신에게 쏟아질 것이고, 그로 인해 가문은 둘째 치고 목숨도 부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네…… 이놈!”
부르르 몸을 떨어대던 그는 이내 몸을 돌려 나간다.
더 말을 섞어봤자 자신에게 이득 따윈 없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문을 향해 나가는 것을 본 우현이 슬쩍 티아를 보았다.
“형님, 저 사람들 가면 정문에 소금 좀 뿌리십시오.”
“소금은 왜 뿌리라는 건가요?”
“잡귀 왔다 갔으니 다신 못 오게 액막이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순간 몰핀 남작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설마하니 자신을 잡귀 취급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놈…… 이대로 끝날 거라 생각지 마라!”
죽일 듯이 쏘아보던 그는 멈추었던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들까지 모조리 방을 나서자 소네스가 황급히 말을 건네 온다.
“저대로 보내도 되겠어?”
“안 보내면요? 제가 사과라도 해야 합니까?”
“저래도 저놈 아비가 자작이야. 자칫 그가 상단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오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래?”
“지 아들 못났다는 것을 자랑질 하려면 그리하라 하십시오.”
“뭐어?”
소네스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피식 웃던 우현은 다독이듯 말을 하였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저런 놈은 말만 해대고 정작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라는 그의 말에 소네스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순 없으니 말이다.
그저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길 간절히 바라건만 그것도 되지 못할 듯싶다.
“참! 소네스 형님! 지금 즉시 바딘 백작님은 물론이고, 다른 상인들에게 말해주십시오. 외가든, 무엇이든 보르네오 자작가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곳에는 저희 상단의 그 어떤 물품도 팔지 말라고 하십시오. 만약 어길 시에는 그 무엇도 저희 상단에서 얻을 수 없을 테니 그리 알라 하십시오. 아! 혹시나 이유가 뭐냐고 묻거든 몰핀 남작 때문이라고 꼭 집어 말씀 해주십시오. 내 말 아시겠습니까?”
“아…… 알겠다!”
고갯짓을 보고서야 겨우 맘이 풀리는 듯 우현은 환히 웃었다.
“이제 한결 맘이 편해졌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는 그와는 달리 조금 전 보인 너무도 엄청난 뒤끝에 소네스는 물론이고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혀를 내두른다. 그럴 것이 과거 온라인 게임에서 비숍으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 보였던 끝 모를 집착과 엄청난 뒤끝이 한순간에 폭발되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보르네오 자작가가 불쌍해지는군.”
질린 듯한 레이젠의 말에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동의를 표했다.
허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보르네오 자작가와의 기나긴 악연의 시작임을 말이다.
“보르네오 자작가가 곤란에 처했다고?”
“예! 몰핀 남작에게 종이 판매권과 제조 기법에 대해 교섭을 해보라 했는데 너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주위 상황은 생각 않고 무작정 넘기라고 했다가 자작가는 물론이고 그곳과 연관된 모든 외가들까지 모조리 물품 구입을 거절당했다 합니다.”
“자작가의 외가라면 네이트 백작가도 있을 텐데…… 그쪽도 물품을 구입 못하게 했다는 말이냐?”
“예! 거래하는 곳은 상단에서 물품을 대주지 않겠다고 해서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다 항의하는 모든 이들에게 몰핀 남작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바람에 현재 가문에서 축출되는 위기에까지 몰렸다고 합니다.”
“거참, 교섭 한번 나섰다가 가문에서 쫓겨나게 생겼구나!”
기가 차다는 듯 내뱉던 노인의 눈에 탁자에 거칠게 놓인 잔 위로 한 노인이 보인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사람 좋은 인상까지 흔히 보는 동네 할아버지처럼 친숙한 외모와는 달리 주름진 눈매 사이로 사이한 빛이 드리우고 있었다.
“그나저나 상단주라는 놈…… 제법 독한 구석이 있구나.”
“모양새로 보아 제조 기법이라든지, 판매권에 대해 더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에서 그리 한 듯싶은데…… 생각 외로 강수를 뒀습니다. 아무래도 제법 강단이 있는 자인 듯싶습니다.”
“상인의 이점이 뭔지 아는 놈이라서 그런 것이지. 만약 일반 귀족이라면 꽁무니부터 말고 있었겠지. 그건 그렇고 몰핀 남작이란 놈을 부추기라 시켰던 세릴 자작의 입에서 내 이름은 나오지 않겠지?”
“단단히 입을 봉하라 일렀으니 그럴 것입니다.”
“무릇 침묵이 제일 고요한 것이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그리 조치해 두겠습니다.”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뒷걸음질 쳐 가는 것을 지켜보던 노인의 입이 재차 벌려졌다.
“케일! 저놈도 조용히 시켜라!”
어둔 벽 사이로 녹색의 머리를 산발한 사내가 걸어 나온다.
검붉은 색의 민소매 조끼 뒤로 허리춤에 이(二) 자 형태로 단검 두 개를 매단 그는 써늘하기 그지없는 청록빛의 눈동자를 밝히며 아까 간 사내를 뒤따라갔다. 잠시 후, 외마디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노인은 그 비명을 여흥 삼아 잔을 기울여 입을 축이는데 어둠 속에서 열일곱 정도 되는 소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 머리칼에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그 아이는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일이 생각처럼 되질 않았나 봅니다.”
“제법 말을 잘 듣는다 싶어 보내놨더니만 아주 일을 망가트리고 왔다더구나!”
“그럴 만도 합니다. 자작가 영지에서는 망나니로 통하는 이이니 말입니다.”
“보르네오 자작 밑에 난 놈이 고작 그 정도라니…… 그 가문도 앞날이 뻔하겠어.”
노인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댄다.
“그래, 상단에 사람 심는 건 어찌 되었느냐?”
“생각보다 어려울 듯싶습니다. 정보 길드를 통해 채용하는 사람들의 과거 조사는 물론이고, 마나 탐사에, 종속의 인까지 찍는다고 하니 말입니다. 상단 인원 중에 도베르만 왕국 왕실 기사단 출신자가 있다고 하더니 거짓은 아닌 모양입니다.”
“종속의 인까지 찍는다라……. 상단주치고는 제법이군. 그런 것까지 생각해내고 말이야.”
“그러니 흰 종이 같은 것을 가져와 팔지 않겠습니까, 조바오니 공작님!”
“그렇기도 하겠군.”
이해가 간다는 듯 주억대는 이 노인, 현 알카인 왕국의 승상 겸 공작이자 현 왕을 위협하는 권력의 소유자인 테네시아 조바오니였다. 최근 우현의 저택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다 그가 종이 제조 기법을 얻기 위해 정보 길드를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뭐 하나 제대로 얻지 못하고 쫓겨나긴 했지만 말이다.
마시던 것을 내려놓은 조바오니 공작은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그나저나 그 상단주란 자가 맘에 안 드는군. 그를 빌미 삼아 정계로 돌아오려는 바딘이나, 요즘 들어 기지개를 켜려는 왕도 그렇고 말이야.”
“신경 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정 마음에 걸리신다면 공작님이 나서서 그를 왕국의 귀족으로 삼아 부리는 건 어떻습니까?”
순간 조바오니 공작의 눈살이 꿈틀거린다.
“테온, 지금 나더러 왕과 바딘에게 날개를 달아주란 말이더냐?”
“설마요! 전 공작님께서 날개를 다시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상단주란 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아직 어린 거위 말입니다. 그런 귀중한 것을 키워서 잡아 드실 생각은 안 하시고 어찌 벌써부터 배를 가르려 하십니까? 이는 내 품에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차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말은 상단주를 키워서 내 밑에 두란 말이더냐?”
테온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렇습니다. 공작님!”
수염을 매만지던 조바오니 공작의 눈가에 탐욕이 깃든다.
어차피 왕과 바딘 백작이 바라는 것은 우현의 엄청난 자금력이다.
그 자금력만 빼 온다면 둘은 실 끊긴 연이나 다름없는 신세다.
그와는 반대로 자신은 그 자금력을 등에 업고 왕국에서의 지배력을 더욱더 키워 갈 것이고 말이다. 일석이조의 계책에 조바오니 공작은 슬쩍 입꼬리를 치밀어 올린다.
“키워서 잡아먹어라? 그거 맘에 드는군. 좋아, 테온! 그 상단주를 우리 왕국 귀족으로 만들 계획은 있느냐?”
“이미 오래전에 준비해 둔 상태입니다.”
“그럼, 시작해 보아라. 내 너의 계획을 뒤에서 밀어 줄 터이니…….”
“감사합니다. 공작님!”
뒷걸음쳐 나가는 그를 뒤로한 채 잔을 쳐들던 조바오니 공작의 눈에 왼편에 자리한 금빛 옷이 들어온다. 대대로 알카인 왕이 입는 것과 똑같은 그것을 보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베어 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왕국이 내 손안에 들어올 날 말이야. 크하하하!”
그가 뿜어낸 광소는 방 안 가득 울렸다.
마치 왕국 전체에 들리기를 바라는 듯 말이다.
제1-10장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는 팔…….”
낭랑하게 읊는 목소리를 따라 우현의 고개가 흔들린다.
거래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 대금을 받기 위해 소네스를 기다리던 그는 상단 총관이 되고 싶다는 네시아의 말에 구구단을 알려주었다.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배우는 속도가 남달랐던 그녀는 어느새 오단을 넘어 육단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막 네시아가 칠단을 외우려는데 방문이 벌컥 열리며 소네스가 장부들을 한 아름 들고 들어왔다.
“형님, 오셨습니까?”
“잘됐다. 마침 줄 것이 있었는데…….”
“뭡니까?”
탁자에 장부들을 내려놓은 그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건넸다.
“백작가에서 이번 물품 대금을 보내왔다.”
우현은 건네받은 가죽 주머니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