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26
차원상인 026화
“고객님,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3억이면 매우 큰 거액인데 현재 고객님 사정으론 나올 수 있는 금액이 아닌지라 좀 걱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아는 분이 대출을 받아주셨습니다.”
“아! 그래요. 그것참, 훈훈한 인정입니다. 그럼, 댁까지 가시는 길, 편안한 여정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백인철이 일어서 허리를 숙이자, 뒤에 있던 사내들 역시 허리를 숙인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그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숙여졌던 허리가 펴지며 삭막해진 백인철의 낯빛이 보였다.
“정확히 확인했지?”
“예! 두 번이나 했습니다.”
“일단, 나에게 가져와!”
후다닥 달려와 건네는 수표를 받아 챙기다 손 하나 대지 않은 차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차 타는 사람의 성의도 못 알아보고…… 남길 거면 왜 달라고 해? 하여튼 젊은것들이 더 싸가지가 없다니까!”
짜증을 부리던 그는 곁에 있는 사내에게 뒤처리를 하라고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근데 돈의 출처는 왜 물으신 겁니까?”
“그냥! 생각보다 좀 빨리 갚기에 물어본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신경 끄고 가라는 듯 백인철은 손을 내저었다.
상치가 물러가자 돈 지갑이 있는 가슴 부위를 만지며 흐뭇해한다.
“오늘 돈도 두둑하게 받았는데…… 홍란이 엉덩이나 만져주러 갈까?”
치밀어 오르는 입꼬리만큼이나, 양다리 위로 뭔가가 부풀어 올라왔다.
“이제 남은 건 사억인가?”
한차례 웃던 그는 운전대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오래된 노래지만 댄스 음악까지 켠 그는 뻥 뚫린 도로를 타고 달려갔다. 잠시 후, 집에 도착한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간만에 서우와 술이나 한잔 할까 그런 것인데 통화 버튼을 채 누르기도 전에 닫고 만다.
“아니다. 동생들이랑 외식이나 하자.”
그동안 빚 갚느라고 동분서주하느라 제대로 신경을 못 써줬는데 이참에 오빠 노릇 톡톡히 해볼 생각이다. 막 차에서 나와 대문으로 향하려는데 돌연 서연이가 밖으로 나왔다.
“어, 오빠?”
“너 어디 가?”
“응! 잘됐다. 오빠도 같이 가자!”
“어딜 가는 건데?”
“보영이가 한턱 쏜대. 가자.”
“뭐, 보영이가? 걔가 돈이 어디 있다고?”
“알바 한 돈이겠지.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이때 신발을 구겨 신으며 보영이가 나왔다.
“오빠, 왔어?”
“보영아! 네가 한턱 쏜다니 무슨 말이야?”
“그게…… 아는 언니 대신 과외 몇 번 한 적 있는데 고맙다고 며칠 전 돈을 주셨어.”
“그거 진짜야?”
“그럼!”
왠지 둘러대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
거짓말이라곤 지금껏 모르고 산 아이라 더욱더 그렇다.
막 추궁에 들어가려는 찰나, 서연이 돌연 팔짱을 껴 왔다.
“보영이가 그리 말하면 그런 거겠지. 뭘 또 물어?”
“그래도 그건…….”
“오빠! 우린 그냥 ‘잘 먹겠습니다!’하고 조용히 먹으면 돼!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고 보니 나름 가족을 챙기려고 이러는 건데 너무 따지는 것도 그런 것 같아 이번 한 번만 넘어가기로 하였다. 의심을 풀어서 그런가?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아깝네! 원래는 내가 한턱 쏘려 했는데 말이야.”
“뭐가 아까워! 2차 쏘면 되지.”
“2차?”
서연이 히죽히죽 웃으며 답을 했다.
“히히히! 노래방!”
“노래방? 좋다! 까짓것 오늘 한번 죽어라 노래 불러보자!”
평소 노래방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보영과 소연인지라 우현이 OK 사인을 보내기 무섭게 펄쩍펄쩍 뛰며 좋아라 한다. 그런 그녀들을 데리고 우현은 차에 올라탔다. 이렇게 세 사람은 간만에 목청껏 웃어대며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었다.
제2-1장
와장창! 탕당!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는 사내 밑으로 산산이 조각난 화병이 바닥을 나뒹군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간살이는 모두 거덜 낸 듯 부서진 온갖 잡기들이 그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게 한다. 씩씩대며 어깨를 들썩거리던 사내가 돌연 멈춘다 싶더니 바드득 이를 간다.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 이놈!”
말을 끝내기 무섭게 의자를 집어 그대로 창문을 향해 던졌다.
콰자작! 쨍그랑!
산산조각 나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주위에 있는 것을 던지고, 부수길 서너 차례. 점점 커져가는 소음이 점점 극에 다다른다 싶을 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소공자님! 다녀…… 히이익!”
곰처럼 커다란 덩치에, 버섯을 쏙 빼닮은 머리 모양을 한 사내는 방 안의 광경에 기겁을 하고 만다. 막 밑동만 남은 물병을 치켜들던 사내는 놀라는 그를 보곤 이내 멈춰 섰다.
“조셉, 왔느냐?”
“예에…….”
손에 든 물병을 옆에 던져버리고는 그나마 온전한 의자에 몸을 실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파편을 피해 다가오던 버섯 머리 사내, 조셉은 코끝을 찌르는 주향에 그만 발걸음을 뒤로 물린다.
“또 술 드셨습니까?”
“왜? 너까지 마시지 말라고 나설 생각이냐?”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그만둬라! 난 그딴 소리나 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말이야.”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핏발 선 눈동자에 일순 섬뜩해진 조셉은 서둘러 입을 닫는다. 이렇듯 술에 취해 온갖 난동을 부리는 이 사내가 바로 보르네오 자작가의 차남인 몰핀 남작이었다. 현재 그는 일전의 사건으로 인해 가문에서 멀리 떨어진 영지 한 귀퉁이에 자리한 산속 별장에 유배 중이다. 그것도 가지고 있던 남작위까지 뺏긴 채로 말이다.
본래는 이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단에서 물건을 공급받지 못한 여러 다른 가문들, 특히나 네이트 백작가가 그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해 오면서 결국 가문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잠시 소동이 가라앉을 동안 머무르라 한 것인데 몰핀은 이곳에 오기 무섭게 하루하루 술에 기대어 살았다. 그 때문일까? 성정도 많이 거칠어져 툭하면 집어 던지고, 부수어 별장 물건 중 온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조금 전, 그 난리도 다 그 때문이었다.
“네 갔던 일이나 어찌 되었는지나 어서 말해 보아라!”
“거부하는 곳들이 많아 조금 힘들긴 했지만 스쿠루 파인이라는 용병단과 계약을 했습니다.”
“스쿠루 파인?”
“예, 돈이면 동료는 물론이고, 딸까지도 죽인다고 할 만큼 용병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자자한 곳으로 오로지 전장터만 찾아서 다니는 이른바, 싸움광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력은 어떠냐?”
“B랭크로 어느 정도 좋은 듯싶습니다.”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나마 괜찮다 싶다.
축 늘어진 상체를 들어 올린 몰핀이 재차 물었다.
“출발은 언제 가능하다 하더냐?”
“언제든 가능하다 합니다.”
“그럼, 당장 가서 오늘 저녁에 출발하자고 해라.”
“알겠습니다.”
막 밖으로 나서려던 조셉은 조심스레 물어왔다.
“소공자님! 근데 이리해도 되는 겁니까? 용병들을 끌고 화이트 그리핀 상단을 습격하는 것 말입니다.”
“날 이리 만든 대가는 치러야 할 것 아니더냐?”
“하지만 본가에서는 자중하라고…….”
순간 몰핀의 눈매가 매서워진다.
그걸 본 조셉은 자신도 모르게 자라목이 된다.
“지금 네가 날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아닙니다만…….”
“시끄럽다! 넌 시키는 대로만 해라. 그러면 되는 것이야. 내 말 알아듣겠느냐?”
서슬 퍼런 눈빛에 조셉은 어느 틈에 주눅이 들었다.
몰핀은 그런 그를 쏘아보다 나가보라며 손짓을 해댄다.
“가서 아까 말한 대로 전해라. 그리고 오면서 사나흘 먹을 음식도 구해 오고 말이야.”
“아……알겠습니다.”
한 차례 고개를 숙이던 조셉은 밖으로 나섰다.
홀론 남은 몰핀은 아까 던지다 만 물병을 들어 벽에 날렸다.
와장창!
“화이트 그리핀 상단! 날 건드린 대가가 어떤 것인지 내 똑똑히 알려주마!”
살기 돋은 이 말과 함께 말이다.
“쓴맛이 좀 덜한 듯하면서도 단맛이 있네요.”
“신안에서도 최고로 좋은 비금도에서 난 천일염이네. 거기다 3~4년가량 숙성까지 시켰고 말이야. 그야말로 1등품이지. 1등품!”
치켜든 엄지 위로 진한 자부심이 깃든다. 그런 박 사장을 보며 우현은 미소를 짓는다.
“근데 왜 올라오셨습니까? 염전 일로 바쁘실 텐데 물건만 보내시지.”
“첫 거래에, 소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큰 고객이 아닌가? 당연히 직접 와서 얼굴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그래도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요번처럼 좋은 거래 오래 하고 싶어서 그렇다네.”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고맙네.”
박 사장과 악수를 마친 우현은 슬쩍 창고로 들어가는 소금 포대들을 보았다. 대부업체에 다녀온 후, 벌써 네 번의 거래를 행한 그는 일전에 생각했던 소금을 사기 위해 물어물어 신안 비금의 한 천일염 사장을 알게 되어 계약을 하고 이제 막 첫 물품을 받은 것이다. 쌓이는 소금 포대만큼이나 가슴 한편이 뿌듯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던 그때 창고 한 귀퉁이에서 휴대폰을 들고 난감해하는 서우가 보였다.
“거참! 그 품목은 저희가 아직 손댈 계획이 없다니까요. 알았습니다, 알았어! 일단, 사장님께 말해보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서우는 미간을 한껏 좁혔다.
“이것들이 아주 그냥 강매를 하려고 든다니까…….”
“강매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투덜대던 그는 다가서는 우현을 보곤 고개를 내젓는다.
“별일 아니야.”
“휴대폰 까기 전에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봐!”
“그게…… 네가 영업사원 할 때 알던 중소기업 사장이라고 자꾸 자기네 물건 좀 사 달라고 전화가 와서 말이야.”
상대가 중소기업 사장이라는 말에 순간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전에 날 도와줬던 분들인데 그리 막 끊으면 어떻게 해?”
“누군 그러고 싶냐? 근데 삼 일 동안 사십 통 가까이 그 사장한테 전화 받아봐라. 아마 천하에 없는 순둥이도 돌아버릴 거다.”
“삼 일 동안 전화가 사십 통이나 왔다고?”
“그래! 우리와의 거래에 사활을 건 듯 아주 맹목적이더라.”
입맛이 씁쓸해진다. 요즘처럼 중소기업들이 어려운 때에 거래처 하나 늘리는 것은 그야말로 생명줄을 붙잡는 것과도 같다. 자신처럼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거래처라면 더더욱 그렇다. 항상 얼굴 한편에 그림자가 져 있던 사장들의 얼굴이 떠오른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맘 같아선 있는 대로 사주고 싶으나 대륙에 판매될 품목은 한정되어 있는지라 그리 못하기 때문이었다. 재차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서우가 혼잣말을 한다.
“우리가 마트도 아니고…… 어떻게 그 많은 품목의 물건들을 사줄 수 있겠느냐고?”
‘마트라…….’
순간 우현의 눈가에 흥미로운 빛이 나타났다. 사실 대륙과 거래한 지는 불과 4개월이 좀 넘지만 물량은 제법 많은 양이 흘러 들어갔다. 지금이야 아직 정식으로 회사를 만들지 않아 별다른 일은 없지만 물품을 거래한 회사들에 대한 세무 조사라든지, 물품을 산 자금 출처나 팔아 버린 물품의 향방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조사가 들어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뭔가 방패막이가 필요한데 그의 생각엔 마트가 제격인 듯싶었다. 어차피 사업 자금조로 1억 정도 마련될 듯싶고, 거기다 중소기업 물품들을 모아 할인마트로 꾸미는 것도 제법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 제법 구미도 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