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27
차원상인 027화
‘기왕 이렇게 된 거 대륙에다 체인점 형식으로 할인 마트를 꾸며봐? 고객 호응도도 볼 겸 괜찮을 듯싶은데 말이야.’
어느새 머릿속은 현대와 대륙을 잇는 거대 체인 할인 마트 계획으로 가득 찼다.
한참을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 있는 그를 보다 못한 서우가 말을 건넸다.
“야, 뭐 해?”
“으응? 아~! 할인 마트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싶어서 말이야.”
“설마 할인 마트를 해보겠다는 거야?”
“뭐, 여길 재고 창고로 쓰고 매장 하나 사서 꾸며볼까 생각 중이야. 중소기업 사장님들 도움 좀 받으면 얼추 될 듯싶은데…… 네 생각은 어때?”
“할인 마트라…….”
서우는 팔짱을 낀 채로 잠시 생각에 잠긴다. 괜찮을 듯싶으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이 최근 몇 년 새 급격하게 늘어버린 할인 마트 수였다. 더군다나 대기업까지 할인 마트 대열에 끼면서 현 시장은 그야말로 포화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그에 우현은 고개를 내젓는다.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아직 하겠다고 결정 내린 건 아니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알겠다는 듯 끄덕이던 서우는 깜박했다는 듯 물었다.
“근데 이젠 소금까지 취급하는 거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뭐, 잡화상도 아니고…… 이러다 김장용 배추까지 취급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필요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그만해둬!”
그만하라는 말에 입을 닫은 서우는 주위를 살폈다.
“뭐, 대충 마무리된 거 같은데 우리도 슬슬 가볼까?”
며칠 전, 일전에 말한 가죽 공장 사장님과 통화가 되었다고 하기에 마침 오늘 시간이 되어 가기로 했던 것이다.
“경기도 포천이라고 했지?”
“어! 여기서 가면 대충 두 시간 걸릴걸?”
“알았어. 정리하고 출발하자!”
남은 물품들 정리가 끝나자 둘은 차를 몰고 나섰다. 서우 어머님이 싸준 간식을 먹으면서 두 시간쯤 차를 몰자 나지막한 언덕 밑에 자리한 공장 하나가 보였다. 경비원에게 말해 안에 차를 댄 우현은 트렁크에서 김장할 때 쓰는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서우를 따라 공장 옆에 있는 제법 큰 집으로 들어갔다.
“서우, 이 자식! 살아 있었구나!”
산적 같은 인상의 사십 대 사내가 나와 서우의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렸다.
그 모습이 꼭 아비가 아들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듯해 보기 좋았지만 당사자는 그렇지 않은 듯 서둘러 빠져나왔다.
“공장장님! 저도 이제 이십 대 후반이라고요! 언제까지 애들처럼 머리를 만져댈 거예요?”
“네가 할아비가 되어도 나에겐 여전히 말썽쟁이 인부일 뿐이다. 알겠냐, 이놈아!”
또다시 머리에 손을 얹어가자 서우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결국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고서야 둘은 겨우 떨어질 수 있었다.
“칫! 이래서 이곳만은 오기 싫었는데…….”
어느새 산발이 된 머리를 매만지는 서우의 입이 오리처럼 툭 튀어나온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껄껄대며 웃던 공장장이 우현을 보았다.
“난 이곳 사장 겸 공장장인 김백인이라고 하네. 그래, 대체 어떤 가죽인데 먼 이곳까지 온 것인가?”
“이것입니다.”
우현은 들고 온 김 봉지를 풀고 안에서 가죽을 꺼내 들었다.
받아 든 것을 한참 살피던 공장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네만 대체 이게 무슨 가죽인가?”
“저도 우연히 얻게 된 거라 잘은 모르겠습니다.”
차마 몬스터의 가죽이라고는 하지 못한 채 그냥 우연히 얻었다고 하였다.
턱을 만지작대던 공장장은 우현에게 재차 물었다.
“한쪽 귀퉁이를 잘라 살펴봐도 되겠는가?”
“그렇게 하십시오.”
“그럼, 날 따라오게!”
허락이 떨어지자 공장장은 그들을 데리고 공장으로 들어갔다.
날씨는 그리 덥지 않은데 공장에 가득한 대형 기계들 탓인지 후덥지근한 것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훔치는 우현을 본 공장장이 미소를 지었다.
“안이 제법 더울 걸세.”
“대형 기계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겠죠.”
“이해해주니 고맙네.”
빙그레 웃던 그는 한편에 서 있는 사내를 불렀다.
“민 군아, 가위 좀 가져와 봐라!”
말을 듣기 무섭게 민 군이라 불린 이는 제법 날이 두꺼운 가위를 들고 나왔다.
건네받은 가위를 쥐기 무섭게 공장장은 가죽 한 귀퉁이를 자르기 시작했다.
두꺼워 자르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쉽게 잘려 나간다.
잘린 가죽을 들고 갸웃대던 공장장은 시험 삼아 잡아당겼다.
순간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제법 신축성이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가죽 자체가 늘어난 것은 또 아니다.
“거참! 신기하네.”
연신 탄성을 흘리던 그는 반팔 밑으로 드러난 팔 위에 잘린 가죽을 덮어씌웠다.
통풍이 잘 안 되는 가죽의 특성상 더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다지 덥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바람기가 느껴지는 것이 마치 숨구멍이라도 있는 듯하다.
의아한 빛을 자아내던 공장장은 마지막으로 곁에 있는 물통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 가죽에 들이부었다. 가죽을 타고 밑으로 물이 떨어져 내리건만 정작 안쪽은 물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방수까지 되는 듯하다. 그뿐인가? 칼로 찌르고 베어도 아무런 흠집 하나 남지 않고, 불로 지져도 약간 냄새만 풍길 뿐 타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젠 어이없기까지 하는 듯 공장장은 헛웃음을 자아낸다. 그건 그뿐만이 아닌 듯 곁에 있던 민 군 또한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대…… 대체 이게 뭡니까?”
“가죽이란다.”
“가, 가죽이요? 뭔 가죽이 이래요?”
“나도 오십 평생에 처음 보는 것이다.”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던 공장장의 시선이 우현에게 향했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그건 좀…… 알려 드리기가 힘듭니다.”
“역시 그렇겠지. 이런 가죽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야.”
상황이 어찌 되는지 잘 모르겠던 우현이 슬쩍 물었다.
“저어, 제가 가죽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 가죽 좋은 겁니까, 아니면 나쁜 겁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 군이 화들짝 놀란다.
“좋은 거냐고요? 당연히 좋죠. 아니, 좋은 것을 넘어 혁신이죠. 가죽계의 혁신!”
“그 정도로 좋습니까?”
“두말하면 입만 아픕니다. 이런 걸로 옷이나 신발을 만든다면 가죽은 겨울에만 입는 거란 선입견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겁니다. 아니, 사시사철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다닐지도 모릅니다.”
차세대 공장장을 노린다는 민 군답게 침을 튀기며 칭찬을 해댄다.
혹시나 싶어 가져온 것이 이렇듯 큰 행운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박이로구나! 대박이야!’
처음 가죽을 봤을 때 이건 돈이 된다 싶던 그 예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다.
거기다 이 가죽의 몬스터는 영지뿐만 아니라 대륙에서도 아주 흔한 몬스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즉, 그 말은 물량 걱정 따윈 전혀 없다는 것도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단을 그만두면 뭐 해 먹고 사나 했는데 대량으로 가죽을 들여와 신발로 만들어 팔면 굳이 금괴를 들여와 매각하는 복잡한 방식을 취하지 않아도 돼 한결 수월할 듯싶다.
짐짓 흥분에 휩싸여 가던 그때 공장장이 물어왔다.
“혹시 이 가죽 내게 팔 생각 없는가?
“아…… 그게! 없는데요.”
“값은 후하게 쳐줄 터이니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잠시 생각에 잠기던 우현은 이내 고개를 내젓는다.
“팔 생각은 없습니다.”
“하긴 이 정도 가죽이면 쉬이 팔기 그렇겠지.”
아쉬움을 진하게 남기던 그때 다시 말이 들려왔다.
“대신 동업할 생각은 있습니다.”
순간 공장장의 고개가 홱 들린다.
“동…… 동업 말인가?”
“보다시피 가죽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걸 처리해 상품화까지 시킬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자넨 재료를 댈 것이니 난 상품을 만들라 이건가?”
“상품을 만들기 어렵다면 여기서 가죽을 처리한 후, 따로 제조할 사람을 찾아야겠죠.”
따로 찾겠다는 말에 공장장이 화들짝 놀란다.
“무슨 말을 그리하는가? 내가 하네. 나 말고 누가 한단 말인가?”
“굳이 공장장님이 맡아 주시겠다면야 저로서는 행운이죠.”
“행운이 아니라 필연일세.”
그의 대답에 우현은 피식 웃었다. 그걸 본 공장장은 조금은 멋쩍은 듯 턱 밑을 긁어댄다. 그럴 것이 혹시나 딴 곳에 갈까 봐 서둘러 붙잡았는데 우현에게 속내를 다 비춘 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입맛을 다시던 공장장은 우현에게 물었다.
“근데 상품화면 뭐부터 만들 생각인가?”
“일단은 신발부터 할 생각입니다.”
신발이라는 말에 공장장이 손뼉을 쳐댄다.
“잘됐구만! 그렇지 않아도 신발 공장을 같이 하고 있네. 요즘 시대엔 가죽 공장 하나로 먹고살긴 힘들어서 말이야.”
“그거 다행이군요. 근데 상품화까지 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자네가 준 가죽을 좀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길어야 한두 달이면 될 걸세. 문제는 이 가죽을 얼마나 수급할 수 있나 하는 것이겠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 작업에 착수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네. 그럼, 계약서는 언제 쓸 생각인가?”
“시제품이 나온 후에 하도록 하죠. 저도 어느 정도 가죽이 준비되어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하세!”
너털웃음을 짓던 공장장은 서우의 등을 철썩 내리쳤다.
“아…… 아파요!”
“껄껄! 서우야, 고맙다. 네놈이 진작 복덩이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큰 복을 줄 줄은 몰랐다.”
“그걸 알았으면 때리지를 말든가? 왜 툭하면 때려요? 아파 죽겠구만!”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
“그런 애정은 쓰레기통에나 버려요! 난 필요도 없으니 말이에요.”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소리가 피어난다. 잠시 후, 공장장과 대화를 마친 우현은 차를 몰아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야, 회사 세워지면 나 한 자리 줘야 한다. 내가 아니었으면 저 사람들 못 만났을 테니까 말이야.”
“알았다. 알았어. 이사 직함으로 한 자리 줄게!”
“당연하지. 내 공이 얼마나 큰데…….”
지나친 생색에 우현은 실소하고 만다.
뒤따라 웃던 서우가 말을 건네 왔다.
“그나저나 공장장님 반응이 심상치 않은 게…… 대박 칠 것 같지 않아?”
“네 생각에도 그렇지?”
“응! 어쩌면 전 세계를 제패할지도 모르겠어.”
둘은 서로를 보며 한바탕 웃었다. 겨우 가죽 하나 파는 주제에 너무 좋아하는 것 아니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가죽과 연관된 수많은 사업(신발을 비롯해 가방, 지갑, 허리띠, 장갑, 가죽 재킷 등등 대부분이 계절이나 시기를 별로 타지 않는 생활필수품들이다.)들과 우현만이 공급할 수 있다는 독점권까지 생각한다면 이들 말이 그리 허망한 것은 아니다.
허나, 그를 더욱더 기쁘게 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간 대륙에서 물건을 팔아도 현금화하기 매우 어려웠는데 가죽을 들여와 판다면 그런 문제를 겪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더는 서우 아버지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슴 한편에 있던 돌을 치운 듯싶어 어느 정도는 편안해진 것이다.
이렇게 우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대륙과 현대를 오가며 물품을 파는 차원 상인의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