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28
차원상인 028화
제2-2장
가죽 공장에 다녀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여느 때와 같이 컨테이너 박스와 함께 대륙에 넘어간 우현은 그간 밀린 상단 일을 얼추 끝내고 영주관으로 향하였다. 이번에 새로 내놓은 천일염에 대한 반응도 살필 겸 그동안 바빠서 미처 챙기지 못한 상단 소속 판매원들을 보기 위한 것이다. 구름 떼처럼 몰려든 상인들을 지나 우현은 맨 먼저 영주인 바딘 백작을 만나러 갔다.
“어서 오시게!”
“오랜만입니다. 백작님.”
“일단, 자리에 앉도록 하게!”
우현이 의자에 몸을 싣기 무섭게 하인이 커피를 놓고 간다.
“근데 어딜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인가? 자네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로구만그래!”
“이래저래 상단에 일이 좀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남도 아니고 서로 기별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
“백작님, 죄송합니다. 미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서운하다는 듯한 모습에 우현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일까? 바딘 백작의 낯이 조금은 수그러든다.
“참! 몰핀 남작 이후로 건드리는 이들이 없어졌다고 하던데…… 맞는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거 다행이네. 솔직히 저번 그 일 해결하느라 제법 골머리를 앓아서 말이야.”
절로 내저어지는 고갯짓에서 그가 얼마나 난처했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 망나니 같은 놈을 어찌하겠나? 그냥 액땜했다 치고 넘기게나.”
“그러지 않아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잘 생각했다며 고개를 끄덕이던 바딘 백작은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그래! 이번에 소금을 판매하기로 했다고 들었네.”
“적은 양이지만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잘했네. 반응도 뜨거웠고 말이야. 사실 왕국 내 소금이 부족해 곤란한 상황이었거든.”
“다행이군요. 조금이나마 왕국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말입니다.”
“그 도움…… 오랫동안 지속 바라네. 내 진심일세.”
“알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답이 맘에 들었던 것일까?
바딘 백작의 입가에 미소가 찾아든다.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은 그는 이곳에 온 연유를 물어왔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왜 찾아온 것인가?”
“신상품 반응도 궁금하고, 그동안 바빠서 소홀히 한 저희 상단 사람들이 어찌 일하는지 살피러 왔습니다.”
“알아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굳이 살필 필요까지 있겠는가? 그러다 괜한 반발심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그래도 한 번씩 얼굴을 비춰야 그들 뒤에 상단주가 있다는 걸 알고 안심하고 일할 듯싶습니다. 뭐, 약간의 긴장감도 유발하고 말입니다.”
“하여튼 자네도…….”
못 말린다는 듯 내뱉으면서도 바딘 백작은 적잖이 놀랐다.
보통 감시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힘이 따르기 마련인데 우현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상대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가지게 하였다. 즉, 늘 살피고 있으니 매사 긴장을 가지고 일하게끔 유도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럴 생각으로 한 것 같지는 않으나 우현 스스로가 관리 감독에 능한 기질을 타고났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을 듯싶다.
커피를 들어 마시던 바딘 백작은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인사도 받고 했으니 오늘은 이만하도록 하세. 바쁜 사람 오래 붙들고 있는 것도 좋은 게 아니니 말이야.”
“백작님!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세!”
한차례 주억대던 우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방문이 닫히는 것을 지켜보던 바딘 백작 곁으로 펨 총관이 다가왔다.
“그래, 아직도 세실리안 릭 캐슬에 대한 정보는 파악되질 않고 있는가?”
“그것이 묘하게도 남은 기록이 없습니다. 왕도를 나와 지방 영지로 간 뒤로는 한 곳에 머물질 않고 워낙 많이 이동한 데다가 외딴 곳에 숨어 들어가 살곤 해서 그들을 기억하는 자가 드뭅니다.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나섰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확인이 안 된 그저 풍문인지라 확실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배를 타고 나섰다라……. 코리아란 섬나라에 갔다 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싶군.”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어린 시절을 알 수 없는 페릴 형제와 5년간 왕국에서 사라졌다 나타난 릭 캐슬이라……. 확실히 묘하구만!”
그랬다. 세실리안가의 릭 캐슬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이미 십여 년 전에 사라졌다. 더 기이한 것은 그뿐만 아니라 같이 산 것으로 추정되는 누나와 어머니마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왕국에서 그들 자체를 지운 것처럼 말이다. 남은 커피를 싹 비운 바딘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너머로 상단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우현에게 시선을 두었다.
“계속해서 알아보도록 하게! 단, 범위를 넓혀 왕국뿐만 아니라 온 대륙에 걸쳐 찾아보도록 해라.”
“그 말씀은 릭 캐슬이 타국에서 보낸 첩자라 의심이 된다는 겁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니네만 그가 취급하는 물품이나 양으로 봐서는 일개 상인이 가져올 것은 아니라 생각되기 때문일세.”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꼭 그렇다고 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백작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허리를 숙여 보이던 펨 총관은 종종걸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긴 한숨과 함께 뒷짐을 진 바딘 백작은 시선을 내려 여전히 상단 사람들과 있는 우현을 보았다.
“캐슬, 자네 진짜 정체가 뭔가?”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그저 방 안만 맴돌아 다닌다.
한없이 굳어진 얼굴빛과 함께 말이다.
“여러분! 흔히들 돈을 벌고 싶으면 귀족 안방마님을 노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족 부인님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그만큼 크다 할 수 있겠죠. 그분들을 위한 특가 기획 상품! 손톱깎이, 손톱소지 줄이 이것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인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쫙 펴진 열 손가락 끝엔 시커먼 때가 끼어 있는데 보기에도 안 좋은 것이 절로 시선이 돌아간다.
“자, 보십시오! 너무나 고운 손이건만 손톱에 낀 시커먼 때 때문에 시선을 두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만지기도 그렇습니다. 거기다 길쭉하니 튀어나온 손톱을 보면 무슨 몬스터 발톱처럼 흉측해 더욱더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 손톱깎이만 있으면 그런 걱정 따윈 절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사용법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요 움푹 들어간 곳에 손톱에 맞추고 자르면 되는데 이때 자기가 원하는 모양대로 조금씩 틀어서 자르면 됩니다. 궂은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바짝 잘라 손톱이 다치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고, 반대로 길게 잘라 모양새를 예쁘게 할 수 있습니다.”
막 잘린 손톱을 상인들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본다. 아까 말한 대로 이 물건은 서민보다는 미를 중시하는 귀족 대부인들을 상대로 팔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 잘라서 그런지 손톱 끝이 까칠까칠하기만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이 손톱소지 줄입니다. 이 중앙 부분을 손톱 끝에 대고 쓱싹 밀어주면 언제 잘랐냐는 듯 부드럽기 그지없습니다. 자아! 보십시오. 아까 흉측했던 손톱은 사라지고 곱디고운 것이 상대가 유부녀라도 절로 손을 잡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실 겁니다.”
사내의 너스레에 일순 상인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예끼! 이 사람아! 그래도 유부녀의 손을 잡으면 어떻게 해?”
“하하하! 맞아! 남의 집 부인 넘보면 안 되지!”
“저도 순간의 욕망으로 말을 좀 심하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설명을 하던 사내가 미안하다는 듯 넙죽 고개를 숙인다.
그런 그가 웃긴지 사람들은 또 한 번 웃음보를 터트린다. 그러나 이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들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사내의 설명대로 단정하니 예쁜 것이 절로 잡고 싶은 욕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대부인이 아니라도 여자라면 누구나 원할 물건이다. 어떻게든 선점해야 해!’
‘저걸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 저것만 잘 활용한다면 흔히 말하는 고위 귀족과의 연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목적 아래 사람들은 연신 주위를 살핀다. 혹시나 자신보다 먼저 나설까 봐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때였다. 마치 달리기 시합 전 터지는 총소리처럼 이들을 나서게 만드는 말이 주위에 울려퍼졌다.
“이렇듯 여성의 행복한 삶을 이루게 해주는 이 귀한 물품들이 오늘 하루 두 개 합쳐 단돈 실버 열 닢. 실버 열 닢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물량은 딱 오천 개뿐이니 사실 분은 빨리빨리 서두르십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접수대를 향해 뛰어간다.
“오백 개 주십시오!”
“난 천 개 주시오!”
“이 사람아! 내가 먼저 왔잖아?”
“시끄러워! 이 상황에서 누가 먼저랄 게 어디 있어? 사면 그만이지.”
“뭐, 뭐야?”
상인들 사이에 한바탕 주먹다짐이 인다. 물건을 선점하기 위해 생사고투를 치르는 듯한 그들 뒤로 뒷짐을 진 우현이 보인다.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진 것이 그의 속내가 어떤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듯싶다. 이때 펨 총관을 만나 대금을 받아 오던 소네스는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캐슬, 왔어?”
“어, 형님!”
“갑자기 판매처에 오고 싶다고 하더니만 네 물건 잘 팔리나 확인하러 온 거였어?”
핀잔 아닌 핀잔에 우현은 뒷머리를 긁적댔다.
“사실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신상품인 타월을 살피지 않고 네 달 연속 조기 매진을 시킨 물건들을 살피면 어쩌자는 거야?”
그랬다. 손톱깎이와 손톱소지 줄은 대부업체 다녀온 다음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것으로 그간 네 번의 거래 동안 최단 시간 조기 매진을 시켰다. 사실 우현은 루즈를 가져가 판매할 생각을 했지만 원가가 지나치게 높고, 속 알맹이를 빼 따로 케이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손톱깎이와 손톱소지 줄로 선회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성만을 상대로 한 물품이라는 인식이 커서 잘 팔릴까 염려가 되었지만 생각 외로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특히나 고위 귀족 부인들 사이에 각각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쓸 손톱깎이와 손톱소지 줄을 사 모으는 것이 일종의 부의 상징처럼 되어버려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들 것까지 사기 위해 더욱더 열을 올렸다. 근데 이것은 비단 귀족 부인들에게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돈 좀 있다는 사람이면 죄다 따라 하면서 일종의 신드롬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어쨌든 자신이 가져온 물건이 잘 팔리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우현은 소네스를 따라 물품이 옮겨지는 창고로 향하였다.
“이봐! 그 물건 이쪽으로 와야 해!”
“그쪽이요? 알겠습니다.”
“여긴 왜 마차가 없어? 몬도! 어서 빨리 물품을 실을 마차를 찾아봐!”
“알겠습니다. 찾아보겠습니다.”
정신없이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과 쌓인 물건을 싣고 나가는 마차들이 줄지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