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29
차원상인 029화
구슬땀을 흘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던 우현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많이들 힘들어하는군요.”
“그럴 수밖에……. 인원은 그대로인데 물량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잖아.”
소네스는 푸념 섞인 말투 속에 짜증을 담아 건넨다. 그도 그럴 것이 근래 행해진 네 번의 거래 동안 물량이 무려 여덟 배나 증가했건만 상단의 인원은 전혀 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원 충원도 하지 않고 뭐 했냐는 책망의 말에 우현은 뒷머리를 긁적인다.
“형님! 지금이라도 인원 좀 충원할까요?”
“사람이야 공고만 하면 금방 채워지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야. 저길 봐봐!”
소네스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상단 사람들 몇몇이 말싸움을 해대는 것이 보인다.
“대체 마차는 언제 오는 거야?”
“다 물품 배송 중이라고 잠시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럼, 저기 멀쩡히 있는 마차는 뭐야?”
“그게 물품 대기 중이라고…….”
“대기는 무슨 대기. 일단 급하니까 우선 쓰도록 하지.”
“그건 안 됩니다. 커피 물품을 실을 거라고 남겨 놓은 것입니다.”
“이러다 물품 보내기 전에 해 다 져!”
“그래도 안 됩니다.”
옥신각신하는 그들에 우현의 이맛살이 좁혀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서로 빨리 배송하기 위해 물품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물론 관리관이 나서 상황 정리를 해보지만 얼마 못 가 또다시 사달이 벌어졌다.
“최근 들어 상단 사람들 사이에 저런 문제가 많아졌어. 상단의 조직 체계가 확실히 잡혀 있지 않고 있어 그런 것이지. 뭐, 인력도 달린 데다 그들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나를 포함해 고작 세 명뿐이라는 것도 한몫하고 있지만 말이야. 어쨌든 빠른 시일 안에 상단의 조직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일 듯싶어. 사람이 늘어 더 큰 혼란을 야기하기 전에 말이야.”
묵묵히 듣고 있던 우현에게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조직 체계를 잡고 시작했어야 하는데 빚 갚겠다고 주먹구구식으로 한 것이 이런 사달을 만든 듯싶다. 그나마 지금에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사람들을 충원한 다음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상단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일단, 상단 조직 체계는 내게 익숙한 회사 양식에 따라 구성해보고 소네스 형님에게 감수를 해달라는 식으로 하는 편이 낫겠어. 일의 능률이나 편리성으로 보나 현대 방식이 더 좋을 듯싶으니까 말이야. 문제는 관리관인데…….’
눈살을 찌푸리던 우현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형님! 왜 관리관을 안 뽑은 겁니까?”
“나도 뽑고야 싶지. 하지만 글자와 숫자를 다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그러고 보니 조선 시대에도 글을 아는 건 지인지라 양반의 특권이라고 할 정도로 백성 대부분이 잘 몰랐다고 한다. 그건 중세 시대 또한 마찬가지로 상단의 관리직을 맡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은 박사 학위를 딴 것도 모자라 해외에 나가서 더 공부하고 와서도 취업을 못하는데 여긴 너무 몰라서 뽑지를 못하다니…… 아이러니하구만!’
맘 같아선 그냥 확 아무나 데리고 오고 싶지만 자칫 그랬다 괜한 목숨을 버리게 할까 봐 그건 또 못하겠다. 골치 아프게 됐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던 우현은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상단 조직 체계는 제가 좀 더 고심해볼 테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관리관 뽑는 건 급한 대로 상단 사람들 중에 글이나 숫자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죠.”
“그런 사람이 있을까?”
“혹시 모르니 한번 알아보세요. 아 참! 찾는 김에 상단 소속 용병들도 조사하세요. 그들이라면 글을 읽고 쓰는 자가 꽤 있을 듯싶으니 말입니다.”
“용병들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알았어! 한번 찾아보도록 하지.”
끄덕대던 소네스를 바라보던 우현이 깜박했다는 듯 말을 건넸다.
“참! 형님! 회식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대충 준비가 됐을 거야.”
“형님! 그럼, 어서 가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지 않아도 마차 대기시켜 놨다. 가서 타기만 하면 돼!”
그러냐며 우현은 끄덕였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우현은 특별히 회식 자리를 열기로 했다. 현대에서 삼겹살 550인분과 소주, 쌈장, 각종 야채를 준비해 왔고 거기다 거래 중인 한 상단을 통해 맥주 통을 무려 오십 통이나 들여 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 물론 제법 돈이 들긴 했지만 그동안 그들이 상단을 위해 노력한 걸 생각하면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
“모두들 기다릴 텐데 우리도 어서 가죠!”
“그래, 가자!”
앞장서는 소네스를 쫓아 우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던 루이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곳에는 꽤 많은 이들이 모닥불이 피워진 곳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는데 족히 육십은 넘을 듯싶다.
“루이, 이제 오냐?”
옆집 사는 파오 아저씨가 손을 들어 올리며 반긴다.
서둘러 곁으로 다가간 루이는 넙죽 숙였다.
“아저씨,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 왔다. 근데 왜 이리 늦었어?”
“아! 관리관님이 뭐 좀 확인해달라고 해서요. 근데 이게 상단주님이 저희 먹으라고 주신 고기예요?”
모닥불 옆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통에 담긴 고기를 보며 물었다.
“이것뿐인 줄 아느냐?”
파오 아저씨는 환히 웃으며 옆을 가리킨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내리던 루이에게서 놀라움이 피어난다.
“웬…… 맥주 통이에요?”
“상단주님이 오늘은 마음껏 먹으라며 갖다 놓으신 거다. 거기다 부족하면 더 먹으라고 저쪽에 맥주 통을 산처럼 쌓아두셨다.”
“그래요?”
한편에 쌓여 있는 맥주 통을 보며 루이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상단에 들어온 것은 잘한 선택이었어.’
본래 영지군이었던 그는 그나마 다른 이들에 비해 풍족하게 살았다.
그런 좋은 일자리를 관두고 상단에 들어온 것은 다 파오 아저씨 때문이었다.
네 번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그에게 상단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임금이 매우 높다며 같이 하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내였던 마리가 거세게 반대했지만 아이를 위해서 그리하자는 말로 이해시켰다. 그 결과 영지군으로 있던 때보다 두 배, 많게는 세 배가량 돈을 더 받게 되었고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생활이 좋아졌다. 거기다 영지 축제에 버금가는 이번 회식까지, 정말 상단에 들어오길 잘했다 싶다.
급히 달려와서 그런가? 순간 목이 마른 루이는 맥주 통을 들어 잔에 담았다.
막 잔을 입가에 대려는데 파오 아저씨가 돌연 손목을 붙들었다.
“상단주님도 오시지 않았는데 먹으면 어떻게 해?”
그러고 보니 주위 사람들 모두 익은 고기를 한편에 쌓아두고 눈길 한 번 주질 않는다.
그건 이곳만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분명 힘들게 일하느라 배들이 고플 텐데도 말이다. 슬쩍 눈치를 살피던 그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바닥에 맥주잔을 내려놓으려던 그때,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멀쩡한 음식 앞에서 구경만 하고 있으면 벌 받습니다.”
뭔 소리냐며 반문하려던 루이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사…… 상단주님!”
주위 사람들도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들을 향해 환히 웃는 우현이 보인다.
“여러분을 위해서 준비한 음식인데 안 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게…… 그러니까…….”
책망하는 듯한 그에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하였다.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루이가 우현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상단주님!”
우현은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이걸 본 사람들 역시 한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오셨습니까?”
“상단주님, 오셨어요?”
일일이 고개를 숙여 답을 하던 그는 슬쩍 미소를 그린다.
“배고프실 텐데 어서 드십시오.”
먹으라는 손짓에 주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고기와 술잔을 쳐든다.
그것을 보고서야 우현은 소네스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뭔 옷 입는 데 그리 오래 걸려?”
“땀이 좀 나서 잠깐 씻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형님, 근데 다들 왜 기다리는 겁니까? 제가 분명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고 있으라 하지 않았습니까?”
“명색이 상단주가 온다는데 그게 말처럼 쉽냐?”
“그런가요?”
자신의 탓이라는 말에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댄다.
“그러지 말고 뭐라고 한마디 해! 지금껏 기다린 사람들 성의를 봐서라도 말이야.”
알겠다는 듯 몸을 돌리자, 주위 가득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시선들에서 부담마저 느껴지는 가운데 그는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상단이 생긴 지 1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 모든 것이 여러분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본 상단주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미소가 피어난다. 하는 일이라곤 물건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옮기고 경계 근무 서는 것밖에 없지만 그 누구보다 상단주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기뻤기 때문이었다. 뿌듯함마저 들던 그때 우현은 자신의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러니 오늘 남은 시간 준비한 고기와 술을 먹으면서 그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도록 하십시오.”
분명 말이 끝났건만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혹시나 더 할 말이 남았으면 어쩌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쯧쯧쯧! 뭔 말을 그리 어중간하게 끝내. 끝났으면 끝났다고 표시를 해줘야 알아차리지.”
혀를 내차던 소네스는 시선을 돌려 사람들을 보았다.
“끝났잖아. 안 먹고 뭐 해? 고기 다 태울 거야?”
그제야 고기를 굽던 중이란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그런 그들을 보며 재차 고개를 내젓는데 그들 곁으로 네시아가 조르르 다가왔다.
“아저씨, 안녕!”
“어서 와!”
네시아를 안아 든 우현은 뒤따라오는 레이젠에게 고개를 숙였다.
“레이젠 형님! 오셨습니까?”
“시작한 것인가?”
“예, 지금 막 시작했습니다. 근데 상단 경계는 어찌 되었습니까? 전에 말씀하신 대로 타 용병단과 근무 교대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막 넘기고 돌아보고 오는 길이니 너무 걱정 말게.”
“형님! 우리 때문에 수고하는 것이니 가는 길에 고기 좀 싸서 주십시오. 그들도 배고플 테니 말입니다.”
“그리하도록 조치를 취해놓지.”
알겠다는 그의 말에 우현은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집어 네시아에게 넘긴다.
우물우물 씹던 그 아이는 돌연 얼굴 가득 놀라움을 나타낸다.
“우와! 맛있다. 무슨 고기가 이렇게 맛있어요?”
“돼지고기 중에서 삼겹살이란 부위인데 제법 맛이 좋단다.”
이 말에 동의하듯 소네스가 말을 한다.
“흐음! 씹을수록 고소한 것이 고기치고는 맛이 아주 좋은데…….”
레이젠 또한 그러한지 연신 주억대며 언제 받았는지 모를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