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
차원상인 003화
“그건 그렇다 치고…… 대체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거야?”
휑한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 그에게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마치 지금의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듯 말이다.
우현이 이상한 곳에서 헤매고 있는 그 순간 폐휴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를 밀던 할머니가 걸음을 멈췄다. 미소를 입꼬리에 매단 채 말이다.
“복을 받을 거라 하지 않았더냐, 아셀리오나의 아들이여?”
피식 웃던 할머니의 꾸부정한 허리가 펴진다 싶더니 신부복 비슷한 차림을 한 금발의 중년 사내로 변해 갔다. 잠시 하늘을 보며 미소를 그리던 그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싶더니 이내 사라지고 만다. 손등에 새겨진 우현과 비슷한 모래시계 문양이 빛을 내자마자 말이다.
제1-2장
터벅! 터벅!
힘없이 내딛는 발걸음 위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신이 흙투성이에,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연신 굴리며, 자신의 덩치만 한 큰 백을 등에 진 것도 모자라 양손에 한 꾸러미의 짐을 든 채 휘청대며 걷는 이 사람이 바로 우현이었다. 정체불명의 이 황무지에 온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됐건만 이렇듯 휑한 모습을 한 것은 다 변죽 들끓듯 변화무쌍한 이곳 날씨 때문이었다.
낮엔 오줌이 나오기 무섭게 기화되어 사라진다 싶을 정도로 무덥기 그지없는 데다가 툭하면 불어대는 흙먼지 바람 때문에 쉬이 눈을 뜨거나, 숨 쉬기 어려웠다. 그뿐이랴? 어둠이 찾아오기 무섭게 급격히 내려간 온도는 그야말로 살인적이라 할 만큼 추웠다. 그나마 모닥불이라도 피우면 나을 듯싶어 준비해보지만 정작 불씨를 피울 라이터가 고장이 났는지 켜지질 않아 결국 한기에 덜덜 떨면서 잠 한 숨 자지 못한 채 지새워야만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극에 달해 있는 상태라 할 수 있었다.
털썩!
주저앉은 그는 메고 있던 가방이고, 주방용 칼 세트고 할 것 없이 팽개치고는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린다.
“하아! 하아!”
세차게 뿜어지는 숨소리 위로 눈꺼풀이 들린다.
쏘아지듯 비추는 강렬한 햇빛에 손을 들어 막았다.
조금은 눈 뜨기가 수월해진 그는 시선을 위로 쳐들었다.
“해가 셋…….”
겹쳐진 듯한 반달 모양의 두 개의 해 밑에 자리한 조그만 초승달 해.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그 모습에 눈을 감고 만다.
“젠장! 대체 여기가 어디야?”
불끈 쥐어진 손이 바닥을 울린다. 여기가 어딘지, 아니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라도 알면 속이라도 편하련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그를 더욱더 힘들게 한다.
꼬르륵!
젠장!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고작 하루 굶었을 뿐인데 말이다.
“물이라도 마셨으면 좋겠군.”
그 흔한 수돗물이라도 배 터지게 마셨으면 소원이 없을 듯싶다.
그저 침으로 메마른 입술만 축이고 있던 그때 땅바닥이 울리기 시작한다.
뭔가 싶어 고개를 쳐드는데 낯선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여보게! 살아 있는가?”
너무 반가워서 그런가? 말을 듣기 무섭게 반사적으로 몸이 추켜세워진다.
막 살려 달라 외치려던 우현의 몸이 한순간 멈칫한다 싶더니 이내 어이없다는 빛을 띤다.
“저…… 저건 또 뭐야?”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만한 유럽 중세 시대 갑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말을 타고 마차와 함께 달려온다. 잘못 봤나 싶어 우현은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하지만 조금 전과 별다른 것은 없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말도 안 된다며 내뱉던 그때 어느새 다가온 그는 말을 멈춰 세우고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 손에 들었다. 순간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칼이 흘러내렸고, 그 사이로 비치는 루비 빛 눈동자와 왼쪽 눈썹 위에서 오른쪽 눈 밑으로 미간을 가로질러 난 검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특히나 우연히 마주친 그와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냉기는 등줄기를 훑고, 절로 오금을 저려 오게 만든다. 흔히들 살기에 젖은 눈빛을 보면 순식간에 몸이 움츠러들고, 겁에 질린다고 하더니 진짜인 듯싶다. 파르르 떨려오는 몸을 부여잡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주방 칼 세트를 찾았다. 아마도 본능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에 그런 듯싶다. 그런 그를 무심히 바라보던 중년 사내가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괜찮은가?”
“아, 예!”
“그렇다면 다행이군!”
조금은 안도의 빛을 띠는 상대와 달리 우현은 당혹감 일색이다. 그럴 것이 어찌나 한국말을 잘하는지 한순간 한국인인 줄 알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귀화한 사람인가?’
상황 파악 못하고 귀화까지 들먹이던 그때 중년 사내, 레이젠은 주위를 살피며 급히 말을 건넸다.
“날 따라오게. 이곳은 몬스터 이켄트리아(곰처럼 커다란 덩치를 가진 늑대 비슷한 몬스터로, 지구로 치면 하이에나에 가깝다. 흔히 삼십여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닌다.)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위험하네.”
‘모…… 몬스터?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어리둥절해하는 그에 레이젠은 이맛살을 좁혔다.
“못 들은 것인가?”
“예에……?”
“이럴 틈이 없네. 테오른 황무지의 이켄트리아는 오크들도 치를 떨 정도로 무섭기 그지없으니 말이야. 그러니 어서 날 따라오게.”
‘오크도 치를 떨어? 뭐야? 판타지 게임이야? 반지의 제왕이야? 대체 뭐야?’
갑옷에, 말을 타고 올 때부터 느낌이 안 좋다 싶었지만 설마하니 이런 얘기까지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돌연 말 밑으로 내려선 레이젠이 방패 밑에 걸린 궁을 뽑아 들어 어딘가로 쏘아 보냈다.
크아아앙!
흡사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같은 것이 뒤쪽에서 울려 퍼진다.
‘뭐, 뭐야?’
놀란 그는 다급히 시선을 돌렸고 공중으로 흩날리는 모래 가운데를 뚫고 뭔가가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레이젠이 앞으로 나서며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서거겅!
순간 괴물의 핏물로 보이는 검붉은 빛의 액체가 허공에 뿌려졌다.
얼굴과 상의 가득 묻었건만 우현은 느끼지 못하는지 몸만 덜덜 떨어댔다.
그때였다. 시커먼 뭔가가 앞에 떨어지더니 데구루루 굴러 발 앞에 자리했다.
모히칸 머리처럼 치솟아 있는 뿔들과 입을 비집고 나오다 못해 턱 밑까지 툭 튀어나온 어금니까지 딱 봐도 동물이기보다는 어릴 적 책에서 보았던 샤벨 타이거(스밀로돈, 한국명은 검치 호랑이. 공룡 시대가 멸망한 후, 중신세 때 사자, 호랑이, 살쾡이 등과 같은 그룹으로 갱신세를 지나 멸종되었다.)를 연상시켰다. 방금 죽어서 그런지 움찔대는 눈동자에 우현은 놀라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극심한 고통이 엉덩이에서부터 올라왔음에도 전혀 느껴지질 않는지 그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으아아아!”
창백해진 낯빛만큼이나 요동치는 눈동자.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가 온몸을 휘감기 시작한다.
충격 속에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대던 그때 돌연 조금 전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크허어엉!
돌아간 시선 너머 바닥에 몸을 눕힌 채 요동치는 몬스터의 목덜미에 검을 꽂아 비트는 레이젠이 보인다. 얼굴 가득 붉은 핏물로 얼룩진 채 아귀상을 하고 있는 그에게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저…… 정말 중세 시대로 온 거야?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그제야 자신이 어떤 세상에 온 것인지 실감이 난다.
이때 검에 꽂힌 몬스터가 한 차례 더 울부짖는가 싶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허나, 이것이 끝이 아닌 듯 레이젠은 뽑아낸 검을 들고는 옆으로 빙그르르 돌며 베어갔다.
서겅!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잘린 머리 위로 뿌려진 검붉은 핏물이 온몸을 뒤덮는다.
하지만 별 느낌 없는지 레이젠은 검을 바닥에 꽂고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샌드 스톰!”
순간 모래 낱알들이 솟구쳐 공중에 떠 있다 싶더니 이내 회오리쳐 오른다.
그 기세가 너무도 맹렬하여 몬스터들도 쉬이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용솟음치던 모래들이 넝쿨 줄기처럼 일곱 갈래로 나뉘어 제각각 날아가기 시작한다.
그것들이 몬스터에 맞닿을 즈음 돌연 모래들이 흩어지며 시퍼런 한광과 함께 뿌옇게 빛을 내는 검을 든 레이젠이 모습을 드러냈다. 놀라운 것은 다른 여섯 개의 모래들에도 그가 검을 쳐들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마치 분신술이라도 행한 듯 말이다.
서겅! 크허엉! 크아앙!
빠르게 베이는 그의 검 위로 잘린 파편이 이리저리 날아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검붉은 핏물로 물들어 가고 그 위엔 토막 난 몬스터가 몸을 눕히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던 그때 운이 좋은 건지, 피한 건지 몬스터 한 마리가 한 다리를 절룩대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 이이이!”
우현은 두려움에 떨어대는 손을 뻗어 주방 칼 세트를 잡으려는 찰나, 언제 나타났는지 레이젠이 몬스터의 머리 위로 검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크허어엉!
검에 꽂혀 고개를 땅에 처박고 미친 듯이 몸부림치던 몬스터는 이내 힘없이 늘어졌다.
뽑았던 검을 재차 찔러 확인 사살까지 하고 나서야 레이젠은 검을 회수했다. 던져놨던 궁을 집어 들던 그의 시선이 우현에게 닿자 일순 부르르 떨며 황급히 주방 칼 세트를 품에 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젠은 궁을 들어 말안장에 꽂으며 말을 하였다.
“조금 전 본 것이 이켄트리아라네. 열 마리가 채 안 되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며칠 굶은 듯싶네.”
“그, 그렇습니까?”
대답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품에서 주방 칼 세트를 놓질 않았다.
혹시나 자신을 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저히 몸에서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 테오른 황무지에서 혼자서, 그것도 한복판에서 대자로 뻗어 잘 생각을 한 것인가?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인가?”
한바탕 호통을 치려던 그는 이내 그만 멈추었다. 목소리를 높이기 무섭게 푹 숙인 고개 밑으로 짙게 드리워진 두려움 가득한 두 눈동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공포심이 머리끝까지 아주 단단히 쓰인 모양이군.’
하긴 눈앞에서 그 흉악한 몬스터들이 달려드는데 겁먹지 않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그를 지켜보던 레이젠은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부드러운 어투로 말을 건넸다.
“일행은 있는가?”
“예에?”
“일행이 있냐고 물었다.”
우현은 도리질하는 고갯짓으로 답을 대신한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터라 더는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당분간 우리와 같이 다니세. 혼자 다니기에 이곳은 너무도 위험하니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말에 올라탄 레이젠은 마두를 돌려 마차 쪽으로 향하였다.
멀어져 가는 그를 보던 우현은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기고 뒤쫓기 시작한다.
몬스터 시체가 즐비한 이곳에 홀로 남겨지기는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