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0
차원상인 030화
그걸 보며 웃던 우현 곁으로 주방장 톰슨이 뭔가를 한 아름 안고 다가온다.
“상단주님! 가져왔습니다.”
“여기다 몇 개 주시고 다른 곳에도 골고루 나눠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녹색의 넙적한 야채가 담긴 나무통을 몇 개 두고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난생처음 보는 것에 소네스는 궁금해 우현에게 물었다.
“이게 뭐야?”
“형님, 이게 상추라는 것인데 고기와 싸 먹으면 맛이 아주 좋습니다. 특히나 그 안에 이 쌈장이라는 것과 김치까지 곁들이면 그만이죠.”
시범을 보이듯 상추 두 장을 겹쳐서는 그 위에 삼겹살 한 점과 쌈장, 김치를 올려서는 돌돌 싸서 입에 넣는다. 아삭아삭하는 소리가 식욕을 자극하고 개구리처럼 부풀어 오른 양 볼이 움직일 때마다 절로 입가에 침이 고인다. 보다 못한 소네스가 우현처럼 싸서 입가에 넣었다.
“응…… 흐흥…… 응응!”
한가득 담긴 것 때문인지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엄지를 치켜든 것이 매우 맛있는 것 같다. 특히 레이젠은 김치라는 것을 연신 먹어댔는데 매운지 입가에 손부채질을 하면서도 멈추질 않는다.
“크으…… 이게 대체 뭔가? 매우면서도 묘하게 입맛을 당기는 것이 멈출 수가 없구만.”
“김치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죠.”
“그…… 크음! 그도 그럴 것 같구만.”
매워서 그런지 잠시 헛기침을 하다 결국 맥주 한 잔을 들이켠다.
이때 입안에 든 것을 다 삼켰는지 소네스가 말을 건넸다.
“우와! 이거 죽이는데……. 아삭아삭 씹히는 야채의 식감에다, 매운 맛이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줘서 그런지 한층 더 맛있어.”
“입맛에 맞다니 다행입니다.”
맛있다는 말에 우현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소네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둘 상추에 고기를 싸서 먹는다. 물론 덤으로 쌈장과 김치도 얹어서 말이다. 곳곳에서 탄성이 일고, 개중에는 고기 먹는 법의 신기원을 보았다며 놀라는 이도 있었다. 허겁지겁 상추에 손을 뻗지만 어느새 텅 비어버린 나무통에 사람들은 주방장 톰슨을 부르느라 여념이 없다.
‘반응이 제법 좋은데……. 이참에 상추와 쌈장, 김치도 가져와 팔아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우현은 보이는 족족 팔 물건으로 보이는 듯싶다.
그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한 사내가 레이젠을 불렀다.
“대장님! 한잔해도 되겠습니까?”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상단 치안을 맡고 용병 중 하나이다.
“그러게! 단, 오늘 저녁 근무가 없는 이만 먹어야 할 거야.”
“고맙습니다.”
희희낙락대던 그들은 일제히 맥주잔을 쳐든다.
“자아, 마셔보자!”
일종의 구호인 듯한 그 말에 겨우 상념에서 벗어난 우현은 안고 있던 네시아를 내려놓고는 아까 상추와 함께 갖다 준 박스를 열고는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또 뭔가?”
“술입니다.”
우현은 손에 쥔 대나무통(소주를 병째로 가져오긴 그래서 일부러 이것을 구해 담아 왔다.)을 들어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술이라고?”
“예! 소주라는 술로, 다른 말로는 노주(露酒), 이슬로 만든 술이라고도 하지요.”
“이슬로 만든 술이라?”
그래서 그런 것일까?
잔에 담긴 술은 맥주와는 달리 색이 전혀 없다.
맹물을 보는 듯해 신기한 듯 연신 보는 레이젠을 우현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본다.
사실 소주의 또 다른 이름이 노주라는 것은 그도 영업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또한, 진로라는 회사명도, ×이슬이라는 상표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멍하니 대나무 통만 바라보는 그에게 우현이 술병을 들어 보였다.
“형님, 한 잔 해보시겠습니까?”
속내를 들킨 듯하여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회가 동한 터라 사양 따윈 하지 않았다.
“괜찮다면 한 잔 줘보게.”
단숨에 맥주를 비운 레이젠은 잔을 들어 올렸다.
졸졸졸!
잔에 따라지는 소주를 보며 레이젠은 또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슬로 만들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맑겠거니 했지만 이렇듯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한 잔 쭈욱 들이켜십시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밋밋했던 첫맛과는 달리 뒷맛은 오만상이 다 지어질 정도로 쓰다.
‘크으!’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이니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조금 쓰구만!”
“쓰죠. 우린 그것을 인생의 맛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맛?”
“살면서 느꼈던 그 아픔들이 생각날 정도로 쓰다고 하여 그리 부릅니다.”
“고달팠던 인생의 쓴맛이라…….”
우현의 말이 맞는 듯싶다. 이렇듯 쓴맛이라면 힘들었던 과거가 절로 생각날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하던 그때 돌연 뜨거운 열기가 가슴을 타고 목 줄기로 넘어온다 싶더니 얼굴을 붉게 달아오르게 만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열기는 그 여세를 몰아 온 사지로 휘몰아치듯 돌아다닌다. 기사 수업을 듣던 중 처음 마나심법을 돌렸을 때 맛봤던 그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이게 무슨…….”
손을 들어 은은한 온기를 발하는 얼굴을 만졌다.
설마하니 한 잔 마시고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피식 웃던 우현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소주가 좀 도수도 있는 편이라 그럴 겁니다.”
그의 말이 맞는 듯싶은 것이 기분이 알딸딸하니 취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좋았다.
“묘한 술이구만!”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그때 소네스가 끼어들었다.
“대체 무슨 얘기를 그리하는 거야? 그건 또 뭐고?”
“소주라는 술이래.”
“술? 어디 나도 한 잔 줘봐!”
받아먹던 소네스는 이내 기침을 해댄다.
“크윽! 뭔 맛이 이래?”
“인생의 맛이란다.”
“인생?”
뭔 개소리냐며 눈살을 찌푸리는 그를 보며 피식 웃던 레이젠은 대나무 통을 들어 잔에 부었다. 그러고는 치켜든 잔 너머 우현을 보며 또 한 번 미소를 자아냈다.
“술이 맘에 드는군.”
“다행입니다.”
둘은 서로를 보며 시원하게 술을 들이켰다.
“맛도 없는 술을 왜 저리 좋아하는 거야?”
소네스는 이해 못한다는 듯 내저었다. 이렇게 고려 충렬왕 때 몽고군에 의해 들어온 소주는, 다시 우현을 통해 대륙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제2-3장
시끄럽던 상단 회식도 끝난 지 오래.
어느덧 해도 저물어 어두컴컴해진 하늘 위로 세 개의 달이 삐죽 고개를 치민다.
모두가 잠든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때 일말의 무리가 어둠 속을 헤치고 달려간다.
서른은 족히 넘을 듯한 그들은 한참을 내달린다 싶더니 한 대저택 앞에 멈춰 섰다.
모두가 어둠에 몸을 숨긴 가운데 두목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슬쩍 고개를 쳐들어 본다.
그러자 커다란 철문을 환히 밝힌 화롯불과 그 주위를 서성이는 서너 명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검, 창, 도끼 등 제각각의 무기를 든 것이 용병인 듯싶다. 날선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는 그들을 지켜보던 두건을 두른 한 사내가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저곳이 맞소?”
“맞소! 화이트 그리핀 상단이 있는 곳이…….”
바드득 이까지 갈아대는 이 사람, 복수를 위해 용병단을 이끌고 온 몰핀이었다.
맞는다는 말에 질문을 했던 사내, 코펜이 뒤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사내 셋이 일어서 어딘가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나자, 그중 한 사내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찾았느냐?”
“예, 두목!”
코펜은 허리춤에 찼던 도끼를 들어 올렸다.
“가자!”
신호에 맞춰 일어선 사내들은 코펜을 따라 앞서 갔던 이를 쫓았다.
조셉과 같이 뒤늦게 몸을 일으킨 몰핀 또한 그들 뒤로 뛰기 시작했다.
저택을 빙 돌아 북서쪽 한 벽에 선 그들의 눈에 담 위로 솟은 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코펜은 자신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를 보았다.
“다른 두 사람은 어디 있지?”
“이미 벽을 넘어가 주위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래?”
슬쩍 돌아간 시선과 마주친 사내 둘이 벽 앞에 섰다.
코펜이 그들을 발판 삼아 벽을 타고 넘자 다른 이들 또한 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조셉까지 넘어 들어오자 사내들은 조심스레 움직였다.
드문드문 난 나무를 방패 삼아 점차 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물품 창고는 저쪽인가?’
조그만 헛간 곁을 지나려던 코펜이 돌연 주먹을 쥐며 멈춰 섰다.
모든 이들의 발걸음이 멈추고 일제히 숨까지 멈춘다.
저벅저벅!
쥐 죽은 듯 있는 그들 앞으로 용병 둘이 횃불을 들고 지나쳤다.
다행히 그들은 보지 못한 듯 연신 다른 곳만 살피고 있었다.
코펜의 손짓을 받은 사내 둘이 일어서 조심스레 용병들 뒤로 다가섰다.
“큽!”
순간 허파의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잠시 바르르 떨던 두 용병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들을 근처 나무 뒤로 데려가 숨기는 것을 본 코펜은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하였다. 막 창고로 다가서려던 그때 용병 둘이 횃불을 들고 와 인근만 살피고 있는 것이 쉬이 물러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칫! 귀찮게 됐군.’
혀를 차던 코펜은 왼편을 보며 손짓을 해댔다.
그걸 본 한 사내가 등 뒤에서 긴 대롱을 꺼내 입에 물고 불었다.
“큭!”
“으윽!”
짧은 비명과 함께 용병들은 목을 부여 쥔 채 쓰러진다.
서둘러 그들을 숨기려 다가가던 사내들 중 하나의 발밑에 돌연 형광색을 띤 원방진이 그려진다. 기묘한 글자들과 문양이 그려져 가는 것을 본 코펜은 그만 이맛살을 좁혔다.
“젠장! 알람마법인가?”
혹시나 도둑이 들까 염려한 소네스가 창고 근처에 알림마법을 설치해 두었는데 그것에 딱 걸린 것이었다.
삐이익! 삐이이익!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해하던 코펜의 시선이 몰핀을 찾았다.
이곳에 마법사가 있다는 걸 왜 말하지 못했느냐며 추궁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있는 것이 그 또한 모르고 있었던 듯싶었다.
‘보르네오 자작가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거절했어야 했는데…….’
자책 속에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그때 돌연 몰핀이 횃불을 들고 뛰어간다.
“이, 이봐! 어디 가는 거야?”
“창고를 태워야 해! 창고를…… 창고를…….”
버럭 소릴 질러보지만 들리지 않는 듯 그저 창고를 태워야 한다는 말만 읊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막상 창고 앞에 선 그는 이내 손에 든 횃불을 툭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저 나무로 짠 평범한 창고인 줄 알았건만 직접 보니 철로 만든 쇠창고였던 것이다.
“저런 병신 새끼 같으니! 딱 봐도 쇠창고인데 왜 태우려 했던 거야?”
땅바닥에 주저앉는 그를 보며 욕설을 내뱉던 코펜은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전투태세를 갖춰라! 어서!”
맘 같아선 돌아가고 싶지만 이미 꽤 저택 안으로 들어온 데다가 알람마법 때문인지 주위가 대낮처럼 환히 밝아져 조용히 돌아가기는 틀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