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1
차원상인 031화
그의 말을 들은 사내들은 머리 위에 얹고 있던 늑대 탈을 내려 썼다.
이것은 스쿠루 파인 용병단이 전장에 나설 때 쓰는 것으로 그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침입자다!”
“저놈들을 잡아라! 어서 잡아!”
쏟아져 나오는 상단 용병들에 코펜은 큰 소리로 외쳤다.
“방패로 달을 갈라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쿠루 파인 용병단 단원들 중 방패를 든 자들이 우르르 나선다.
근데 꼭 모양새가 보름달, 반월을 그리듯 늘어선 것이 아무래도 반원방진을 펼치는 듯싶다. 이 진은 앞으로 몰려오는 적의 공세를 막으면서 후퇴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지금 상황에서는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었다.
꽈꽉! 팍! 차창!
상단 용병들의 공격이 방패에 막히기 무섭게 뒤에 있던 사내들이 도끼로 찍어 끌어오거나, 팔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안으로 끌려 들어온 자들은 곧이어 날아든 검과 도끼에 명을 달리한다. 전장을 제집 드나들 듯해서 그런 것인지 같은 용병들임에도 합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스쿠루 파인 용병단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을 보이고 있었다.
“크아아악!”
또다시 끌려간 사람들에게서 비명이 솟구치자 상단 용병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 날아든 창에 목과 가슴이 꿰이고 만다.
“아아악!”
“크윽!”
거친 비명과 함께 핏물이 바닥에 쏟아져 내린다.
힘없이 무너져 가는 이들을 지나쳐 도망치는 상단 용병들을 향해 창이 뻗어진다.
한순간 잘린 주인 잃은 머리 하나가 허공을 맴돌다 떨어져 내린다. 어느 틈에 십여 보 정도로 거리가 벌어지자 코펜은 또다시 명을 내렸다.
“전방 경계! 후방은 뒤로 물러난다.”
여전히 방패로 막아선 채 스쿠루 파인 용병단은 발걸음을 차츰차츰 뒤로 물렸다.
그것도 잠시, 돌연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며 후방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어 온다.
“어떤 개자식이 잠도 못 자게 설치고 지랄이야!”
“우와! 톨른이다.”
맨몸에 왼쪽 팔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갑주를 두른 민머리 사내, 톨른은 짜증을 한가득 퍼부어 내며 또 한 번 커다란 철퇴를 휘두른다. 간만에 쉬는 날이라 술 한 잔 걸치고 기분 좋게 자려는데 비명 소리가 들려와 부리나케 달려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때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방패로 막고 있던 스쿠루 파인 용병단 단원 하나가 바닥에 몸을 눕힌다.
“시끄럽다! 넌 입으로 싸우냐? 문어 대가리야!”
“노리스도 나섰다.”
양 모양의 투구를 쓰고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턱수염의 소유자, 노리스의 등장에 또 한 번 상단 용병들에게서 함성이 울려 퍼진다. 그런 그들이 맘에 안 든다는 듯 톨른은 더욱더 거칠게 소리쳐 댄다.
“소갈머리 없는 비루한 당나귀같이 생긴 주제에…… 누굴 문어라고 욕해?”
소갈머리 없는 것을 감추기 위해 평상시에도 그 무거운 투구를 쓰고 다니는데 이것을 톨른이 대놓고 폭로를 해댄 것이다. 일순 치미는 노기에 노리스는 대검을 들어 올리며 악을 바락바락 써댄다.
“뭐…… 뭣이? 이 빌어먹을 자식! 내게 죽어 볼 텨?”
“그럴 능력이나 되고?”
“씨벌! 좋다.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생사가 오가는 가운데서도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
상단에 거주하는 용병 중 유일한 A급 용병인 이들의 등장으로 한순간 기세가 오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순간 어두워졌던 주위가 또다시 밝아졌다. 놀란 코펜이 고개를 쳐들자 저 멀리 하늘에 라이트 볼 하나가 떠 있다. 분명 마법사의 짓이라며 서둘러 흔적을 찾아보지만 라이트 볼을 날린 당사자 소네스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어둠의 이점마저 사라져버린 스쿠루 파인 용병단은 차츰 무너져 간다.
특히나 후방의 경우에는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처참하게 깨졌다.
보다 못한 코펜이 큰 소리로 외쳤다.
“원을 둘러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방에서 싸우던 이들이 물러서고 방패를 든 이들이 나선다.
후방마저 원을 그리듯 둘러싸서 이젠 반원방진이 아닌 원방진으로 진 자체를 바꿨다.
철옹성을 만들 듯 촘촘히 둘러싸 보지만, 괴력을 앞세운 톨른과 노리스의 공세에 점점 흐트러졌다. 보다 못한 코펜은 지휘하는 것을 멈추고 부단장인 단코에게 노리스를 맡게 하고 자신은 톨른을 향해 뛰어갔다.
“아아악!”
스쿠루 파인 용병단 단원 하나가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다.
재차 내리찍던 톨른의 철퇴가 돌연 허공에서 튕겨져 나간다.
“씨벌! 이건 또 뭐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드는 차가운 한기에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순간 거친 비명과 함께 주인 잃은 머리가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반 토막이 난 검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상단 용병을 보며 살기를 피우던 톨른의 얼굴에 당혹감을 깃든다.
“오러…… 유저?”
무심코 상대를 쫓던 시선 위로 코펜의 양손에 쥔 도끼날에 둘러진 시퍼런 빛 덩어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것을 넘어 무기에 주입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상대의 실력은 오러 비기너인 자신보다 높은 오러 익스퍼트 등급인 듯싶다. 예상 밖의 강자의 등장에 뼛속 가득 한기가 스며든다.
‘이런 자가 이제까지 왜 알려지지 않은 거지?’
스쿠루 파인 용병단이 전장에서 악명이 높긴 하지만, 그렇다고 등급이 높은 건 아니다.
고작 해봐야 B등급 정도 될까? 그런 질 낮은 용병단에 S급 정도 되는 오러 익스퍼트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자신만 그런 줄 알았는데 둘러보니 부단장 단코와 싸우는 노리스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혹해하는 그를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코펜은 양손에 든 도끼를 빙그르르 돌리며 달려 들어왔다.
“이런…….”
톨른은 차마 정면 대결하지 못하고 왼팔에 두른 갑주를 이용해 날아드는 도끼의 옆면을 쳐냈다. 뒤이어 찍어 오는 것 역시 철퇴를 휘둘러 튕겨냈다. 가까스로 세 번째 공격까지 갑주로 막긴 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파괴력을 우선시하는 무겁고 둔한 철퇴로는 빠르게 연환되어 날아드는 두 도끼를, 그것도 마나가 주입된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인가?’
눈 위로 내리꽂히는 도끼를 보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근데 예상했던 고통이나 통증 따윈 없고 대신 쇳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진다.
까깡!
“누구냐?”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대한 분노일까?
코펜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지며 자신의 도끼를 쳐낸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넉살 좋은 얼굴로 빙그레 웃고 있는 필리온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 잘못 쏴서 도끼를 맞춰 버렸어.”
실실대며 웃는 그와는 달리 코펜의 낯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럴 것이 활에 둘러진 천에 새겨진 특이한 문양은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샌드 스톰인가?”
생각지 못한 상대의 등장에 놀라던 그때 톨른이 버럭 소릴 질렀다.
“죽이려고 작정했어? 아군 적군도 구별 못해?”
“내 눈엔 잘 익은 문어 한 마리밖에 안 보이던걸?”
“저 양반이…….”
문어 타령에 톨른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버린다.
그걸 보며 히죽대는 필리온 옆으로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는지…….”
한숨짓던 티아는 뒤춤에서 사복검(무협의 구절편처럼 검신이 쪼개져 채찍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검)을 뽑아 들고는 스쿠루 파인 용병단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또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인가?”
어깨 갑주에 박힌 문양을 통해 상대의 정체를 알아챈 코펜은 서둘러 바닥을 박찼다.
허나, 채 두 걸음도 못 가 멈춰야만 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엘레토가 긴 창을 휘두르며 압박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차차창!
“이…… 이런…….”
튕겨나가는 도끼를 따라 뒷걸음치던 그는 땅에 떨어져 있는 검을 발로 차 날렸다.
허나, 이쯤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엘레토는 긴 창을 빙그르르 돌려 너무도 간단히 튕겨냈다. 그 틈을 타 거리를 벌린 코펜은 도끼를 잡고 있는 양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그만 얼굴을 찡그렸다.
‘엄청난 힘이군! 고작 두어 번 부딪친 걸로 내 손을 떨게 할 줄은 몰랐어.’
어이없어 하는 그는 엘레토가 입은 갑주 가슴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는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럴 것이 그 문양은 아까 활에 묶여 있던 천에 그려진 것과 한 치의 틀림도 없는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너도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출신이었군.”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이 한 명만 있어도 힘든 판국에 세 명이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 발로 무덤 자리에 온 형세군.’
청부자가 보르네오 자작가의 아들이라 했을 때 거절했어야 했다.
다른 때와 달리 두 배를 준다는 말에 혹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이야.
후회와 자책이 물밀듯이 밀려오지만 이미 때는 늦은 지 오래였다.
긴 한숨과 함께 도끼를 쥔 손에 힘을 불어넣던 코펜이 슬쩍 시선을 쳐들자 긴 창을 자신의 옆에 세운 채 말없이 서 있는 엘레토가 보였다. 마치 자신이 시작하면 그때 싸울 준비를 하겠다는 듯 말이다. 피식 웃던 코펜은 상대를 향해 소리쳤다.
“씨발! 기왕 죽을 거 화끈하게 죽자! 용병답게 말이야.”
거칠게 일갈을 토해내던 그는 손에 든 긴 창을 빙글빙글 돌려가는 엘레토를 향해 도끼를 휘둘러 갔다.
“윈드 토마호크!”
순간 허공으로 치솟은 코펜의 몸이 풍차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엘레토는 손에 든 긴 창을 돌려 원을 그려갔다.
차차창!
거친 쇳소리와 불똥이 주위로 날아오른다.
채 다가서지 못한 채 결국 바닥에 내려선 코펜은 재차 도끼를 휘둘러보지만 곧이어 찔러오는 창 밑부분에 가슴을 맞고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겨우겨우 몸을 멈춰 세우지만 이내 치민 시뻘건 핏물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와 상의를 더럽혀간다.
“쿨럭!”
재차 토해내던 그는 창백한 낯을 한 채 손을 들어 입가를 훔쳤다.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이 대륙 최고라고 하더니…… 허명은 아니군, 그래?”
광기 어린 눈빛을 흘리며 양손에 든 도끼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다가서려는데 돌연 비명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아아악!”
“으윽! 도…… 독이…….”
“사, 살려줘!”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던 코펜의 낯이 일순간 처참하게 구겨졌다.
그럴 것이 시선이 맞닿아 있는 곳에 청녹빛의 안개가 주위 가득 퍼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이드라 화무! 설마…….”
코펜은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헤이드라 화무는 독연(毒煙) 중 하나로 살상력이 워낙 강해 용병들도 금기시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전장에서조차 쓸 수 없게 했을 정도이니 어느 정도인지 알 것이다. 문제는 그걸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스쿠루 파인 용병단 중에 있다는 것이다. 그를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던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단장! 어서 도망쳐! 어서!”
“다, 단코?”
어느새 곁으로 다가선 단코는 코펜의 허리춤을 잡고 뒤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