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2
차원상인 032화
“여기는 내게 맡기고 어서 가!”
“하지만 단코?”
“단장만 믿어! 꼭 우릴 이리 만든 보르네오가를 부숴버려! 알았지?”
“단코…….”
빙긋 웃던 그는 가라며 손짓을 한다.
코펜은 머뭇대다 이내 발길을 돌렸다.
그걸 본 단코는 돌아서서는 품에서 헤이드라 화무를 꺼내 들었다.
어느새 주위 가득한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다가오지 마! 누구든지 가까이 오면 터트릴 거야!”
어떻게든 도망칠 시간을 만들기 위해 손에 든 것을 보이며 위협해보지만 곧이어 날아든 필리온의 화살에 외마디 비명과 함께 놓치고 만다.
“크아아악!”
화살이 꽂힌 손목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는 바닥에 떨어진 헤이드라 화무를 잡으려 하였다. 허나, 또다시 날아든 화살들이 어깨와 허벅지에 틀어박히면서 이내 그대로 쓰러져야만 했다.
“다…… 단장! 도망……가야 해!”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코펜은 땅바닥에 누워 꿈틀대는 단코를 보았다.
다행히 죽이지는 않았는지 상단 용병들은 그의 몸을 밧줄로 포박하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희생은 그들 또한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만 있어라. 나중에 꼭 찾으러 올 테니…….’
어금니를 꽉 문 그는 차마 돌려지지 않는 발길을 틀어갔다. 하지만 도망치기란 생각처럼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럴 것이 이미 후방은 상단 용병들이 차단한 데다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사람들이 개입하면서 스쿠루 파인 용병단이 무너져 갔기 때문이었다. 공격해 오는 상단 용병의 턱을 도끼날 옆면으로 후려쳐 쓰러트린 그는 도망칠 곳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때 창고 왼편에 숨어서 발발 떠는 몰핀이 보였다.
“저놈 때문에 이 사달이…….”
돋아나는 살심만큼이나 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싸우는 사람들을 밀치고 다가간 코펜은 몰핀을 향해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만큼은 꼭 처치해야 속이 풀어질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채 내리찍기도 전에 거대한 마나의 기운이 전신을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뭐…… 뭐지?’
자신도 모르게 돌아간 시선 위로 한 중년 사내가 검을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너무도 평범한 모습과는 달리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중압감과 하늘을 찌를 듯한 드높은 기세, 끝없이 펼쳐진 대해를 보는 듯한 엄청난 마나의 기운까지. 천지에 이렇게까지 거대하게 느껴지는 이는 처음 보는 듯하였다.
“오러 익스…… 아냐! 못해도 오러 마스터에 필적할 것이 분명해!”
두려움이 깃들어 가는 그와는 달리 중년 사내, 레이젠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형님, 늦었어!”
윈드 마법을 통해 독연을 상단 밖으로 날려 보낸 소네스가 뒤늦게 온 그를 책망한다.
“네시아가 무섭다고 해서 달래느라 늦었구나.”
“이 상황에서도 네시아 먼저 챙기는 거야?”
“……너도 딸 낳아봐라!”
이 말로 모든 걸 정리해버리는 그에 소네스는 쓴 입맛만 다신다.
“그나저나 이놈들은 어디서 온 놈들이냐?”
“자세한 건 모르겠고, 저기 일전에 온 보르네오가의 몰핀 남작이 보이고, 창고를 불태우려 했다는 걸 보면 아무래도 복수 때문에 온 것 같은데…….”
“몰핀 남작이라면…… 혹시 1골드에 종이 독점권과 제조법을 달라고 협박했다가 오히려 그의 가문에 물품 판매 중지 처분당한 그 녀석 말이냐?”
“맞아, 그 녀석이야!”
레이젠은 한숨을 푹 내쉬며 내젓는다.
“제법 일을 거창하게 벌였구나! 이 일로 인해 생길 캐슬의 뒤끝이 심히 걱정되는구나.”
그랬다. 벌써 석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지금까지도 보르네오가는 물품 하나 받지 못하고 있다. 우현의 기나긴 뒤끝으로 물품 판매 중지를 철회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일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심히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빨리 정리 좀 해! 괜히 내버려 뒀다가 캐슬의 뒤끝을 더 크게 만들지 말고…….”
알겠다는 듯 끄덕이던 레이젠은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나저나 주위 상황이 복잡하기도 하군.’
전세가 상단 용병들에게로 기울었음에도 스쿠루 파인 용병단은 악착같이 대든다.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용병 특유의 기질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귀찮게 됐다 싶던 그때 눈에 뜨이는 자가 있었다.
“저자인가 보군.”
정확히 코펜을 바라보던 그는 살짝 발을 들어 굴렀다.
쿵!
움푹 파여 들어간 발 주위에 자그마한 먼지가 피어오른다 싶더니 호수에 던져진 돌이 일으킨 파장처럼 주위로 뻗어 간다. 레이젠의 마나와 뒤섞여 뿜어지는 그 엄청난 기운은 무슨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주위를 뒤덮어 가기 시작했다.
“크아악!”
“뭐, 뭐야!”
“어어어!”
한차례 바람이 인다 싶더니 난데없이 허공으로 떠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뒤로 날아 나뒹굴었다. 상단 용병이고, 스쿠루 파인 용병단이고 할 것 없이 모조리 다 말이다. 한순간 거짓말처럼 앞이 확 트이고 그 끝엔 사정없이 낯을 일그러트린 코펜만이 있을 뿐이었다.
죽일 듯이 쏘아보는 그를 보며 피식 웃던 레이젠의 발이 땅을 박찼다.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삽시간에 30미터가량의 거리를 좁혀온 것을 본 코펜은 자기도 모르게 도끼를 들어 막았다.
까깡!
거친 쇳소리와 함께 몸이 주르륵 뒤로 물러난다.
양팔을 교차해 막았음에도 손목, 팔 곳곳이 통증을 호소한다.
허나, 코펜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거칠게 소리쳤다.
“스네이크 티스!”
도끼 밑에 검을 끼워 돌림과 동시에 다른 도끼로 찍어갔다. 당연히 도끼에 낀 검으로 인해 피해 갈 거라 생각했건만 오히려 레이젠은 앞으로 달려들며 숄더 어택, 일명 몸통 박치기를 한다.
“크으윽!”
한순간 가슴에서 피어난 통증에 그만 발걸음을 뒤로 물리면서도 코펜은 손에 쥔 도끼는 놓지 않고 그대로 찍었다. 하지만 간단히 몸을 돌려 피한 레이젠은 검을 들어 찔렀다.
“샤이닝 스피어!”
한순간 마나에 휩싸인 검은 붉은 빛 덩어리로 화해 꽂혀온다.
막기 힘들다 여긴 코펜은 바닥에 몸을 굴려 피하면서 상대의 발목을 향해 도끼로 베어갔다.
허나, 어느 틈에 날아왔는지 레이젠의 검이 도끼를 쳐낸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코펜은 빠르게 두 도끼를 교차해갔다.
“데쓰 오브 네팅!”
날에 둘러진 마나 때문일까? 휘둘러지는 도끼를 따라 허공에 그려지는 빛 무리가 마치 촘촘히 짜인 그물을 보는 듯하다. 전신을 뒤덮는 듯한 착각마저 들던 그때 코펜은 또 한 번 휘둘러 가던 도끼를 쳐들어 그대로 찍었다. 마치 전갈의 꼬리가 먹잇감을 노리듯 말이다.
“스네이크 테일!”
이것은 히든 스킬이자 코펜을 지금껏 전장에서 살아남게 한 마지막 한 수이기도 하다.
회심의 일격이 머리 위로 떨어지건만 빙그레 웃던 레이젠은 검을 치켜들어 찔러 간다.
순간 시간이 멎은 듯 깊은 정적이 주위를 에워싼다.
창백한 낯빛을 한 채 거친 호흡을 토해내던 코펜은 슬쩍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턱 밑에 자리한 날카로운 예기를 담은 검 끝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거칠게 토해내던 그의 두 눈이 질끈 감긴다. 마나의 그물을 뚫은 것도 모자라 교묘하게 두 도끼를 피해 턱 밑에까지 검을 찔러오던 조금 전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검술도, 경험도…… 모두 한 수 아래다. 아니…… 한참 아래다.’
마음속 깊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코펜은 이내 들고 있던 도끼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잘 싸웠다.”
이 말을 끝으로 레이젠은 검을 갈무리하며 돌아섰다.
두목이 져서 그런 것일까? 억척스럽게 대들던 남은 스쿠루 파인 용병단 단원들은 이내 무기를 떨구고 순순히 포박을 받았다. 이렇게 한밤중의 소란은 끝이 나고 있었다.
제2-4장
다음 날 아침, 우현은 식사도 거른 채 침울한 얼굴로 서재에 앉아 있었다.
어제저녁 있었던 일을 전해 받고 그런 것이었다. 그 당시 깨어 있긴 했지만 레이젠이 만약에 대비해 용병 몇과 함께 지하실로 대피시킨 탓에 이제껏 모르다가 뒤늦게 소네스를 통해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침묵으로 일관하던 우현이 무겁디무거운 입술을 떼었다.
“소네스 형님! 그래서 모두 몇 명이 죽었습니까?”
“총 해서 열다섯이야. 중경상 총 열둘이고…….”
“사망 열다섯에, 중경상 열둘이면…… 상단에 거주하는 용병 중 과반수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는 말이군요.”
“그런 셈이지.”
또다시 무거운 적막이 방 안을 휘감는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던 우현이 돌연 물어온다.
“근데 왜 이리 많은 인원이 죽은 겁니까? 레이젠 형님도 있고,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출신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예전에 말하지 않았나? 용병들이 워낙 제각각이라 하나로 뭉치기 힘들다고 말이야. 어젯밤 싸움도 그 때문에 그리된 것이라네. 조금 기다려서 티아나, 엘레토 아니면 나와 함께 갔더라면 절대로 그리 많은 인원들이 헛되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네.”
순간 우현의 안색이 굳었다. 과거 상단 주위에 낯선 이들이 출몰할 때 레이젠은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야 한다며 상단에 자체 병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만약 준비치 않고 이대로 있다간 필시 애꿎은 사람만 다칠 거라고 경고도 했었다. 하지만 우현은 상단이 우선이라며 매번 무시하고 넘어갔는데 그것이 결국 이런 참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나의 안일함이 이런 결과를 불러왔어.’
솔직히 도둑이 들었다고 했을 때 두세 사람이 와서 물건을 훔치러 왔나 싶었다.
한데 막상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일들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 일은 그에게 잊고 있던 한 가지 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건 이곳이 그저 편히 돈이나 벌 수 있는 곳이 아닌, 계급과 힘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중세 시대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 이곳은 그런 곳이었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이 되새겨지는 지 눈가에 두려움이 깃들고, 몸을 부르르 떨려온다.
동시에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만 같아 미안함에 심장이 옥죄어 든다.
어느새 창백해진 낯으로 가슴을 연신 움켜쥐던 그가 나지막이 물었다.
“소네스 형님! 사…… 사망자는 어디에 두었습니까?”
“임시로 창고 옆에 자리한 헛간에 두었어. 왜, 가보게?”
잠시 침묵하던 우현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허나, 소네스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해본다.
“안 가는 게 어때? 괜히 가서 힘든 것보다는 나을 듯싶은데 말이야.”
“저 힘든 것이야 잠시 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상단을 위해 싸우다 죽었습니다. 어찌 상단주로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용병에 불과해. 굳이 네가 그러지 않아도…….”
“알겠다. 내가 안내하지.”
이때껏 묵묵히 있던 레이젠이 둘 사이에 끼어든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소네스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