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3
차원상인 033화
“혀…… 형님!”
“네 말의 뜻은 알겠지만 그는 상단주다.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봐줘야 할 의무가 있어.”
레이젠까지 이러고 나오자 더는 할 말이 없어진 소네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캐슬 말대로 해!”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현이 말을 건넨다.
“소네스 형님! 죄송합니다. 고집을 피워서…….”
“아니야! 네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뭐!”
됐다는 듯 손짓을 하던 소네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준비되는 대로 나와. 기다릴게.”
“그냥 이대로 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자!”
소네스를 길잡이 삼아 나머지 두 사람이 뒤따라 나섰다.
저택을 나선 그들은 아직도 피 냄새가 자욱한 창고를 지나 근처 한편에 자리한 허름한 창고로 갔다. 점점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가슴을 한층 더 가라앉게 만든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내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시체들 사이로 울고 있는 이들이 보인다. 용병이라 그런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였다.
역겨운 피비린내가 코끝을 찌르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며 맨 앞에 있는 시체 위에 덮인 천을 들췄다. 그러자 돌에 맞아 움푹 들어간 광대뼈 밑으로 흘러나온 눈알과 뒤틀린 턱 사이로 쭉 내밀어진 혀가 두 눈 가득 들어온다. 순간 속에서 확 치미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만 옆에다 토악질을 해댔다.
“우엑! 우에~엑!”
연신 구토를 해대는 그에 보다 못한 소네스가 등을 토닥였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우현은 굽혔던 허리를 폈다.
“형님, 죄송합니다.”
“이제라도 힘들면 돌아가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겠어?”
“예! 버틸 수 있습니다.”
부득불 괜찮다 우기는 모습에 소네스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또다시 시체 앞에 선 우현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는 거죽을 들어 얼굴을 맞댔다.
“상단을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부디 좋은 세상에 가서 행복하게 사시길…….”
허리를 숙이는 그를 본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의아함이 피어올랐다.
상대는 고작 계약을 통해 일하는 하찮은 용병, 그것도 싸늘히 식어 버린 시체이다.
근데 그는 시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거죽을 들추고 연신 지켜줘서 고맙다며 허리를 숙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느새 목소리는 울음으로 바뀌었고, 이내 곡소리가 되어 주위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그 광경에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건 우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그저 상단주로서 희생자들의 얼굴을 맘에 담아 두려고 했는데 정작 맞대고 보니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죄송스러움과 미안함이 일시에 터져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당혹스러움에 그저 모두들 멍하니 바라보는데 어느새 우현의 발길이 한 유족 앞에 섰다.
“이런 일을 겪게 해 상단주로서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허리를 숙이는 그를 향해 자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뛰쳐나온다.
“훌쩍! 훌쩍! 아빠 살려내! 살려내란 말이야!”
조그마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연신 쳐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위 사람들이 다가오려 했지만 우현이 손을 들어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여전히 자신을 치고 있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뒤범벅이 된 채 울음을 토해내는 모습에 그 또한 어느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해.”
“아저씨 나빠! 정말 나빠! 우리 아빠…… 살려내란 말이야! 으아아앙!”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아이와 소리 없이 어깨만 들썩대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개중에는 붉어진 눈시울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이도 있었다. 아이의 분노와 눈물을 몸을 받아내던 우현은 유족에게 미안하다며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이고는 다른 시체로 넘어갔다. 그렇게 모든 시체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나서야 소네스와 레이젠 곁으로 돌아왔다. 눈물을 닦는 그를 바라보던 레이젠이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자네 덕분에 이 사람들 모두 좋은 곳으로 편히 갔을 것이네.”
멈칫하던 우현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길 바라야죠.”
“아니야, 분명히 그럴 거야. 오늘 네가 흘린 눈물이면 충분히 그럴 거야.”
아까 봤던 그 진정 어린 태도라면 능히 그럴 것이라며 소네스 또한 끄덕댄다.
그래서일까? 우현은 조금은 마음이 풀린 듯 한결 편안해진 낯으로 말을 건넸다.
“형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당분간 상단의 문을 닫도록 하십시오. 또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이 사람들의 장례식만큼은 성대하게 치러주십시오. 유족들에게도 충분한 사례를 해주시고요. 물론, 이곳에 없는 유족들 또한 어떻게든 찾아내 꼭 사례를 하십시오.”
“꼭 그리하지.”
소네스는 걱정 말라며 손을 들어 가슴을 친다.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짓던 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시체들로 향한다.
아직까지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유족들에 우현의 입이 다시 벌어진다.
“그리고 상단 부근에 거주지를 만들어 유족들도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유족들도 말인가?”
의아한 빛을 자아내던 소네스의 시선이 레이젠을 찾았다.
허나, 그 또한 우현이 왜 이리하는지 알 리 없었다.
“캐슬! 왜 그리하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남은 자들의 슬픔을 아니까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잠시 침묵하던 우현은 시선을 돌렸다.
“제가 어릴 적에 친부모를 모두 잃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 잊힐 거다, 괜찮을 거다 라며 위로를 해주었지만 전 한시도 그때의 아픔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건 제 두 여동생들 또한 그랬고요. 그리고 분명 저 아이도 그럴 겁니다.”
손이 가리키는 그 끝에 자리한 아이를 본 두 사람은 이내 침음성을 흘렸다.
그들 또한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대륙을 떠돌며 힘들게 살았기 때문이었다.
잊고 있었던 그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소네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알았어. 그리하도록 할게.”
“한 가지 더! 거주지 만들 때 중앙에 위령비 공원을 설립해주십시오.”
“위령비 공원?”
“신분이 낮든 높든, 하다못해 청소만 하는 하인이든 우리 상단을 위해 희생한 이라면 위령비에 이름이 새겨질 것이며, 그 비 주위로 공원을 만들어 남은 유족들이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합니다. 훗날, 상단이 대륙을 누비는 거대 상단이 된 후에도, 그 비에 적힌 이들이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당신의 희생은 절대 헛되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게 말입니다.”
한순간 주위 공기가 멎은 듯 짙은 침묵에 빠진다.
현대 세계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이들에게는 커다란 충격과도 같았다.
지금까지 위령비하면 대부분 기사나 귀족 들의 전유물과도 같았다. 한데 우현은 신분 고하에 상관없이 상단을 위해 희생한 자라면 위령비에 적혀져 상단이 없어지는 날까지 남는다고 하니 그 얼마나 명예로운 일이겠는가? 새삼 화이트 그리핀 상단의 일원이라는 것에 무한한 자긍심이 끓어올라 가슴이 벅차기까지 한다. 어느새 유족들은 양 무릎을 바닥에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허리를 숙였다. 동료를 보기 위해 찾았던 용병들까지 한쪽 무릎을 꿇고 검을 거꾸로 든 채 존경심을 표한다. 이른바 ‘구리 다섯 닢이 목숨 값’이라는 하찮은 밑바닥 인생인 자신들의 명예를 세워 준 것에 대한 답례였다.
‘릭 캐슬이 이런 기세를 품고 있었던가?’
주위의 변화에 소네스와 레이젠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설마하니 우현의 말과 행동이 이렇듯 많은 이들을 탄복시키고 저절로 무릎을 꿇게 만들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놀라움 가득한 그들의 시선과는 달리 우현은 여전히 슬픔만 가득하다. 아마도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에 쉬이 고개를 돌리지 못함이리라.
“그리고 레이젠 형님! 상단 자체 병력 마련 방안을 준비해주십시오. 시행 시기는 추모제가 끝난 이후로 해주시고 말입니다.”
“알겠네. 내 준비하지.”
막 주억대던 그때 펨 총관을 대동하고 바딘 백작이 들어섰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사람들은 무릎을 꿇은 채 인사를 한다. 그 모양새가 좀 수상하긴 했지만 그보단 우현이 더 걱정스러운 터라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곁으로 다가선 바딘 백작은 서둘러 말을 건넸다.
“릭 캐슬 상단주!”
“오셨습니까, 백작님!”
왔냐는 말에 그는 미안한 기색으로 답을 했다.
“뒤늦게 연락을 받아서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렸네. 그래, 몸은 괜찮은가? 혹시라도 해를 입은 곳이 있는가?”
“해 입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를 대신해 여기 있는 분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주셨는데 말입니다.”
주위를 훑어가는 손 위로 쭉 늘어선 시체들이 보인다.
그 숫자가 제법 많은 것이 어젯밤 싸움이 컸던 모양이다.
‘몰핀이라는 놈은 대체 왜 용병을 끌고 와 가지고서는…….’
짜증을 토해내는 속내 너머 몰핀에 대한 노기를 담아낸다.
잠시 이맛살을 좁히던 그는 슬쩍 시선을 돌려 우현을 보았다.
“그 몰핀이란 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레이젠이 나서서 답을 했다.
“저택 지하에 감금해둔 상태입니다.”
“그래? 어서 가보세. 감히 내 영지에 와서 이런 사달을 만들다니 대체 어떤 낯짝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말이야.”
말미에 불편한 심기를 담아 뱉었다.
우현 또한 그러한지 동의를 표한다.
“저 역시 그렇지 않아도 만나보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가? 잘됐구만. 같이 가도록 하세.”
앞장서라는 바딘 백작의 말에 소네스가 슬쩍 귓속말을 해 온다.
“백작님을 데리고 서재에 가 있어. 내가 사람을 보내 데려오도록 할 터이니 말이야.”
한 차례 끄덕거린 우현은 안내자를 자처하며 바딘 백작을 데리고 헛간을 나섰다.
“네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리 험하게 대한단 말이더냐?”
고래고래 소릴 질러대는 몰핀에도 불구하고 팔짱 낀 용병들의 낯엔 그 어떤 변화도 없다.
어젯밤 일의 주동자가 그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맘 같아선 한 대 후려치고 싶지만 이제 곧 바딘 백작을 만나 뵈어야 한다는 것에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것도 모른 채 여전히 몰핀은 자신이 귀족임을 앞세워 소릴 질러대기 바빴다.
“난 그 이름 높은 보르네오 자작가의 몰핀 남작이다. 지금 대체 어딜 데려가느냐? 어서 말하지 못할…….”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병이 서재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보이는 우현에 이를 바드득 갈던 몰핀의 낯이 새하얗게 변했다.
옆에 앉아서 죽일 듯이 쏘아보는 바딘 백작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기 때문이었다.
“뭘 잘했다고 그리 큰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냐?”
“바……바딘 백작……님!”
“시끄럽다! 어서 죄인을 바닥에 꿇려라!”
“예!”
들어가지 않으려 버티는 그를 질질 끌고 와 꿇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