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4
차원상인 034화
앞에 놓이자마자 또 한 번의 호통이 바딘 백작에게서 터져 나왔다.
쾅!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 하시는 겁니까?”
“아직도 네 죄를 모른단 말이더냐?”
“전 죄 지은 것이 없습니다.”
무죄를 주장하는 그에 노기가 극에 달한 듯 바딘 백작의 몸이 부르르 떨어댄다.
“닥쳐라! 감히 내 영지에, 허락도 없이 용병을 몰래 데려와서 사람을 죽여 놓고선 죄가 없다 말해? 네놈이 정신이 나간 모양이구나!”
거듭되는 호통 때문일까? 아니면, 백작 말대로 정신이 나간 것일까?
조금 전까지 겁을 먹었던 모습과는 달리 불만 어린 표정으로 대답을 한다.
“백작님! 고작 하찮은 용병 몇 죽였다고 이리 큰일이 난 듯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뭐, 뭣이? 고작 용병 몇? 네놈 때문에 다치고 죽은 이가 대체 몇이나 되는 줄 아느냐? 사망 열다섯에, 부상이 열둘이다. 그중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이가 넷이나 되고 말이야. 이런데도 별일 아니라 할 것이냐?”
“돈 몇 푼에 목숨을 파는 이들입니다. 거기다 애초에 그들은 이곳 영지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핏대를 세우는 그가 노기를 불러일으켰는지 바딘 백작이 또 한 번 호통을 쳤다.
“시끄럽다! 네놈이 자작가에서 망나니 소리 들을 때부터 알았다마는 이렇게까지 사리 분별 못할 줄은 몰랐구나!”
망나니란 말에 울컥했는지 시뻘게진 낯짝을 쳐들고 고래고래 소릴 질러댄다.
“애초에 저 상단주란 놈이 잘못한 것이 아닙니까? 기껏 해봐야 평민 주제에 자작가의 손을 거절하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마하니 백작 앞에서 큰소리칠 줄은 몰랐던 주위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빛을 띤다.
아주 홍당무가 되어버린 바딘 백작은 손에 쥔 잔을 집어 던지며 소릴 질러댔다.
와장창!
“이놈이! 내 앞에서 그런 망발을 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모양이구나!”
서릿발 같은 눈빛이 몰핀을 향해 뿜어져 내린다. 그제야 겁을 좀 먹은 듯 고개를 푹 숙인다. 허나, 이것 가지고는 성이 안 찬다는 듯 재차 호통을 치려는데 돌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어떤 일인데 문을 두드리는 것이냐?”
“보르네오 자작가의 가주 보르네오 토니노 자작이 왔습니다.”
“토니노 자작이?”
너무도 빠른 예상 밖의 등장에 주위 사람들 모두 당황했다. 술렁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바딘 백작은 잘됐다는 듯 말을 하였다.
“어차피 이 일을 마무리하려면 자작과 말을 해야 할 터. 잘됐군. 어서 들라 해라!”
아무리 백작이라고 해도 귀족의 자제를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지라 자작의 등장은 어찌 보면 그에겐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인이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호위 기사를 대동한 채 들어서던 토니노 자작은 손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식의 모습에 일순 눈가에 불똥이 튀었다. 사실 출발하기 전 걱정이 된 조셉이 몰래 보르네오가에 연락을 남겼고 이에 부랴부랴 기사들을 이끌고 왔건만 정작 보게 된 건 죄인 취급을 받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버지!”
조심스레 부르는 그를 싸늘히 쏘아본다.
마치 하찮은 벌레 보는 듯한 그 얼음장 같은 시선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그 모습이 보기 안 좋은지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만다.
“크흠! 보르네오가 토니노 자작이 백작님을 뵙습니다.”
조금은 심기 불편한 인사에 바딘 백작은 기가 차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자작! 용케도 때맞춰 왔구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다는 것이 지금에서야 오고 말았습니다.”
“그 말은 사전에 이 일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 듯하구려?”
연신 비꼬는 어투에 노기가 들끓었지만 낯빛 한 번 붉히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백작님! 불민한 자식 놈이 벌인 망나니짓에 이래저래 해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일이 제법 큰 듯하오만…….”
“자작가에서 희생자를 포함해 모든 유족들에게 보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피해 입은 상단 또한 보상토록 하겠습니다.”
토니노 자작이 고개를 숙여 사죄의 뜻을 표한다.
허나, 그걸 보는 우현에게선 그저 싸늘한 눈빛만 보인다.
보상만 들먹이는 그가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딘 백작도 마찬가지인 듯 기가 차다는 듯 바라본다.
“내 말은 이 일을 벌인 당사자에 대한 처벌에 대해 묻고 있소이다. 보상이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말이오!”
“현 남작이던 신분은 폐위하고 산중에 유배시키…….”
“그건 이미 그리하고 있다 들었소만…….”
입술을 깨물던 토니노 자작이 나지막이 물었다.
“백작님은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죽은 이만 열다섯에, 중경상이 열둘이오. 그것도 영주인 본 백작 몰래 용병단을 이끌고 들어와 벌인 짓이라네. 만약 자네라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목숨을 달라는 겁니까?”
“아버지!”
순간 놀란 몰핀의 고개가 쳐들린다.
부름에도 토니노 자작에게선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질 않았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나?”
죽음으로 사죄하라는 말에 그만 정신줄을 놔버린 몰핀이 소릴 질러댔다.
“잘못도 없는 데 제가 왜 죽어야 합니까? 아버지! 다 저 상단주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니 그를 어서 벌하여…….”
“시끄럽다!”
“아버지! 저 상단주가 원인입니다. 그만 처리하면 이 일은 모든 것이 다 해결…….”
써겅!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뻘건 핏물이 바닥을 적신다.
데구루루 굴러가는 몰핀의 머리를 뒤로한 채 토니노 자작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해결이 되었습니까?”
아차상을 한 채 살기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에 바딘 백작은 흠칫 놀랐다.
눈앞에서 이리 아들을 죽일 줄 몰랐고, 백작인 자신에게 이렇듯 대놓고 적의를 드러낼 줄은 더더욱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일까? 방 안에 있는 모든 기사들이 검에 손을 가져갔고, 한순간 이곳은 살기가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이 상황을 정리한 것은 다름 아닌 우현이었다. 창백한 낯을 한 채 입을 부여 쥔 채 달려 나가는 그에 레이젠은 소네스에게 일을 맡기고 일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희생자들을 본 후 극심한 구토를 연거푸 했던 우현인지라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나가자 바딘 백작은 손을 들어 주위의 기사들을 막았다.
우선 우현이 걱정되었고, 다음으로 상대가 아무리 자작이라고는 하나 그 뒤엔 네이트 백작이, 거기서 더 나아가면 그 끝엔 조바오니 공작이 있었다. 아들의 목까지 베어버린 마당에 괜히 일을 키워 조바오니 공작이 나서기라도 하면 상황이 매우 고달파지는 터라 이쯤에서 물러서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눈치나 살살 보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군.’
새삼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것이 채감이 된다.
노기로 인해 부르르 떨리는 손을 맞잡으며 애써 미소를 그렸다.
“그 정도면 됐네. 토니노 자작! 매우 어려운 결정을 했구만!”
“벌인 죗값은 치르라 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바드득 이를 갈아대는 토니노 자작에게서 싸늘한 한기가 뿜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딘 백작은 여전히 웃는 낯을 한 채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보상 문제뿐이겠군.”
“그것 역시 앞서 말한 대로 이행할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좀 전에 보인 결단력 있는 자네라면 능히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믿는다는 그를 쏘아보던 토니노 자작은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벌렸다.
“그럼, 영지에 급한 일이 있어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게나.”
인사를 건네던 토니노 자작이 슬쩍 뒤를 본다. 눈짓을 받은 기사들이 다가와 몰핀의 손에 묶은 끈을 풀고, 잘린 머리와 함께 갈무리했다. 뒤따라 발길을 틀던 그의 시선이 돌연 소네스에게로 향한다.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에게 전하게. 이제 모든 일이 마무리가 지어졌으니 우리 가문에 걸린 제약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말이네.”
잠시 바딘 백작과 눈을 마주하던 그는 주억댔다.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다시 뒤돌아가던 그가 또 발걸음을 멈췄다.
“참! 또 한 가지 더 상단주에게 전할 말이 있네. 우리 가문은 은혜는 잊어도 복수는 잊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야. 내 말 꼭 명심하게!”
이 말을 끝으로 휑하니 밖으로 나선다. 난데없는 협박에 바딘 백작이 분개해 보지만 이미 떠난 이를 어쩌겠는가? 그저 뒤통수에다 욕지거리 몇 마디를 털어놓고 만다.
“일이 끝난 마당에 협박이라니……. 뭔 사람이 저리 경우가 없더란 말이더냐?”
혀를 내차던 바딘 백작은 소네스를 바라보았다.
“너무 걱정 말게!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 상단주와 이 상단만큼은 지켜줄 터이니 말이야.”
“백작님만 믿겠습니다.”
“나만 믿게나!”
장담을 하는 그에게 웃어 보이던 소네스는 슬며시 시선을 문 쪽으로 향했다.
조금 전 한 말이 귓가 한편에 박혀 수없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어쩌면 매우 질긴 악연이 될지도 모르겠군!’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과 함께 커피 잔을 들어 마셨다.
이렇게 한밤중의 사건은 끝을 맺고 있었다.
“호오! 토니노 자작이 아들 목을 쳤단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두 팔을 벌려 하녀가 옷을 걸치게 해주던 조바오니 공작은 놀랍다는 듯 바라본다.
“그 뒤엔 어찌 되었느냐?”
“전해온 말에 따르면 피해자 유족들과 화이트 그리핀 상단에 피해 보상을 해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빌미 삼아 가문에 씌워진 족쇄를 풀고 말입니다.”
“자식 놈 목 친 것치고는 결과가 너무 뻔하구나. 정작 그것뿐이더냐?”
“아! 마지막에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보르네오가는 복수는 절대 잊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거, 재미있는 말을 했구나! 더는 없느냐?”
“그게 전부입니다.”
“알겠다! 그럼, 그만 가 보아라!”
슬쩍 고개를 숙이던 중년 사내는 뒷걸음쳐 밖으로 나섰다.
걸친 옷을 매만지며 자리에 앉던 조바오니 공작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그리하셨습니까?”
돌아간 시선 위로 노란 머리칼에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 하나가 보인다.
“테온 왔느냐? 갔던 일이 일찍 끝난 모양이구나.”
“예상보다 수월하게 풀렸습니다. 근데 어째서 일을 그리하셨습니까?”
“뭘 말이더냐?”
“몰핀 자작 말입니다. 제가 알기론 공작님이 용병들을 데리고 습격하라고 부추긴 걸로 아는데 말입니다.”
조바오니 공작은 바구니에 담긴 사과를 꺼내 한 입 크게 물었다.
“우물우물!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무릇 뭐든 잘 크려면 그에 못지않은 벽이 있어야 하는 법. 기왕 키우기로 한 것 장벽 하나쯤은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왕국으로 하여금 화이트 그리핀 상단을 두려워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고 말입니까?”
씨익 웃는 조바오니 공작의 모습에서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