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6
차원상인 036화
“소네스 형님! 유족들 피해 보상 문제는 어찌 되었습니까?”
“그 문제는 보름 전, 보르네오가에서 보내준 보상금과 같이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답하는 소네스의 팔뚝 위로 검은 천 하나가 둘러져 있다.
그건 서재에 모인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두른 지 제법 시간이 됐는지 다들 꼬깃꼬깃하다. 사실 이것은 우현이 팔뚝에 검은 띠를 매면서 시작된 것으로 죽은 자를 추모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이라는 말을 듣고는 온 상단으로 퍼져나갔다. 어른 아이 할 것이 없이 모조리 달고는 낮이고 밤이고 절대 빼지 않았다. 심지어 자는 동안에도 빼지 않았다고 하니 상단원 사이의 추모 열기가 얼마나 거센지 능히 짐작케 했다.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은 우현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희가 제공키로 한 거주지는 받아들이던가요?”
“아직 연락이 되지 않은 두 가족만 빼고 다 우리 상단 거주지에서 머물기로 했다. 장례식을 치러준 상단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건 소네스 형님이 책임지고 유족 모두 다 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알았다.”
유족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자 우현은 곧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거주지 설립은 언제쯤 시행될 예정입니까?”
“그 문제에 대해선 현장 책임자인 마이클이 설명해줄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네스 뒤에서 사십 대 중반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사내가 일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거주지 설립의 현장 책임자를 맡은 마이클입니다.”
“상단주, 릭 캐슬입니다. 이번 일을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 큰일을 맡겨주셔서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슬며시 미소를 짓던 우현은 아까 하던 질문을 다시 했다.
“아까 물었던 것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데…….”
“필요한 땅 매입은 영주님의 협조 하에 소네스 님이 보름 전에 끝났다고 하셨습니다. 건립에 필요한 자재들 또한 그저께 모두 들어온 상태라서 지금 당장에라도 공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위령비 공원 준비도 같이 하실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소네스 님께서 그 문제가 아주 중요하다고 해서 처음부터 위령비 공원도 같이 건립을 추진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제야 맘이 놓이는 듯 굳은 낯을 편다.
“공사 기간은 대충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상단주님이 말씀하신 조건대로 가옥을 짓자면 제법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거기다 가옥 수가 사백여 개가 넘고, 위령비 공원까지 지으려면 못해도 1년은 걸릴 듯싶습니다.”
우현은 예상 밖의 긴 시간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것이 원래 본래 주거지는 이번에 해를 입은 유족들이 살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해 만들려 했던 터라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주거지를 조성하면서 혹시 모를 또 다른 위협에 대비해 상단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살게끔 하면서 이렇듯 커지게 된 것이었다. 거기다 위령비 공원까지 같이 조성하게 되면서 더욱더 커지고 말았다.
“조금 오래 걸리는 듯하지만 그래도 지금 계획한 대로 해주십시오. 자금이야 조만간 상단을 다시 열 것이니 생각지 마시고 필요한 인력은 다 동원하십시오.”
“인력 문제라면 굳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듯싶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이때 대화를 듣고 있던 소네스가 끼어 들어왔다.
“상단 사람들이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같이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하지만 이제 곧 상단을 다시 열면 힘들 텐데요.”
“그래도 틈틈이 돕고 싶단다. 자신들이 살 집인데 그래도 힘은 보태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말이야.”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요. 그럼, 형님! 일하는 데 방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도우라고들 하십시오. 지나치게 하면 못하게 한다는 말도 덧붙여서 말입니다.”
“그리 말해두지.”
알겠다는 듯 소네스가 끄덕였다.
우현은 시선을 돌려 이번엔 레이젠을 보았다.
“상단 보호를 위한 방안에 대해선 생각해보셨습니까?”
“내가 생각한 것은 이렇다네. 현재 경비 업무를 전적으로 용병들에게 맡기던 체제에서 벗어나 상단에서 자체적으로 키운 병력인 호위대를 중심에 두고 현재 계약된 용병들과 연계하는 형태, 간단히 말하면 호위대 산하에 들어가는 모습을 취할 것이네.”
“그 말은 호위대가 용병들을 관리, 감독하신다는 말인데 문제는 없겠습니까?”
자유분방한 용병들을 관리한다는 것이 염려스러운 듯 물어온다.
“평상시에도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다가 저번과 같은 위급 시에는 호위대의 명령에 따라 용병들이 움직이는 형태가 될 것이네.”
‘한마디로 일반 용병들은 호위대를 지원하는 예비부대 성격이라는 거군.’
알 만하다는 듯 우현은 끄덕인다.
“형님이 말한 그 호위대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 생각입니까?”
“솔직히 말해 시간상 새 인물을 키울 수는 없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끌어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네. 일단, 상단에 있는 엘레토와 필리온 중심으로 용병들 중에서 경험이 많고, 실력이 높은 이들을 모집해 만들 생각일세.”
도베르만 기사단 출신이라면 어느 정도 실력이 검증된 자들이고, 레이젠이 컨트롤하기 쉬울 것이니 제법 괜찮은 생각인 듯싶다. 문제는 이들과 같이할 용병을 뽑는 일인데 생각처럼 만만치 않을 듯싶다. 돈을 중요시하는 그들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쉬이 가담하려 들 것 같지 않을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형님! 그리 실력 있는 용병들이 쉬이 우리 상단에 들어오려 하겠습니까?”
“그래서 마나심법 제공을 조건으로 내걸 걸세.”
“마나심법이요?”
“용병과 기사의 차이점이 뭔지 아는가? 그건 바로 마나심법을 익히고, 안 익히고의 차이라네. 물론 용병이 전장을 오가는 만큼 기술, 위기 대처, 정신적으로 기사에 비해 강할 수 있겠지만 마나 사용 여부에 따라 상황은 백팔십도 바뀌어 버리네. 그만큼 마나심법은 검을 쓰는 자라면 그 누구나 제일 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냐며 우현이 주억대던 그때 소네스가 물어왔다.
“마나심법을 준다는 것은 매우 좋은 조건이 되겠지만 문제는 그 심법이 어디 것이냐는 거겠지. 형, 안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 내놓을 마나심법은 도베르만 왕국 왕실 기사단이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일전에 아는 이에게 얻은 것이다. 당시 그가 맥만 끊어지지 않게 해 달라 했으니 가르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말하는 투로 보아 아무래도 몰락한 귀족가의 마나심법인 듯싶다.
한발 물러서는 소네스를 보고 나서야 우현은 닫고 있던 말문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형님이 계획하신 대로 호위대 인원을 모집해 한 달 후, 상단이 문을 열기 전 편성을 마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또한 몰핀 남작과 같은 일이 두 번 다시는 없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 조치하겠네.”
막 시선을 돌리려던 우현은 깜박했다는 듯 되물었다.
“근데 레이젠 형님! 스쿠루 파인 용병단은 어찌 되었습니까?”
“전원 타국으로 쫓아 낼 것이라 들었네.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이곳 알카인 왕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며 대륙의 모든 용병 길드에 연락해 절대로 일을 못하도록 막을 것이라 들었네. 단, 전투 중에 독을 뿌렸던 사람들과 부단장인 자는 극악무도한 중죄로 조만간 처형할 것이라 들었네.”
‘하아! 이미 많은 이들이 죽었거늘……. 뒤늦게 강제 출국을 하고 처형해봤자 뭔 소용이란 말인가?’
답답한 맘에 한숨을 푹 내쉰다.
이때 관리관 하나가 손을 들어 물어온다.
“근데 조직 개편은 하실 겁니까?”
“예! 며칠 전 나눠준 서류대로 운송부, 영업부, 제조부, 총무부, 경비부 총 다섯 개로 나뉠 것입니다. 운송부는 물품의 분류 및 운반을 책임지고, 영업부는 도우미 및 광고 모델 등 판매 인원들이 속할 것이며, 제조부는 커피 제조하는 이들이, 총무부는 총관인 소네스 형님을 필두로 각 부서를 총괄 관리하는 사람들이 속한 곳이고, 마지막 경비부는 현재 상단 외곽 경계를 맡고 있는 용병들과 호위대가 속한 곳입니다. 각 부서별로 부장, 과장, 대리가 있으며 근무 성적 및 태도에 따라 해당되는 직책을 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공고를 통해 약 80명의 인원을 뽑아 각 부서에 할당할 것이니 그리 아시고 조직 개편에 잡음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순간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걸 지켜보던 우현은 아직 남은 안건이 있는지 물었다.
“없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쯤 하도록 하죠. 당분간 제가 자리를 비울 예정이니 여기 레이젠 형님, 소네스 형님과 잘 의논하여 일을 처리하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상단주님!”
한차례 주억대던 사람들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을 뒤따라 일어서려던 소네스는 의자에 푹 몸을 묻어 가는 우현을 보곤 멈춰 선다.
“피곤해 보인다. 괜찮냐?”
우현은 그런 그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인다.
“형님, 괜찮습니다.”
근데 그 괜찮다는 말이 왜 이리 슬프게 들릴까?
착잡해지는 기분에 한숨을 내쉬던 소네스는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참! 별건 없는데 어제 남부 상인연합회 사람들이 다녀갔어.”
“남부 상인연합회? 그게 뭡니까?”
“남부에 자리한 왕국들에 속해 있는 상인들의 연합이야.”
“그래요? 근데 그들이 우리 상단에 왜 온 거라 합니까?”
“뭐, 상단에서 파는 물건들 대부분이 독점이다 보니 그것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 하는데 간단히 말해 상단에서 파는 물건들의 제조 기법을 알려달라는 거지.”
걸음을 멈춰 세운 우현은 눈살을 한껏 찌푸린 채 돌아본다.
“형님! 그 문제라면 더는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했을 텐데요.”
몰핀과의 일이 떠올라서 그런지 눈매가 매섭기 그지없다.
그런 그를 본 소네스는 난감한 빛을 띠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상황이 좀 그러네.”
“무슨 상황이 그렇다는 말입니까?”
“근 삼 개월간 상단이 문을 열지 않았잖아. 그러다 보니 종이나 커피가 씨가 말랐던 모양이야. 그러던 차에 상인 몇이 안 팔고 있던 것을 내놓았는데 문제는 값을 터무니없이 올려 버린 거야.”
“얼마나 올렸기에 그럽니까?”
“열 배 이상은 된다고 하더군.”
우현의 이맛살이 사정없이 좁혀든다.
“일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바딘 백작님은 뭐 하고 계셨답니까?”
“오래전에 물건들을 다 판 상태라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
순간 침음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독점권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었다.
특히나 종이 같은 1회성 소비품의 독점인지라 더욱더 그러했다.
‘처음부터 종이에 대한 독점권을 주는 것이 아니었어.’
바딘 백작이라면 별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고작 삼 개월 문 닫았다고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게 다가 아니라는 듯 소네스가 말을 이어간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조제 기법에 대해 남부 상인연합뿐 아니라, 알카인 왕실에서도 요청을 하고 있다는 거야. 사실 이번 일로 제일 큰 피해를 본 곳이 알카인 왕국 귀족들이었거든. 아마도 그래서 그런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