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7
차원상인 037화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매만지던 우현이 답을 했다.
“일단, 왕실과 남부 상인연합 측에 앞으로 저희 상단이 문을 닫는 일은 없을 테니 종이 제조 기법에 대한 문의는 접으라고 하세요. 그리고 바딘 백작에게 준 독점권은 시한이 끝나는 대로 상단에서 회수할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앞으로 종이에 대한 독점권은 더는 없습니다.”
“그래도 되겠어?”
“형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독점권 대신 동서남북 지구별 판매권을 줄 것이니 말입니다.”
“지구별 판매권이라……. 구역만 잘 정해주면 괜찮을 듯싶군. 한쪽이 모자라면 다른 쪽에서 메우면 되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형님!”
알겠다는 듯 끄덕이던 소네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할 이야기는 없으니까 이제 좀 쉬어. 난 나가 볼 테니 말이야.”
“아닙니다. 저도 이제 가봐야죠.”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에 소네스의 이맛살이 좁혀든다.
“집에 가볼 생각이야?”
“예, 너무 오래 집을 비운 듯싶습니다.”
“어쩔 수 없었잖아? 그리 엉망인 상태로 돌아갈 순 없었으니까 말이야.”
끄덕대는 우현의 입맛이 씁쓸해진다. 사실 두 달 전 상단이 습격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우현은 극심한 구토와 발열, 불면증에 시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려 이십 일 가까이 그런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 당시 참혹한 희생자들의 사체를 본 것이 어느 정도 작용을 하긴 했지만 직접적인 원인이 된 건 다름 아닌 몰핀의 죽음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그 일로 인해 얻은 충격이 우현으로 하여금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에 휩싸이게 만들었고 결국 그를 드러눕게 만들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증세가 호전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구토가 치밀거나, 밤에 악몽 속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곤 했으니 말이다. 이십 일이 지나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우현은 전과는 달리 앞으로의 일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희생자들과 몰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깊은 실의에 빠져 들어갔다.
빚 갚을 돈만 가지고 무책임하게 돌아갈까 싶기까지 하던 그를 붙잡아 준 것이 다름 아닌 소네스와 레이젠이었다. 그들은 대륙의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해줌과 동시에 이번 일과 같은 상황이 대륙에선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해시켰다. 즉, 동기가 우현에 의해 비롯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자포자기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럴 시간에 상단을 어떻게 하면 지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보라 하였다. 이젠 근 백에 이르는 사람들을 밑에 둔 상단주로서 말이다.
레이젠과 소네스 형제를 통해 별 고생 없이 편하게 돈을 벌어 실감하지 못했던 거지만 이번만큼은 매우 커다란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근 이십 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우현은 이내 한 가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으로 인해 또다시 고통받는 이가 없게 하는 것이었다. 대륙이든 자신이 사는 현대이건 간에 말이다.
결론을 봐서 그런가? 이후, 우현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모든 영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장례식도, 추모제도, 앞으로 만들어질 호위대와 상단 주거지 또한 그러했다.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다 봐서 그런가? 소네스는 뿌듯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가기 전에 이거 받아 가지고 가!”
손에 쥐어진 것을 살피던 우현이 갸웃대며 물었다.
“형님, 이게 뭡니까?”
“아티팩트라고 하는 마법주구일세. 앞으로 자네가 차고 다닐 거야.”
“마법 주구요?”
난데없이 웬 거냐는 눈빛에 소네스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혹시 도미노라는 것을 알아? 하나가 하나를 쓰러트리고, 쓰러진 것은 또 다른 것을 쓰러트리지. 솔직히 말해 난 몰핀 남작이 벌인 일 따윈 전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왜냐면 그런 일들은 대부분 도미노처럼 다른 일을 부르곤 하니까 말이야.”
“그 말은…… 이번엔 상단이 아니라 절 노릴 거라는 말이군요.”
“위협이라는 것은 원래 잘 표출되지 않아. 하지만 한번 밖으로 나오면 절대 줄어드는 일은 없어. 오히려 더 커지지. 또한 최소의 노력으로 큰 효과를 노리고 말이야.”
우현은 침음성을 흘렸다. 소네스가 말하는 바는 확실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상단주인 자신이 다음 타깃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즉, 몰핀 남작의 일은 자신을 향해 총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 됐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아티팩트는 그걸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고 말이다.
‘또 잊고 있었어. 이곳이 중세 시대라는 것을 말이야.’
그간 영지에서 돈을 버느라 잊었던 것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맨 처음 미켄트리아와 마주치며 느꼈던 공포감과 두려움 말이다. 한 차례 온몸이 부르르 떨려오지만 그뿐이다. 전과 같이 공포감에 물들어 한없이 밑을 모르게 빨려 들어가던 것과는 달리 이젠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듯싶었다.
‘아니, 조금은 익숙해진 거겠지. 일전의 몰핀 남작의 일로 인해…….’
그랬다. 저번에 그 일로 인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은 낯설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처음과 같이 죽을 것 같은 기분까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어떻게든 돈을 벌어 살아남겠다고 했었지. 그 후로는 빚을 갚기 위해 이곳에서 살아남겠다고 했었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어. 나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된 모든 이들을 지키면서 살아남고 싶다. 두 번 다시는 몰핀 남작과 같은 아픈 상처는 얻고 싶지 않아. 대륙에 발길을 끊는 그때까지 말이야.’
맘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한 우현은 시선을 들어 소네스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형님! 이것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순간 상대에게서 놀라움이 피어오른다.
‘변했군!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야.’
솔직히 지금껏 본 우현은 왠지 이곳 대륙과는 조금은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것이 그는 땅이나 저택이나 돈같이 뭔가를 탐하지도 않았고,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이곳에 와서 금괴나 얻으러 다니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근데 지금 그를 보고 있자니 조금은 달라진 듯싶다. 쉽게 말해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 욕구가 강해졌다고나 할까? 상단에 경비 체제를 강화하는 거나, 자신을 위해 아티팩트를 챙기는 것만 봐도 그렇다.
‘몰핀의 일이 약이 됐군. 이제야 좀 이곳 사람 같아졌어.’
맘에 든다는 듯 입꼬리를 틀던 소네스는 손에 들린 팔찌를 가리켰다.
“이 아티팩트에 걸려 있는 마법주문은 2써클 스트랭스로 통상 일반 성인 남자의 2~3배가량의 힘을 낼 수 있어. 사용법은 간단해 팔목에 아티팩트를 차고 시동어인 ‘스트랭스!’를 읊으면 돼!”
“스트랭스라……. 간단해서 좋군요.”
“쓰는 순간 상대가 아티팩트라는 걸 알 텐데 길면 어떻게 하겠어?”
“그것도 그렇군요.”
고개를 내젓던 소네스는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옆에 있는 목걸이에는 그리스 마법주문이 새겨져 있어. 사용하면 네 반경 5미터가량에 있는 모든 이들이 중심을 잃고 엎어질 거야. 바닥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요동을 치거든. 어쨌든 위기의 상황이 오면 넌 스트랭스를 시전시킨 상태에서, 그리스를 사용해 상대로 하여금 바닥에 넘어지게 한 다음 도망치도록 해. 단, 주의할 점이 있어. 아티팩트는 마석을 사용한 소규모 마법진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쓸 수 없어. 길어야 1~2분 정도 지속될 거야. 그사이에 빨리 도망쳐야 해.”
“진짜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쓰지 말아야겠군요.”
“어차피 네가 마법사가 아닌 이상 아티팩트는 임시방편에 불과해. 정말로 위협에 빠지지 않으려면 강해지는 수밖에는 없겠지. 그러면 적이라도 쉬이 덤빌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강해진다라…….”
알겠다는 듯 주억대던 우현은 목걸이와 팔찌를 찼다.
“좋습니다. 착용하죠. 더불어 훈련도 받겠습니다.”
“훈련?”
소네스와 레이젠은 서로를 보며 갸웃댄다.
그런 그들을 보며 우현은 웃었다.
“아까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강해지면 적이 덤비지 못할 거라고 말입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훈련을 받겠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소네스 형님! 이런 것에 의지하지 않고도 살아남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이때 레이젠이 소네스를 밀치며 나선다.
“혀, 형님!”
“캐슬의 눈에서 읽히지 않느냐? 그는 진심이다.”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심지가 엿보이는 두 눈동자를 본 소네스는 이내 알겠다는 듯 뒤로 물러선다. 그에게서 시선을 뗀 레이젠은 우현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
“좋다. 책임지고 가르쳐주지.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마음 굳게 먹게.”
“알고 있습니다, 형님!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포기는 안 할 겁니다. 제가 은근히 독종이거든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잠시 후, 홀로 남은 우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잔소리 꽤나 듣겠는걸……. 오랫동안 집을 비워서 말이야.”
막상 집에 간다니 왠지 걱정부터 앞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한다.
정겨운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말이다.
“가자, 집으로!”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짐을 가지러 발길을 돌렸다.
제2-6장
“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과년한 동생 둘을 두고 이십 일 가까이 집을 비운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서연이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청을 연신 후려친다.
제법 휴대폰과 거리를 뒀음에도 말이다.
“계집애가 뭔 목소리가 이렇게 큰지…….”
내젓던 그가 폰을 귀에 대기 무섭게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이 오빠가 미쳤나? 계집애? 그게 동생에게 할 이야기야?”
“그게…….”
“시끄러워! 지금 당장 학교 앞으로 와! 안 오면 죽을 줄 알아?”
악다구니만 써대다 뚝 끊는 동생에 우현은 눈살을 찌푸리고 만다.
“하여튼 성깔머리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대륙에서 돌아오자마자 경비실에서 맡겨둔 휴대폰 배터리를 찾아 교체하자마자 걸려온 서연의 전화에 한바탕 곤혹을 치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부재중 전화는 백삼십여 건에, 메시지는 칠십팔 건에 이른다. 이것이 다 서연이 혼자 보낸 것으로 이쯤 되면 스토커라 봐도 무방할 듯싶다.
“참! 보영이도 불러야지.”
막 집어넣은 폰을 다시 꺼내든 그는 단축 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조금 전 상황이 되풀이되지만 그래도 보영은 큰 소리 없이 조용히 끝낸다. 오늘 저녁 식사 같이 하자고 묻자 알바 때문에 힘들 것 같다고 한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그는 그래도 혹시나 싶어 끝나고 오라 했지만 같이 일하던 애 하나가 빠져서 안 될 것 같다고 한다. 결국 다음에 시간 날 때 보기로 한 그는 이내 통화를 끝냈다.
“서연이와 단둘의 식사라……. 에휴! 오늘 밤 여지없이 달리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