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8
차원상인 038화
평소 세 남매가 모이면 간단한 식사와 더불어 노래방 한 시간 하는 정도로 끝난다.
이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보영이 때문인데 이제 장애물이 없어졌으니 적어도 3차까지는 갈 듯싶다. 슬쩍 지갑 사정을 살피며 한숨을 내쉬던 그는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아!”
재차 뿜어지는 한숨 너머 뽀얗게 먼지에 뒤덮인 차가 보인다. 11월이 되어서 그런지 날씨도 추운데 연식이 좀 된 차가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하자 영락없는 폐차 직전 모습이다.
“너나 나나 어째 상황이 비슷한 것 같다.”
남모를 말을 흘리며 그는 차에 올라탔다.
다음 날 저녁, 인근 고깃집에 온 우현은 연신 물을 마셔댄다.
“으윽! 컨뎌셔너를 마셨는데도 속이 진정이 안 되네.”
한껏 찌푸려진 눈살 옆 관자놀이를 만져대며 말을 하였다.
어젠 그동안 연락 없이 집을 비운 것에 대한 보상으로 서연과의 외식은 곧바로 술자리로 넘어갔고, 소주방, 노래방, 포장마차를 거치더니 마지막엔 생두부와 김치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는 것으로 끝났다. 그것도 서연의 전매특허인 술자리에서 세 시간 울어대며 주정하기를 선보이며 말이다. 하여튼 이날 든 돈만 삼십이 넘어간다고 하니 둘이 얼마나 퍼마셔 댔는지 알 만할 것이다. 물을 마시려 했지만 어느새 비워진 생수통에 그만 내려놓고 말았다.
“이젠 물도 속 썩이네.”
짜증을 한가득 토해내던 그때 서우가 몸을 부르르 떨며 술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으이구! 추워! 이제 겨울 다 됐네.”
“이제 막 11월이 됐는데 무슨 겨울 타령이냐?”
“나 원래 추위 많이 타!”
메뉴판을 펼치던 서우가 돌연 쌍심지를 켜고 달려온다.
“그건 그렇고…… 야, 인마! 뭔 전화를 그리 안 받아?”
“아까 말했잖아. 지방에 아시는 분이 상을 당해서 거기 좀 다녀오느라 그렇게 됐다고…….”
“그래도 그렇지. 그런 사정이 있으면 미리 연락해줘야 할 것 아니야? 나하고 아버지는 혹시나 네가 대부업체 사람들에게 해나 입지 않았나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만약 내일까지 연락이 안 오면 경찰에 실종신고 하려 했다고!”
“미안하게 됐다!”
“그래도 다행이다. 살아는 있어서…….”
뒷머리를 긁적대는 그를 보며 서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때 술잔과 수저, 젓가락을 챙겨주는 아주머니를 보다 물어왔다.
“그나저나 동생들한테는 안 혼났냐?”
“말도 마라! 아주 그냥…… 작살이 났다.”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지 흠칫흠칫 떨어댄다.
‘보나마나 거하게 달렸구만!’
눈 밑에 한껏 드리워진 다크서클이 어젯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혀를 내차며 소주병을 들어 술잔을 채워 갔다. 둘은 잔을 들어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고기를 집었다. 기름장에 삼겹살을 담가 먹는 서우를 보며 우현은 고개를 내저었다.
“또 기름장이냐?”
“뭐니 뭐니 해도 고기는 소금 기름장이 최고야!”
“그래, 최고다!”
엄지를 추켜올리는 서우를 보며 우현은 웃었다. 어릴 적부터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심지어 치킨까지 소금 기름장에 찍어 먹는 독특한 식성 탓에 많은 이로부터 핀잔을 받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물품 매입은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왜?”
“보름 가까이 주문 발주를 안 해서 그런지 거래 끊는 줄 알고 매일 전화 오고 난리도 아니다.”
하긴 종이와 커피를 제외하고는 영세한 중소기업의 물건을 대량으로 산 것이라 그들로서는 큰 거래처를 놓치는 줄 알고 가슴이 조마조마했으리라.
‘대륙에서나 여기서나 나와 관련된 이들이 참 많구나!’
대륙에서의 일 때문일까? 새삼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 듯 이제껏 모르고 지냈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앞으로 좀 더 처신에 신경 써야겠다 생각하며 굳게 다문 말문을 텄다.
“거래처엔 사정이 있어 주문이 늦어진 거라 설명을 하고, 이전의 두 배 물량을 구매하겠다고 해!”
삼겹살을 뒤집던 서우가 재차 물어왔다.
“다른 물품도 다 똑같이 하면 돼?”
“어! 이번엔 그렇게 주문해 줘. 그리고 미안하지만 납기일을 육 일 안으로 당겨달라고 해줘.”
“육 일 안으로? 그럼, 일주일? 알았어. 내일부터 거래처와 접촉해 볼게.”
“부탁한다.”
알겠다는 듯 끄덕이던 서우가 술잔을 들어 올린다.
또 한 잔 시원하게 비운 둘은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워갔다.
이때 술집 문이 열리고 서우 아버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화들짝 놀란 우현은 서둘러 인사를 건넸다.
“아버님, 오셨어요?”
“됐으니 그냥 앉아라!”
손을 내젓던 서우 아버지는 옆 의자에 앉았다.
그걸 보고 있던 우현이 슬쩍 고개를 서우에게로 옮겼다.
시선이 마주치기도 전에 술잔을 입에 문 채 슬쩍 옆으로 몸을 틀었다.
“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하시기에…….”
“인마! 그래도 말은 했어야지.”
“…….”
이젠 아예 돌아앉아 있다.
‘웬수가 따로 없다니까!’
눈살을 찌푸리던 그때 서우 아버지가 술병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본 우현은 서둘러 잔을 들어 갖다 댄다.
“왜? 내가 껴서 싫으냐?”
“그건 아니고요. 근데 제가 걱정이 돼서 오셨어요?”
“서우가 공짜 술 마시러 간다기에 나도 그 공짜 술 좀 먹어보러 왔지. 왜, 안 되냐?”
“안 되긴요.”
잔이 채워지기 무섭게 두 손으로 술병을 받아 들고 서우 아버지 것을 채웠다.
채워진 잔을 들어 시원하게 마신 그는 기분 좋다는 듯 한껏 미소를 지었다.
“공짜라서 그런지 더욱더 맛이 좋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우가 상추로 쌈을 만들어 대령한다.
입이 터져라 집어넣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대던 서우 아버지의 이맛살이 좁혀든다.
“서우야! 너, 소금 기름장 넣었냐?”
“아…… 예에!”
“적당히 넣어라! 아주 느끼해 죽겠다.”
아무래도 자신의 취향대로 만든 듯한 모양이다.
죽을상을 써대면서도 아들이 만들어 준 거라고 끝까지 꾸역꾸역 먹는다.
다 삼킨 서우 아버지는 서둘러 소주잔을 치켜들었다.
“역시 기름에는 소주야! 이제 좀 살 것 같구나.”
그 쌈 한 점으로 충분하다는 듯 그는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고 만다.
순간 민망해진 서우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슬쩍 자리를 떠버린다.
한 잔만으로는 안 되겠는지 서우 아버님은 연거푸 소주 두 잔을 내리 마시고서야 겨우 술병을 내려놓는다.
“괜찮으시겠어요?”
“겨우 소주 석 잔 가지고 뭘 그러냐? 난 오히려 아까 먹은 쌈 기름기가 안 빠질까 그게 더 걱정이다. 하하하!”
너털웃음을 짓고는 걱정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우현 또한 미소를 지으며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입가에 웃음을 띤 채 가득 찬 술잔을 보던 서우 아버지의 시선이 들렸다.
“참! 한동안 거래가 안 되던 금괴가 어제부터 다시 팔리기 시작했다. 대충 어림잡아 예닐곱 번 정도 거래를 하면 모든 빚을 탕감할 듯싶더구나.”
“그거 다행이군요.”
홀로 술잔을 들어 마시는 우현을 보던 서우 아버지는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낸다.
“그나저나 상갓집에서 밤을 새서 그런지 영 안색이 안 좋구나?”
“예에……. 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뭔가 근심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런 것은 없습니다.”
서우 아버지는 술병을 들어 우현의 빈 잔에 따랐다.
“벌써 6년이다. 널 본 지가 말이야. 그리 오래 본 내가 네 안색 정도 못 살피겠느냐? 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에게 술주정한다 치고 슬쩍 뱉어 보아라. 그런 건 맘에 담아두면 독이 되니 말이야.”
“…….”
“꼭 이 자리가 아니더라도 언제고 괜찮으니 말해 주어라.”
하긴 지난 6년간 친부모 이상으로 자신과 두 여동생을 보살펴준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어찌 자신의 변화에 대해 모를 수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술잔을 들어 마시던 우현은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저어……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적이 있으십니까?”
서우 아버지는 마시려던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내 경험을 묻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나지막이 말을 뱉어낸다.
“사람이 살면서 어찌 그런 경험이 없겠느냐?”
“아버님은 그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피해가 작든 크든 살아가면서 평생을 두고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 상대가 기억을 하든 못하든 말이야.”
“만약 갚을 수 없는 상대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순간 술잔을 잡아 가던 서우 아버지의 손이 멈칫댄다.
시선을 들어 우현을 물끄러미 보다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혹시…… 상을 당했다는 사람이 지금 네가 말한 그 사람이냐?”
“…….”
우현은 침묵으로 답을 대신한다.
한숨을 푹 내쉬던 서우 아버지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이번만은 제법 쓴맛이 느껴졌는지 이맛살을 좁혀간다.
빈 잔을 내려놓은 그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내가 군 제대한 것이 스물두 살쯤 되었을 때일 거야? 보통 군대 가면 철이 든다는데…… 난 더 못 돼서 나왔단다. 부모 등골 빼먹는 개차반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야.”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에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었다.
“싸움박질도 많이 했고, 도박에도 손을 대 시계, 반지 팔아 힘들게 번 돈을 홀라당 날리기도 했었지. 경찰서에도 제법 들락날락했고 말이야.”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그 뭐냐? 누구나 흑역사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
피식 웃던 서우 아버지는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요즘 서연이하고 자주 연락한다더니 흑역사란 말도 쓸 줄 아시는 모양이다.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켠 그는 하던 말을 천천히 이어나갔다.
“그때가 아마 스물여섯 살이었을 거야. 그때도 도박으로 돈 다 잃고 술집에서 행패 부리다 경찰서에 연행됐었지. 차디찬 철창 안에서 취해 널브러져 있는데 누군가 날 깨우더구나. 뭔가 싶어 눈을 떠보니 한 경찰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더구나. 당신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이야.”
“예에?”
당혹해하는 우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서우 아버지는 또 한 잔 따라 마셨다.
“경찰서에서 나 빼내겠다고 돈을 구하러 나섰다 교통사고를 당하신 거라더구나. 그날 밤 한숨도 못 잤지. 그렇게 아버지 초상을 치른 난 텅 빈 가게에 앉아 멍하니 있었지. 그때였어. 평소 동네에서도 아버님과 친우로 유명하신 한 분이 다짜고짜 내게 훈계를 하시더구나. 등골 빼먹는 것도 모자라 병까지 주더니 이젠 교통사고로 죽게 하냐고 말이야.”
“병이요? 대체 무슨 병이기에 그리 화내신 거랍니까?”
“아버지는 급성 간암으로 남몰래 투병 중이셨다고 하더구나. 의사의 말론 과한 음주와 흡연 때문이라는데…… 다 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당시 병도 깊지 않아 수술만 하면 되는 것인데 그걸 알 리 없는 난 매번 돈을 가져간 것도 모자라 빚까지 져서 그걸 갚느라 아버지는 하루 이십사 시간, 일 년 삼백육십오 일 밤낮 없이 계속 일하는데 치료할 틈이 있었겠느냐? 그때서야 알았단다. 내가 얼마나 쓸모가 없고 남에게 피해만 주는 존재인지 말이야. 그 뒤로 난 금은방을 내 집처럼 알고 살았다. 아버지에게 죄스러워서, 미안해서, 또 고마워서 말이야. 그렇게 살다 보니 결혼도 하게 되고 서우 놈도 얻게 된 것이지.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은 깊은 한으로 남았었지. 그러던 중 어떤 사람에게 너와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단다. 차마 가족 일이라고 하지 못하고 친구 때문에 그렇다고 하니 이리 말을 해주더구나. 천형을 진 죄인처럼 축 늘어지지 말고, 평생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도와주라 하더구나. 훗날 당신이 할 몫을 다 했노라고 말을 할 정도로 말이야. 그 뒤로 난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더욱더 신경을 쓰게 되었단다. 다 아버지 덕에 좋은 아내를 만났고, 자식을 키웠다고 말을 할 수 있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