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39
차원상인 039화
순간 우현은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저 돈 몇 푼 쥐여 주고, 주거지에 살게 하고, 위령비 공원 만든 것으로 내 죄를 스스로 사했다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 위안을 삼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말대로 먼저 간 용병들을 대신해 아버지처럼 유족들을 지키자. 훗날 당신이 할 몫을 다 했노라고 말을 할 정도로 말이야. 그것만이 희생자들에 대한 속죄가 될 테니 말이야.’
우현은 소주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쓰디쓴 소주가 입안을 더욱더 쓰게 만들었지만 마음만은 더욱더 굳세어진다. 마치 각오를 다지기 위한 의식처럼 말이다. 재차 마시던 우현은 고개를 쳐들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그저 옛이야기 한 것뿐인데 감사는 무슨…….”
서우 아버지는 됐다는 듯 손을 내저어간다.
뒤늦게 손을 닦으며 자리로 돌아온 서우는 둘을 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그리 분위기가 좋은 거야?”
“별말 안 했다.”
“아닌데 뭔가 있는데?”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던 그는 이맛살을 좁혔다.
“설마 나 빼고 좋은 곳 가려는 건 아니지?”
“좋은 곳이라니? 대체 어딜 말하는 것이냐?”
“아버지, 어디긴? 단란한 곳이지.”
“단란…….”
술을 마시던 서우 아버지가 그만 뿜고 만다.
그건 우현도 마찬가지인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야, 내가 설마하니 아버님 모시고 그런 델 가겠냐?”
“그런 곳은 원래 나이 든 사람이랑 가야 제맛이라고!”
“그게 좋은 술 먹고 할 소리냐? 그리고 나이 든 사람? 그래, 어디 한번 나이 든 사람에게 죽도록 맞아 보아라!”
“아, 아버지! 등짝 아파!”
“그럼, 아프라고 때리지! 기분 좋으라고 때리는 줄 아느냐, 이놈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짝을 후려치는 손길이 거세진다. 불 위에 올려진 마른 오징어처럼 온몸을 비틀어대는 서우를 보다 못한 우현이 서둘러 막아섰다.
“그만하십시오. 아버님! 여기 가게입니다.”
그제야 자신들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을 본 서우 아버지는 이내 손을 내린다.
“너, 우현이만 아니었으면 반쯤 죽었다.”
“괜히 나만 미워해!”
울상을 짓는 그에 혀를 차며 내젓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서우를 좀 더 놀리고 싶은 생각에 우현은 슬쩍 서우 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아버님, 그러지 마시고 기분 전환 겸 이따가 노래 한 곡조 뽑으러 가시죠. 1시간 제가 쏘겠습니다.”
“노래방? 거, 좋지! 서우는 놔두고 우리 둘만 가자꾸나!”
“당연하죠. 괜히 데려갔다 분란만 일으키는 것보단 낫죠.”
“우쒸!”
어느새 홱 돌아앉은 서우는 말없이 고기만 집어 먹는다.
그런 그를 보며 두 사람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간만에 기분 좋은 웃음을 말이다.
서우 아버지와의 상담 이후, 조금은 홀가분해진 우현은 본래 삶으로 되돌아갔다.
거래 업체들을 돌며 물품 추가 매입 계약 협상을 하였고, 새로 선보일 신상품을 찾기 위해 고심을 했다. 그리고 그 바쁜 나날 속에서도 두 동생과 서우네 가족과의 시간만은 틈틈이 가졌다. 저번 몰핀과의 일을 통해 주변 사람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점점 시간은 흘러 대륙으로 넘어갈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제2-7장
“이곳이 현재 주거지 조성 단지로 작업 중인 곳이에요.”
대륙에 오자마자 물품을 떠넘긴 우현은 몰핀 남작 일로 자신의 호위가 된 티아와 함께 주거지를 살피러 나왔다. 시선 가득 펼쳐진 땅덩어리에 오직 한 채의 가옥만이 세워져 있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는 상단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다 뿌듯해진다. 손이 불끈불끈 쥐어지는 것이 금방이라도 나서서 같이 일을 하고 싶을 정도이다.
애써 마음을 달래던 그때 현장 감독인 마이클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하아! 하아! 어서 오십시오. 상단주님!”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모습에 걱정부터 앞선다.
“일단, 숨부터 고르고 말하십시오.”
“죄…… 죄송합니다. 하아!”
아무래도 진정부터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후, 숨소리가 잦아들고 나서야 우현은 말을 건넸다.
“현재 작업 상태는 어떤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토대 및 기둥을 세우는 단계로 상단 사람들의 전폭적인 도움 덕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거지, 위령비 공원 둘 다 해서 최대 1년에서 빠르면 9개월 안에 끝날 듯싶습니다.”
“힘들겠지만 애써주십시오.”
“노력하겠습니다.”
주억대는 마이클을 보다 뒤편에 자리한 가옥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참! 저기 가옥 한 채는 뭡니까?”
“저건 상단 사람들로 하여금 가옥을 지으면 이리될 것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일종의 모델하우스군요.”
“예에? 모델하우스요?”
여기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깜박한 우현은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혼자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알겠다며 주억대긴 하지만 그래도 갸웃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아무래도 화제를 돌리는 것이 좋겠다 싶어 반응이 어떤지 물었다.
“저를 포함해 기존 집을 건축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상단 사람들까지 모두 감탄해 마지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집을 생각해냈느냐고 말입니다. 특히나 뜨뜻한 온돌방이나, 부엌에 있는 아궁이에 놓는 쇠솥으로 뜨거운 물을 데워 하는 목욕은 그야말로 귀족 부럽지 않다고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집 한편에 세워진 화장실의 오물과 부엌의 오수를 배수관을 통해 한 곳으로 옮겨 처리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대륙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할 수 있습니다.”
하긴 온돌방은 지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민족 고유의 산물이다.
거기다 욕실 기능을 갖춘 부엌과 화장실 배수 처리 방식은 이곳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매우 신기한 광경일 것이다. 물론 상수도 시설이 없는 탓에 한두 달에 한 번 똥을 퍼 날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마음에 든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참! 조만간 상단 사람들이 본업에 복귀하게 될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 때문에 토대 및 기둥 설치를 먼저 한 것입니다. 그것만 완료되면 나머지는 소수의 사람이라도 쉽사리 진행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냐며 끄덕이던 우현이 마이클을 바라보았다.
“그럼, 위령비 공원 쪽은 어떻습니까?”
“그쪽은 현재 분수대 작업 중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마이클이 앞장서서 분수대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주거지 단지의 정중앙에 위치한 탓에 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 작업에 들어간 것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휑한 땅바닥에 물길이 정사각형 타일을 깔아 놓은 듯 만들어져 있었다. 이게 왜 만들어져 있는지 도통 모르겠던 우현은 그만 고개를 갸웃댄다. 이에 마이클은 조금은 민망한 빛을 띠며 말을 하였다.
“좀 많이 휑할 겁니다. 분수대 작업 중이라 아직 주위를 꾸미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렇긴 하군요. 그보다 대체 이 물길은 무엇입니까?”
가리키는 것을 본 마이클은 조금 전 갸웃거림이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아! 이것은 분수대와 연결되는 물길로, 향후 주위에 심어질 꽃이나 나무, 잔디에 물을 공급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예! 분수대 밑바닥에 있는 마개를 빼면 차 있던 물이 빠져나가게 되고 주위에 물을 공급하게 되는 겁니다.”
“분수대 물을 재활용하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알겠다는 듯 끄덕이던 우현은 번뜩 생각난 것을 물었다.
“그럼, 분수대에 물은 어떻게 끌어온 겁니까?”
“인근 호수에서 끌어옵니다. 마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아……! 마법!’
이곳에 있은 지도 꽤 됐는데 아직 마법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것이 마법사인 소네스도 잘 구사하지 않는 데다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법등 외엔 마땅히 마법과 관련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마법을 쓰는 세상에 있으면서도 가끔 까먹게 되는 것이었다.
“정말 마법을 이용하면 되는 겁니까?”
“예! 에어 홀이라고 1써클 마법으로 물건이나 공기를 빨아들이는 마법입니다. 그것을 설치한 관을 이용하면 어디 있는 물이든 분수대까지 충분히 물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모든 의문이 풀려서 그런지 우현의 낯이 편안해진다.
“참!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벽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것 또한 현재 제작 중으로 돌 중에서도 제일 단단한 것을 골라 마법 처리를 하는 터라 제법 시일이 걸릴 듯싶습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최선을 다해 달라 전해 주십시오.”
“그리 전하겠습니다.”
대충 다 둘러봤다 싶던 그때 소네스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걸 본 우현은 반갑게 맞이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왔으면 왔다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야?”
“바쁘신 것 같아 나중에 들르려고 했지요.”
“주거지는 대충 둘러봤어? 어때? 감상이 말이야.”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피던 우현은 맘에 든다는 듯 주억댄다.
“아직 완성되려면 멀긴 했지만 여기 있는 공사 담당인 마이클과 여러 사람들이 신경 쓰고 있어서 그런지 잘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순간 마이클의 낯에 기쁨이 깃든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 있어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 칭찬해주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슬쩍 코끝을 비비는 척하며 미소를 짓는 그를 보며 피식 웃던 우현은 소네스를 보았다.
“근데 무슨 일입니까?”
“아! 며칠 전에 호위대를 뽑고, 오늘 첫 훈련에 들어가는 날이거든. 괜찮으면 네가 참관해줬으면 하는데 어때?”
“형님! 벌써 호위대를 뽑았습니까?”
“용병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실력이 검증된 사람들 중에서 한 것이라 미루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호위대 편성이 어찌 됐는지 알고 싶기도 했고, 레이젠 형님이 하는 훈련은 어떤지 궁금했거든요.”
“궁금할 것도 없어! 어차피 오늘 내일 간단한 훈련만 여기서 하고 한 달간 산으로 들어간다고 하니까 말이야.”
우현은 깜짝 놀라 되묻는다.
“상단은 어쩌고 산으로 가신다는 겁니까?”
“여기 있는 티아를 비롯해 도베르만 기사단 사람들 대부분을 남겨두고 간다니까 별걱정 안 해도 될 거라 하던데!”
“레이젠 형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뒷말을 흐리는 그의 어깨를 소네스가 친다.
“야! 상단주가 되어 가지고, 밑의 사람 못 믿겠다는 투로 말하면 어떻게 해!”
그러고 보니 옆에 있는 티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둘러 고개를 숙인 우현은 미안함을 담아 말을 건넸다.
“제 말뜻이 그게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 그리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