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40
차원상인 040화
“아니에요. 저번 싸움은 도베르만 기사단 출신으로서는 치욕이라 할 만큼 안 좋았어요. 상단주님의 신임을 얻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괜찮다는 듯 담담히 말을 하면서도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지 아미가 찡그려진다.
그런 그녀를 보며 우현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왠지 자신 때문에 그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네스도 그걸 느꼈는지 슬쩍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들 해! 호위대 훈련 첫날인데 그런 말 하면 쓰나? 안 그래?”
책망을 하는 그에 우현은 고개를 넙죽 숙인다.
“죄송합니다, 형님!”
“쯧쯧쯧! 상단주인 넌 아랫사람을 좀 더 믿고, 티아는 좀 더 신임을 받도록 노력하고. 내 말 알겠어?”
“그리하겠습니다.”
“노력할게요.”
답을 하는 우현에게선 절대적인 믿음이, 티아에게선 절치부심의 빛이 보인다.
그런 둘을 지켜보던 소네스는 깜박했다는 듯 말을 건넸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가자! 오늘 첫날이라 훈련을 짧게 한다고 했거든…….”
“예, 어서 가시죠!”
티아를 안내자 삼아 둘은 발길을 호위대 훈련장으로 돌렸다.
십 분쯤 걸어갔을까? 그들 앞에 널따란 공터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엔 세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첫 번째는 자기 덩치만 한 돌을 이리저리 들었다 놨다, 허리에 밧줄로 매달고 뛰는 모양새가 체력 훈련을 하는 듯싶었고 두 번째는 무기 수련을 하는 것인지 하나같이 시커먼 뭔가를 들고 휘두르고 있었는데 모양새로 보아 쇳덩이인 듯싶은 것이 아마 체력 훈련도 겸하는 듯하다. 다음 세 번째는 예닐곱 명씩 모여서 싸워대는데 어떤 때는 한 덩어리가 되어 공격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같이 싸웠던 이를 공격하는 것이 아무래도 팀이 아닌 각 개인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듯했다.
문제는 싸우는 과정에서 온전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피투성이가 되는 건 물론이고, 팔다리 하나쯤은 부러져도 상관이 없는 듯하다. 개중에는 대기하고 있던 사제가 달려들어 말려댈 정도이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모두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일종의 명상을 하는 듯 보였는데 아마도 마나심법 수련을 하는 듯 보였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모두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듯하여 그들에 대한 믿음이 절로 생겨난다. 단 한 가지, 서로 싸우는 것만 빼고 말이다. 그게 마음 한편에 걸렸는지 슬쩍 말을 건넸다.
“형님! 첫 훈련인데 너무 격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아마 실력 검증을 위해서 그런 걸 거야.”
“검증이요?”
“대부분 용병들이 랭크제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확실한 검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지라 약간씩 차이가 있거든. 그래서 오늘 확인도 할 겸 해서 저리 대결을 펼치도록 한 거야.”
그러냐며 주억대던 그때 뒤늦게 이들을 본 레이젠이 곁으로 다가왔다.
“어, 형!”
소네스에게 손을 흔들던 그는 시선을 들어 우현을 보았다.
“언제 왔는가?”
“조금 전에 와서 주거지 단지를 둘러보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 그쪽은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상단 사람들의 도움으로 빨리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럴 걸세. 최근 상단 사람들에게서 뭔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의지가 엿보였거든…….”
“저도 그에 부응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형님!”
걱정 어린 눈빛에 레이젠은 어깨를 툭 쳤다.
“자네라면 능히 그럴 것이니 너무 걱정 말게.”
“말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운 듯 우현은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보며 피식 웃던 그는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아! 그건 내가 오늘 호위대 첫 훈련이니 참관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거든…….”
“맞습니다. 형님 말대로 첫 훈련이 어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잠시 참관하러 왔습니다.”
“그런가? 그래, 잘 왔네! 그렇지 않아도 뽑을 때도 상단주가 없었고, 첫 훈련에도 없어서 좀 그렇다 싶었는데 잘 왔네. 어떤가? 자네가 본 소감이 말이야.”
“제가 뭘 알겠냐마는 모두들 열심히 하는 것이 보는 사람이 다 뿌듯하네요.”
“그렇지?
순간 레이젠의 어깨가 쫙 펴지더니 자랑스럽다는 듯 훈련장을 바라본다.
그걸 보며 웃던 우현은 이제 용무는 다 봤다는 듯 발길을 돌려본다.
“그럼, 구경도 다 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형님!”
“그리 급하게 갈 것이 아니라 기왕 온 김에 한마디 하고 가게나.”
“연설이요?”
“그래도 명색이 상단주인데 새로 만든 호위대에 얼굴을 비춰줘야 저들도 기세가 살 것 아닌가?”
“맞아! 그 정도는 해줘야지.”
소네스까지 동의하고 나선다. 하긴 기껏 뽑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앞으로 상단을 위해 목숨을 바칠 이들에게 실례인 듯싶다. 막 알겠다며 끄덕거리려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홀로 떨어져 훈련을 받는 이가 보였다. 무지한 자신이 봐도 얼차려에 가까운 그 훈련에 우현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럴 것이 척 봐도 다른 이들과는 달리 몸이 비리비리한 데다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 용병 맞아?’
절로 떠오르는 질문만큼이나 답이 궁금해진다.
허나,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레이젠이 나설 것인지 물었다.
“아, 예! 하겠습니다.”
“그럼, 내 준비토록 하겠네.”
레이젠은 지도를 하고 있는 엘레토와 필리온을 시켜 호위대들을 불러 모았다. 8열로 모인 그들의 눈에 담긴 열의와 기세등등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벅차오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우현의 시선은 아까 얼차려를 받던 이를 향하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때 주위를 훑던 레이젠이 슬며시 말문을 열었다.
“모두 주목!”
“주목!”
한목소리로 외치는 소리에 훈련장이 떠들썩하니 울린다.
“훈련 중에 그대들을 이곳에 모이라 한 것은 한 사람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이곳 상단을 열고, 호위대를 만드신 상단주이신 릭 캐슬 님이다. 모두 박수로 환영하도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슬쩍 우현을 앞세우고 뒤로 빠진다.
그가 나오기 무섭게 사람들에게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짝짝짝!”
“우와아아!”
민망해진 우현은 그만 뒷머리를 긁적댔다.
그것도 잠시 본래의 낯빛으로 돌아가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안녕하십니까?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 릭 캐슬이라고 합니다.”
또 한 번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두 번째라 그런지 별 감흥 없이 말을 이어나간다.
“일전의 사고로 인해 우리 상단은 아까운 사람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순간 주위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들이 아무리 용병이고, 이 영지가 처음이라 해도 영주성을 떠들썩하니 만들었던 추모제에 대해서는 익히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그런 점이 맘에 들어 호위대에 든 자도 있었고 말이다. 그때 일이 생각났는지 잠시 침묵하던 우현은 나직이 말을 건넸다.
“뒤늦게나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호위대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슬픈 것은 슬픈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한 가지 약속을 받고 싶습니다. 상단의 방패이자, 칼이 되어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여러분 스스로 목숨을 버리지는 마십시오.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십시오. 본 상단주가 호위대를 만든 목적 또한 그러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실력을 쌓아 자신과 남을 살릴 수 있는 상단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리를 굽혔다.
이런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빛을 띠었다.
명색이 상단주가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웅성거림이 커져 갈 때쯤 레이젠이 한 발 앞으로 나선다.
“일동 차렷! 상단주님께 경례!”
순간 주위 모든 이들이 꽉 쥔 왼 주먹과 오른 무릎을 바닥에 닿게 함과 동시에 고개를 조아렸다.
“충!”
단 한 마디의 말이건만 훈련장 너머 대지가 진동하듯 울려댄다.
이것은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에서 쓰던 군례로 레이젠이 호위대 사람들끼리 쓰기로 한 것이지만 우현의 말에 탄복을 받아 오늘만은 특별히 쓰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진심이 느껴진 것일까? 슬쩍 미소 짓던 우현은 천천히 허리를 폈다. 완전히 일어서길 기다려 외친 ‘바로!’란 말에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 말 다 했다는 듯 물러서는 그에 레이젠은 살며시 앞으로 나섰다.
“모두 상단주님의 말씀을 잘 들었으리라 믿는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우린 군대가 아닌 호위대다. 자신이 먼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앞으로도 더욱더 훈련에 열의를 더해 주기 바란다. 이상!”
레이젠마저 몸을 돌리자, 엘레토와 필리온은 사람들을 데리고 훈련장 곳곳으로 퍼져 갔다.
아까 하던 훈련과 같은 것을 하지만 사람들은 우현의 말 때문인지 좀 더 적극적으로, 열성적으로 임했다. 그 모습을 본 레이젠은 흐뭇한 미소를 띠며 시선을 돌렸다.
“역시 연설하길 잘한 듯싶네!”
“제 연설보다는 형님이 훈련을 잘 시켜서 그런 것이지요.”
“아닐세. 상황에 따라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는 거라네. 지금이 딱 그때이고 말이야.”
동의를 표하듯 티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아닙니다, 형님! 창고로 가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검 훈련할 때 보도록 하세!”
“기다리겠습니다.”
가자며 나서는 소네스를 따라가던 그의 시야에 아까 얼차려를 받던 이가 엘레토에게 뒷덜미를 잡히는 것이 보인다. 별것 아닌 듯 시선을 돌려보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기억 속에 맴돈다. 마치 그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 늦었습니다!”
헐레벌떡 들어오던 우현은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허나, 밀린 업무를 보느라 그랬다는 것을 잘 알기에 레이젠은 별말 없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게. 그보다 이것을 걸쳐보게.”
모양새로 보아 조끼로 보이는 것을 받아 쥔 우현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그 묵직함에 놀랐다.
“형님! 이게 뭡니까?”
“자네의 체력 증진을 위한 것이네. 팔목과 발목에 차는 것도 있으니 어서 착용해 보게!”
‘흔히 운동선수들이 근력 강화에 쓰는 쇳덩어리가 든 팔찌, 발찌 같은 건가 보군.’
대충 어떤 용도로 쓰는 건지 알아챈 우현은 눈앞에 고생문이 훤한 듯 한숨을 내쉰다.
그런 속내를 읽었던 것일까? 레이젠은 어서 착용하라며 재촉해댄다.
“어서 착용하게!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뭐라 하고 싶지만 그저 입안에서만 맴돌 뿐 정작 밖으론 나오질 못한다. 괜히 그랬다가 팔찌라도 하나 더 차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 때문이었다. 잠시 후, 모든 것을 착용한 우현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그 묵직함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내 몸 하나 더 얹은 듯하네?’
힘들어 죽겠다는 듯 내뱉던 그때 레이젠이 말을 건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