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42
차원상인 042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하는 그에 우현은 알겠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인다. 방금 자신이 어떠했는지 알아챈 헤일러는 서둘러 입을 닫고 고개를 숙였다. 눈치만 살피는 그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열의 넘치는 의견 잘 들었습니다. 상행은 차후 사람들과 논의 후에 나서는 것으로 하고 우선은 대금 대신 물품 받는 것부터 시행토록 하겠습니다. 미봉책이라고는 하나 지금으로서는 최선책일 듯싶으니 말입니다.”
“저,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헤일러는 확인 차 물어온다. 열정적이던 아까와는 달리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것이 소심하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싶다. 피식 웃던 우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소네스 형님과 상의를 해서 한번 실행에 옮겨보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좋은 의견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십시오. 제가 아닌 상단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 예!”
헤일러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일개 직원에 불과한 자신의 의견을 받아 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단을 위해서라…….’
우현의 말을 되뇌던 헤일러는 지금껏 살아온 동안 제일 잘한 일은 이 상단에 들어온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뚜렷한 이유 하나 없이 그저 막연한 느낌이지만 왠지 그럴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는 헤일러를 뒤로한 채 서류를 살피는데 하인 하나가 급하게 들어왔다.
“상단주님!”
“무슨 일인가요?”
“바딘 백작님이 상단주님을 뵈러 오셨습니다.”
“백작님이요? 절 찾아온 이유가 뭐라 하던가요?”
“그냥 할 말이 있다고만 하십니다.”
“그래요?”
잠시 생각에 잠기지만 이유가 뭔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알았어요. 모시고 오십시오.”
“예! 상단주님.”
넙죽 허리를 숙이던 하인이 나가자 우현은 남은 것은 나중에 하자며 헤일러마저 보냈다.
그렇게 홀로 있은 지 얼마나 됐을까? 돌연 방문이 열리며 바딘 백작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
“상단 일을 보는 듯싶은데 방해해서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그보다 백작님은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그러지 말고 자리부터 앉게 좀 해주지 그러나? 오랜만에 만나는데 서서 이야기하긴 그렇지 않은가?”
“죄송합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너무 급했다 싶은 우현은 서둘러 의자를 권했다.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던 바딘 백작이 물었다.
“어딜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인가? 자네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구만그래!”
“이래저래 상단에 일이 좀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남도 아니고 서로 기별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
“죄송합니다. 백작님! 미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서운하다는 듯한 모습에 우현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일까? 바딘 백작의 낯이 조금은 수그러든다.
“알았으면 연락 좀 하고 살게! 사람 걱정 끼치지 말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이때 하인이 들어와 그들 사이에 커피를 놓고 나간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던 바딘 백작이 물었다.
“참! 이번에 소금 판매하기로 했다고 들었네?”
“적은 양이지만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잘했네. 그렇지 않아도 왕국 내 소금이 부족해 곤란한 상황이었네.”
“다행이군요. 조금이나마 왕국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말입니다.”
바딘 백작은 잠시 소금 판매로 향했던 말머리를 돌려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 듣자 하니…… 이번에 호위대라는 상단 자체 병력을 만들었다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만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겁니까?”
“솔직히 상단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체 병력을 갖는 건 이상할 것은 없네만 문제는 그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네.”
“고작해야 육십 명인데 그게 많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 말고도 상단 안팎으로 깔아둔 용병들이 있지 않은가?”
그랬다. 현재 상단 외곽 경계를 맡고 있는 용병은 모두 구십 명으로 전에 비해 두 배가량 늘렸다. 하지만 그건 주거지 단지로 인해 늘어난 땅만큼 경계 인력을 보충한 것일 뿐 일부러 늘린 것은 아니었다.
“그거야 상단 사람들을 위해 짓고 있는 거주지 단지를 경계할 인원들입니다. 일부러 늘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현 영지군의 수는 불과 사십이네. 그에 반해 상단에 고용된 용병들과 호위대를 합치면 백오십 명. 4배에 가까운 인원일세. 너무 많다 여겨지지 않는가?”
순간 우현의 눈살이 꿈틀거린다.
“백작님! 혹시 저희 인원을 감축하라 이 말씀이십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나? 자네들은 모르겠지만 현재 상단에 용병들이 몰리면서 영지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네. 주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면서까지 굳이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만…….”
냉랭해진 눈빛만큼이나 목소리 역시 싸늘해졌다.
“백작님! 영지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저희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들린 커피 잔 위로 바딘 백작의 매서운 눈빛이 드리워진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우리 상단의 용병들이 아니라 석 달 전 있었던 보르네오가의 몰핀 일 때문입니다. 그때 마흔에 가까운 인원이 영지로 침입한 것도 모자라, 영지성에 들어와 우리 상단을 노렸습니다. 돌려 말하면 우리 상단이 아닌 다른 영지민들도 그리 당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렇듯 불안한 영지 치안 상황에 그 어떤 사람이 안심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거야 영지군의 수가 아직 적어서…….”
“제가 알기로는 종이 독점권으로 인해 영지 재정은 물론이고, 왕실 재정까지 제법 늘어났다 들었습니다. 거기다 얼마 전, 상단에서 영지와 왕실에 세금까지 납부했다 들었습니다. 근데 그 많은 돈을 가지고도 정작 영지에 필요한 영지군 하나 늘릴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 대체 그 돈들이 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 모두 사라지기라도 한 것입니까?”
연이은 질책에 한껏 좁아진 바딘 백작의 눈매가 파르르 떨려온다.
누가 봐도 노기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임을 쉬이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라보는 우현의 모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오히려 여유롭게 커피 잔을 들어 마셔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조금 전 일에 대한 후회 따윈 없는 듯하다. 바딘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뒤틀었다. 당장에라도 귀족 능멸 죄를 들어 요절을 내고 싶지만 애써 마음을 꾹 눌렀다. 아직은 알카인 왕국, 친왕파 모두 그의 상단, 아니 재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네 이놈, 언젠가 쓸모가 다하면 내 친히 네 목만은 거둬들여 주마!’
몰래 다짐을 하던 바딘 백작은 굳어진 신색을 되돌렸다.
“자네 말대로 영지에 소홀히 했다는 것은 인정하네. 그렇다고 한들 병력을 늘리게 가만히 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네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우후죽순 영지에서 늘어갈 것이고, 이는 훗날 왕국을 위험케 하는 크나큰 요소가 될 것이네.”
“백작님! 저희라고 해서 굳이 용병을 늘일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왕국, 영지가 우릴 지켜주지 않으면서 어찌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까? 앞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 자위권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상단의 용병 및 호위대의 병력을 감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말입니다.”
순간 바딘 백작의 콧등이 찡그려진다. 아까도 그랬지만 전과는 다른 강한 어조로 보아 삼 개월 전 몰핀의 일이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긴 자신이라도 그런 일을 겪으면 능히 이럴 듯싶다.
‘망할 놈의 몰핀 때문에…….’
짜증을 토해내던 바딘 백작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알겠네. 자네 생각대로 하게. 단, 한 가지 약속을 해주게. 자네 말대로 영지군을 늘려 영지가 안정화되면 그땐 상단 소속 용병들의 수를 줄이도록 말이야.”
“저희 역시 영지가 안전하다면 굳이 지금의 용병 수를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말을 마친 바딘 백작은 마지막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서둘러 말을 건넸다.
“참! 오다 보니 상단 앞에 써 붙인 방이 하나 있던데 그게 무엇인가?”
“상단 인력 구한다는 것 말입니까?”
“그거 말고 타 왕국의 특산품이나 풍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구한다고 쓰여 있던 것 말일세.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인데 상단을 옮길 생각인가?”
뭔가 싶던 우현은 이내 아니라며 내저었다.
“그게 아니라 상행을 나서볼까 합니다.”
“상행을 말인가?”
“예! 언제까지고 이곳에 상인들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덜컥 나서는 것도 시작한 지 얼만 안 되는 상단 여건상 좋지 않을 듯싶어 그간 참았습니다만 상단 발전을 위해서라도 조금씩 차근차근 준비해 나서볼 생각입니다.”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기던 바딘 백작이 이내 다시 물어온다.
“상행을 나서는 것이야 상단의 본 업무이니 할 말은 없네만, 굳이 왕국 내가 아닌 타국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
“그건 기존에 있던 왕국 내 상단들과 싸우기보다는 타국에서 물건을 가져와 파는 것이 더 이득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현재 저희 상단이 왕국 내에서 상행을 하게 된다면 기존 상인들과의 마찰도 제법 클 것이기에 그러기보다는 서로 공생하는 관계로 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서 그렇습니다.”
“공생이라…….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지. 그래! 언제쯤 시작할 생각인가?”
“준비가 아직 미흡하여 제법 시일이 걸릴 듯싶습니다.”
“혹시나 나중에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게. 언제든 도와줄 테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주억대는 우현을 본 바딘 백작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차도 마셨고, 바쁜 사람 오래 붙들고 있는 것도 좋은 게 아니니 말이야.”
“백작님,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내저어 보이며 그는 서재를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현은 몰랐다. 자신과 백작 사이가 조금씩 뒤틀리고 있음을 말이다.
“캐슬이 자위권을 들어 상단 병력을 줄일 수 없다 했단 말이지. 일개 상단주인 그가 바딘 백작에게 말이야.”
“그렇습니다. 공작님!”
끄덕대는 테온을 보며 조바오니 공작은 박장대소를 한다.
“크하하하! 그거 볼 만했겠구나! 바딘 백작의 표정이 말이야.”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껏 두문불출하던 것을 끝내고 타국으로 상행에 나서겠다고 선언까지 했습니다.”
“타국으로? 그럼, 바딘 백작은 타국으로 상단을 옮기는 줄 알고 의심을 하고 있겠구나!”
“허겁지겁 상단에 사람을 심는 걸로 봐서는 능히 그런 듯싶습니다.”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조바오니 공작은 몰핀의 일을 계기로 우현이 병력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바딘 백작과 대립 정도나 하길 바랐는데 막상 진행되어 가는 상황을 보니 둘이 아주 갈라설 듯싶다. 예상외로 너무도 쉽게 자신의 의도대로 돌아가는 것에 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어깨를 들썩대며 한참을 웃어대던 그는 시선을 들어 테온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