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43
차원상인 043화
“바딘 백작은 맘이 좋긴 한데 의심의 싹이 트면 냉혹하기 그지없지. 하긴 그 정도는 했으니 친왕파가 살아남은 것이지만 말이야.”
묵묵히 있던 테온이 물었다.
“이제 앞으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둘을 흔들어 놨으니 이제 그놈을 내 손에 쥐어야 할 것 아니겠느냐?”
“좋은 계책이 있으신 겁니까?”
“엘테르 성국에 살짝 귀띔해 두어라! 캐슬이 소금 판매를 한다고 말이야.”
순간 테온의 이맛살이 좁혀든다. 그럴 것이 엘테르 성국의 국책 사업이 다름 아닌 소금 판매였기 때문이었다.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에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엘테르 성국에 알리란 말씀이십니까? 그러다간 자칫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걱정 마라! 그들이 그럴 생각이었다면 그리 오랫동안 지켜보고만 있지만 않았을 테니 말이야.”
이미 하임이트 영지 곳곳에 심어둔 정보원을 통해 엘테르 상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가 우현 상단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조바오니 공작은 잘 알고 있었다.
테온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는 언급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시행토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한차례 주억댄 테온은 몸을 돌려 나간다.
홀로 남은 조바오니 공작은 또다시 어깨를 들썩대며 웃어댄다.
“크크크! 바딘 백작! 요즘 친왕파의 세를 늘린다고 설쳐대는 것 같던데…… 어디 그놈을 잃고도 그리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군. 궁금해져!”
제2-9장
“하아! 하아!”
골목을 돌아가던 후드 점퍼를 입은 여인이 슬쩍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둘이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보였다.
“젠장! 또 어디로 도망친 거야?”
짜증을 토해내던 한 사내는 옆에 있는 이를 툭 치며 말을 하였다.
“내가 이쪽으로 가볼 테니까 넌 이쪽 길로 가봐!”
다행히 여인이 있는 골목과는 반대 반향.
그래도 혹시 몰라 그들이 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내 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제 돌아왔는지 검은 양복의 사내가 다시 골목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런…….”
눈살을 찌푸리던 여인은 서둘러 발길을 틀었다.
“멈춰! 멈추란 말이야.”
연신 뒤에서 울려 퍼지는 고함 소리를 뒤로한 채 있는 힘껏 땅을 박찬다.
어느덧 골목을 빠져나온 그녀는 건널목 앞에 선 차의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누구신데 제 차에 타는 겁니까?”
“시끄럽고! 뭐 해? 신호 떨어졌어. 출발 안 해?”
“그게 남의 차에 타서 할 말입니까?”
“뒤차들 못 가잖아. 어서! 어서! 출발해!”
클랙슨을 울려대는 뒤차들 때문인가?
운전석에 앉은 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차를 몰았다.
막 건널목을 지나갈 무렵 골목에서 빠져나온 검은 양복 사내들이 보인다.
그걸 본 여인은 바짝 몸을 웅크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몰랐다. 지금 이 순간이 과거의 소중했던 한 인연을 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는 말이다.
붕!
“하아! 하아! 497!”
붕!
“4……98!”
붕!
“5……00!”
쨍그랑!
“아이고 죽겠다!”
허공을 갈라가던 검신이 두툼한 철검을 땅바닥에 떨어트린 채 우현은 대자로 뻗어버린다.
복날의 개처럼 혓바닥을 내민 채 헉헉대는 것이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것이 근 삼 개월 동안 레이젠이 목검에서 철검으로, 철검에서 중검으로 차근차근 무게를 늘려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몸에 두른 갑갑한 철 조끼와 발목, 팔목에 찬 아대 역시 늘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 결과 체력도 늘고, 근육도 제법 붙어 매우 보기 좋은 몸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힘든 건 사실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만 있던 그는 슬쩍 물통이 있는 곳을 보다 이내 몸을 일으켰다. 막 발길을 옮기려는 찰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캐슬! 릭 캐슬!”
누군가 싶어 보니 소네스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근데 얼굴 가득 웃음기가 만연한 것이 아무래도 뭔가 좋은 일이 있는가 보다.
“소네스 형님! 뭔 일 있습니까?”
다가온 그는 잠시 숨을 고르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반응이 아주 좋아!”
“뭐가 말입니까?”
“저번부터 대금 대신 물품을 받아서 판매하기 시작했잖아. 일부는 상인들에게, 그 나머지는 영지민들에게 팔았는데 그게 의외로 이득도 짭짤하더라고!”
소네스는 또 한 번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저번부터 헤일러의 의견을 받아들여 상단 문을 다시 열었을 때부터 몇몇 상인들에게 대금 대신 물품을 받아 판매했었는데 그게 제법 이윤이 남았나 보다. 저리 좋아하는 걸 보니 말이다.
“형님! 대체 얼마나 좋기에 그러십니까?”
“이득은 한 2할 정도밖에 더 얻지 못했지만 영지민들의 발길이 잦아진 게 더 큰 성과야. 그동안 상인들만 상대하다 보니 어려워했는데 저번과 이번에 한 물품 판매로 제법 문턱이 낮아진 모양인지 많이들 찾더라고. 그 덕에 우리 상단 평판도 좋아. 헤일러의 의견이 딱 들어맞은 거지! 그뿐만이 아니야! 상품을 가져온 이들 중 이곳에서 만나 즉석에서 거래를 트는 일도 제법 있어서 상인들도 여간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러고 보니 최근 상단 앞에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상인들이 대금 대신 물품으로 치르려 가져온 것 중에 남은 것을 주위 다른 상인들에게 팔면서 그리된 것인데 처음엔 몇 안 되던 것이 그 숫자가 많아지면서 지금은 시장이라 부를 만큼 커다란 상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현재 알카인 왕국 내 시장터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니 어느 정도나 큰지 상상이 갈 것이다.
“상인과 영지민 모두에게 좋다면 그거야 좋은 일이죠. 맞다! 형님! 소금 판매는 어떻습니까?”
소금에 대해 묻자 소네스는 조금은 시큰둥한 빛을 띤다.
“일단 다 팔리기는 했는데 소금이란 것이 워낙 고가라서 그런지 많이 찾지는 않더라구.”
“홍보 부족일 수도 있으니 당분간 팔아보면서 분위기 파악 좀 하죠.”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그리고 이건 요번 판매 현황.”
건네받은 서류를 살피는 우현 곁으로 간 소네스가 차근차근 설명해간다.
“현재 각 물품의 판매액은 종이 이백만 장 팔만 골드에, 30봉짜리 커피 십만 개 삼만 골드, 20kg 소금 포대 300개, 세숫비누와 빨랫비누 각각 삼십만 개 삼만 골드, 빨래판 만 개 천 골드, 휴지 삼십만 개 삼만 골드, 손톱깎이 만 개 삼천 골드, 손톱소지 줄 만 개 삼천 골드 로 총 누계 십칠만 육천삼백 골드인데 그중 일 할의 대금을 물품으로 받아 판매한 결과 십구만 구천이백오십 골드로 늘어났어. 거의 이십만 골드에 육박하지.”
“꽤 이득이 좋군요.”
우현 역시 제법 많은 이득에 놀랐다.
그런 그를 보며 소네스는 빙그레 웃었다.
“내 생각인데 말이야. 대금 대신 물품으로 받는 걸 이 할까지 늘려도 될 듯싶어. 그 이상은 물량이 너무 많아 수용하기 힘들지만 그 정도는 괜찮을 듯싶거든…….”
“그럼, 형님 생각대로 해보십시오. 참! 그 전에 상인들에게는 이 사항에 대해 고지하시고 말입니다.”
“걱정 마! 거래하는 상인들에게 이미 다 말해 뒀어.”
쓰잘머리 없는 걱정이라는 듯 손을 휘이휘이 저었다.
“참! 캐슬, 너 동생들이랑 뭔 일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맞다! 오늘 외식하기로 했지.”
동생들과 했던 약속을 그제야 떠올린 우현은 부랴부랴 주위를 갈무리하고 일어선다.
“형님! 제가 급하게 가야 할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아직 서재에 있는 결재 못한 거 마무리 좀 해주십시오.”
“알았어! 어서 가봐!”
허겁지겁 저택으로 뛰어가던 우현은 깜박했다는 듯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쓸데가 있어서 그런데 크르베 가죽 좀 모아주십시오.”
“알았어! 내가 상단 사람들 시켜서 구해 볼게.”
“그러지 마시고 공고를 해서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좀 많이 필요하거든요.”
“네 말대로 조치해 볼게.”
“고맙습니다. 그럼, 저 가보겠습니다.”
황급히 저택으로 간 그는 후다닥 짐을 싸 들고 곧장 창고로 가 컨테이너와 함께 차원을 넘었다. 현대에 도착하기 무섭게 가방에서 두꺼운 겨울용 점퍼를 꺼내 입고는 경비실에 맡겨둔 배터리를 가져와 휴대폰 뒷면을 열고 바꿔 끼웠다.
띠리리링!
전원이 켜지기 무섭게 울리는 휴대폰의 액정엔 서연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하여튼 그새를 못 참고…….”
못 말린다는 듯 말을 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서연이니? 어! 데리러 오라고? 알았어. 아마 지금 가면 30분 정도 걸릴 거야. 그래! 이따 보자.”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차가 세워진 곳으로 향한다.
입가에서 허연 김을 연신 뿜으며 차에 올라탄 그는 창고 밖으로 몰고 나섰다.
얼마나 갔을까? 이제 좀 한숨 돌릴까 싶던 그때 건널목 신호등에 붉은빛이 뜬다.
잠시 차를 멈추고 파란불을 기다리는데 돌연 누군가 뒷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놀란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뒷좌석으로 향하였다.
“누구신데 제 차에 타는 겁니까?”
“시끄럽고! 뭐 해? 신호 떨어졌어. 출발 안 해?”
“그게 남의 차에 타서 할 말입니까?”
“뒤차들 못 가잖아. 어서! 어서! 출발해!”
빵! 빵빵!
무임승차한 것도 모자라 어서 출발하라고 아우성을 쳐대는 상대에 우현은 기가 막혔다.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또다시 시끄럽게 울어대는 클랙슨 소리에 결국 돌아서 운전대를 잡았다.
“대체 왜 제 차에 탄 겁니까?”
“그럴 사정이 좀 있어.”
반말로 일관하는 상대에 욱한 우현이 목소리를 높인다.
“아무리 봐도 저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않은데 아까부터 왜 계속 반말을 하는 겁니까?”
“그럼, 그쪽도 반말을 하든가?”
“뭐라고?”
“어허! 뭐 하는 거야? 내 쪽을 볼 게 아니라 앞을 보라고! 안전 운전 해야지!”
이젠 안전 운전 하라고 가르치기까지 하는 상대에 기가 막힌 그가 한 소리 하려다 백미러에 비친 상대의 모습을 보곤 이내 입을 꾹 다문다. NY라 쓰인 야구 모자에,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 점퍼에 달린 후드를 깊게 눌러쓴 데다가 웅크리듯 자세를 한껏 낮추고 연신 창밖을 통해 뒤를 살피는 것이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불안해 보인다.
‘톤이 조금 낮기는 하지만 분명 여자 목소리인데…….’
그러고 보니 왜소한 체구에, 뿔테 안경 밑으로 보이는 갸름한 턱 선과 매니큐어를 바른 얇고 가느다란 새하얀 손가락까지 남자보다는 여인의 모습에 가까웠다.
‘스토킹이라도 당했나?’
조금 전과는 달리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그 또한 여동생이 둘이나 있어 항상 치한이나 스토커에게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뒷좌석을 바라보는 눈길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한 번만 태워…….”
순간 우현의 말이 끊기고 만다. 슬쩍 본 백미러를 통해 상대가 뚫어져라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문제가 있나 싶어 재차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