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44
차원상인 044화
“무슨 문제라도…….”
“너, 만세지!”
“만……세요?”
“우리나라만세 중 만세!”
생뚱맞게 웬 우리나라만세냐 싶던 그때 뒷좌석에 탄 이가 대뜸 운전석으로 다가선다.
“맞지? 나, 우리야. 우리!”
놀란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비틀었고 순간 차가 휘청댔다.
또다시 따가운 클랙슨 소리가 울리고, 창문을 열고 죄송하다고 손짓을 했다.
다가온 상대를 뒤로 물리고서야 겨우 안정이 된 그는 대체 우리나라만세가 뭐냐 물었다.
“몰라? 백두보육시설 딸기코 원장님이 지어준 이름이잖아.”
“백두보육시설? 딸기코 원장님?”
순간 어릴 적 스쳐 지나갔던 한 보육시설이 떠올랐다.
그 당시 겪었던 곳 중에서 유독 독특했던 원장님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일명 딸기코라 불린 백두보육시설의 원장 박명환이었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았건만 취한 사람처럼 코가 빨간 데다가 다른 곳에 비해 유독 코의 모공이 넓어 흡사 딸기를 보는 듯해 당시 보육시설에 있던 애들이 그리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못 말리는 나라 사랑이었다.
해병대 출신이라는 그는 시설 곳곳에 태극기를 달고, 자기 전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게 했으며, 기상과 동시에 태극기에 경례를 하게 하는 등 온갖 것을 하게 했다. 그중 백미는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별명을 붙여주는 것이다. 우현이 만세라 불린 것도 그때 얻은 별명으로,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다른 두 아이와 같이 우리나라만세를 셋으로 쪼개 각각 붙여준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우현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봤다.
“정말로 너 우리야?”
“맞아! 새침데기 우리. 이제야 기억나?”
주억대던 우리는 후드와 모자, 뿔테 안경을 벗었다. 그러자 서구형의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좁은 듯하면서도 두터운 입새와 조금은 큰 듯한 눈망울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새하얀 이를 드러낸 채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서 어렴풋이 과거 어릴 적 모습이 보여 우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이야! 어, 이제 기억나! 그나저나 너 정말 예뻐졌다. 옛날엔 삐쩍 말라 가지고 성냥개비처럼 볼품없었는데…….”
“누가 할 소리! 키도 작아 쥐방울만 한 게 툭하면 사고를 쳐대 맨날 단체 기합 받게 한 사람이 누군데 그래? 그때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가 갈린다고!”
우현도 사고 쳤던 일들이 불현듯 떠오르는 듯 이마를 쳐댄다.
“맞다! 나 때문에 그 당시 아이들 기합 많이 받았지.”
“한두 번이야? 하루에도 서너 번은 기본이었잖아. 그때마다 원장님이…….”
“너희는 운명공동체다. 그러니 기합도 같이 받는다.”
“그래, 그랬었지. 호호호!”
딸기코 원장의 말투를 흉내 내는 모습이 웃긴 듯 우리는 한바탕 웃어젖힌다.
그런 그녀를 따라 웃던 우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물었다.
“잘 지냈어?”
“그저 그랬어. 그보다 넌 어때? 동생들이랑 같이 살아?”
“어? 내가 그런 것도 말했었어?”
“툭하면 ‘난 꼭 쌍둥이 여동생들이랑 같이 살 거야!’하고 소리쳤으면서…….”
그때 모습을 재현하듯 두 검지로 양 눈썹 끝을 치켜세운다.
우현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랬냐고 한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던 우리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젠 좀 살 만한가 보네. 예전엔 눈에 살기가 돋는 것이 무섭기만 했는데…….”
“어느 정도 소원은 풀었으니까…….”
“동생들이랑 사는 거?”
“그것도 그렇고……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 늘어놓기에는 제법 긴 이야기이니까 말이야.”
“그런 이야기는 치맥 한잔 하면서 하는 게 좋지.”
치맥이란 말에 우현은 피식 웃었다.
“너, 여전히 치킨 좋아하는구나?”
“원래 치킨이 그리 물리는 음식은 아니잖아?”
“그렇긴 해도 넌 유난히 그걸 좋아했었지.”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지.”
또 한 번 웃으며 몸을 돌려 운전대를 잡았다.
다시 차를 몰기 시작한 그는 목적지에 대해 물었다.
“나 명원 대학 가는데 너 어디 데려다 줄까?”
“여동생 대학교에 가나 보네. 근데 명원 대학이면 명문대이잖아? 공부 잘하나 보네.”
“내 자랑 중 하나야.”
“하여튼 동생 바보 아니랄까 봐! 그만 웃어. 그러다 입 찢어지겠다.”
핀잔에 잠시 헛기침을 하다 재차 물었다.
“어디다 데려다 줄지나 어서 말해!”
“음……. 그냥 명원 대학 정문에서 내려줘. 근처에 친구 집이 있으니까 말이야.”
“명원 대학 정문? 알았어. 그럼, 그쪽에 내려줄게.”
끄덕이며 신호를 보고 좌회전을 하던 우현이 깜박했다는 듯 말을 꺼낸다.
“참! 내 차에는 왜 탄 거야? 아까 보니까 뭔가에 쫓기는 것 같던데…… 혹시 빚쟁이 같은 거야?”
“흐음……. 비슷하다 할 수 있지. 근데 그리 신경 쓸 건 아니니까 걱정 마!”
“그럼, 다행이고! 좀 피곤해 보이는데 잠시 눈 좀 붙여. 도착하면 깨워 줄 테니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자고 싶었는데…… 고마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몸을 기댄다.
피식 웃던 우현은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오빠가 날 데리러 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태워주는 거니까 그리 알아.”
서연이 한껏 턱을 치켜든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걸 본 친구 김은혜는 알겠다는 듯 끄덕거렸다.
“그래, 오빠 보게 해줘서 황송하다. 황송해!”
“당연하지. 누구 오빤데!”
자신의 오빠라고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듯 뻣뻣이 고개를 쳐든다.
“하여튼 누가 오빠 바보 아니랄까 봐. 뭘 그리 생색을 내는지…….”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무, 무슨 말을 했다고 그래?”
“아닌데! 분명히 네가 말하는 걸 들었는데…….”
“네가 잘못 들었겠지. 그보다 네 오빠는 언제 오신대?”
매의 눈처럼 매섭던 눈빛이 오빠 얘기에 돌연 풀어졌다.
“아까 통화했을 때 근처라고 했으니 금방 도착할 거야.”
삼월의 봄바람처럼 나긋나긋해진 그녀에 김은혜는 고개를 내저었다.
‘매번 보는 거지만…… 오빠 얘기에 어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거야?’
고3 초부터 벌써 3년째 단짝인 김은혜는 처음 서연을 봤을 때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무서웠다. 매번 이야기의 첫마디가 오빠로 시작해서 오빠로 끝나는 데다가, 오빠의 한 달 스케줄은 물론 실시간으로 모든 행적을 꿰뚫고, 세 시간에 한 번씩 감시 전화까지 하는 그야말로 궁극의 스토커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 번은 세상 최고의 오빠라고 유난을 떠는 그녀를 꼴사납게 보던 한 아이가 시비를 걸어 한바탕 싸움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같은 학교 최고의 쿨녀라 불리는 보영이가 냉기를 풀풀 풍기며 와서는 욕한 아이에게 남긴 말은 지금도 전설로 남을 정도로 유명했다.
“오빠 욕하면 죽여 버린다.”
짧디짧은 말이건만 그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이 섬뜩하다 못해 그날 저녁에 악몽을 꿀 정도로 무서웠다고 한다. 그럴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보영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은혜는 대체 서연과 보영이 말하는 그 오빠라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한 술자리에서 우현을 보게 되었고, 남들처럼 멋있고,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듬직함과 동생들을 챙기는 따스한 마음씨에 반하고 말았던 것이다.
허나, 품에 꼭 안고, 좀처럼 남들 앞에 내세우질 않는 쌍둥이 자매 탓에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이에 김은혜는 학교 식권과 서연이가 탐내던 킬힐 구두를 준다는 조건으로 겨우 만남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기쁨 때문일까?
돌연 뺨이 불그스레해지는 것이 자꾸 심장이 빠르게 쿵쾅댄다.
자신도 모르게 볼을 매만지던 그때, 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차인가 본데?”
돌아간 시선 사이로 차 한 대가 선다.
폐차 직전의 볼품없는 차지만 왠지 정감이 간다.
이윽고 운전석에서 우현이 나오고 손을 흔들었다.
“오빠!”
만개한 꽃처럼 활짝 웃던 서연은 한달음에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런 그녀를 쫓아 김은혜 역시 재빨리 발을 놀렸다.
“출발한다고 연락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온 거야?”
“중간에 일이 있었어. 많이 기다렸어?”
“그걸 말이라고 해! 하여튼 오늘 내 기분 풀어주지 않으면 좋은 일 없을 테니까 그리 알아!”
“알았다. 네가 해달라는 거 다 해 줄 테니 그만 좀 해라!”
쀼루퉁한 서연에 우현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런 둘을 보며 김은혜가 실소를 하던 그때 낯선 목소리가 끼어든다.
“만세 성질 다 죽었네. 고작 여동생에게 쩔쩔매는 걸 보면 말이야.”
차 뒷문을 열고 나오던 우리가 우현을 보며 웃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서연이 그녀에 대해 물었다.
“누구야?”
“아! 오다가 만났는데 옛날에 같은 시설에 있었던 사람이야!”
그러냐는 서연에게 대뜸 우리가 손을 건넨다.
“안녕! 만세 친구 우리라고 해! 반갑다.”
“안녕하세요. 서연이라고 해요. 근데…… 자꾸 만세, 만세 하는데 그게 대체 뭐예요?”
“우리나라만세! 그중 맨 앞 두 글자는 나, 우리. 만세는 네 오빠이고 말이야.”
“어, 처음 듣는 이야기네.”
“그럴 거야. 그곳에서 사고를 얼마나 많이 쳐댔는데. 기억하고 싶겠어?”
“그래요?”
순간 서연의 두 눈이 반짝거린다. 유독 시설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만은 절대로 꺼내는 일이 없던 우현인지라 호기심이 동해 바짝 우리에게 다가선다. 그런 여동생에 당황한 우현은 서둘러 둘 사이를 막았다.
“우리야! 너, 친구네 집 간다며.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서 가봐야지.”
“안 기다리는데?”
“분명 기다릴 거야. 어서 가봐!”
협박하듯 눈을 부라리는 그에 우리는 피식 웃었다.
“알았어. 갈게! 근데…… 가기 전에 휴대폰 한 번 쓰자.”
“휴대폰?”
빌려주고 싶은 맘은 솜털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어서 보내자는 생각에 품에서 꺼내줬다.
건네받은 휴대폰의 액정을 열고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근처에서 벨 소리가 들린다. 뭔가 싶어 두리번대던 그때 우리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 그것도 요즘 최신 폰인 유니버스티 5를 꺼내 든다.
“그건 또 뭐야?”
“뭐긴 내 휴대폰이지.”
통화를 끝낸 우리는 우현의 휴대폰을 건넸다.
“지금 통화한 거 내 번호니까 저장해라. 그것도 단축 번호 1번에다가…… 알았지?”
“뭐, 뭐? 내가 왜 네 번호를 단축 번호 1번에 저장해! 그리고 그 1번은 내 여동생 거거든…….”
“어련하시겠어요?”
씨익 웃던 그녀는 몸을 돌렸다.
“다른 번호에라도 꼭 저장해라. 아! 그리고 나 백수니까 나중에 밥 좀 사! 그럼, 나 간다.”
“야!”
자기 할 말만 하고는 홱 가버리는 그녀를 불러보지만 손만 흔들 뿐 더 이상의 대꾸는 없다.
정말 못 말린다는 듯 내젓는데 돌연 서연이 앞을 막아선다.
“오빠! 우리란 언니하고 대체 어떤 관계야?”
“무슨 관계긴. 시설에 있을 때 안 게 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