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45
차원상인 045화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어서 차에나 타! 자꾸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식사고 뭐고 그냥 간다.”
“아, 알았어!”
우현에 이어 뒷좌석에 타려던 서연이 김은혜를 불렀다.
“은혜야! 안 타고 뭐 해?”
“알았어! 지금 가!”
끄덕이던 은혜는 슬쩍 우리가 간 곳을 재차 보았다.
‘우리라……. 설마 내가 아는 그 우리는 아니겠지?’
설마설마하다 이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내젓는다. 그녀가 생각한 인물이라면 굳이 이런 데 있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동명이인이라 생각을 흘리며 그녀는 서둘러 차에 올라탄다.
우현의 차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골목 앞을 지키던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미친 사람처럼 히죽대던 그녀는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다 또 한 번 웃었다.
막 골목을 빠져나가려는데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차선미!”
난데없이 들려온 자신의 본명에 멈칫대던 우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자 타원형의 빨간 테 안경을 쓴 삼십 대 초반 정장 차림의 한 여인이 보였다.
이내 어깨를 축 늘어트리더니 한껏 풀이 꺾인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여긴 어떻게 알았어?”
“네가 서울에서 집, 이 근처에 사는 네 친구 영미네 집, 회사 사무실 말고 달리 갈 곳이 있어?”
그러고 보니 대전에 있는 별장 빼고는 서울에서 그녀가 갈 곳이라곤 세 군데 외엔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PC방이나 사우나 같은 곳에 가자니 그럴 입장도 안 되는 터라 결국 이 세 군데가 다다. 그럴 것이 우리는 현 한류의 주역이자,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흥행 톱 여배우에 CF모델인 우리였기 때문이었다.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란 말이 딱이네.’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는 듯 내뱉던 그때 빨간 테 안경을 쓴 실장 박미현이 말을 건넸다.
“스케줄이 많다고 광고 촬영 중에 도망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것도 협찬 받은 옷을 그대로 입고 말이야. 그 때문에 최 매니저가 협찬사에 가서 얼마나 사정사정했는지 알아?”
“깜박했어.”
“구겨진 협찬 옷 돌려주려고 다리미질하는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이씨! 지금이라도 돌려주면 될 것 아니야!”
“됐어. 협찬 옷 대금은 네 계좌에서 뺄 거니까 그리 알아.”
눈살을 찌푸리던 우리는 입술을 삐죽인다.
“치사해!”
“치사하게 만든 게 누군데?”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린다. 팽팽하게 맞서던 그들 곁으로 넉넉한 인상에 풍채 좋은 이십 대의 사내, 로드 매니저인 최 매니저가 다가선다.
“이러다 겨우 미뤄둔 스케줄 펑크 납니다. 그만하시고 가시죠.”
잠시 이맛살을 구기던 박 실장은 우리를 본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마. 그랬다간 위약금의 열 배를 네 계좌에서 빼버릴 테니 말이야.”
“나 협박할 게 돈밖에 없어?”
“그것 말고 통하는 게 있어?”
“아마 있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돈 빼고 별달리 없는 듯하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던 그녀는 주억대고 만다.
“간다, 가! 치사하게 돈 가지고 그러냐?”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또 한 번 둘은 팽팽하게 맞선다. 어느새 후드와 모자를 벗은 우리는 최 매니저를 따라나선다. 물끄러미 그녀를 보던 최 매니저는 묘한 기분이 들어 슬쩍 물어보았다.
“우리 누님, 뭐 좋은 일 있어요? 뭘 그리 히죽거리세요?”
“그런 일이 좀 있어.”
우리는 어느새 꺼내 든 휴대폰을 보며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 실장이 휴대폰을 대뜸 뺏어간다.
“자…… 잠깐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협찬 폰 돌려주려는 거지. 대체 넌 협찬 폰 언제까지 가지고 다닐 거야?”
“거기 있는 번호 아주 중요한 거란 말이야.”
“일단, 압수부터 하고…….”
“돌려줘!”
둘은 또다시 옥신각신해댄다.
우현과 우리의 13년 만의 재회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제2-10장
일주일 뒤, 창고 물품을 살피던 우현의 곁으로 서우가 다가섰다.
“지금 오는 거야?”
“어머니가 밥 좀 먹고 가라고 해서 좀 늦었다. 근데 우리라는 애는 또 뭐냐?”
순간 우현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네 동생 서연이가 그러던데? 너한테 우리라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말이야.”
‘서연이…… 이놈을!’
부글부글 노기가 피어오른다.
한동안 조용한다 싶더니 또다시 그 가벼운 입을 놀리는가 보다.
입단속 좀 시켜야겠다 싶던 그때 서우가 팔꿈치로 툭 쳤다.
“그러지 말고 새끼 좀 쳐라!”
“새끼?”
“나, 소개팅해달라고.”
우현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다.
“소개팅은 무슨……. 헛소리 말고 일이나 하셔!”
“야! 우리도 이제 이십 대 중반이다. 번듯한 여자 친구 하나 정돈 있어야지.”
“그럼, 네 능력껏 구해! 괜히 나 건드리지 말고…….”
“나 능력 안 되는 거 잘 알면서 그러냐? 이가 없을 땐 잇몸으로라도 씹으란 말이 있잖아. 간만에 친구 덕 좀 보자. 어엉?”
어린애처럼 보채는 그에 우현은 한숨을 내뱉는다.
그만두라고 하려는데 우리가 알려준 연락처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연락 한 번 안 했네.’
그녀와 헤어진 지도 벌써 사흘이 되건만 그간 물품들을 수급하느라 정신이 팔려 연락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혹시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미안한 맘에 슬쩍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만져보지만 막상 연락하려니 왠지 멋쩍은 것이 쉬이 꺼내지질 않는다. 결국 나중에 연락하기로 한 그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다.
“야! 소개팅 좀 해달라니까!”
이젠 들러붙기까지 하는 서우에 우현은 알았다는 듯 주억댄다.
“알았어! 일단, 말이나 해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싸! 우현이한테 소개팅 받는다.”
불끈 쥔 주먹을 위로 쳐든다.
그걸 본 우현은 한심하다는 듯 본다.
“그게 그렇게 좋냐?”
“5년간 솔로로 지내봐라. 이런 리액션이 안 나오나.”
“그래? 근데 5년 전에는 애인 있었고?”
“그거야…… 없었지.”
축 늘어지는 어깨와 함께 고개가 숙여진다.
못 말린다는 듯 내젓던 우현은 이내 몸을 돌렸다.
그래서일까? 숙여진 얼굴 위로 환히 그려지는 미소를 보질 못했다.
‘크크크! 서연아, 작전 성공이다.’
그랬다. 소개팅 해달라고 이리 난리를 피운 것은 다 우현과 우리라는 여자를 만나게 하기 위한 서연의 작전이었다. 일중독에 가까운 그의 성격상 건네받은 번호로 연락할 일은 만무한지라 이렇게라도 해서 다시 만나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을 들은 서우는 좋다며 동참을 한 것이고 말이다. 그걸 모르는 우현은 이번에 대륙에 갔다 온 후에 연락 한번 해야겠다며 맘을 먹었다.
“참! 아버지가 그러는데 이번 거래만 하면 빚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던데?”
“그래? 벌써 그리됐나?”
“시간이 반년이 넘었잖아.”
“그렇기도 하네.”
빚 갚을 돈을 마련하러 처음 대륙에 넘어갔을 때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겨울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까마득하니 갚을 길이 보이지 않던 빚도 드디어 다 갚을 날이 목전까지 다가왔다. 그간의 노력이 헛고생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가슴 한편이 뿌듯한 것이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이때 서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별일 없으면 먼저 들어가!”
“넌?”
“창고 한 번 둘러보고 갈 테니까…… 먼저 가!
“알았어! 그럼, 내일 보자!”
“그래!”
서우와 일별한 우현은 아까 사 온 간식거리를 경비실에 두고는 대륙으로 향했다.
“벌써 두 번째인가?”
영주 저택 철문 앞에 선 한 사내.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히 넘긴 반백의 머리에, 좌우로 비수처럼 날카롭게 뻗은 수염 끝자락을 만지작대는 이 사람이 바로 세투란 제국 정보기관 국장인 테베코 백작이었다. 베야크 칸의 명에 따라 우현을 만나러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 번째는 지난번 희생자 추모로 상단 문을 닫은 시기와 맞물려 그냥 돌아가야만 했고, 뒤늦게 상단이 다 열었다는 소식에 게이트를 무려 다섯 번이나 통과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생각 외로 집이 단출하군.”
귀족답게 크긴 했지만 화려하거나, 멋들어진 점은 절대 찾아볼 수 없다.
저택 안의 건물이라고 해봐야 고작 저택, 창고, 기사단이 머무는 숙소가 다라고 하니 더욱더 그래 보인다. 바딘이 백작에 왕국 상단주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볼 때 터무니없다 싶을 정도이다.
“백성들에게 신망이 높다고 하더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이렇듯 청렴한 자라면 그 뒤를 따르는 자들 역시 그럴 것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 또한 맑은 법이니 말이다.
나름 평가를 내리던 그의 손이 들렸다.
“라냐스카!”
민머리 대신에 기른 듯 턱 선 가득한 수염, 엄청난 살집의 중년 사내가 뛰어온다.
겹겹이 층을 이룬 그 두꺼운 살덩이 사이로 흐르는 육즙을 바삐 닦아 가던 그는 맡기에도 역겨운 입 냄새를 풍기며 답을 한다.
“부르셨습니까?”
“내가 알아보라는 것은 어찌 되었지?”
“어렵게 백작가 기사를 포섭해 물어본 결과 릭 캐슬이란 자가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릭 캐슬이라? 왠지 낯익은 이름인 듯싶은데…….”
“저도 그래서 좀 알아봤더니만 초대 왕인 알바세네스가 티안 메레이의 딸인 하이엔의 남편인 세실리안 릭 오드리안의 마지막 후손이 바로 세실리안 릭 캐슬이었습니다.”
우현이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그 이름이 공교롭게도 알카인 왕가의 방계 중 하나였으며 마지막 자손이었던 것이다. 지금껏 현 왕인 레조스 왕이 귀족들의 추궁에도 우현의 정체를 숨길 수 있었던 것도 다 세실리안 릭 캐슬의 이름을 빌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제야 떠오른 듯 테베코 백작은 허벅지를 쳐댄다.
“맞아! 세실리안가! 그 가문이라면 초대에는 권력의 정점에 있다가 2대인가, 3대째에서 반역죄로 몰락했다지 아마……. 나중에 다시 복속됐지만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들었는데 맞는가?”
“맞습니다. 그 뒤로 이름뿐인 귀족으로 살다가 육 년 전 내란으로 그나마 있던 가족도 모두 잃고 난 후 소리 소문 없이 흔적을 감췄다고 합니다.”
“혹시 그의 소식을 아는 이는 없고?”
“딱히 거주했던 곳도 없고, 그렇다고 세실리안가를 들먹인 적도 없어 그를 알아보는 이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들 듯싶습니다.”
라냐스카는 손바닥보다 작은 수건으로 열심히 닦으며 부연 설명을 했다.
“오 년 전 사라졌던 이가 다시 나타났다? 거, 재미있군.”
흥미롭다는 빛을 띠던 그는 재차 물었다.
“근데 그가 상단주라고? 그럼, 흰 종이도 그자가 가져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에게서 모든 물품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던 그때 소매에 삼각형 모양의 붉은 꽃이 새겨진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미친 전쟁광들이군!”
순간 테베코 백작의 눈살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바드득 이가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