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46
차원상인 046화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은 엘테르 성국의 사람으로 흔히 하이 템플러라 불리는 성기사들이다. 그들은 사도라 불리며 성전에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허나, 사실은 이단이란 명목 아래 맹목적인 살인을 자행하는 피에 굶주린 전쟁광들일 뿐이다. 과거 정보 수집 차 나섰다 싸운 적이 있는 테베코 백작은 그때 입었던 옆구리의 상처가 아직도 시리고 아파올 때면 광견처럼 싸워대던 그들을 떠올리며 지금처럼 복수의 불길을 태우곤 했다. 그들이 영주 저택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그의 콧등이 찡긋거린다.
“대체 저놈들은 왜 온 거야?”
머뭇대던 라냐스카가 말을 건넸다.
“요즘 들어 화이트 그리핀 상단에서 소금을 판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그 때문에 온 듯합니다.”
“소금을 판다고? 내가 듣기에는 그런 걸 판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보고한다는 게 깜박하고…….”
순간 테베코 백작의 시선이 돌아간다.
가뜩이나 실눈인데 더 좁히다 보니 아예 선으로 보인다.
“라냐스카! 상단에 대한 소식은 어떤 것이든 내게 보고하라 했을 텐데…….”
“죄…… 죄송합니다.”
워낙 살이 찐 탓에 허리가 굽혀지지 않아 고개만 살짝 숙였다.
그 모습을 본 테베코 백작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제국의 정보기관원이란 자가 뒤룩뒤룩 살이 쪄 있는 꼴이라니……. 추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부끄럽지 않나?”
“태생이…… 뚱뚱해서…….”
“조용히 하게! 이 일에 대한 처벌은 추후 알려줄 터이니 그리 알게!”
“구, 국장님!”
순간 테베코 백작의 눈이 번쩍 뜨인다.
동그랗게 커진 두 눈을 보는 순간 라냐스카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조용히 처분을 기다리게.”
이 말을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육시럴! 뚱뚱하게 태어난 것도 죄냐고?’
울상을 짓는 라냐스카를 뒤로한 채 테베코 백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엘테르에서 저들을 보낼 줄이야. 귀찮게 됐군.”
전쟁광들을 이곳에 보낸 만큼 화이트 그리핀 상단의 소금 판매는 이제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혀를 차며 내젓던 그는 라냐스카를 앞세워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화임이트 영주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길게 늘어선 여인들의 인사에 테베코 백작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이게 뭐지?”
“아! 화이트 그리핀 상단의 도우미라고 물품을 팔 때면 이렇게 정문에 서서 인사를 합니다.”
“오호! 제법 독특하군!”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광고라 하여 귀족 차림을 한 남녀 한 쌍이 우아함을 보이며 커피를 마시지 않나, 곳곳에 자리한 판매원들이 목청을 높이며 영업에 열을 올리는 광경 등 다른 왕국의 상단과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이리저리 기웃대던 테베코 백작의 눈앞에 돌연 산처럼 가득 쌓인 종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망할 놈의 흰 종이…….”
짜증을 토해내며 다른 제품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전에 베야크 칸에게 종이 때문에 혼났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불편한 심기를 어쩌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한 여자 판매원이 말을 건네 왔다.
“천일염입니다. 한번 맛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구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흐음! 시음회 같은 것이군.”
테베코 백작은 제법 머리를 쓴다 싶었다.
먼저 상인들에게 맛을 보게 함으로써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접시에 놓인 소금 한 톨을 집어 입가에 넣고 잠시 음미하던 테베코 백작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통렬하게 혀를 자극하던 짠맛은 어느새 사라지고 차츰 단맛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게 소금이라고?”
그의 말에 답이라도 하듯 하녀가 입을 뗐다.
“그렇습니다. 이 소금은 천 일 동안 햇빛에 말린 것으로 소금 중에서도 아주 귀한 것입니다.”
“천 일 동안이나 말렸다고?”
햇빛에 그 긴 시간 말렸다는 것도 놀랍지만 소금에서 단맛이 느껴지는 것도 매우 놀라웠다.
거기다 여타 소금보다 조금 싼 가격인 20kg 소금 포대 하나에 1골드라는 것이 더욱더 그랬다. 탄성을 금치 못하던 테베코 백작은 문득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들을 보았다.
마치 우리 안의 원숭이를 보는 듯한 것이 자신을 보며 신기해하는 듯싶었다.
“촌구석에서 왔나 보군. 소금 맛 보고 놀라는 것이…….”
“맞아! 벌써 판매한 지 사 개월이나 된 상품인데 저리도 놀라는 것이 시골 중에서도 산자락에 있는 깡촌에서 온 듯하구만!”
“그래도 그렇지 상인이라는 자가 저리도 상품에 대해 소식이 늦어서야 밥이나 먹고 살겠어.”
혀를 차대는 주위 사람들은 이내 그를 지나쳐 주문처로 향한다. 소금 따윈 이미 맛본 지 오래라는 듯 말이다. 졸지에 시골 촌뜨기로 전락한 테베코 백작은 한껏 치켜뜬 눈을 라냐스카로 향한다. 허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가 있는 것이 자신이 이럴 줄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듯싶다.
‘살덩이는 곰만 한 것이 눈치는 여우구만!’
기가 차다는 듯 혼잣말을 뱉던 그는 대뜸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생각할수록 괘씸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얏! 누구야?”
자신도 모르게 성난 얼굴로 고개를 돌리던 라냐스카는 있는 대로 쌍심지를 켜고 있는 테베코 백작을 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려버린다. 괜히 왜 때렸냐고 물었다간 한 대 맞을 것도 열 대 맞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 대 더 치려던 테베코 백작의 몸이 이내 멈칫댄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런 소금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데다가 사 가지도 못하면 그날로 칸께서 이승 하직시킬 게 뻔한데 이런 곰탱이 한 마리에게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서둘러 주문처로 가보지만 이미 그곳엔 완판됐다는 팻말만 놓여 있다.
꽁지에 불이 붙은 듯 이리저리 움직여 보지만 여전히 소금 한 포대 건지질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물품들 역시 모두 완판된 지 오래라는 것. 알고 보니 벌써 판매한 지 사흘째로 대부분의 물품들이 판매 시작 당일 모두 팔렸다고 한다. 즉, 뒷북 때리고 있다는 말이다.
“라냐스카, 이놈! 판매가 사흘 전이란 걸 미리 말했어야 할 것 아니야? 그랬으면 준비라도 하지. 에휴!”
환장하겠다는 듯 애꿎은 수염만 잡아 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그는 결국 지나가는 경비병을 붙잡아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는 상단주가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화,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님이라면 상단에 계신 걸로 압니다.”
“상단에 말인가?”
“그렇습니다.”
상대가 세투란 제국의 백작이어서 그런 것일까?
경비병은 딱딱하게 굳은 채로 답변을 했다.
“고맙네.”
이 말을 끝으로 테베코 백작은 발끝을 돌렸다.
분명 자신과 멀어져 가고 있음에도 경비병은 여전히 부동자세이다.
왠지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쉬이 자세를 풀지 못한 것이다.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라냐스카를 찾던 테베코 백작 시야에 엘테르 성국 사람들이 빠르게 발길을 돌려 나가는 것이 보였다. 딱 봐도 정문으로 향하는 것이 직감적으로 그들 또한 자신처럼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를 찾고 있음을 깨달았다.
“네놈들에게 선수를 뺏길 순 없지.”
날카로운 수염을 매만지며 눈매를 좁히던 그는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안내해야 할 라냐스카는 그 어디에도 눈에 띄질 않았다.
“망할 뚱땡이 녀석! 아주 이참에 잘라버리든가 해야지.”
온갖 불평불만을 토해내며 테베코 백작은 라냐스카를 찾아 주위를 헤매기 시작했다.
대륙에 온 우현이 옷을 갈아입고 서재로 가 막 의자에 앉으려는데 돌연 소네스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래, 오랜만이다.”
한껏 얼굴을 찌푸린 것이 뭔가 일이 잘 안 풀린 듯싶다.
“뭔 일 있는 겁니까?”
“저번에 상행이 필요하다며 대륙 각지의 특산물이나 풍토에 대해 아는 이를 수소문해달라고 했잖아. 근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 같아.”
“어느 정도로 힘들 것 같습니까?”
“어쩌면 구할 수 없을지도 몰라.”
우현의 미간이 사정없이 좁혀든다.
설마하니 그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없는 겁니까? 아니면, 우리와 손을 잡기 싫다는 겁니까?”
“둘 다야! 타국 상황을 좀 아는 이들 대부분이 왕국 내 이름 있는 상단들에 속해 있는 상황이고, 혹시나 싶어 물어보면 신주단지 모시듯 꽁꽁 싸매서는 품고 모른다고들 하고 있어.”
“하긴……. 우리도 필요한 인재인데 그들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능히 짐작이 간다는 듯 말을 건넨다.
잔에 물을 따라 마시던 소네스가 물어왔다.
“어떻게 할 거야?”
“상단 문을 닫을 게 아니라면 좀 더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문제는 어디서 찾느냐는 말이지.”
“형님! 왕국 내에서 구하기 힘들다면 타국은 어떻겠습니까?”
우현은 시야를 넓혀 보자는 듯 왕국 외의 대륙을 들먹인다.
팔짱을 낀 채로 턱을 매만지며 소네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타국이라……. 뭐, 찾으면 있기는 하겠지. 문제는 우리 상단으로 데려올 수 있느냐는 거겠지.”
“포섭력이 달린다는 말인가요?”
“그것도 그렇지만 고급 정보를 가진 그가 타 상단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신생 상단에 오겠냐는 것이지.”
“그것도 그렇군요.”
우현도 그 부분에 대해선 동감을 하는지 한숨을 내쉰다.
깊은 시름에 잠기는 그를 보고 있던 소네스가 슬쩍 위로를 해온다.
“그래도 어쩌겠어? 해보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안 그래?”
“그렇죠. 여기서 멈춰 서기엔 좀 그렇죠.”
맞는다는 듯 끄덕이는 그때 한 하인이 들어와 말을 건넸다.
“그게…… 영주님이 오셨습니다.”
“바딘 백작님이 오셨다고?”
“예! 그렇습니다.”
우현은 시선을 돌려 소네스를 본다.
뭔 일인지 아느냐고 묻는 것인데 그 역시 모르는지 고개를 내젓는다.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그는 하인에게 말을 하였다.
“안으로 들이세요. 참! 커피 세 잔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상단주님!”
하인이 밖으로 나가자 둘은 다시 한 번 의자에 앉았다.
“형님! 그 차카…… 뭐시기 마법사 말입니다.”
“그 사람은 왜?”
“일단, 상단에서 내보내지 말고 두십시오. 나중에 제가 직접 만나보고 나서 그때 결정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조치해 놓을게!”
고개를 끄덕일 때쯤 문이 열리며 바딘 백작이 들어왔다.
“백작님! 어서 오십시오.”
“잘 있었는가?”
“저야 별일 있겠습니까? 근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바딘 백작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하인이 세 사람 앞에 커피를 놓고 나간다.
한 모금 마시던 바딘 백작은 짐짓 진지한 빛을 띠었다.
“조금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독점권에 대해 논의할 것이 있어서 왔네.”
“독점권이라면? 종이 독점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아직 반년 가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독점권 연장에 대해 논의코자 이렇게 찾아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