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47
차원상인 047화
“그런 일이라면 굳이 찾아오시지 말고 연락을 주시지 그랬습니까? 그럼, 제가 찾아뵀을 텐데 말입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지 누가 파겠는가? 안 그런가?”
바딘 백작은 자신을 부르지 않고 직접 찾아온 것에 대해 우회적으로 돌려 설명한다.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끄덕이던 우현은 일전에 생각했던 것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아도 독점권 문제로 조만간 찾아뵈려 했었습니다. 근데 백작님께서 직접 찾아오셨으니 돌리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연도를 끝으로 더는 독점권을 인정치 않을 것입니다.”
눈살을 꿈틀대던 바딘 백작이 되물었다.
“그 말은…… 독점권 연장은 안 된다는 것인가?”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독점권을 없앤다는 것은 자네가 직접 판매에 끼어들겠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는가?”
저의에 대해 묻는 그에 우현은 숨길 것 없다는 듯 답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종이에 관해서는 판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앞으로 종이 판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독점권을 없애는 대신 판매권을 팔 생각입니다.”
“판매권? 그건 또 뭔가?”
판매권이 뭔지 사뭇 궁금하다는 듯 물어온다.
커피로 메마른 입새를 축인 우현은 판매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정 지역에 대해 물품을 파는 것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려 알카인 왕국 판매권이 있다고 치면, 알카인 왕국 내 판매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갖게 됩니다. 자신이 팔아도 되고, 각 영지의 상인들에게 판매권을 주어 팔게 해도 됩니다. 단, 앞서 말한 대로 알카인 왕국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그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죠.”
“한마디로 돈을 주고 한 지역의 판매권을 갖는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잠시 수염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기던 바딘 백작이 말을 건넸다.
“그러지 말고 그냥 독점권을 연장하는 것이 어떻겠나? 자네가 원하는 금액이 얼마든지 다 낼 터이니 말이야.”
“앞서 말한 대로 독점권이란 것은 더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돈이 궁해서 판매권을 돈 받고 파는 것이 아니라, 그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기에 그럴 뿐입니다.”
“그 말은 바꿀 의사는 전혀 없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우현은 단호한 어조로 답을 했다.
모양새로 보아 이미 맘을 굳힌 듯한 모습이다.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걸렸구만!’
바딘 백작은 이내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무난하게 종이 독점권을 연장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렇듯 강력하게 거부권을 행사하며 나설 줄은 전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판매권을 준다는 것인데 문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준다는 것이다. 즉, 종이로 인해 벌어들일 이익금이 확 줄어든다는 말과도 같다. 이제 막 부흥기에 접어든 왕국으로서는 이보다 더 큰 악재는 없을 듯싶다.
‘이게 다 보르네오가의 그 모자란 놈 때문이야!’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몰핀이 사고 치기 전까진 순조롭게 진행되던 일들이 그놈으로 인해 뒤틀렸다. 자신의 보호 아래 있던 우현이 박차고 나와 자위권을 들이밀며 상단 소속 병사를 만들고, 이젠 독점권마저 뺏겼다. 다행히 판매권을 판다고 하지만 그마저도 뺏길지 모른다. 돈 받고 판다고 했으니 그럴 공산이 매우 컸다.
한마디로 몰핀 일이 있은 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말이다.
바드득 이가 갈리고,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지만 어쩌겠는가?
미련 따윈 가슴 한편에 담아두고 판매권에 대해 물었다.
“알겠네. 더는 독점권 연장에 대해 묻지 않지. 근데 판매권을 몇 사람에게 팔 생각인가?”
“동부, 중부, 서부로 나눠 총 세 사람에게 팔 생각입니다.”
“그럼, 나도 돈 주고 사야 하는 건가?”
“아닙니다. 이번까지만 무상으로 판매권을 드릴 생각입니다. 허나, 다음부터는 다른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내고 사셔야 할 것입니다.”
바딘 백작은 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나 판매권마저 뺏길까 봐 조마조마했기 때문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는 판매권을 누구에게 줄지 물어보았다.
“다음 달 거래 때 경매를 통해 팔 것이라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영지에 있는 상인들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닙니다. 이번 3년짜리 종이 판매권은 동부, 서부, 중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중 중부 지역에 대한 종이 판매권을 백작님이 가지셨으니 당연히 나머지 둘은 동부와 서부에 거주하는 상인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서로 지역이 달라서 말이야.”
말은 다행스럽다지만 정작 입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득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절로 그랬던 것이다. 우현이 다 마신 커피 잔을 막 내려놓은 그때 하인 하나가 문을 두들기며 들어왔다.
“상단주님!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사람이요? 일단, 들라 하십시오.”
누군가 싶어 들이라 했던 우현은 그만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것이 어디 종교 방송에서나 볼 법한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이들이 무더기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그와는 달리 바딘 백작의 눈매는 사정없이 좁혀들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들의 소매에는 하나같이 엘테르 성국의 하이 템플러 상징 문양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도들 중에서도 매우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이 어찌하여 이곳에 온 것인지?’
난데없는 하이 템플러들의 등장에 바딘 백작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슬쩍 우현의 앞을 막아섰다. 혹시나 해를 입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리 맨 앞에 선 한 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 왔다.
“바딘 백작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날 아는가?”
“일전에 카미엘 사도님과 함께 뵌 적이 있습니다.”
순간 바딘 백작에게서 침음성이 흘러나온다.
4년 전, 내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알카인 레조스 왕은 엘테르 성국에 도움을 청했었다.
그때 왔던 이가 바로 하이 템플러들의 수장이자, 성국 서열 7위인 카미엘이었다. 붉은 성자, 영혼 없는 사신이라 불리는 그는 이단들에게는 죽음을, 신도들에게는 성전의 수호신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백여 명의 적들 속으로 혼자 들어가 특유의 번개 모양 스파이크식 단검을 양손에 들고 모두 척살했다고 할 정도로 그의 무력이나 담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이름의 등장에 당혹해하면서도 일절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물었다.
“크흠! 그래, 구면이군. 근데 이곳엔 무슨 일로 온 것인가?”
“여기서 소금을 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소금이야 팔긴 팔…….”
바딘 백작의 말이 끊기며 낭패감이 깃든다.
현 대륙에서 제일 귀한 것이 있다면 그건 마나석과 소금이다.
그중 모든 음식에 사용되는 소금은 더욱 그랬는데 그 이유인즉, 바다가 아닌 산에서 얻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것이 바다에는 하루살이처럼 사는 몬스터 테기리란 것이 있는데 밤새 돌아다니다 아침 동틀 무렵이면 죽는다. 문제는 이것이 모래알처럼 매우 작은 데다가 죽은 후 1시간이 지나면 썩기 시작하는데 냄새가 아주 고약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바닷물을 사용해 소금을 만들면 그 썩은 내로 인해 도저히 입에 넣질 못한다. 그나마 테기리 몬스터가 없는 엘테르 성국 인근 해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바다가 그랬다.
이에 사람들은 소금산에 눈을 돌렸고 그로 인해 많은 피를 흘려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강국들이 염산을 차지하면서 소금은 소수 왕국들의 독점 체제로 굳어갔다.
그중 엘테르 성국은 소금산이 무려 다섯 곳에, 염전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어 대륙 소비량의 70%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소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현이 소금을 팔기 시작했으니 좋게 볼 리 만무했다.
바딘 백작이 귀띔을 해준다고 한 것이 그만 깜박해 이런 사달에까지 이른 듯싶다.
‘골치 아프게 됐군.’
미간을 좁히던 그의 눈에 자신을 보는 우현이 들어왔다.
슬쩍 다가가서는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을 해주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우현은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그러니까 소금이 저들의 국책산업이라 이 말씀이십니까?”
“미안하네. 내가 말을 해준다는 것이 깜박했네.”
우현은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소금이 금값이라고 할 만큼 귀한 곳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국책사업으로 할 정도인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긴……. 고대에 소금 전쟁이라 하여 싸움이 많았다고 하였지.’
그랬다. 과거 고대엔 식량도 그리 넉넉지 않았고, 있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해 오랫동안 저장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소금이 발견되고 음식에 염을 하는 방식(소금에 절이는 것)이 생기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염을 한 음식들이 보관에서 좀 더 용이하고, 오래간다는 점에서 많은 왕국들이 소금에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바다에 위치해 있지 않은 이상 소금을 얻기 어려운 탓에 내륙에 있는 왕국들은 소금산을 둘러싸고 많은 다툼을 벌였던 것이다. 일전에 휴일 날 교육 채널에서 본 것을 떠올리며 뇌까리던 그는 시선을 들어 켈라인을 보았다.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잠시 시선을 마주하던 그는 바딘 백작을 보았다.
“아……! 이쪽은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 릭 캐슬이네.”
“그렇군요. 나이가 너무 젊어 몰라 봤습니다.”
놀랍다는 빛을 자아내던 켈라인은 고개를 돌려 마주 보았다.
“엘테르 성국의 제이십칠 사도인 켈라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십칠 사도라고 해서 제법 고위층에 있는 자라 생각해 응당 하대를 할 줄 알았는데 자신과 같이 존댓말을 써서 이상타 여긴 것이었다. 그런 그의 속내를 들여다본 듯 칼라인은 피식 웃었다.
“저희 성국은 신 아래 모든 만물이 평등하다는 교리를 들어 하대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황님과 같은 몇몇 예외인 분들이 계시기는 하지만 그들은 열 명이 안 되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서로들 존대를 씁니다.”
“그렇습니까?”
독특하다 싶던 그때 방문이 열리며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작가 소속 기사가 들어온다.
“백작님! 전문입니다.”
“전문?”
건네준 종이를 읽어 가던 바딘 백작의 낯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어느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그는 우현에게 갈 것임을 알렸다.
“캐슬, 미안하네. 급한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네.”
미처 발목을 잡을 새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린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지?”
우현이 난감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문을 열고 소네스가 들어왔다.
“백작님, 왜 저리 바삐 가시는 거냐? 인사를 건네도 그냥 가시네.”
바딘 백작과 문 앞에서 마주쳤던 것을 들먹이던 그는 서재 안에 서 있는 엘테르 성국 사람들을 보곤 놀랐다.
“뭐, 뭐야? 이 사람들은?”
“엘테르 성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 그래?”
그러냐며 말을 하던 소네스는 쭈뼛대며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