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48
차원상인 048화
자리에 앉은 그는 슬며시 우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을 건넸다.
“근데 왜 온 거래?”
“소금 판매 문제로 왔답니다.”
“소금 판매? 왜? 뭔 문제 있어?”
우현은 아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눈살을 찌푸리던 소네스는 콧등을 긁적댔다.
“제법 골치 아프게 됐네.”
“그러게 말입니다.”
동의를 표하는 그때 칼레인이 물어왔다.
“말씀은 다 나누셨습니까?”
화들짝 놀란 우현은 죄송함을 표했다.
“손님을 앞에 두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백작님께 연락 없이 무작정 찾아온 저희가 먼저 실례를 범한 것이지요.”
“그리 생각해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이던 우현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하겠습니다. 성국에서 원하는 게 뭡니까? 판매 중지를 원하십니까?”
“아닙니다. 저희 측에선 굳이 상단주께서 소금 판매하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오늘 시점으로 하여 엘테르 성국 및 소금 판매 왕국들은 모조리 0kg당 90실버로 가격을 낮출 것이라는 점만 알려 드릴 뿐입니다.”
“90실버?”
“그렇습니다.”
우현의 이맛살이 사정없이 좁혀든다. 현재 소금의 가격이 하락해 20kg당 1골드다. 가격만 놓고 따지면 고작 10실버 차이밖에 안 나지만 물품 특성상 대량으로 구입해야 하는 걸 생각한다면 어마어마한 차이다. 좁아지는 눈매 사이로 보이는 칼레인을 향해 우현이 물었다.
“지금 가격 경쟁을 하자는 겁니까?”
“설마 그러겠습니까? 다만 최근 몇 년 전부터 소금이 고가라 매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성국의 신도들이 적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건 비단 성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왕국 역시 비슷한 실정이기에 국가 간 조율 끝에 가격을 인하하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연히 시기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주억대는 칼레인을 보는 우현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말로는 우연이라지만 딱 봐도 자신의 상단을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금 판매하는 날 찾아와 가격을 내린다는 말을 하겠는가?
맘 같아선 가격 경쟁 한판 펼치자 하고 싶지만 어차피 소금이 주품목도 아닌 터라 굳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판매 금지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그때 칼레인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사실 이번 일을 행함에 있어 성황 폐하께서 한 가지 근심거리를 갖게 되셨습니다. 자칫 화이트 그리핀 상단이 피해라도 입을까 싶어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떠나올 때 한 가지 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궁금해진 소네스가 먼저 물어온다.
“그게 뭡니까?”
“상단이 판매할 천일염이란 소금을 저희 왕국에서 전량 매입하라 하셨습니다. 거기다 지금으로부터 1년간 판매 못한 소금에 대해서도 모두 사들이라 하였습니다.”
순간 우현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그제야 엘테르 성국의 저의가 뭔지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내 소금을 독점하려 들 줄이야.’
그랬다. 판매를 허락한 것도, 1년간의 유예기간을 둔 것도, 다 줄어든 소금 매매를 늘림과 동시에 우현의 소금을 독점하고 천일염 제조 기법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소네스나 우현 모두 당했다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어찌할 방법이 없는지라 그저 숨죽여 분노만 삼킬 뿐이었다. 죽일 듯이 노려보던 우현의 무거운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알겠습니다. 그쪽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참담함에 일그러지는 주위 사람들과는 달리 엘테르 성국 사람들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우현은 벌렸다.
“이제 할 말은 다 한 겁니까?”
“하나 더 남았습니다. 혹시 커피 독점권을 받을 수 있을까 합니다만 가능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독점권 분배에 대한 계획은 아직까진 없습니다.”
“안타깝군요. 그것까지 얻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아쉽다는 듯 칼레인은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이 얄미워 한 대 후려치고만 싶다.
바드득 이를 갈아대던 우현은 조금은 굳어진 얼굴로 말을 하였다.
“이제 다 끝나셨으면 사무가 바빠서 그러는데 이만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몸 건강히 잘 계십시오.”
성호를 긋던 엘테르 성국 사람들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단주님! 세투란 제국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세투란 제국이요?”
이젠 세투란 제국까지 찾아왔다는 말에 우현은 맥이 탁 풀린다. 맘 같아선 거부하고 싶지만 상대는 대륙 강대국 중 하나. 되돌려 보내기엔 너무나 컸다. 한숨을 푹 내쉬던 우현은 이내 안으로 들이라 했다. 무슨 만화에서나 볼 법한 뾰족한 송곳 수염을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서다 엘테르 성국 사람들을 보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본다. 언뜻 살기마저 내비치는 것이 좋은 관계는 아닌 듯싶은 이 사람, 바로 세투란 제국의 백작 테베코였다. 여전히 죽일 듯이 노려보건만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칼레인은 일행을 데리고 밖으로 횅하니 나선다. 맘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차던 테베코 백작은 곁에 있는 라냐스카를 데리고 발길을 틀었다.
“만나서 반갑네. 세투란 제국의 백작 테베코라고 하네.”
슬쩍 하대를 해본다. 자신이 백작이라는 것을 드러냄과 동시에 우현이 사전에 조사한 대로 시실리안가의 릭 캐슬이 맞는지 떠보기 위함이었다. 그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우현은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상대가 귀족이라는 사실에 조용히 넘어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캐슬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건네는 우현을 보는 그의 눈매가 매서워진다.
‘심계가 깊은 편인가?’
상대가 하대를 하고, 세투란 제국의 백작임을 밝혔음에도 별 반응 없이 덤덤한 것이 왠지 속내를 감추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고작 이것 하나 가지고 상대를 파악한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긴 하지만 조금은 조심을 해야 할 듯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우현에 대해 정의하던 테베코 백작은 라냐스카와 같이 자리에 앉자 하인 하나가 들어와 둘 앞에 잔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섰다.
“커피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우현은 연거푸 마셔서 그런지 차마 먼저 먹지 못하고 상대부터 권한다.
커피 잔을 든 테베코 백작을 보며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근데 이곳은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다름이 아니라 도움을 청하러 왔네.”
“무슨 도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시던 잔을 내려놓은 테베코 백작은 조금은 진지한 빛을 띠며 말을 건넸다.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아국은 지난 오십여 년간 질 좋은 종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거듭했네. 몇 가지 상품이 개발되긴 했지만 생각보다 질이 좋지 않았지. 그러던 중 귀 상단에서 최상의 품질로 된 흰 종이가 판매되었고, 아국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네. 이에 황제 폐하께선 귀 상단의 힘을 빌려 그간의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게 하고자 나를 이곳에 보내신 거네.”
“한마디로 종이 독점권 내지 제조 기법을 전수받고 싶다 이 말군요?”
“그런 셈이라네.”
우현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엘테르 성국에 이어 세투란 제국까지 이러는 것이 맘에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싸늘히 식어버린 안면만큼이나 이어진 말투 역시 차갑기 그지없다.
“제가 거부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내 듣기로 이 흰 종이는 마법을 사용해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종이 제조에 마법이 사용되다니?”
“그럼, 아닌가?”
“전 마법을 잘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만든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봅니다.”
거짓말을 하는가 싶어 살펴보지만 눈동자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 진짜인 듯싶다.
“그럼, 하이 엘프의 유물을 통해 종이를 만든 것이 아니란 말인가?”
“대체 하이 엘프가 뭡니까? 유물은 또 뭐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른단 말인가?”
“예! 가르쳐주십시오.”
가르쳐 달란 말에 테베코 백작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설마하니 하이 엘프가 뭔지도 모르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혹시 애초에 생각을 잘못 한 것은 아닐까? 종이를 마법을 사용해 만들었다는 것 말이야.’
조금 전 말하는 태도나 행동으로 보아 왠지 그럴 듯싶다. 거기다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마법이 뭔지 모른다고. 그런 그가 하이 엘프의 유물이 뭔지, 또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리 없다.
“미안하네. 하이 엘프의 마법을 이용해 종이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한 말인데 헛소문인지 모르고 물어봤네.”
사과는 받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빴다.
조금 전, 마치 죄인이 심문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그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하십시오. 제법 기분이 상하니 말입니다.”
“그리 느꼈다면 내 사과함세. 용서해주게나.”
거듭되는 사과에 우현은 그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다.
조금은 진정된 듯한 모습에 테베코 백작이 물었다.
“근데 정말로 종이 독점권은 안 되는가?”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또다시 거부를 표하는 그에 테베코 백작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심기 불편한 사람 괜히 건드려봤자 좋을 것 없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아쉽기는 하지만 포기해야겠지. 대신 소금 독점권이라도 줬으면 하네. 그간 들인 노력들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한마디로 뭔가 하나는 들고 가야 한단 말이군요.”
“그런 셈이지.”
대답을 하면서도 테베코 백작은 씁쓸한 입맛을 다신다. 베야크 칸이야 무작정 독점권을 뺏어오라 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거절의 눈빛을 보이기 무섭게 소금 독점권으로 선회를 한 것이었다. 연신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살피는 그와는 달리 우현의 눈가에 묘한 빛이 감돈다. 소금 독점권을 사겠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재미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소금 독점권을 세투란 제국에 넘겨? 어차피 나야 넘긴다 해도 본전치기는 할 것이고. 제국 쪽이야 교섭만 잘하면 공돈을 버는 셈이니 그다지 나쁜 것도 아닐 테고 말이야. 거기다 엘테르 성국으로 인해 좌절된 소금 판매를 이런 식으로라도 복수를 한다면 기분이 꽤 좋을 듯싶고 말이야.’
그동안 잠들어 있던 뒤끝이 또다시 고개를 치밀고 올라온다.
“좋습니다. 소금 독점권을 드리지요.”
“소금…… 독점권을 말인가?”
“그렇습니다.”
순간 소네스의 낯이 벙 찐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간다.
설마하니 소금 독점권을 주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테베코 백작도 마찬가지인지라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듣기로 세투란 제국과 엘테르 성국과는 오랜 앙숙이라 들었습니다.”
“맞네. 상단주! 지독한 악연들이 섞여 있다네.”
생각만으로도 분이 치미는지 바드득 이를 갈아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