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5
차원상인 005화
“죄송하지만 아이의 옷을 모두 벗겨 주시겠습니까?”
“옷을…… 다 말인가?”
“솔직히 말해 아이가 걸린 병이 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대로 고열이 지속된다면 분명 아이의 목숨이 위험해질 겁니다. 설사 살아난다 해도 머릿속 뇌가 피해를 입어 자칫 평생 바보가 될지도 모릅니다.”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소네스가 버럭 소릴 질렀다.
“평생 바보로 살지 모른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야?”
“그럼, 이처럼 몸이 펄펄 끓는데 아이 몸속은 멀쩡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아까 말했잖습니까? 그리되는 건 지금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아이의 열을 낮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여자아이의 옷을 다 벗기라니? 그게 할 말이라 생각해?”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그런 건 일단 살리고 난 뒤에 따져도 될 일입니다.”
“뭐…… 뭐라고?”
치켜 올라가는 눈매만큼이나 주먹 또한 쳐들린다.
허나, 레이젠이 한발 앞서 소네스를 막았다.
“그만두어라!”
“형님! 이놈이 뭘 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그럼, 이대로 넋 놓고 보고만 있자는 것이냐, 소네스!”
“그…… 그건 아니지만…….”
“아니라면 잠자코 있어라! 지금 우리에겐 그의 도움이 절실하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형님!”
시퍼런 서슬에 소네스는 슬쩍 말소리를 낮추었다.
그런 그를 보던 레이젠이 시선을 돌려 우현에게 향했다.
“내 묻지! 왜 그리 열을 낮춰야 한다고 하는 것인가?”
“저에겐 다섯 살 터울 쌍둥이 여동생이 있습니다. 어릴 적 그들이 아플 때 그를 치료하는 것을 봐서 잘 압니다.”
“하지만 아이가 무슨 병에 걸린 건지 모른다 하지 않았나?”
“물론 전 의사가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가 고열이 날 땐 어떻게든 체온을 낮춰줘야 한다는 건 잘 압니다.”
레이젠은 우현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통해 진심임을 깨달은 그는 어찌해야 할지 물었다.
“일단, 뭐부터 해야 하나?”
“하의 속옷을 제외하고는 모두 벗겨 주십시오.”
또다시 벗기란 말에 슬쩍 미간이 찡그려진다.
“꼭 벗겨야 하나?”
“강제로 체온을 낮추기 위해서 맨살을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는 방법 외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레이젠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네시아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가 그러는 동안 우현은 가방에서 해열제를 한 알 까서는 소네스에게 건넸다.
“이걸 반으로 쪼개 주십시오.”
“이 작은 걸 말이야?”
“어른용이라 아이가 다 먹기에는 너무 독합니다.”
“그래?”
받아 든 알약을 두고 난감해하는 소네스를 대신해 레이젠이 단검을 꺼내 든다.
가볍게 긋는 것 같은데 알약은 정확히 반으로 잘렸다.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출신이라고 하더니 진짜 그런 듯싶다. 남몰래 혀를 내두르던 우현은 그 반 토막 난 것을 집어서는 과거 행사 때문에 넣어두었던 플라스틱 위생 수저를 꺼내 들었다.
“혹시 물 있습니까?”
“물이 필요한가?”
“예! 제법 많이 필요합니다.”
레이젠의 눈짓에 소네스는 앓는 소리를 하며 마차 밑바닥에 둔 물통을 꺼내러 갔다.
잠시 후, 꺼낸 물통을 기울여 수저에 물을 약간 담고 토막 난 약을 담가 꾹꾹 눌렀다.
아이 스스로 약을 넘길 상황이 못 되니 물약처럼 만들어 넣어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약이 물에 다 풀어지자, 레이젠에게 아이 상체를 들어 올리라 하였다.
“얘야, 잘 들어! 이 약을 꼭 먹어야지만 네가 나을 수 있다. 그러니 맛이 안 좋아도 꼭 먹어야 해! 알았지?”
진짜로 들은 것일까?
돌연 네시아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걸 본 우현은 수저를 들어 레이젠이 벌려준 입안에 넣었다.
혹시나 먹기 힘들까 봐 수차례에 걸쳐 조금씩 흘려보냈다.
그렇게 약을 다 먹인 그는 아이를 바닥에 눕히라 했다.
“자아! 이제부터 수건 마찰을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천에 물을 적셔 아이의 몸을 닦아주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주 세게 빡빡 밀라는 것이 아니니 적당히 몸이 물기에 젖도록 해주십시오. 단, 냉수는 안 됩니다. 꼭 미지근한 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건 걱정 말게! 황무지가 워낙 더워 냉수를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니 말이야.”
“근데 언제까지 해야 해?”
어느새 다가온 소네스는 잘린 천 쪼가리를 들고 물어온다.
말은 삐딱하게 해도 아이가 걱정이 되긴 한 모양이다.
“아이의 체온이 어느 정도 내려갈 때까지 계속 해야 합니다.”
“알았어.”
끄덕이던 그는 천을 물에 적셔서 닦기 시작했다.
우현도 뒤따라 닦자 레이젠은 마차 밖으로 홀로 나섰다.
몬스터들이 오고 가는 길목인지라 누군가는 경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괜찮을 것이야. 아암, 괜찮고말고.’
혼자 나와 있어서 그런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달래본다.
초조하게 기다리길 1시간여 정도 됐을까?
붉어진 아이의 피부색이 차츰 본래의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물론 체온 역시 빠르진 않지만 조금씩 낮아졌고 말이다.
“아이의 체온이 내려갑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됩니다.”
소네스 역시 그 변화를 눈치채고 있기에 그저 묵묵히 물을 적신 천으로 닦기만 한다.
잠시 후, 체온도, 호흡도 원래의 것으로 돌아온 듯하자 우현은 이제 그만하라고 하였다.
온 정신을 다 쏟아서 그런지 고작 아이 몸을 닦는 것뿐인데도 녹초가 되어 버린다.
우현도 거친 숨을 뿜어내던 그때 레이젠이 천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와 아이를 살폈다.
“체온도 어느 정도 내려갔고, 호흡도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괜찮아질 겁니다. 물론 당분간은 상태를 지켜봐야겠지만 말입니다.”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도리어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고마워하며 맞잡은 손을 놓질 않는 레이젠을 보던 우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어! 근데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무슨 부탁인가? 말만 하게.”
“그게…… 제가 어제 하루 종일 굶어 배가 고파서 그런데 먹을 것 좀…….”
먹을 것이란 말에 반응하듯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잠시 실소를 하던 레이젠은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잠시 쉬고 있게! 내 먹을 것 좀 만들어 올 테니 말이야.”
“고, 고맙습니다.”
밖으로 나서는 그와 일별한 우현은 마차 벽에 기댔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온몸이 노곤하고 몽롱한 것이 아주 졸음이 폭풍같이 밀려온다.
눈만 감는다는 것이 결국 널브러져 잠에 취하고 만다.
잠시 후, 음식을 들고 온 레이젠은 그런 그를 보곤 혀를 찼다.
설마하니 그새 잠들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많이 피곤했던가 봐! 마차에 기대기 무섭게 잠이 드는 것을 보면 말이야.”
소네스도 기차 찼는지 고개를 내젓는다. 하긴, 황무지 땅바닥에서 대자로 뻗어 자려 했을 정도이니 대충 어떨지 짐작이 간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이젠은 천을 들고 와 우현의 몸 위로 덮었다.
“푹 쉬게!”
말 때문인가? 아니면, 몸 위에 덮인 천 때문일까?
돌연 우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마치 아기 천사의 그것처럼 말이다.
“캐슬, 이제 곧 하임이트 영지야.”
우현은 마차를 뒤덮은 천막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잡풀만 무성하던 황무지는 어디 가고, 주위에 녹음이 가득한 것이 이제야 사람 살 만한 듯한 광경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몬스터의 습격이 세 차례나 있었으나 레이젠과 소네스 덕택에 별 무리 없이 황무지를 건너 테이페 산길을 따라 이곳 하임이트 영지에 들어왔다. 만약 이들이 아니었다면 오래전에 몬스터에게 잡혀먹거나, 비명횡사했을지 모른다.
바깥 풍경에서 시선을 뗀 그는 벽에 등을 기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차원이라는 게 있긴 있었군.’
영화 토르에서 우주는 아홉 개의 코스모스(인간은 차원 또는 행성계라 부른다.)가 있으며 그것은 아그드라실이란 나무로 인해 이어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각 코스모스에는 우리 인간에 버금가는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다 했었다. 그저 영화 속 이야기로 치부해버렸건만 그게 실제로 존재하고 자신이 이렇듯 넘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물론 아직 증명된 것 하나 없고, 밝혀낼 방법도 없어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다른 세상임은 분명했다.
그것은 이곳의 역사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세계에선 고작 중세 시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대륙의 역사는 무려 만 오천 년이 넘는 다는 것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여전히 중세냐 하겠지만 우리는 공학이라는 이름의 기술이 발달되어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지만 여기는 공학이 아닌 마법이 발달이 된 탓에 그런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 특성상 만인이 아닌 일부 사람들만 공유하다 보니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 보니 발달보다는 오히려 중세 시대의 계급을 굳건히 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는 소네스를 통해 얻은 대륙의 역사나 정보를 통해 더욱 확실해졌다.
‘이제 뭐 해 먹고 산담?’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해진다. 페릴 형제처럼 칼이나 마법을 다룰 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는 이도 없는 그인지라 더욱 그렇다. 절로 갑갑해 오는 가슴에 한숨이 길게 내쉬어진다.
“아저씨, 왜 그래? 뭔 걱정 있어?”
여섯 살의 귀여운 소녀 하나가 해맑은 눈을 끔벅이며 바라본다.
이 아이가 얼마 전, 고열로 인해 사경을 헤매던 바로 레이젠의 딸 네시아였다.
다행히 단순 몸살감기였는지 열이 가라앉자마자 며칠 뒤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때 레이젠은 네시아를 품 안에 넣고 쉬이 꺼내질 않았다. 말은 안 했지만 그로서도 그 아이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한 모양이었다. 그 뒤로 우현은 은인 대접을 받으며 이곳까지 편히 올 수 있었다. 물론 소네스에게도 말이다. 피식 웃던 우현은 손을 들어 머리 위에 얹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매만지는 손길이 좋은지 네시아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베어 문다.
“아저씨! 육포 먹을래요?”
난데없이 육포를 내미는 그녀에 한편에 있던 소네스가 버럭 소릴 지른다.
“야! 힘들게 너 먹으라고 구워줬더니만 날름 캐슬에게 줘?”
“마법으로 다시 구워주면 되잖아요?”
“육포 구우려고 내가 마법을 배운 줄 알아?”
“에이! 그래도 해 줄 거면서…….”
어느새 곁으로 다가간 네시아가 슬쩍 애교를 부린다.
그런 그녀가 싫지는 않은 듯 연신 바라본다.
“좋아! 해줄게! 근데 그거 저놈 주면 안 돼! 다 너 먹으라고 하는 거니까 말이야.”
“작은아빠, 고마워요!”
됐다는 듯 손을 내젓던 소네스는 돌연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참, 일전에 상인이라고 했는데 대체 뭘 팔러 온 거야?”
이들과 동행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자신의 정체에 대해 물어왔었다.
그때 그는 그나마 무난하다 싶은 상인을 골라 답을 해줬다. 그 뒤론 묻질 않아 깜박하고 잊고 있었는데 소네스가 그걸 되짚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