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53
차원상인 053화
“날라!”
그렇게 쫓기듯 접시를 들고 오가던 중 문을 열고 서우와 서우 아버님이 들어왔다.
“아버님 오셨어요?”
“오셨습니까?”
식탁에 수저를 놓던 서연과 보영이가 인사를 건넨다.
“서연이가 좋아하는 전도 부쳤구나!”
“예! 제가 해달라고 졸랐거든요.”
서연은 불쑥 혀를 내밀며 아양을 떤다.
그 모습이 싫지 않은 듯 그저 웃고만 있다.
이때 부엌을 나오던 우현이 고개를 숙여갔다.
“지금 들어오십니까?”
“우현이 왔느냐?”
“예! 그보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고깃집에 자리를 잡을 걸 그랬습니다.”
“정성이 든 음식만 하겠느냐?”
어깨를 툭툭 치던 서우 아버님의 시야에 고우리가 잡혔다.
“쟨 누구냐?”
“아! 어릴 적 시설에 있을 때 만난 친구입니다. 우리야, 이쪽으로 와봐!”
“바쁜데 왜 불러?”
“서우 아버님 오셨어?”
쳐들린 시선 위로 웃고 있는 서우 아버님이 보인다.
서둘러 일어선 그녀는 우현의 곁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만세 친구 우리라고 합니다.”
“만세?”
“아! 어릴 적 시설 원장님이 ‘우리나라 만세!’에서 따서 붙여준 별명이에요.”
“그것참 재미있구나!”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데 서우 어머님이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같이 철판을 들고 왔다.
대충 준비가 다 된 듯싶자 서우 아버님이 큰 소리로 외쳐갔다.
“그만들 하고 어서들 오너라!”
그 외침에 하나둘 거실에 놓인 식탁 주위로 다가온다.
자리에 앉는 우현 곁으로 다가온 서우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야! 우리랑 친구 하기로 한 거 말이야. 안 하면 안 되냐?”
“그건 또 왜?”
“나보다 어린애랑 친구 먹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족보가 꼬이잖냐?”
“그거야 그렇겠네.”
그렇다며 주억대던 그때 서우의 목덜미를 휘감는 팔 하나가 있다.
“어이! 친구 뭐 하나?”
“야! 목 죄잖아. 숨 쉬기 힘들어.”
“나약한 아녀자가 어깨동무를 해주는데 고맙다고 해야지. 뭔 불평이 많아?”
“콜록! 너…… 넌 나보다 어리잖아!”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다! 그거 몰라?”
더는 안 되겠다 싶은지 우현에게 도움을 요청해본다.
하나, 그는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어갔다.
“그럼,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지!”
“이…… 치사한 놈아! 야비하게 여기서 배신을 때리…… 켁켁켁!”
“맞는 말 하는구만! 뭘 또 치사하다고 해!”
이렇게 한바탕 소란(?) 끝에 겨우 식탁에 모든 사람들이 앉았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상추에 올린 밥 위에 한 점 얹고 마늘 하나, 김치 한 조각, 양념장과 함께 싸 입에 넣는 그 순간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거기다 소주 한 잔 추가하면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다. 지금 올챙이처럼 부풀려진 양 볼이 꺼지기 무섭게 술잔을 들이붓는 고우리의 모습처럼 말이야.
“캬아! 죽인다. 죽여!”
“야!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한다.”
“걱정 마! 목구녕에서 장까지 아주 고속도로처럼 뻥 뚫려 있어. 그럴 일은 절대 없어.”
염려 말라며 내젓는 손을 보며 우현은 피식 웃는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먹는 것을 보면 배가 든든한 것이 밥 세 공기는 먹은 것 같다.
그건 서우 아버님도 그런지 손에 든 소주잔을 입에 기울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식사 중인 사람들을 살펴보다 이내 닫혀 있던 말문을 열어간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것은 그동안 고생한 우현을 위한 것이다.”
막 고기를 집던 우현과 서우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제지에 나섰다.
말투로 보아 보증 빚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버님!”
“아빠! 무슨 말을 하려고요?”
불같이 일어서는 그들을 서우 아버지는 손을 들어 막는다.
“괜찮다. 이제 다 끝났으니 이들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버님…….”
서우 아버지는 자신에게 맡기라는 듯 손을 들어 가슴을 쳐댄다.
상황이 이쯤 되자 우현과 서우는 이내 자리에 앉고 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만 굴리는 사람들을 보며 서우 아버지는 그간의 일을 말했다.
“여보, 그리고 서연이, 보영아! 내 말 잘 들어라! 사실 반년 전쯤 박 소장이란 사람 때문에 우현은 제법 많은 빚을 떠안게 되었단다. 흔히 보증 빚이라 하는 것을 말이다.”
순간 서연과 보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정말이에요?”
“진짜로 오빠가 보증 빚을 졌단 말이세요?”
“그렇단다!”
주억대는 고갯짓에 자매는 시선을 우현에게로 돌렸다.
자신을 향하는 매서운 그 눈빛에 그만 오금이 다 저려온다.
“오빠! 그게 사실이야? 사실이냐고?”
“대체 언제 박 소장님 보증을 서 준 거야? 그런 말 없었잖아?”
“얘…… 얘들아…… 그게…….”
따지고 들어오는 둘에 우현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걸 본 서우 아버지는 그만하라는 듯 손을 들어 올린다.
“그만해라! 그 보증 빚은 이젠 다 사라졌으니 말이야.”
“보증 빚이 사라져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빚을 다 갚았단 말이세요?”
서연의 말에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간다.
“그래! 다 갚았단다. 지난 반년간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한 것에다, 우현과 친한 분이 도와줘 보증 빚은 다 갚았단다.”
다 갚았다는 말에 자매는 이내 입을 꾹 닫는다.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는 둘에 우현이 말을 건넸다.
“너희가 많이 걱정할까 봐 말 못 했다. 미안하다!”
슬쩍 시선을 들어 올리던 서연이가 입을 삐죽인다.
“오빠 미워! 그런 일 있었으면 응당 우리에게 말했어야지. 우린 가족이잖아!”
“미안해! 서연아!”
미안해하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 이내 눈물을 글썽인다.
“바보같이…… 왜 혼자 속을 끓여? 우리도 있는데…….”
“…….”
“훌쩍! 정말…… 못됐어!”
더는 말을 못 하겠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휴지를 찾으러 간다.
그런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던 보영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번에 실성한 사람처럼 군 거야? 외박도 한 거고?”
“……응! 나도 충격이 좀 컸었거든…….”
“오빠! 다음부터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말해줘! 더 이상 우리도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가 아니니까 말이야.”
“그렇게 할게.”
주억대는 그를 보던 보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때 오빠의 모습을 보고 많이 걱정했거든……. 이제라도 이유를 알아서 다행이다.”
“뭐라 할 말이 없다. 보영아!”
미안하다는 그에 보영이는 고개를 내젓는다.
“가족이잖아! 그리고 서연이는 내가 이따가 챙길 테니까 너무 걱정 마!”
아직도 텅 빈 서연의 자리를 보는 그를 보며 보영이가 걱정 말라 한다.
주억대는 고갯짓을 지켜보던 서우 아버지가 둘을 향해 말을 건넸다.
“어쨌든 힘들었던 일도 다 지나가고 다시 새 출발 하는 만큼 열심히 일해야 한다.”
“예!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때 서우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어 온다.
“보증은 앞으로 절대 서지 마! 알았지?”
보증을 들먹이는 그에 모든 시선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것도 오뉴월에 서린 한기처럼 차가운 눈빛이 말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울상을 짓는 그의 머리를 고우리가 올려붙인다.
“윽! 왜 때려?”
“웬만하면 눈치 좀 살펴라!”
서우는 입을 삐죽이며 몸을 돌려간다.
“우씨…… 나만 미워해.”
“한 대 더 맞을래?”
쳐들린 손을 본 그는 서둘러 입을 닫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고우리만큼은 진짜 때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잠잠해진 주위를 본 서우 아버지는 술잔을 들어 올린다.
“새 출발 하는 자리에 뭘 그리 죽을상을 해! 다들 그만하고 건배 한번 하자꾸나!”
“그래, 얘들아! 오늘처럼 좋은 날 술 한잔 해야지. 안 그러니?”
서우 어머님까지 나서자 사람들은 하나둘 술잔을 들어 올린다.
어느새 왔는지 서연이까지 술잔을 위로 치켜들자 서우 아버지는 빙그레 웃는다.
“이제껏 힘들었던 일 다 잊고, 앞으로는 오늘처럼 웃음만 가득한 날들로 채우자꾸나!”
“예!”
한목소리로 외치던 사람들은 이내 서로를 보며 웃어간다.
이렇게 이들의 즐거운 식사 시간은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후우!”
담배 연기가 시커멓게 변한 하늘 위로 뿜어진다. 식사 후, 다과를 즐기는 사람들을 피해 밖으로 나온 우현은 담배 한 대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한 모금 빨아 재차 연기를 뱉어내던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어이! 한겨울에 뭔 청승이야?”
짐짓 남자처럼 굵게 뱉지만 특유의 고우리 말투만은 피할 수 없었다.
피식 웃던 우현은 몸을 돌려 만면 가득 미소를 띠는 그녀를 보았다.
“다들 과일 먹는데 추운 바깥에서 혼자서 담배 피우고 있어?”
“그러는 너는 왜 나왔냐?”
“그냥…… 달밤에 체조나 한번 해보려고…….”
“너다운 소리다!”
내저어지는 고개 위로 미소가 깃든다.
씨익 웃어 보이던 고우리는 팔짝대며 곁으로 다가온다.
“아, 춥다!”
“그러기에 안에 있지. 왜 나왔어?”
“추위를 빌미 삼아 네 품에 한번 앵겨볼까 생각했지.”
실소를 하던 우현은 점퍼 지퍼를 내리고 벌린다.
“그래, 들어와라!”
“땡큐!”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 서 있던 고우리가 대뜸 말을 건넸다.
“근데 밤하늘 참 맑다. 그치?”
“오늘은 그러네. 별도 보이고 말이야.”
우현은 맞는다는 주억대간다.
한참을 말없이 하늘을 보던 고우리는 슬쩍 뒤를 보았다.
“그나저나 여기 사람들 말이야. 네가 친부모로 생각한다더니…… 그럴 법도 할 것 같아.”
“그렇지? 좋은 사람들이지.”
“으응! 너무 좋아!”
그렇다는 말에 우현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한없이 맑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며 말을 건넸다.
“우리야! 집 밥 그리우면 언제든 연락해! 아머님께 부탁해놓을 테니 말이야.”
“야! 부탁을 해도 내가 한다. 그리고 어머님한테 연락처 받았거든? 어디서 생색은…….”
짐짓 흘기는 그녀의 눈길에 우현은 멋쩍은 듯 뒷목을 긁적인다.
“난…… 너 생각해서 한 말이야. 무슨 생색을 냈다고 그래?”
“그게 생색이거든……?”
헛기침을 하던 우현은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걸 보며 웃어 가던 그녀는 다시 시선을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하아! 좋다. 이 자리에 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순간 멈칫하던 우현은 고개를 돌려갔다.
“나라? 연락 안 돼?”
고우리는 고개를 끄덕여 간다.
“네가 다른 시설로 이송된 지 얼마 안 돼 나라 친족이라는 사람이 와서 데리고 갔어.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고 말이야.”
“그랬구나!”
조금은 걱정이 되는지 이내 긴 한숨이 내쉬어진다.
그걸 본 고우리는 염려 말라는 듯 말을 건넸다.
“괜찮을 거야. 우리와는 달리 친족이 데려갔으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