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54
차원상인 054화
“생각은 그리하는데…… 그래도 조금은 걱정이 되네. 눈물이 많았던 애잖아.”
“그렇지. 참! 기억나? 울 때마다 네 뒤에 숨었던 거 말이야.”
“기억나! 네가 짓궂게 굴 때면 울면서 나한테 왔던 거.”
고우리는 무슨 말이냐며 손을 내저어간다.
“내가 언제? 난 나라 울린 적 없어.”
“네가 한 짓을 다 아는데…… 속일 사람을 속여라!”
“크흠!”
할 말이 없어졌는지 고우리는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홱 돌린다.
그런 그녀를 보며 웃던 우현은 가져온 젖은 휴지에 담배를 비벼 껴 호주머니에 넣어갔다.
“들어가자! 사람들 기다릴 텐데…….”
“잠깐만! 잠깐만 별 좀 더 보다 가자.”
밤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녀에 이내 고개를 쳐들고 만다.
“만세야! 언젠가 나라를 볼 수 있겠지?”
“우리 둘이 만난 거 보면 몰라? 분명히 그럴 거야. 꼭!”
이때 고우리가 두 손을 들어 깍지 끼고 눈을 감는다. 마치 기도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걸 본 우현 역시 눈을 감고 뭔가를 중얼댄다. 소원이라도 빌 듯 말이다.
“참, 황 사장이 조사하라는 것 어떻게 됐어?”
잠시 서류를 살피던 왼쪽 눈썹 위에 상처가 있는 사내, 상치가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곁으로 다가왔다.
“영철이를 시켜 찍은 사진입니다. 이건 금은방에 대해 조사한 것이고, 이 사진은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찍어 놓은 것입니다.”
탁자에 늘어놓는 사진들을 두고 백인철은 서류부터 살펴간다.
“어디 보자! 김형원이라? 낯이 익은데……. 뭐, 어쨌든 2대째 금은방을 하고 있고 거래 실적도 그리 나쁘지 않고……. 별거 없네.”
서류를 옆으로 치우고 이번엔 사진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결혼 예물 시계 보러 왔고, 저것은 그냥 구경하러 간 거고…… 상치야, 이런 것밖에 없…….”
이게 다냐고 물으려던 그때 사진 한 장이 시선에 들어온다.
서둘러 그것을 집어 들고는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 봐라?”
치켜든 사진 위엔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뭔가 떠오른 백인철은 상치를 불렀다.
“한 달 전쯤 온 손님인데…… 4억짜리 거금을 갚은 사람이 있지? 그게 누구지?”
“아마…… 장우현인가 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래, 그럼 그 사람 계약서 복사본 좀 가져와라!”
빚 변제가 되면 원본 계약서는 파기하지만 복사본은 남겨두는데 이는 차후 맺을 계약에 대비해 그런 것이다. 캐비닛에서 파일을 꺼내 온 상치는 우현의 복사본 계약서를 빼내 건넸다. 그것을 재빨리 넘겨보던 백인철은 역시나라는 듯한 빛을 띤다. 우현이 변제 일시를 늘리기 위해 세웠던 연대보증인이 다름 아닌 김형원이었던 것이다.
“김형원이란 이름이 왜 낯이 익나 했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군.”
피식 웃던 그는 상치에게 물었다.
“이 우현이란 놈 보증 빚에 대해 언제 물어왔다고 했지?”
“아마…… 다섯 달 전쯤 됐을 걸요?”
“그때 주머니 사정은 어땠어?”
“조사할 당시 천만 원짜리인가? 적금 든 거에, 월세 집……. 뭐, 특별한 것 없는 영업맨이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영업사원이 반년 만에 6억이란 돈을 갚았다라……. 이거 냄새 나는데?”
턱을 매만지다 재차 말을 건넸다.
“상치야, 이 우현이란 놈 뒷조사 좀 해봐라!”
“저번에 빚 갚은 게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건 아니고……. 왠지 황 사장이 조사해 달라 부탁한 사람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습니까?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 찍은 영철이에게 이놈이 찍힌 날짜 확인해서 연락해 달라고 해! 황 사장에게 물어보게 말이야.”
“지금 곧바로 전화해 두겠습니다.”
한 차례 고개를 숙이던 상치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며 밖으로 나선다.
담배 한 모금을 빨아 목구멍으로 쑤셔넣던 백인철은 슬쩍 입꼬리를 올린다.
“앞으로 재미있는 사이가 될 것 같지 않아? 싸가지 없는 우현 손님!”
짙은 물욕을 자아내는 눈빛 아래로 연신 웃음이 흘러내린다.
제3-2장
소중한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한 지 이틀이 지났건만 우현은 이불을 몸에 두른 채 방바닥에서 뒹굴뒹굴 댄다.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서연이가 굼벵이 짓 그만하고 게임방이라도 가라고 소리를 칠까? 어쨌든 간만에 시체놀이를 제대로 하고 있던 우현은 이불에 몸을 둘둘 만 채 한숨을 푹 내쉰다.
“그나저나 신상품은 어떻게 한다?”
소금 판매가 좌절된 후 나름 열심히 생각해보았지만 신상품에 관한 실마리는 도통 잡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져가서 팔 물건도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 대륙에서 제조해 팔 것을 찾다 보니 더욱더 어려웠던 것이다. 난감 어린 표정을 짓던 그때 문이 열리며 서연이 들어온다.
“어!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일이 좀 일찍 끝나서 말이야. 참! 이거 받아!”
내밀어진 조그만 종이 백의 크기, 모양새로 보아 어디 화장품 가게라도 다녀온 듯싶다.
“뭘 사온 거야? 스킨, 로션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화장품 아니거든! 내가 직접 만든 향초거든!”
“향초? 정말?”
종이 백을 받아 열어보니 정말 초가 들어 있다. 시중에서는 파는 것과 크기, 모양 별다를 것 없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왠지 애착이 간다. 손에 들고 만지작대던 그가 물었다.
“고맙다. 오빠 생각해서 이런 걸 다 만들어주고…….”
“감사는 무슨……. 사실 친구가 양초 만드는 교실에 다니거든. 그래서 오늘 한번 몰래 참가해봤는데 제법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보영이하고 오빠 것도 같이 만들어왔지.”
“그래? 근데 만들기 어렵지 않았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쳐댄다.
“별로! 재료값이 좀 들어서 그렇지, 그렇게 어렵지 않던데? 그냥 재료 넣고 끓였다 틀에 부어서 말리면 돼!”
“재료값이 얼마나 드는데?”
“잘은 모르지만 이것저것해서 한 이만 원이면 4~5개 정도 만드는 것 같던데…….”
“그럼, 한 개당 못해도 사천 원 꼴이네. 와아! 비싸네.”
너무 비싸다는 듯 혀를 내두른다.
그걸 본 서연은 고개를 내저으며 설명을 해 간다.
“그래도 이거 아로마 향초라고! 심신을 안정시켜줘. 잠 잘 오게 만드는 초.”
“난 그냥 기대기만 해도 기절하는 거 알면서 하는 소리야?”
“하여튼 생각해서 해줘도 뭐라 한다니까…….”
씩씩대며 건넛방으로 가버린다.
순간 미안한 맘이 들어서 그런가?
아님, 동생이 준 선물이라서 그런 것일까?
자신의 방에서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향초를 둔다.
“뭐, 예쁜 것이 잠은 잘 오긴 하겠네.”
피식 웃으며 돌아서던 우현의 몸이 멈칫댄다 싶더니 이내 되돌려진다.
“잠깐! 그래, 이거야!”
향초를 집어 든 그는 만면에 화색을 띤 채 웃어간다.
그리 머리를 쥐어짜도 못 찾던 신상품을 서연의 도움으로 찾아낸 것이다.
미친 듯이 웃어젖히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서연에게로 간다.
“서연아! 서연아!”
방문을 열기 무섭게 아로마 향이 코끝을 찌른다.
아마도 시험 삼아 한번 켜 본 듯하다.
귀걸이를 빼고 있던 그녀는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본다.
“서연아! 너 아까 말했던 양초 만드는 교실 선생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
“전화번호는 왜?”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래.”
“그럼, 전화보다 직접 만나서 물어보지 그래? 아까 듣자 하니 3시간 뒤에 수업이 하나 더 있다고 하던데…….”
우현은 반색을 한다.
“그래? 가르치는 곳이 어디야?”
메모지 한 장을 꺼내 간략하게 주소를 그려간다.
그렇게 얻은 약도를 들고 찾아간 양초 만들기 교실.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과의 대화는 우현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일반 양초의 경우 파라핀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말에서 어느 정도 단가를 낮출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도매상가에 가서 구해온 재료를 가지고 집에서 직접 만들면서 가능성을 재확인한 그는 양초 대량 생산 계획에 착수했다. 하지만 도매가로 구입하는 재료비가 생각 외로 크다는 것을 깨닫고는 좀 더 가격을 낮출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러던 차에 예전에 영업 사원으로 있던 시절 파라핀을 만들어 파는 중소기업 사장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환대를 해주는 그에 고마움을 느끼며 우현은 파라핀 공급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히 옛정 때문인지 중소기업 사장과 약간의 이득만 더한 거의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계약을 성사시켰다.
물론 이후, 물량 확대와 동시에 가격을 점차적으로 올린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어쨌든 재료 공급에 관한 문제가 풀리자 이번엔 제조 공정에 대해 고민했다.
하나, 그건 그와는 너무도 먼 이야기인지라 불과 1시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전에 알던 철공소 사장님을 찾아갔다. 상황을 전해 들은 철공소 사장님은 지붕에 크레인을 깔고 커다란 솥을 들어 올려 움직이게 하는 것과 그 솥에 자그마한 구멍을 만들고 양초 틀로 이어지는 반원의 관을 연결하는 방식을 알려줬다. 그 정도라면 대륙의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여긴 우현은 소정의 돈을 주며 도면을 그려 달라 하였다.
그렇게 어렵게 얻어낸 도면과 양초 재료들을 구입해 가던 그는 중요한 한 가지를 빼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양초를 켤 불이었다. 마법이 있어서 그런지 불을 피울 도구라고는 부싯돌과 아궁이 속 불붙은 장작뿐이다. 그렇다고 양초를 옆에 끼고 열심히 부싯돌을 부딪쳐 켜라든지, 아궁이 불씨를 꺼내 쓰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맘 같아선 라이터를 갖다 팔고 싶지만 그건 또 안 될 일이라 답답하기만 했다.
한참을 고민 끝에 그나마 성냥이 나은 듯싶어 알아봤지만 그건 또 제조, 판매하기가 껄끄럽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어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성냥을 제조하는 작은 공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사장을 만나 성냥 제조를 어찌하는지 물었다. 순박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즉석에서 대략적인 성냥 제작 공정을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매우 쉬운 공정이었지만 문제는 기계화가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쑤시개처럼 가느다란 나무 막대기는 기계가 아니고서는 힘들 것처럼 보였다.
며칠을 고민하던 그는 부분 제작을(나무 막대기만 제작하고, 마찰판과 성냥인은 재료만 가져가는 것을 말함.) 하여 대륙에서 완전 조립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성냥 공장 사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말하고 흥정을 했는데 출고가로 가격만 맞춰주면 된다는 말에 흔쾌히 받아들여 줬다. 어차피 나무 막대기만 만들고 다른 것은 손대지 않아도 되니 한결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냥과 양초 들의 재료들을 바리바리 챙기고 나니 어느덧 3주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