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55
차원상인 055화
“다시다!”
막 창고로 들어가려던 차머리를 돌려 인근 편의점으로 향했다. 대륙의 음식이 워낙 빵이나 고기 같은 것뿐이라 다시다라도 사 가서 고깃국이라도 끓여 먹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시다 서너 봉을 산 우현은 경비원 임동수에게 같이 사 온 간식거리를 건네고는 창고로 들어갔다.
컨테이너에 걸린 줄을 잡고 라이터를 막 켜려는데 돌연 손바닥에 새겨진 모래시계가 눈가에 들어온다. 근데 전과는 달리 두 개의 모래시계가 십(十)자 형태로 새겨져 있다. 삼 일 전쯤부터 이렇게 변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모래시계가 두 개이니 그만큼 많은 걸 가져갈 수 있다는 건가? 아니면 대륙 차원으로 갈 수 있다는 건가? 도통 모르겠네.”
한껏 찌푸린 얼굴로 연신 살피던 그는 이내 고개를 내젓고 만다.
이때 어제 서우와 간만에 둘이 술을 마시며 했던 무협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소 장르 소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협객과 미녀, 그리고 절세고수에 대해 들었던 것을 생각하니 왠지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림 세계에 한 번쯤 가보고도 싶네.”
말을 내뱉던 그는 그만 피식 웃고 만다. 아무래도 빚을 다 갚았다는 것 때문인지 그간의 긴장이 풀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가자!”
순간 라이터에 불길이 치솟으며 위 정경이 흐릿해진다 싶더니 이내 환한 빛이 눈앞에 뿌려진다.
“이게 무슨…….”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아가던 우현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발밑이 허전한 것이 땅에 서 있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감았던 눈을 뜨기 무섭게 흙먼지 가득한 땅바닥이 눈앞에 드리워져 있다.
언제나 보이던 철 창고는 보이지 않고 말이다.
“제……기랄!”
쿠쿵!
처박히듯 떨어져 내린 우현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몸을 이리저리 뒤틀어간다.
하나, 그것도 잠시 뒤이어 들려온 굉음에 놀란 나머지 황급히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기와집 모양의 반쯤 무너진 출입구 너머 자리한 컨테이너 박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자신처럼 컨테이너 박스도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면서 눈앞의 집을 부숴버린 듯하다.
“근데 왜 공중에서 떨어진 거야?”
어이없어하던 그때 웅성거림과 함께 거친 일갈이 들려온다.
“웬 놈이냐? 뭐 하는 놈인데 세가의 위패를 모신 곳을 부순단 말이냐? 어서, 정체를 밝혀라!”
사극에서나 울려 퍼질 그 말에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뒤로 돌렸다.
“이건 또 뭐야? 드라마 사극 찍나?”
기가 막히다 못해 말이 다 안 나온다. 그럴 것이 주위 가득한 사내들은 하나같이 검을 빼 든 채 서릿발 같은 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옷이 아닌 꼭 중국 영화에서나 볼 법한 행색에다가 그들 위로 보이는 건물은 딱 백과사전에서나 볼 만한 장각이 서 있다. 무협영화 촬영소에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서 정체를 밝히지 못할까?”
또 한 번 외침이 귀청을 울리건만 그저 멍하니 있던 그의 시선이 손바닥으로 향한다.
그러자 횡으로 새겨져 있는 모래시계가 3분지 2가 비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하나는 멀쩡하고 말이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그에게서 나지막이 말소리가 새어 나온다.
“서, 설마 정말로 무협지 속의 무림으로 온 거야? 그런 거야?”
어이없어하는 표정과 함께 말이다.
바람의 기운을 머금은 운해(雲海)가 봉우리를 휘감고, 기암괴석마다 뿌리 내린 천태만상의 노송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 내는 곳, 운산. 흔히, 황산이라 부르는 이 산은 과거 명나라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인 서하객이 황산의 비경을 극찬하며 남긴 ‘황산에 오르면 오악이라 해도 굳이 볼 필요 없다.’란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황산의 사절(四絶 : 기묘한 바위 봉우리와 갖가지 형상의 소나무, 바다같이 깔린 안개, 깔끔한 온천을 뜻한다.)은 그 어떤 것도 비할 것이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풍광이 가득한 이곳 아래에 자리한 커다란 장원 하나가 있다.
십여 채의 전각과 장각, 그리고 탑들이 자리한 그것은 흡사 북경의 황궁을 보는 듯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이렇듯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기만 한 이곳이 바로 무림세가 중에서도 오대세가의 수좌라 칭하는 남궁세가이다. 그중 세가 정중앙에 위치해 있으면서 엄청난 규모의 전각이 있는데 흔히 가주전 또는 창천전이라 불리는 곳으로, 세가의 대소사가 결정지어지는 중요한 곳이다. 평상시 같으면 조용하기 그지없는 곳이건만 오늘따라 고함 소리가 주위를 시끄럽게 하였다.
쾅!
상석에 앉은 허연 백발의 노인이 부릅뜬 눈이 주위를 훑는다. 그걸 본 사람들은 혹시나 닿을까 봐 슬쩍 고개를 돌린다. 그런 그들에 더욱더 화가 났는지 거친 일갈을 내뿜어 간다.
“팔 할이다! 팔 할! 무려 세가의 점포 육 할이 문을 닫았단 말이다. 그뿐이냐? 호북, 산동 등등 총 스물일곱 개 지부 중 무려 스물두 곳의 지부를 폐쇄하였다. 그것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현 무림의 최강자이자, 무림제일가인 본가가 말이다!”
특히나 십 년 전, 정사대전에 나서 마교 교주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쫓아낸 것은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로 전설로 남아 있다. 이렇듯 무력에 관해선 소림조차 한 발 뒤로 무른다 할 정도로 위세 높은 남궁세가이건만 돈벌이만큼 그야말로 최하수였다.
손만 댔다 하면 줄줄이 쪽박이요, 좀 됐다 싶으면 사기를 맞거나, 시세보다 비싸게 물건을 샀다가 갑자기 폭락해 큰 적자를 보는 등 손해 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모조리 다 경험했다 싶을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도 그럴 것이 판매의 판 자도 모르면서 무림제일가라는 위세만 믿고 마구잡이로 일을 벌인 덕에 그랬던 것이다.
연이은 실패로 인해 그 많던 재산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고 결국 세가 소속 상점의 팔 할을 팜과 동시에 지부를 폐쇄까지 하기로 하였다. 조만간 돈 문제로 세가에 제자도 못 들이는 상황까지 펼쳐질지도 모를 정도이니 무림제일가로서의 위신은 땅에 처박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분을 이기지 못하는 듯 태상가주 남궁조공은 연신 탁자를 내리친다.
탕탕탕!
“뭣들 하고 있는 것이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지 말고 작금의 사태를 어찌 타개해야 할지 대책들을 내놓아라! 어서!”
“아버님! 그만 진정하시고…….”
얇은 눈매 밑에 점이 난 말상에, 귀밑에 백설이 낀 중년 사내가 화를 가라앉히라 하지만 남궁조공에겐 턱도 없는 소리라는 듯 더욱더 소릴 질러댄다.
“시끄럽다! 천옥, 네놈도 마찬가지다. 명색이 총관이라는 놈이 세가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어찌 보고만 있었느냐?”
“제가 알았을 땐 이미 손쓰기가 어려운 상태였던지라…….”
“그렇다고 시퍼렇게 뜬 눈으로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아버님!”
고개를 숙이며 몸을 물리는 총관 남궁천옥에게서 시선을 뗀 남궁조공은 외편에 자리한 호협한 눈초리에, 넓적한 얼굴에 두툼한 입술까지 누가 봐도 호남형인 중년 사내 세가주 남궁현철에게 말을 건넸다.
“넌 가주씩이나 되어서는 어째 말 한 마디 못하고 있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누가 잘잘못을 추궁하자 했더냐? 그저 현 난관을 타파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지.”
“……죄송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조개처럼 꽉 다물어진 그의 입술에 남궁조공은 한숨을 피어 올린다. 가주인 남궁현철은 무공도 높고, 사람들도 잘 살피고, 협의심과 인정도 있어 다 좋은데 문제는 워낙 말이 없고,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아 그로 인해 남이 답답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한숨을 재차 내쉬던 그는 남은 빚에 대해 물어갔다.
“현재 남은 빚이 얼마나 되느냐?”
머뭇대던 남궁천옥은 이내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지난 반년간 상점과 세가에서 물건을 구입한 대금과 아직 다 지우지 못한 빚까지 합해 대충 금자 천 냥(은자 1냥에 동전 4000문이며, 금자는 은자 20냥이다.) 정도 됩니다.”
“빚이 금자 천 냥?”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진다. 아무리 사업들이 망했다 해도 이렇듯 많은 금액을 빚으로 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절로 감싸 쥐는 이마 사이로 골이 깊게 파였다. 한참을 말없이 관자놀이를 매만지던 그는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렸다.
“자금 유통할 곳은 있느냐?”
“세가와 그간 거래를 해오던 금화전장도 이번은 힘들다며 거절을 표해왔습니다. 혹시나 싶어 다른 전장과 접촉을 해봤지만 그들 역시 힘들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현재 각 상점에 쌓아둔 물건을 팔면 어느 정도 돈이 마련되지 않겠느냐?”
“사실…… 삼 개월 전부터 상단들과의 거래가 끊긴 상태입니다. 물건을 줘봤자 돈도 못 받는다면서 말입니다.”
“그럼, 남은 상점과 지부 들을 다 팔면 어떻게 안 되겠느냐?”
“상점뿐만 아니라 모든 지부…… 아니 세가마저 처분한다 해도 그 많은 돈을 구하긴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 말은 식솔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는 말이구나!”
“…….”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남궁조공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허망한 눈빛 속에 사백여 년의 기나긴 남궁세가의 역사가 스쳐 지나간다. 마치 지금 눈앞에 펼쳐지듯 말이다.
“그리도 열망하던 무림제일가에 올랐거늘 정작 세가는 망해가고 있었다니…… 허무하기 짝이 없구나!”
푸념 어린 그의 말에 순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들의 대에서 가문이 이렇듯 속절없이 끝난다는 것에 대한 충격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다들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데 한 하인이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태, 태상 가주님!”
“무슨 일이더냐?”
“그게…….”
그렇지 않아도 남궁현철 때문에 답답한데 그까지 그러자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간다.
“뭔 일인데 그리 뜸을 들이는 것이냐? 어서 말하지 못할까?”
한바탕 노성이 일자 그제야 하인은 우물대던 입술을 벌렸다.
“천……휴당이 무너졌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더냐?”
순간 주위에서 웅성거림이 피어났다. 조상들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인 천휴당이 무너진 것이 너무도 불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남궁조공은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부여 쥔 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조상님들이 작금의 사태에 노해 그리한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맞잡으며 그는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었다.
“직접 보지 못해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갑자기 하늘에서 집체만 한 쇳덩이가 떨어져 내렸다고 했습니다.”
남궁조공은 그만 두 눈을 질끈 감아갔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여겼던 것이다.
‘하긴 나라도 세가가 이런 꼴이라면 지옥불 속에서도 기어 나왔겠지.’
조상이 그러는 것도 다 이해가 된다는 듯 내뱉던 그때 또 다른 하인이 들어왔다.
“태상 가주님!”
“이번엔 또 무슨 일이냐?”
“무너진 천휴당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나왔습니다.”
“뭐? 사람이 나왔다고? 무너진 천휴당에서 말이냐?”
“그렇습니다.”
뭔가 이상타 여긴 남궁조공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인 듯싶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