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56
차원상인 056화
“지금 천휴당에 누가 있더냐?”
“지금은 내원 호위대가 그곳에 남아 살피고 있고 내원주이신 남궁명국 님께선 천휴당에서 나온 사내를 붙잡아 압송해 오고 있다 합니다.”
“그래? 알았다. 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그자를 데리고 오라 하여라!”
“그리 전하겠습니다.”
하인들이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한 사내가 탁자를 내려친다.
“감히 남궁세가 선조들의 위패가 모신 천휴당을 부숴? 어떤 놈인지 오기만 하면 요절을 내버리겠습니다.”
남궁세가의 장비라 불릴 만큼 불같은 성품을 가진 남궁풍조가 그 큰 눈을 부라리며 이를 바드득 갈아댄다. 그렇지 않아도 남궁조공에게 한 소리 들어 기분이 나빴는데 잘 걸렸다 싶은 것이었다. 주위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지 눈가에 서슬 퍼런 한기를 뿜으며 연신 문 쪽만 바라본다. 남궁조공도 그런 그들의 속내를 읽은 듯 그리 크게 반응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초조함 속에 시간이 지나가고 일말의 사내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태상 가주님! 가주님! 내원주 남궁명국이 인사를 올리옵니다.”
남궁조공은 인사 따윈 됐다는 듯 손을 내저어간다.
“그만하고 천휴당에서 잡았다는 이나 데려오너라!”
“알겠습니다.”
재차 주억대던 그는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호위대가 두 손이 꽁꽁 묶인 기묘한 옷차림의 한 사내를 데려와 무릎을 꿇렸다.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무래도 겁을 많이 먹은 듯 불안한 내색이 가득했다. 왠지 짠하기까지 했지만 남궁조공은 별 기색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어갔다.
“노부는 남궁세가의 태상 가주인 남궁조공이라 한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멈칫대던 사내는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을 떼었다.
“장우현이라고 합니다.”
“장우현이라……. 거, 이름 한번 맘에 드는구나!”
빙그레 웃는 남궁조공에 사내, 우현은 조금은 차분해진 눈빛으로 바라본다.
훗날, 자신의 한 축이 되어줄 남궁세가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죄인처럼 두 손을 묶인 채 끌려가던 우현이 물어갔다.
한데 묘하게도 지금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한국말이 아닌 중국어다.
그것도 본토 사람이라고 해도 될 만큼 유창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우현이 중국어를 배웠느냐? 그건 또 아니다.
아는 거라면 중국 영화 보면서 알게 된 ‘따거(형님)!’ 이거 하나뿐인데 어찌 된 일인지 술술 나온다. 마치 입에 통역기라도 달아놓은 듯 말이다. 기묘하기 짝이 없건만 정작 당사자는 별 느낌이 없는 듯하다. 그럴 것이 그는 한국말로 대화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훗날, 이것이 차원을 넘나드는 능력과 함께 부여된 독특한 재능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쨌든 거듭되는 우현의 말에 상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앞만 보고 걷는다.
“그러지 말고 알려주십시오. 대체 이곳은 어디입니까?”
계속되는 물음에 짜증이 났던 것일까?
앞서 걷던 푸른 장삼의 사내가 홱 고개를 돌렸다.
“이곳은 무림제일가 남궁세가이다.”
“남……궁세가?”
순간 우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럴 것이 서우가 무협지에 대해 말할 때 거론되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남궁세가였기 때문이었다.
‘진짜로 무림으로 온 거야? 하늘을 가르고, 산을 무너트리는 절세고수들이 있다는 그곳에? 이게 말이 돼?’
기가 차다 못해 어이가 없어진다. 대륙이야 다른 차원이라서 갈 수 있었다 치지만 이곳이 진짜로 무림이라면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소리밖에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잠깐! 그럼, 차원을 넘는 것뿐이 아니라 시간도 내 맘대로 과거든, 미래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소리잖아?’
순간 우현의 눈동자에 환희가 깃든다. 자신의 생각처럼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상황은 백팔십도 바뀌기 때문이었다. 일단, 연대보증을 서던 때로 돌아가 보증서에 도장을 찍는 것을 막을 수도 있고,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으로 가 죽지 않게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남몰래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던 그때, 자신을 끌고 가던 이들이 돌연 커다란 대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크기도 크기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왠지 모르게 주눅 들게 만든다. 자라목처럼 한껏 움츠린 채 쫓던 우현은 앞서 가던 이들을 따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태상 가주님! 가주님! 내원주 남궁명국이 인사를 올리옵니다.”
앞장서서 걷던 푸른 장삼의 말에 상좌에 앉아 있던 노인이 손을 내저었다.
“그만하고 천휴당에서 잡았다는 이나 데려오너라!”
“알겠습니다.”
재차 주억대던 그가 손짓을 하자 곁에 있던 이들이 자신을 끌고 앞으로 가 무릎을 꿇렸다.
살기등등한 주위 사람들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노인이 자신을 보며 물어왔다.
“노부는 남궁세가의 태상 가주인 남궁조공이라 한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멈칫대던 우현은 시선을 노인에게로 향한다.
모양새로 보아 이곳에서 수장은 바로 그인 듯싶다.
‘일단, 아티팩트를 사용해 저 노인을 제압해 상황을 내게 유리하게 만들어야겠군.’
사실 아까 맨 처음 사람들에게 포위됐을 때 아티팩트를 사용해 도망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도망친다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사람들도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닌 듯싶어 꾹 참았었다. 하지만 이제 이곳의 수장을 알았으니 어떻게든 제압해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어찌해야 할지 맘을 정한 우현은 기회를 얻기 위해 일단 상대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기로 하였다.
“장우현이라고 합니다.”
“장우현이라…… 거, 이름 한번 맘에 드는구나!”
맘에 드는 듯 빙그레 웃던 노인, 남궁조공이 재차 물어왔다.
“모양새로 보아하니 이곳 사람이 아닌 듯싶은데 어디서 온 것이냐?”
슬쩍 주위를 살피던 우현은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주위를 물려주십시오.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눈살이 꿈틀댄다.
설마하니 붙잡혀온 주제에 이런 청을 해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풍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릴 쳐댄다.
“천휴당을 부서뜨린 주제에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냉기를 쭉쭉 뽑아대는 남궁풍조와는 달리 우현에게선 별 반응이 없다.
그럴 것이 그로서는 어떻게든 대청 안의 사람들을 줄여야 나중에 남궁조공을 제압할 때 쉬워지기 때문이었다. 살기등등한 주위 분위기에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그를 본 남궁조공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하고 가주와 총관을 빼고는 모두들 나가거라!”
“아, 아버지!”
“내 말 못 들은 것이냐?”
부릅뜬 눈을 부라리는 그에 불같이 일어서던 사람들의 말문이 막히고 만다.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을 한 채 우현을 보던 그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워갔다.
이윽고 넷만 남게 되자, 남궁조공은 시선을 내려 그를 바라보았다.
“네 원대로 됐으니 이제 어디서 왔는지 말해 보아라.”
아직 둘이 더 남아있기는 하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싶은 우현은 다물고 있던 말문을 열었다.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고려라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수염을 매만지던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고려라는 나라를 들어 본 적이 있느냐?”
“그런 곳이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가주 남궁현철은 슬며시 고개를 내저어간다.
설명을 잘못했나 싶은 생각에 황급히 말을 덧붙인다.
“요녕 넘어 길림 옆에 자리한 흑룡강 밑에 자리한 동이족을 말합니다.”
“동이족이라……. 근데 요녕 땅을 넘어 흑룡강이 있다는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신지?”
“내 알기론 요녕 땅 너머는 바다로 알고 있어서 말이다.”
“바다요?”
순간 우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방금 한 말에 따르면 요녕 너머론 땅이 없다는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는 서둘러 말을 건넸다.
“아닙니다. 요녕 땅 너머 길림성이 있고, 흑룡강이 존재합니다.”
“그래?”
남궁조공은 흘낏 시선을 옆으로 두었다.
“천옥아! 뒤에서 대륙 전도를 가져오너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주억대던 남궁천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 벽에 걸린 커다란 두루마리를 탁자에 폈다.
고개를 숙여 지도를 살피던 우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이 어렸을 적부터 보아오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몽골과 한반도는 어디 갔어? 소련하고 유럽은 또 어디 있고?’
암만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 딱 중국만 그려놓은 듯싶다.
말도 안 된다며 내저어 가던 우현의 고개가 일순 멈춰간다.
‘설마……. 여기 과거가 아니라 무림만 존재하는 다른 차원 아니야?’
그랬다.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이곳은 패러럴 월드(평행차원) 중 하나로 먼 옛날 지각변동을 할 때 지금의 오대양 육대주를 이루는 땅 대부분이 바다에 가라앉아 결국 중국 대륙만 남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세상은 유럽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무림인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넋을 잃고 멍하니 있는 그를 보던 남궁조공이 물었다.
“자아! 이래도 요녕 땅 너머 길림성인가 흑룡강 하는 것이 있다 할 것이냐?”
“그…… 그게…….”
“이쯤 해두고 네 정체를 밝히지 그러느냐? 천휴당을 부서트린 연유도 아뢰고 말이야. 그러는 편이 훨씬 나을 듯싶은데 말이다.”
순간 우현의 맘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밝히는 것이 온당할 듯싶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나 타 차원에서 왔소!’하고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답답하기만 했다. 쉬이 답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던 남궁조공은 슬쩍 턱을 괴며 말을 하였다.
“혹시나 우릴 제압해 어찌할 생각이라면 접어라. 현 무림의 십대고수 중 둘이 이곳에 있으니 말이야.”
은근슬쩍 이쯤에서 털어놓으라며 압박을 가해온다.
그걸 느낀 것인가? 아님, 자신의 속내가 탄로 나서 그런가?
우현의 낯이 한없이 어두워진다.
‘십대고수라면…… 무림에서 최강자 중 하나란 말이잖아!’
서우가 무협지에 대해 말할 때면 매번 들었던 말인 무림의 최강자들이라 불리는 십대고수였다. 한데 그런 이들이 이곳에 둘이나 있다니…… 이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는 꼴이나 다름없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감해하던 그때 김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은 계약 조건도 좋지만 때론 사실대로 털어 놓는 것이 일을 풀어 감에 있어 더욱더 좋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잔머리 굴리지 말고 흉금을 다 털어놓으라는 말이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 제일 좋을 듯싶다는 생각이 든 우현은 이내 맘을 굳혔다.
“알겠습니다. 제가 어디서 온 것인지 밝히겠습니다.”
“그래, 말해보아라!”
궁금해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던 그는 가뭄에 든 논처럼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떼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